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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8화 (18/293)

18화. 당자윤 ― 그만하게 (2)

금호의 등장에 당자윤은 슬쩍 말머리를 그쪽으로 돌렸다.

무림맹 내에서 그리 큰 힘을 지니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상대는 하나의 관을 이끄는 관주.

제 아무리 사천당문의 핏줄이라고 한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상대였다.

당자윤이 말 위에서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건넸다.

"금 관주님을 뵙습니다."

"당 공자님 아니십니까. 공자와 제 수하 간에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아아, 별건 아닙니다. 그저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 한다는 걸 설명하고 있었지요."

담담하게 말을 하는 당자윤을 금호는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그래서 이야기는 끝나셨습니까?"

"막 끝낸 참입니다. 슬슬 가 볼까 하는데……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움직여도 될까요?"

"그러시지요."

금호 또한 길게 이야기를 이어 나갈 생각이 없었는지 가겠다는 그를 잡지 않았다. 대화를 끝내자 당자윤은 다시금 자신이 가려던 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가 탄 말이 막 다시금 걸음을 옮길 때였다.

막 옆을 스쳐 지나가며 당자윤이 방건을 향해 작게 말했다.

"운이 좋네. 앞으로 조심해. 또 눈에 띄면 그때는 이 정도로 안 끝나니까. 그땐 아예 머리를 땅에 처박아 줄게."

말을 끝낸 당자윤이 슬쩍 천무진을 보더니 이내 비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더는 미련이 없다는 듯 그는 곧바로 말고삐를 움켜잡았다.

"이랴!"

다시금 말은 좁은 길목을 거침없이 달리며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그가 자리를 뜨자 금호가 입을 열었다.

"괜찮은가?"

"관주님을 뵙습니다!"

말과 함께 방건이 무릎을 꿇었다.

금호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성큼 다가와 무릎을 꿇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미안하네. 관주가 되어서는 제 식솔들 하나 못 챙기는군."

"아, 아닙니다, 관주님!"

그의 위로에 방건은 감동했는지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방건을 다독이던 금호가 이내 자신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천무진의 움직임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천무진이 포권을 취했다.

"관주님을 뵙습니다."

"……누군가 자네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번에 홍천관에 배정 받은 무진이라고 합니다. 관주님을 뵙고 신고를 하기 위해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아, 며칠 자리를 비웠는데 혹 오래 기다렸는가?"

"삼 일 정도 대기했습니다."

"이런…… 미안하네. 맹의 중요한 일을 하러 자리를 비웠는데 하필 그때 새로운 인원이 들어올 줄은 몰랐군."

"괜찮습니다."

천무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를 향해 웃음을 보인 금호가 이내 물었다.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복건성에 있는 비연방(飛燕幇)에서 왔습니다."

"비연방?"

처음 듣는 곳이었지만 이내 금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홍천관의 무인들은 이처럼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문파 소속인 경우가 꽤나 잦았기 때문이다.

천무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가 말을 이어 나갔다.

"무진이라고 했던가? 한 식구가 되었으니 이제부터 잘해 봄세."

"신고를 해야 하는데 언제 찾아뵈면 되겠습니까?"

"됐네, 이렇게 얼굴을 보면 그걸로 된 게지. 내 자네 입관에 대한 서류는 집무실에 돌아가는 즉시 상부에 올리도록 하겠네. 오늘부로 자네는 진짜 우리 홍천방의 식구가 된 게야."

말을 마친 금호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방건을 향해 말했다.

"아직 모르는 게 많을 테니 자네가 잘 도와주게."

"물론입니다 관주님!"

자신만 믿으라는 듯 스스로의 가슴을 두드리며 방건이 목소리를 높였다.

천무진과 방건을 번갈아 바라보던 금호는 짧게 손을 들어 올리고는 이내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방향을 보아하니 홍천관으로 가고 있을 공산이 커 보였다.

길었던 대기, 그리고 마침내 그 지루했던 시간이 끝난 모양이다.

정말로 입관을 하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보다 자유롭게 무림맹 내부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금호가 사라지고도 방건은 여전히 그쪽 방향으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어깨를 두드려 주며 격려의 말을 건넸던 것이 그리도 좋은지 그는 연신 실실거렸다.

그런 방건의 옆으로 다가간 천무진이 물었다.

"아까 그 말 타던 자가 누굽니까?"

갑작스레 당자윤에 대해 묻자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좋지 않은 기억, 그렇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말해 줘야 그나마 덜 부끄러울 거라 생각했는지 방건이 답했다.

"너도 들어는 봤을 거다. 당자윤, 정파가 자랑하는 잠룡대(潛龍隊)의 일원이지."

잠룡대는 최고로 손꼽히는 후기지수들만이 들어가 있는 부대다. 그곳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훗날 정파를 이끌어 갈 재목이라는 걸 인정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자윤에 대해 설명한 방건은 그에게 잡혔던 머리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성격 더럽다는 건 뒷소문을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보통이 아니네. 너도 조심해. 잠룡대의 일원이라는 말은 천하에서 알아주는 무인이 된다는 소리니까. 괜히 눈 밖에 났다가는 험한 꼴 볼지도 모른다. 하아, 그나저나 난 어쩌지. 괜히 찍혀 가지고……."

깊은 한숨과 함께 걱정을 토해 내는 방건을 향해 천무진이 말을 받았다.

"흐음,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뭐 그리 대단한 놈은 못 될 것 같으니까."

"내 말 어디로 들은 거야? 저 녀석 잠룡대 소속이라니까?"

답답하다는 듯 말하는 방건이었지만, 천무진은 당자윤이 사라졌던 방향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방건은 그가 대단한 자가 될 거라 말하고 있었지만 천무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당자윤이 훗날 무림에서 이름을 날리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자신의 기억에…… 그 이름 석 자는 없었으니까.

* * *

장원으로 돌아온 천무진은 늦은 밤이 될 때까지 자신의 방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는 정식으로 입관을 허락받아 보다 자유롭게 곳곳을 다닐 수 있게 된 상황. 내일부터는 많은 단서를 찾기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그리고 천무진은 오늘 방건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을 정리해 적화신루에 조사를 의뢰하고자 했다.

허나 백아린이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탓에 그는 그녀가 장원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시(亥時)가 지나갈 무렵, 마침내 기다렸던 백아린을 데리고 단엽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열고 나타난 단엽이 먼저 불만을 토했다.

"신명 나게 싸우게 해 준다더니 이건 그냥 몸종이잖아! 금방 온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입구 근처에서 대기했건만 한 시진을 넘게 기다렸다고."

연무장을 원했던 그에겐 객잔을 떠나 이곳 장원으로 들어와 수련을 할 수 있게 된 점은 무척이나 좋았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하루하루가 심심할 뿐이었다.

특별한 일도 없이 그저 홀로 장원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으니까.

투덜거리는 단엽을 놔둔 채로 천무진은 백아린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무림맹에서 무슨 일 있었어? 생각보다 늦었는데?"

"의뢰했던 정보가 들어온 게 좀 있어서요. 신루의 사람들과 잠깐 만나고 왔어요."

"무슨 정본데?"

"전에 의뢰하셨던 것 중 일부와…… 양휴의 뒤를 캐던 저희 쪽 사람들을 죽인 그자에 대해서요."

적화신루 무인들이 죽었던 그 사건에 대해 말하는 백아린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그날의 일은 백아린에게도 무척이나 큰 사건이었다. 어떻게든 되갚아 줘야 할 일, 그랬기에 적화신루를 통해 그 일을 벌인 자에 대해 알아봤다.

그리고 마침내 조사가 끝나고 정보가 들어온 것이다.

천무진 또한 기다리고 있었던 정보였기에 눈을 빛내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백아린이 말을 이었다.

"우선 홍천관을 떠난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라고 의뢰하셨던 거에 대해 먼저 말씀드릴게요. 그들은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 무인이다 보니 사고에 휘말려 죽은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건 정말 극히 일부분이었고요. 무림맹에서 임무 중에 죽은 경우도 있긴 한데 그 또한 많지 않아요."

"……그래?"

천무진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홍천관에서 뭔가를 찾아보려 했지만 크게 미심쩍은 게 없었다.

그나마 신경이 쓰이는 하나가 많은 이들이 홍천관에서 떠난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천무진은 그게 쉽사리 납득이 가질 않았다.

직접 들어가서 본 홍천관의 무인들은 그리 뛰어나지 않은 문파에 속해 있고, 능력들 또한 낮은 편이다.

그 말은 곧 한번 무림맹을 떠난다면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다는 소리다.

당장에 봤을 때 홍천관의 무인들 중에서 그 누구도 무림맹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매년 십여 명 이상이 그만둔다니…….

뭔가 미심쩍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그들을 이용하고 제거한 후에, 홍천관을 떠난 식으로 일을 꾸미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백아린이 가져온 정보를 확인하니 그건 아닌 듯싶었다.

"의뢰하셨던 정보는 이게 우선 전부고요, 전에 양휴를 조사하던 조사단이 전멸 당했던 일에 대해서도 알고 싶으시다 하셨으니 이것도 전달드릴게요."

백아린의 말에 천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또한 자신이 찾는 그들과 관련되었을 일이라 생각했기에, 무척이나 기다려 왔던 정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사실 나온 정보가 거의 없어요. 정말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어서 오히려 시간이 더 걸렸다더군요. 우선 특별한 무공의 흔적은 없었고요, 모두 검상이 하나씩 남아 있었다고 해요. 정확하게는 찌른 흔적으로요."

"찔렀다고?"

"네, 이렇게."

백아린은 자신의 손가락을 들어서 가슴 쪽에 가져다 댔다. 심장이 위치한 곳에 손가락을 댄 채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단 한 명도 오차는 없었어요. 다른 곳에는 일절 상처도 없이 일격에 모두가 죽었고, 그 목표는 심장이었어요."

"심장이라…… 뭔가 특별한 건 없었어?"

"하나 있었어요. 비스듬히 검이 들어왔는데 아래에서 위로 찌르는 형식이었다고 하더군요."

"모두가?"

"네, 죽은 조사단 전원이 일치해요."

"그 말은 역시나…… 한 명에게 당했다는 소린가?"

천무진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닐 확률도 분명 있을 순 있다. 하지만 시체에 남겨진 흔적들은 정확히 일치한다. 제 아무리 똑같은 무공을 익혔다 해도 조금은 다를 법도 한데, 완벽하게 같다.

이런 경우엔 대부분 단 한 명의 솜씨라고 봐야 옳다.

"의심스러운 자는 못 찾았고?"

"네, 양휴의 뒤를 조금 더 캐긴 했지만 의심스러운 자는 없었어요. 혹시나 더 깊게 파고 들어갔다가는 그들 또한 목숨을 잃을 수 있어 우선은 적당히 거리를 두게 시켰고요."

조사단 하나를 궤멸시킨 자.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 섣부르게 행동했다가는 또 같은 피해를 반복하게 될 수도 있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천무진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한 명……."

사실 지금 천무진이 찾는 그들과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

무림맹?

아니, 바로 양휴 본인이다.

양휴에 관련된 일을 알아내기 위해 무림맹에 들어간 것이니, 당연히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지 않겠는가.

그걸 잘 알면서도 천무진은 양휴를 건드리지 않고 무림맹에 직접 들어가는 번거로운 일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적화신루의 조사단 전원이 죽은 그 사건 때문이었다.

백아린에게 그들은 제법 빼어난 무공 실력을 지녔다 들었다. 그런 이들을 몰살시킨 누군가가 있다.

그들이 누군지 알아야 했다.

적어도 양휴의 앞에 천무진 본인이 나설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 숨어 있는 정체불명의 살인자가 자신을 알아볼 수 있다 생각해서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보내 억지로 끌고 와야 된다는 건데, 사실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 그런 판단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혹 천무진이 어딘가의 도움을 받아 많은 숫자의 무인이 움직인다면 상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확률이 컸다.

오히려 양휴를 죽이고 입막음을 시킬 수도 있는 상황. 단서 하나하나가 중요한 이 시점에 양휴라는 패를 잃을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천무진은 보다 확실하게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리고 백아린의 정보를 통해 그 상대가 하나인 것을 확인하자…… 망설일 이유가 사라졌다.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단엽."

"왜 주인?"

흥미가 이는 이야기였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단엽이 자신을 향한 천무진의 부름에 답했다.

천무진이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할 일이 하나 생겼어."

"그게 뭔데?"

"양휴, 네가 잡아와야겠다."

"오호, 드디어 움직이는 건가?"

단엽의 눈동자에 이채가 일었다.

긴 시간 방구석에 박혀 있으며 싸우고 싶은 의지를 풍겨 대던 그다. 그러던 중 마침내 단엽이 움직일 시간이 온 것이다.

"지금 이야기는 대충 들어서 알 거야. 아마 옆에 정체를 모를 놈 하나가 있을 공산이 커."

"그 일격에 심장을 꿰뚫어 죽였다는 놈?"

"맞아. 너 혼자 나타나면 아마도 그자 또한 굳이 숨으려 들지 않겠지."

상대가 얼마나 강한 자일지는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움직일 수 없는 지금, 단엽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최고의 패다.

천무진이 말을 이었다.

"반항을 할지, 아니면 순순히 따라올지는 몰라. 어떻게 굴든 잡아와. 반드시 죽지 않은 상태로 내 앞에 가져다 놔야 돼."

"그 심장을 꿰뚫는 놈은? 그 새끼는 죽여도 되고?"

천무진이 뭐라 대답을 하려고 할 때였다.

가만히 서 있던 백아린이 먼저 단엽을 향해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만 할게. 혹시 죽이게 된다면 그 시체는 우리 쪽에 넘겨줘. 정체를 알아내고 싶거든."

수하들을 죽게 만든 자다.

정체를 알아내서 그가 수하들을 죽이도록 명령을 내렸던 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그것이 백아린이 죽은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방법이었다.

그녀의 말에 단엽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뭐, 그렇게 하지. 단 내 주먹에 당하고도…… 그 시체가 멀쩡히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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