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통로 ― 찔러라
아주 잠시 느꼈던 피 냄새는 문이 닫히고 얼마 되지 않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피 냄새를 확인하는 순간 천무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안에서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를 천무진은 알아야만 했다.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가늠할 수가 없는 상황, 당장에 문을 때려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기도 뭐했지만 그렇다고 방관하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그가 내공이 담긴 손가락을 창고의 벽에 조용히 가져다 댔다.
그러자 천무진의 손가락이 마치 두부 사이를 파고들 듯 두꺼운 벽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적절한 내공의 분배가 있었기에 소리조차 나지 않고 그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만 뻥 하고 구멍이 뚫려 버린 것이다.
손가락을 끄집어 낸 천무진은 곧바로 생겨난 구멍을 통해 내부의 모습을 살폈다.
구멍은 작았지만, 다행히도 내부의 모습은 얼핏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안에서 익숙한 방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저기…… 여긴 어딥니까 관주님."
떨려 오는 목소리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그를 관주 금호가 다독였다.
"따라와 보면 알 걸세."
말과 함께 금호는 슬그머니 창고의 한쪽에 위치한 선반으로 다가가, 그 위에 있는 물건들을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는 선반 구석에 감춰져 있던 낫 모양의 물건을 옆으로 잡아당기는 그 순간.
스윽.
바닥이 갑자기 들리며 이내 숨겨진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천무진은 창고 바깥에서 똑똑히 확인하고 있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방건의 어깨를 두드리며 금호가 말했다.
"자, 내려가지."
말을 마친 금호는 이곳까지 동행한 오자헌과 방건을 데리고 비밀 통로를 향해 내려섰다. 그리고 이내 그들이 다 사라지자 열렸던 바닥의 문이 닫혔다.
구멍을 통해 내부의 모습을 살펴보던 천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옅은 피 냄새, 그렇지만 저 비밀 통로가 열리는 순간 혈향이 짙어졌다.
주변을 슬쩍 확인한 천무진이 빠르게 창고의 입구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이내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기 전에 빠른 속도로 내부로 잠입해 들어갔다.
몸을 낮춘 채 창고 안으로 들어선 천무진은 우선 내부의 상황부터 살폈다.
창고 안은 평범했다.
금호가 사는 거처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이나, 간단한 자재들이 있는 곳. 그렇지만 하나같이 먼지가 쌓여 있는 걸 보아 이곳은 분명 사람들의 손이 전혀 닿지 않는 게 확실했다.
마음 같아서는 서둘러 뒤를 쫓고 싶었지만 천무진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서는 걸 보아하니 계단으로 이어진 비밀 통로겠지만 혹시나 내부가 아주 작다면 서둘러 뒤를 쫓았다간 곧바로 들통이 날 수도 있다.
그랬기에 적당한 시간 차를 두고 그 뒤를 쫓으려 하고 있었다.
다만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다름 아닌 방건이었다.
피 냄새가 풍겨 나왔던 장소다.
그 말은 곧 결코 좋은 곳은 아닐 거라는 의미였다.
잠시 몸을 감춘 채 뜸을 들이던 천무진이 방금 전 금호가 장치를 움직였던 선반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이미 다른 짐들은 치워져 있는 상황이었기에 조작은 간단했다.
낫 모양의 물건을 쥔 천무진은 이내 아래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손을 움직였다.
슬쩍 힘을 주자 낫은 바깥쪽으로 끌려나왔고, 덩달아 사라졌던 비밀 통로 또한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이 들리며 드러난 공간, 안은 꽤나 깊었는지 칠흑 같은 어둠만이 맴돌았다.
천무진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동시에 안력을 끌어올려 어두운 주변의 모습을 확인했다.
계단을 몇 개쯤 내려가자 벽면에 툭 튀어 나온 장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천무진은 그걸 가볍게 눌렀고, 이내 위쪽에 열려 있던 문이 자연스레 닫혔다.
‘이게 내부에서 문을 열고 닫을 때 쓰는 장치인 모양이군.’
이미 예상을 했던 탓에 천무진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비밀리에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할 상황을 대비해서 보다 확실하게 주변의 것들을 확인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긴 계단을 내려선 천무진의 시야에 빛과 함께 긴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는 한눈에 봐도 알 정도로 무척이나 길었다.
천무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커다란 공간을 확인하고는 놀란 듯 미간을 구겼다.
‘이토록 큰 지하 공간이라니…….’
무림맹과는 거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 금호의 장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성도다.
그런 마을에 이토록 커다란 비밀 공간을 만들어 뒀을 거라고는 직접 들어서기 전까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긴 복도에는 어둠을 밝힐 불들이 곳곳에 자리했고, 양 옆으로는 커다란 방들이 존재했다.
천무진은 발소리를 죽인 채로 천천히 그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바깥에서도 느꼈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피 냄새는 보다 고약해졌다.
이 정도라면 이제 방건 정도 되는 무인이라도 눈치를 챌 수준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천무진은 옆에 자리하고 있는 방들을 슬쩍슬쩍 살폈다.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방들은 내부를 확인할 수 있는 곳도 있었고, 아닌 곳도 있었다.
창고처럼 꽉 막힌 곳도 있는 반면,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문의 일부분만 뻥 뚫려져 있는 장소도 많았다.
대부분이 후자처럼 되어 있었기에 안을 살피는 것은 간단했다.
허나 그 공간들 모두가 거의 텅 비어 있다시피 했다.
간단한 의자나 탁자 정도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겨우 그뿐, 결코 뭔가 눈에 띄는 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무진이 가벼이 넘기지 않는 것은 그 방 내부에서 풍겨져 나오는 피 냄새.
그리고 바닥 곳곳에 뿌려져 있는 지워지지 않은 얼룩들이었다.
걷던 도중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방 내부를 살펴보던 천무진의 표정이 절로 일그러졌다. 피 냄새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더니 이 방의 혈흔은 가벼이 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독했다.
방 내부를 살펴보던 천무진은 피가 물든 의자와 바닥에 딱딱하게 굳어 있는 혈흔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며칠 안 됐는데.’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천무진은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안쪽에서 잠겨 있는지 문은 열리지 않았고, 천무진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한쪽에 나 있는 창문 같은 공간을 통해 손을 밀어 넣었다.
안쪽에서 문을 열려고 한 것이다.
손을 집어넣던 천무진은 팔뚝 위쪽에 닿는 뭔가를 느끼고는 그쪽으로 시선을 줬다.
문틈 사이에 있는 뭔가를 발견한 천무진이 손톱을 이용해 그것을 끄집어냈다.
틱.
가벼운 소리와 함께 문틈 사이에 있는 뭔가가 아래로 내려왔고, 이내 그것은 문에 만들어져 있는 창문 같은 공간을 막아 버렸다.
한 눈에 봤을 때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장치.
그렇지만 문제는 그곳에서 빠져나온 칸막이가 무척이나 투명하다는 것이었다. 칸막이를 쳤음에도 반대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천무진은 투명한 칸막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뭐로 만든 건지 모르겠지만 강도가 제법 강해 쉽사리 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건 뭐지?’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굳이 투명한 칸막이를 만든 건 바깥에서 안을 살펴보기 위해서라는 거다. 마치 바깥인 이곳에 서서 안에서 벌어지는 무슨 일을 관찰이라도 하는 것처럼.
의문이 깊어졌기에 천무진은 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내렸던 칸막이를 올리고는 이내 애초의 목적대로 문 너머의 손잡이를 돌려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에 들어간 천무진은 곧바로 의자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굳은 피를 어루만졌다.
피는 완전히 응고되어 있었지만…….
주변의 모습까지 확인하자 예상은 확신으로 변했다.
‘며칠 전 이곳에서 누군가가 죽었군.’
바닥에 잔뜩 얼룩으로 남아 있는 이 혈흔이 한 사람의 것이라면 이 혈흔의 주인은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천무진은 곧바로 방을 나갔다.
그리고는 서둘러 긴 길을 따라 다시금 움직였다.
점점 진해졌던 피 냄새.
그랬기에 천무진은 확신했다.
금호가 있는 곳이 그리 멀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얼마 움직이지 않아 천무진은 사람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벽에 몸을 바짝 밀착한 채로 움직이던 그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저긴가?’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한쪽에 위치한 방 안에서 세 사람의 기운이 감지됐다. 그걸 확인한 천무진은 곧바로 몸을 낮춘 채 빠르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이내 세 사람이 들어가 있는 방의 문가에 이르자, 오히려 맞은편에 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슬쩍 문을 당겨 봤고, 다행히도 그곳은 잠겨 있지 않았다. 천무진은 반대편에 있는 금호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문을 조금씩 열고는 그 방 안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문을 닫은 천무진은 잠시 몸을 기댄 채로 반대편의 기척을 예의 주시했다.
그리고는 이내 문에 바짝 기댄 그 상태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스윽.
문 쪽에 나 있는 커다란 창을 통해 맞은편 방 안을 확인하려는 그때였다.
뚜벅 뚜벅.
들려오는 걸음걸이 소리에 고개를 들이밀려던 천무진이 서둘러 다시금 몸을 낮췄다. 그리고 이내 반대편 방에서 나온 누군가가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텅.
곧 손가락으로 그 투명한 칸막이를 끄집어내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 소리까지 확인하고서야 천무진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올렸다. 맞은편에는 걸어 나온 방 내부를 살피고 있는 금호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의 옆에는 함께 이 비밀 장소로 들어온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나 그 의문은 곧 풀어졌다.
그가 바라보는 그 투명한 칸막이 너머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천무진의 의문은 더 커졌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보이는 건 의자에 앉아 있는 방건과 오자헌이었다.
그런데 둘의 상태가 이상했다.
축 처져 있는 몸을 보아하니 혼절한 것이 자명한 상황, 방 내부에는 어른 주먹 두 개 정도를 붙여 놓은 크기의 향로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피가 흥건했던 것과는 전혀 연관되지 않는 오묘한 상황에 천무진이 그저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만 있는 바로 그때.
금호는 자신의 바로 뒤편에 있는 방에 천무진이 있을 거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하며 칸막이 너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목소리를 듣는 순간 천무진이 움찔했다.
금호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허나 그 놀람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천무진의 눈이 커졌다. 혼절해 있던 방건과 오자헌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눈을 뜬 채로 맞은편에 있는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평상시 방건의 눈빛이 아닌데?’
억지로 눈을 부라리며 대범한 척하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언제나 망설임이 있고, 두려움이 있다.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시선.
그리고 그 순간 이어지는 금호의 말은 천무진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방건. 지금 네 앞에 있는 그자의 심장을…… 찔러라."
‘뭐?’
뒤편에서 몸을 감추고 있던 천무진은 갑작스레 내뱉은 금호의 말에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채 상황을 지켜봤다.
갑자기 상대를 죽이라니?
방건은 겉보기와 다르게 유약한 성격이었고, 그런 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따를 리 없다 생각했다.
바로 그때였다.
명령이 떨어지는 그 순간 정말 찰나의 망설임조차 없이 방건은 옆에 놓여 있던 단검을 들어 곧바로 오자헌의 심장이 있는 가슴 쪽에 찔러 넣었다.
푹!
동시에 오자헌의 가슴에서 터져 나온 피가 지척에 있던 방건의 얼굴과 손으로 쏟아졌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방건은 튀기는 피를 피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고, 손에 쥔 단검을 계속해서 심장으로 찔러 넣고 있었다.
상대인 오자헌은 곧바로 숨을 거두며 바닥으로 쓰러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건은 단검을 놓지 않았다.
쏟아지는 피가 방건의 전신을 적셨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를 누르고 있기만 했다.
제 아무리 살인귀라 할지라도 살인에 이처럼 무덤덤할 수는 없다. 흡사 허수아비를 찌르고 있는 것처럼 무감정한 모양새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이 광경을 천무진은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정신을 돌아오게 한 건 앞 쪽에 있던 금호였다.
짝짝.
"좋아, 아주 좋아!"
박수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온 탄성.
이 모든 광경에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금호의 모습을 보며 불현듯 며칠 전 단엽이 잡아 온 양휴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골목길 안에서 몇 차례고 뺨을 맞았음에도 무감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던 사내.
그리고 지금 그 사내와 상대의 심장에 아무렇지 않게 단검을 꽂아 넣고 있는 방건의 모습이 겹쳐 보이고 있었다.
‘……이거였구나.’
천무진은 알 수 있었다.
금호가 하고 있는 짓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일이 전생에서 조종당했던 자신의 모습과 어떠한 연관이 있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속으로 이를 갈던 천무진의 손이 천천히 허리춤으로 향했다.
거리는 지척이었고, 지금 이 상황이라면 문에 있는 창을 통해 곧바로 검을 쑤셔 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금호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천무진의 손이 막 검을 뽑아들려는 그 찰나.
덜컹.
금호가 문을 열고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소매로 입가를 가린 채 안으로 들어가 이내 죽어 있는 오자헌을 누르고 있던 방건을 발로 툭툭 찼다.
"됐어, 죽었으니까 좀 비키라고."
금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제야 방건은 단검에서 손을 떼고는 옆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금호는 슬쩍 몸을 숙여 오자헌의 상태를 살폈다. 심장에 정확하게 틀어박혔으니 당연히 즉사였다.
가슴에 박혀 있는 단검을 보며 금호가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중얼거렸다.
"부관주,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니 잘 받으라고."
사실 지금 오자헌의 심장에 박힌 이 단검은 부관주 여청의 것이었다.
실험의 뒤처리도 할 겸 자신에게 이를 드러낸 그에게 죄까지 뒤집어씌울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였다.
말을 마친 금호의 시선이 옆에 주저앉아 있는 방건에게로 향했다.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리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금호가 손바닥으로 움켜잡았다. 턱을 쥔 금호는 방건의 얼굴을 좌우로 돌리고는 가볍게 혀를 찼다.
"쯧, 일회용도 안 되는군."
말을 마친 금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옆에 놓여 있는 자루 위에 죽은 오자헌의 시신을 올렸다.
이동하는 동안 피가 바닥에 흐르지 않게 조치를 취한 그가 시신이 담긴 자루를 끌고 방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아마도 그 시신을 사람들에게 발견될 수 있는 장소로 가져다 두려는 듯했다.
그곳을 나오기 무섭게 아직까지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문을 팍 하고 닫은 금호는 곧바로 비밀 통로의 입구 쪽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금호의 모습이 사라졌을 그 무렵.
천무진이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사람을 조종하는 이 더러운 수법, 그리고 조종만 당하며 살아왔던 과거 자신의 삶!
이 모든 것의 시작에 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천무진의 얼굴은 마치 나찰과도 같이 무섭게 변해 있었다.
‘금호!’
당장이라도 달려가 놈의 목을 비틀어 버려야만 이 속이 풀릴 성싶었다.
막 자리를 박차고 비밀 통로 바깥으로 나간 금호를 뒤쫓으려던 천무진, 그렇지만 그때 그의 눈가에 연기가 가득한 방 안에 홀로 앉아 있는 방건의 모습이 보였다.
멍하니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도 애써 무시하며 앞으로 두어 걸음 내딛은 천무진이었지만…….
멈칫.
"……젠장!"
입으로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천무진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방건이 갇혀 있는 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연기가 훅 하고 밀려 나왔고, 천무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몸 안으로 정체 모를 기운이 스며들었지만, 천무진의 내력을 뚫기엔 무리였다.
곧바로 그 기운을 밀어낸 천무진은 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가 옆에 있는 보자기를 들어 연기가 쏟아져 나오는 향로를 덮어 버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앉아 있는 방건을 향해 다가갔다.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말을 내뱉으며 몸을 굽힌 천무진은 자리에 앉아 있는 방건의 상태를 확인했다. 얼굴 곳곳에는 새파랗고 붉은 핏줄들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얼굴은 점점 붉게 변해 갔고, 손가락 끝은 거멓게 물드는 중이었다.
천무진은 황급히 그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내력을 조금 흘려보내자 곧바로 지금 방건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기혈이 완전히 뒤틀리고 있는 중이었다.
덩달아 내공도 사방으로 날뛰고, 이 상태가 유지되면 몸 안의 오장육부가 모두 녹아내려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들끓는 기혈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도록 천무진이 도움을 줄 수는 있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방건이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서둘러 정신을 차리게 해야만 했기에 천무진이 방건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선배!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선배!"
천무진이 내공으로 우선 어느 정도의 기운을 몰아내 준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건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깨를 잡고 흔드는 그 상태 그대로 흔들리기만 하던 그의 입가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몸 안의 장기가 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보는 순간 천무진이 화가 난다는 듯 멱살을 움켜쥐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어이 방건!"
방건을 일으켜 세운 천무진의 손바닥이 그의 뺨을 강하게 때렸다.
짜악!
목이 홱 돌아갈 정도로 강한 일격이었다.
볼이 순식간에 부어올랐고, 입에선 피가 터져 나왔다.
이대로 뒀다가는 죽을 것이 자명한 순간, 조금의 확률이라도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뺨을 때린 것이다.
천무진이 멱살을 쥔 채로 벽에 밀어 붙인 뒤 그 상태 그대로 소리쳤다.
"정신 차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죽는다!"
천무진의 고함에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던 방건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무, 무진아."
천무진의 이름을 부르던 방건의 입에서 새카만 피가 한 사발은 될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컥컥!"
잔뜩 피를 토해 낸 그가 부들부들 떨며 입을 열었다.
"나, 나 이대로 죽는……."
"시끄러우니까 그 입 다물어."
말을 마친 천무진이 멱살을 움켜쥐고 있던 그를 강제로 바닥에 앉히고는 곧바로 등 뒤에 가서 자리했다. 그리고는 이내 짧게 말했다.
"내가 살려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