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왕-30화 (30/293)

30화. 첫 사냥감 ― 어이! (1)

곧바로 방건의 뒤에 자리한 천무진은 손을 뻗어 그의 등에 가져다 댔다. 은은하게 퍼져 나오기 시작한 힘이 방건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서둘러야 해.’

방건의 몸 상태도 문제였고, 혹시나 나간 금호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천무진에겐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태였다.

상태가 조금만 좋았다면 데리고 나가서 치료를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우선은 몸 안에 있는 이 기운을 밀어내고, 또 들끓는 기혈을 잡아야 한다.

방건의 몸 안으로 들어간 천무진의 내력이 장태혈(將台穴) 부근에 뭉쳐 있는 독기를 부드럽게 위로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그 고통에 방건의 코에서는 새카만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것이 너무 힘들었는지 방건의 몸이 절로 앞으로 무너져 내리려 할 때였다.

천무진이 소리쳤다.

"정신 차려!"

그 외마디 고함이 쓰러지려는 방건의 몸을 다시금 버티게 만들었다.

허나 고통은 그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장태혈에서 시작한 고통이 이내 전신 곳곳에 있는 혈도를 타고 퍼져 나갔다.

몸 안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충격이 연신 밀려 나왔고, 이는 방건의 정신을 점점 혼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들려온 천무진의 목소리.

"여기서 죽고 싶다면 포기해. 하지만 살고 싶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라도 있다면…… 버텨. 그건 내가 아닌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버티라는 그 말.

왜일까?

그 한 마디에 방건은 다시금 주먹을 움켜쥐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 당장이라도 끊길 것 같은 정신을 부여잡은 채로 방건은 계속해서 버티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무인은 아니라고 해도 그 또한 무림맹에 들어올 정도의 실력은 있는 사내였다.

그런 그가 지금 천무진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았다.

지금 등 뒤에 있는 이는 여태까지 자신이 알아 온 사내가 아니라는 것도…….

긴 고통의 시간이 끝나고 이내 방건의 입에서 재차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번엔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막혔던 숨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었다.

"파아!"

방건이 거칠게 숨을 토해 내는 그 순간 등 뒤에 있던 천무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시방편으로 치료는 끝났어. 하지만 완벽히 치료를 하려면 실력 있는 의원의 도움이 필요할 거야."

숨을 되돌렸고, 독 기운도 밀어내긴 했지만 상한 장기와 몸을 회복하는 건 천무진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우선은 살아 있는 그 상태에서 이곳을 빠져나가게 해 주는 것. 그것이 지금 천무진이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고맙다 무진아."

방건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천무진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인사는 됐어. 시간 없으니 서두르지."

가짜 신분으로 방건의 앞에서 하던 연기가 더는 필요 없다 생각한 천무진의 말투는 원래의 그가 쓰던 것으로 돌아가 있었다.

자연스러운 하대였지만 방건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섰지만 이내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지려고 했다. 그런 방건을 천무진이 한쪽 팔로 부축하며 물었다.

"못 걷겠어?"

"미, 미안 도저히 다리에 힘이……."

중얼거리는 방건을 보며 천무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는 이내 그를 부축한 상태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여긴 위험하니 우선 바깥으로."

말을 마치고 막 걸음을 옮기며 천무진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기억나?"

"……."

물어보는 천무진의 질문에 방건이 움찔했다.

그 반응만으로도 이미 대답은 들은 것과 다름없었다. 머뭇거리던 방건이 이내 답했다.

"……정확히는 아니고 아주 어렴풋이."

말을 내뱉는 그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붉게 물든 손, 그리고 이 피가 어떠한 것인지도 생생히 기억난다. 동시에 그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 갔다. 반항조차 하지 않고 서 있는 상대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었다.

아무런 원한도 없는 상대를 그저 누군가의 죽이라는 말 한 마디만을 듣고 말이다.

제 아무리 무인이라고 한들 감당할 수 없는 충격.

힘겹게 대답을 하는 방건의 말을 들으며 천무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이 난다는 것도 과거의 삶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뭔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려던 천무진이 갑자기 입을 닫았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멀리 떨어진 비밀 통로의 입구, 그렇지만 이미 천무진은 알고 있었다.

곧 저곳의 계단을 통해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귀찮게 됐군.’

천무진은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외길인 비밀 통로다 보니 딱히 숨을 곳은 없었다. 그나마 양옆에 있는 방들이 있긴 했지만…….

‘숨어도 곧 들통날 텐데.’

지금 들어서는 자는 금호일 확률이 높고, 그렇다면 그는 곧바로 방건이 있었던 방으로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방건이 사라졌음을 알 것이고 곧바로 뛰쳐나올 것은 자명했다.

그리고 이미 이 정도 사실까지 알게 된 지금, 천무진 또한 굳이 피할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 비밀 공간 안에 아직 못 본 장소들도 꼼꼼히 확인하고 싶은 상황. 좁은 지하도 내부에서 싸우는 건 피해야만 했다.

천무진은 금호가 나타나기 전에 서둘러 숨을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옆에 있는 문들을 둘러봤고 다행스럽게도 세 번째 확인했던 곳이 열려 있었다.

천무진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서 몸을 낮췄고, 방건에게도 조용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자그마한 기척이라도 냈다가는 금호에게 곧바로 들통이 날 거라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방건이 숨조차 멈추고 있는 그때 둘이 숨어 있는 방 앞으로 누군가가 지나쳐 갔다. 슬쩍 위쪽을 응시하고 있던 천무진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지금 나타난 자는 돌아온 금호였다.

벽에 바짝 붙은 채로 천무진은 그의 걸음걸이를 듣고 있었다. 이 지하 공간의 크기와, 방금 전 그 방까지의 거리도 염두에 둔 채로.

천무진은 정확하게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부터 사건이 벌어졌던 방까지는 얼추 백 보, 그렇다면 들키지 않고 나가려면 이십여 발자국 정도를 더 걸은 후에 움직여야만 했다.

잠시 상대의 걸음 소리를 듣고 있던 천무진이 이내 옆에 있던 방건을 부축하고 움직였다.

스윽.

문을 연 그가 쏜살같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더니, 이내 금호가 들어선 비밀 통로 쪽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천무진이 방건을 데리고 바깥으로 움직이는 바로 그때.

금호 또한 막 목적지에 도착하고 있었다.

평온한 얼굴로 걸어 들어서던 그의 얼굴이 방 내부의 모습을 확인하자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뭐야?"

분명 이 안에서 죽어 있어야 할, 아니면 고통 속에서 죽어 가고 있어야 할 방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놀란 금호가 황급히 방 바깥으로 뛰어나왔다.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장 가까운 몇 개의 방을 살폈지만 방건의 흔적이 보일 리 만무했다. 주변을 뒤지는 금호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망할, 혹시 이 새끼가 바깥에 나간 거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이다.

오자헌의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나가기 직전 봤던 방건의 상태, 분명 그건 최악이었다. 일각을 못 버티고 죽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안심할 수는 없었다.

바깥에 나갔더라도 근처에서 죽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만약 자신의 거처를 나가 인근에서 행패라도 부렸다면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

어떻게든 그 전에 직접 처리를 해야 했기에 금호는 서둘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혹시 안에 있을 수도 있긴 했지만 그렇게 되면 애초에 큰 문제는 벌어지지 않을 터. 우선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바깥부터 확인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단번에 비밀 통로의 입구로 뛰어온 그가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혹여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비밀 통로의 입구까지 다시금 막아 둔 금호가 막 창고의 바깥으로 걸어 나왔을 때였다.

그리 멀지 않은 정면에 한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방금 전 숨겨진 그곳에서 빠져 나온 천무진이 금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창고 바깥으로 나오는 금호를 확인하기 무섭게 버럭 소리쳤다.

"어이, 금호!"

갑자기 들려온 자신의 이름에 그가 움찔하며 소리가 들려온 정면을 응시했다. 그곳에 있는 천무진을 확인한 금호가 작게 목소리를 흘렸다.

"너는……?"

어찌 저 얼굴을 모를까.

자신이 관리하는 홍천관의 무인이자 며칠 전 자신에게 큰 도움을 주기도 한 자다. 저자 덕분에 여청의 계략에서도 간신히 최악의 경우는 피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자가 지금 자신의 이름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금호는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웠다.

분위기가 좋지 않게 흘러감을 느끼면서 그가 물었다.

"대체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왜겠어."

천무진이 쥐고 있던 돌멩이를 휙 하고 그를 향해 던졌다. 넓적한 돌이 빠르게 날아들었지만, 애초부터 치명상을 노린 일격이 아니었기에 금호는 어렵지 않게 피해 냈다.

그의 어깨 부분을 휙 스쳐 지나간 돌이 이내 창고의 벽에 틀어박혔다.

팍!

창고에 박힌 채로 돌이 부르르 떨렸다.

금호가 힐끔 고개를 돌려 돌을 바라보고 있는 그때 천무진이 여유 있는 어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널 박살 내 주려고."

돌멩이를 날린 것에 뒤이어 내뱉은 말까지.

애초에 자신의 이름을 버럭 내지르며 나타날 때부터 적이라는 걸 직감했지만 그 이후의 상황들을 보니 보다 확실해졌다.

금호는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도 적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하나가 전부인 듯싶었다.

금호가 물었다.

"방건 그놈을 네가 데리고 갔느냐?"

"맞아."

"돌려주지 그래? 그렇게 되면 네놈 목숨을 살려 줄지 한번 고민 정도는 해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시간이 별로 없으니 선택은 빠르게 해 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내뱉는 금호를 향해 천무진이 비웃음을 흘리며 말을 받았다.

"어지간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군. 왜? 들통나면 안 될 일이라도 있는가 보지?"

"그럴 리가. 어차피 죽은 시신 가지고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잖아?"

여유 있는 척하는 금호를 향해 천무진이 말했다.

"그럼 이러면 어떨까? 그 녀석이 살아 있다면?"

"……뭔 개소리야."

"미안하지만 방건 그 녀석 살아 있거든. 어때? 이제 좀 너한테 위협이 되겠어?"

"작작 지껄여! 그놈은 이미 죽었어! 감히 누굴 가지고 장난질이야?"

금호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 그를 향해 천무진이 태연히 말을 받았다.

"죽긴 누가 죽어. 죽는 건 그 녀석이 아니라…… 너지."

말을 내뱉는 천무진을 보며 금호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흘러가는 이 모든 일들의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라져 버린 실험체,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적까지.

금호가 물었다.

"너 누구냐? 그냥 일개 홍천관 무인은 아닐 거 아니야."

고작 그냥 그런 무인 정도가 지금 자신을 이런 궁지로 몰아넣었을 리가 없다. 그 배후엔 분명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문득 생각나는지 그가 한 사람을 거론했다.

"설마 부관주가 시켰냐?"

"그럴 리가. 그런 놈 때문에 움직일 정도로 내가 우스워 보였나 보군그래."

"좋아. 네가 누군지는 내 앞에 무릎 꿇리고 들어 보면 될 일. 뭐…… 살아 있다면 말이지."

말과 함께 금호가 먼저 움직였다.

미리 손가락을 꿈틀거리고 있던 그가 재빠르게 소매 속에 감추어 두었던 암기를 쏟아 냈다.

파라라락!

날아드는 수십 개의 비수, 이 일격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내공이 실린 비수들은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매섭게 날아들고 있었다.

천무진은 날아드는 비수를 보며 차고 있던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검이 쏜살같이 뽑혀져 나왔다.

번쩍!

검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서늘한 검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처럼 사방을 뒤덮었다.

스스슥!

천무진을 향해 날아들던 모든 암기들은 곧바로 곤두박질쳤고, 덩달아 남은 검기들이 폭풍처럼 금호를 향해 밀려들었다.

놀란 그가 황급히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콰드득!

검기를 가까스로 받아 낸 손목이 비틀렸다.

동시에 검집은 박살이 나서 떨어져 내렸고, 뒤편에 있던 창고의 일부와 인근에 있던 다른 건물 또한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며 터져 나갔다.

쿠웅!

등 뒤편으로 커다란 돌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금호의 안색이 딱딱하게 변했을 그때였다.

"말했지, 새끼야."

괴로웠던 과거의 삶에, 원흉 중 하나일 자.

그랬기에 천무진에게서는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의 살기가 터져 나왔다.

분노에 찬 그에게서 스멀스멀 섬뜩한 기운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한 걸음 다가서며 천무진이 재차 입을 열었다.

"박살을 내 준다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