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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31화 (31/293)

31화. 첫 사냥감 ― 어이! (2)

천무진과 마주한 금호의 머리는 복잡했다.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주변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날고 긴다는 무림의 후기지수들이 즐비한 무림맹에 오랜 시간 몸담아 왔던 금호다. 그런 그조차도 이토록 젊은 나이의 무인에게서 이 같은 기운이 쏟아져 나오는 건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눈앞에 있는 상대가 특별하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비단 뿜어져 나오는 기운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내며 동시에 주변을 휩쓸어 버린 검기 또한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다.

자신이 아는 건 그저 무진이라는 이름뿐.

하지만 과연 그게 진짜 이름일까?

홍천관에 들어와선 안 될 실력자였고, 또 이렇게 자신의 앞을 막아섰다. 이름도 가짜일 공산이 컸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가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살의를 뿜어낸다는 거다.

마치 엄청난 원한을 지닌 것처럼.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비슷한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데…….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치잇, 일이 더럽게 꼬였군.’

이기고 지고를 떠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피해는 이미 기정사실화된 지금, 어떻게든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 눈앞에 있는 저자를 어떻게든 죽여야 했다.

상대를 죽이고, 사라진 방건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이곳에서 벌인 비밀스러운 실험이 세간에 알려져서는 절대 안 됐으니까.

다만 문제는 상대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아직까지도 얼얼한 손과 산산조각이 나 있는 주변의 풍경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금호는 슬며시 옆으로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날 박살 내겠다고? 아서라, 애송아.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테니까."

왠지 모를 의미심장한 말.

그렇지만 그 말을 들은 천무진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왜? 네 뒤에 있는 그들을 믿고 까부는 건가?"

천무진의 말에 금호가 움찔했다.

자신의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한 말투였기 때문이다.

허나 그럴 리가 없었다.

그들의 존재를 어찌 저런 자가 알 수 있단 말인가!

금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어디까지 아는 거냐?"

"글쎄. 적어도 네가 예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이?"

말을 내뱉는 천무진을 향해 금호가 천천히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그가 검에 내공을 불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네놈, 죽어야 할 이유가 하나가 아니로구나."

"어쩌나. 날 죽이기엔 네 상태가 영……."

피식 비웃음을 흘리며 대꾸하는 천무진의 말투에 금호는 이를 꽉 깨물었다. 금호가 분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넌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은 잘못……."

"아, 진짜 언제까지 떠들 거야. 그 입부터 박살을 내 줘야 하나."

천무진이 말과 함께 금호의 입이 있는 방향 쪽으로 검을 겨눴다. 상대방의 도발적 행동에 금호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이놈!"

고함과 함께 금호의 신형이 순식간에 뻗어져 나왔다.

카카캉!

어깨부터 해서 밀고 들어오는 공격을 받아 낸 천무진과 금호의 거리는 무척이나 가까웠다. 서로 검을 맞댄 채로 허공에서 둘의 시선이 뒤엉켰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에서 금호의 주먹이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어깨에 가려진 채로 스리슬쩍 움직인 주먹이 천무진의 옆구리를 노린 것이다. 그렇지만 막 닿기 직전 그의 주먹이 무엇인가에 정확하게 막혔다.

쩌엉!

몸으로 슬쩍 가린 뒤 보이지 않는 각도로 주먹을 욱여넣는 건 별거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련함이었다.

자그마한 차이로 생사를 오갈 수 있는 무인들의 싸움에서 그 경험이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연히 이번 일격 역시 치명상은 주지 못해도 어느 정도 타격은 충분히 가할 수 있다 여겼다.

그렇지만 그런 금호의 생각은 완전히 틀어졌다.

슬쩍 내뻗었던 주먹이 깨질 듯이 아팠다.

그의 공격을 받아 낸 것, 그건 다름 아닌 천무진의 주먹이었다. 뻗어 오는 주먹에 마찬가지로 주먹으로 맞대응한 것이다.

같은 주먹끼리 부닥쳤거늘 상태는 극과 극이었다.

너무도 멀쩡한 천무진과는 달리, 금호는 손가락부터해서 팔목까지 모든 뼈가 으스러진 것만 같은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건 결코 과한 생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 왼손 손가락 뼈마디의 절반 이상이 아작 나 버렸으니까.

"크윽."

믿기지 않는 충격에 절로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허나 손을 추스르기엔 둘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에, 어떻게든 상태를 확인하려는 듯 금호는 어깨로 강하게 천무진을 밀치려 들었다.

금호가 조금 더 밀착하려는 순간, 몸의 균형이 앞으로 향하는 걸 느끼기 무섭게 천무진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놀란 금호가 황급히 어깨를 위로 올리며 주먹을 막아 내려 했지만 완벽한 방어는 불가능했다.

어깨를 스치며 얼굴에 꽂힌 일격.

빠악!

고개가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뒤로 날아가 틀어박혔다. 무너져 있던 건물의 잔재들 사이에 처박힌 그가 거칠게 입 안에 고인 피를 토해 냈다.

"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어지러운 상황이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뱉어 낸 피 속에 섞인 하얀 이빨들이 보였다.

혓바닥으로 다급히 이가 있었던 자리를 훑어 봤지만…… 있어야 할 것들의 절반 가까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으으으으!"

금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눈을 희번덕거렸다.

동시에 그의 몸 주변으로 폭풍처럼 내공이 요동쳤다.

파바바박!

부서져 있던 자잘한 돌들이 흩날리는 그때 금호가 다시금 달려들었다. 그의 검에 맺힌 검기가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천무진 또한 기다렸다는 듯 그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금호가 날린 것과 똑같은 숫자의 검기, 서로의 공격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허나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천무진의 검기가 금호의 것을 완전히 집어삼키며 그대로 맞은편에 있는 그에게 날아든 것이다.

황급히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날아드는 공격을 받아 내 봤지만…….

검기를 막아 내는 순간 그 뒤편에서 날아든 하나의 빛줄기가 호신강기를 뚫고 정확하게 가슴에 틀어박혔다.

그의 몸이 방금 전 틀어박혔었던 곳 너머까지 나뒹굴었다.

"우웩."

바닥에 엎어진 채로 금호는 재차 피를 쏟아 냈다.

가슴뼈가 함몰이 되었는지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분명 기회가 있음에도 천무진은 가만히 서서 금호를 기다렸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운 금호가 손에 들린 검을 거꾸로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쒜엑!

천무진을 향해 검을 냅다 집어던진 그가 그 뒤로 재빠르게 달려들었다.

카앙.

검을 쳐 내는 순간 허공으로 치솟은 금호의 모습이 천무진의 눈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날아오른 그가 천무진의 얼굴을 향해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단 한 번의 발길질이 순간적으로 수십 개의 환영을 만들어 냈다.

금호가 자랑하는 각법인 낙풍각(洛風脚)이었다.

파바박.

수많은 환영들 속에서 현묘하게 움직이는 그의 발. 그리고 그 순간 천무진이 갑자기 빈 허공을 향해 자신의 발을 올려 쳤다.

팡!

놀랍게도 천무진의 발이 향한 전혀 뜻밖의 장소로 금호의 발이 움직이고 있었다. 현묘한 변화였지만, 천무진은 이미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정확히 종아리 부분을 가격 당한 금호의 몸은 허공에서 균형을 잃으며 그대로 한 바퀴 빙글 돌면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쾅.

문제는 그냥 발길질에 한번 당했다는 정도로 그칠 상황이 아니었다는 거다.

다리뼈가 으스러졌다.

바닥에 쓰러진 금호는 부서진 오른쪽 다리를 움켜쥔 채로 비명을 질렀다.

"크아악!"

그때 그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다름 아닌 천무진의 손바닥이었다.

빠악!

손바닥이 그의 턱을 후려쳤다.

금호의 몸이 그대로 땅에 처박히고야 말았다.

바닥에 엎어진 채로 그가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금호를 내려다보며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아, 아직 물어볼 게 있어서 입은 놔둬야 되는데 큰일 날 뻔했네."

그 한마디에 금호는 알 수 있었다.

‘이 새끼…… 날 가지고 놀고 있다.’

주먹엔 주먹으로, 검기엔 검기로. 그리고 각법을 펼치자 기다렸다는 듯 발을 날렸다. 그 대가는 매번 똑같았다.

팔뼈에 갈비뼈, 그리고 다리뼈까지.

박살을 내 주겠다고 했던 그 말을 이런 식으로 증명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치미는 고통은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 말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호는 믿을 수가 없었다.

무림을 뒤흔드는 고수는 되지 못한다 해도 무림맹의 관 하나를 맡을 정도의 실력자는 되는 자신이다. 그런 자신이 제대로 된 일격 하나 성공시키지 못하고 이런 꼴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이토록 젊은 사내에게.

그때 천무진이 여전히 엎드린 채로 미동조차 하지 못하는 금호를 향해 몸을 숙였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의 턱을 움켜잡아 추켜올렸다.

"큭."

힘겹게 열린 입 안은 피로 엉망이었다.

거기에 이도 반 가까이 나가 버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 금호를 마주한 채로 천무진이 물었다.

"방금 네 녀석이 만들어 실험한 물건. 어디다 쓰려던 거지?"

방건과 오자헌을 조종했던 그 연기.

미혼향의 일종으로도 보이긴 했지만 마취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심령을 조종하는 것 같았던 모습이 섭혼술을 연상케 했다.

과거 자신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천무진이 찾는 그들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금호가 벌인 일, 자신이 당했던 것과 별개의 일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물어 오는 천무진을 향해 금호가 힘겹게 대꾸했다.

"내가…… 말할 성싶더냐."

열린 입으로 피와 침이 섞여 주르륵 흘러내렸다.

독기 가득한 시선이 천무진에게 틀어박혔다. 허나 대답을 들은 천무진은 의외로 담담했다.

적어도 자신을 조종했던 그들과 관련이 있는 자라면 고작 이런 협박에 입을 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니까.

천무진이 상대해야 할 그들은 그런 어중이떠중이를 이용할 정도로 허술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비밀을 지킬 자들.

보다 많은 걸 들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애초에 그것까지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금호가 알고 있는 건 자신이 찾는 그들의 아주 극히 일부일 확률도 컸다.

욕심은 났지만 천무진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시작이다. 이 한 걸음에 많은 걸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선은 금호를 통해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천무진이 쥐고 있던 턱에서 손을 놓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말하지 않을 거라곤 생각하고 있었어. 내가 알아내지 뭐. 그러려고 이곳까지 온 거기도 하니 말이야. 널 시작으로 해서 너와 관련된 그놈들을 모조리 다 찾아낼 생각이거든.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실험을 하던 넌 죽어도 싼 놈이지만, 그래도 네 덕분에 그들에게 한 걸음 내디디게 되었으니 그 부분만큼은 고맙게 생각하도록 하지."

힘겹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던 금호가 모두 찾아내겠다는 천무진의 말에 비웃음을 쏟아 냈다.

"큭큭, 날 시작으로 찾는다고? 웃기는 소리. 지금 나에게서 알아낸 건 아무것도 없어. 내가 사람들을 가지고 실험을 한 거? 맞아, 난 그런 짓을 벌였지. 그런데 그것에서 뭘 찾을 건데? 난 네 손에 죽을 거고, 결국 넌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게야."

"그렇게 생각해? 너를 통해 알아낸 게 몇 개는 있어. 하나 꼽자면…… 그 돌덩이?"

"……!"

눈을 부릅뜬 금호가 천무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라고 만 것이다.

대체 그걸 어떻게 안 것일까?

금호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 애썼지만, 이미 그의 생각을 읽은 천무진이 말을 이었다.

"말했잖아. 네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을 거라고."

말을 마친 천무진은 옆에 내려놓았던 검을 움켜잡았다. 그런 그를 보며 금호가 바락바락 악을 쓰기 시작했다.

"날 죽인다고 끝인 줄 아느냐! 내 뒤에 있는 그분들이 널 절대 용서치 않을 게야!"

"상관없어."

내뻗은 검이 금호의 목에 닿았다.

천무진이 손에 힘을 주며 천천히 말했다.

"용서는…… 그들의 몫이 아니거든."

금호를 죽인 천무진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고는 이내 주변을 둘러봤다. 장원은 꽤나 컸지만 다행히 이곳에는 정말 극소수의 인원들만이 살았다.

금호와 그의 일을 돕는 하인 한 명.

항시 이곳에 지내는 이는 이렇게 단둘뿐이었고, 필요하면 외부에서 인력을 충원하는 식으로 장원을 꾸려 나간다고 전해 들었다.

아마도 비밀스러운 실험을 하느라 보는 눈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거기다가 유일하게 장원 내에서 지내는 하인도 이곳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위치한 곳에서 지내고 있었으니, 제법 큰 소란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황이었다.

천무진의 시선이 멈춘 곳은 바로 비밀 장소가 있는 창고였다.

내공을 쏟아 내는 싸움 중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쓴 덕분에 그 창고만큼은 입구 부분이 무너지긴 했지만 그 외에는 멀쩡했다.

아까 비밀리에 따라 들어가 둘러보긴 했지만 아직 확인하지 못한 곳들이 꽤나 많았다.

금호가 죽기 전 아무것도 알지 못할 거라 호언장담한 것을 보면 크게 단서가 될 뭔가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허나 천무진은 창고가 아닌 다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곳을 확인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천무진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싸움이 벌어졌던 장소와 그리 멀지 않은 건물의 뒤편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방건이 있었다.

그가 힘없이 시선을 들어 올려 천무진을 올려다봤다. 천무진 덕분에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몸 상태는 좋지 못했다.

말을 꺼내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

그렇지만 방건은 멀리에서나마 천무진이 금호와 싸우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랬기에 이젠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툭하면 툭툭 때려 대던 그 사내가…….

엄청난 고수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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