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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44화 (44/293)

44화. 혈전 ― 기다리고 있었어 (2)

당소련은 자신을 기다려 왔다는 흑의인의 말에 표정을 구겼다. 마치 이곳에 자신이 올 걸 알았다는 듯한 말이 아닌가.

"내가 올 걸 알았다고?"

"그럼. 그렇지 않고서야 여기 우리가 남아 있었을 이유가 없잖아."

"그 말은…… 나에게 용건이 있다는 소리로군."

"용건이라면 용건이겠네. 당신 목숨을 가져갈 생각이라서."

흑의인은 적의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그만큼 확신이 있다는 소리기도 했다. 다른 곳도 아닌 이곳 사천당문의 한복판에서 가주의 여식인 그녀를 죽이겠다 말하고 있다.

더군다나 알아채지 못하게 뒤를 잡아 버리는 실력까지.

강하게 나가고는 있지만 당소련의 등 뒤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눈앞에 있는 이 흑의인 하나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망치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몇몇의 모습까지 눈에 들어온다.

얼추 십여 명에 가까운 이 암살자들은 쉽사리 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이름난 살수 단체라고 해도 이렇게 사천당문 내부로 직접 침입하는 말도 안 되는 선택은 할 수 없었다.

이런 경우 의심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정말 이들 모두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고수이거나…… 아니면 내부에서 누군가가 도왔거나.

흑의인이 입을 열었다.

"아쉽지만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지. 혹시나 누군가가 나타나면 귀찮아져서 말이야."

"사천당문에 들어와 날 건드리고도 네놈들이 무사할성싶더냐."

"아아, 그런 걱정은 말라고. 어차피 널 죽인 게 우리라는 건 아무도 모를 테니까. 그럼 된 거 아닌가?"

말과 함께 그자는 양손에 들린 비수를 들어 당소련을 겨눴다.

그 상태로 흑의인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뒷일은 살아 있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쓸데없는 걱정 말고 죽어."

파앙!

말과 함께 날아든 비수 한 자루.

잔뜩 집중하고 있었던 덕분인지 그녀는 재빠르게 몸을 틀었고,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비수는 허공을 가르며 벽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비수에 실린 내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단지 스쳤을 뿐이거늘 그 주변에 있던 머리카락이 뭉텅 잘려 나감과 동시에 어깨 부분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윽!"

고통이 찾아왔지만 상처를 살필 여유는 없었다.

이미 상대가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쒜엑!

놀란 당소련이 황급히 옆에 있는 탁자를 손으로 짚으며 반대편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동시에 그녀 또한 감춰 두었던 비수를 날렸다.

암기술에 능한 사천당문의 인물답게 뛰어난 실력이었다. 한 번에 다섯 개의 비수가 줄지어 날아갔고, 제각기 막기 어려운 방향으로 움직였다.

허나 흑의인에겐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타타탕!

자신의 손에 들린 비수를 휘익 휘젓는 순간 날아들던 암기들이 곧바로 당소련이 있는 반대편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것도 당소련이 날렸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놀란 그녀가 몸을 웅크리며 전방을 향해 다시금 암기를 날렸다.

그대로 있다가는 당하기만 한다는 생각에 다급히 날린 일격.

암기가 정확하게 흑의인에 어깨에 틀어박혔다.

허나 그 대가는 컸다.

"으으윽."

복부를 움켜쥔 당소련이 짧은 소리를 흘렸다. 자신이 날린 공격을 흑의인이 받아친 탓에 고스란히 그걸 되받아 내야만 했다.

몸을 웅크리며 몇 개는 피해 냈지만 복부와 허벅지에 하나씩 비수가 틀어박혀 버렸다.

어떻게 하기에는 너무 빠른 공격이었기에 순식간에 두 개의 치명상을 입고야 만 것이다.

반면 흑의인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에 박힌 암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툭.

태연하게 암기를 바닥에 던진 그가 옷을 툭툭 털며 말했다.

"내 몸에 상처를 낼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말과 함께 흑의인이 숨겨 놨던 검을 뽑아 들었다. 보통 크기보다는 다소 짧고, 단검보다는 긴 중간 크기의 검이었다.

특수 제작한 검을 들어 올린 흑의인이 가볍게 목을 풀었다.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사실 지금 다소 짜증이 치민 상태였다.

"나한테 한 방 먹였다고 좋아하지 않는 게 좋아. 그런 멍청한 짓을 하는 바람에…… 넌 편하게 죽을 기회를 놓쳤거든."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게 평범한 비수를 이용해 죽이려 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이 바뀌었다.

손에 들린 검의 특이한 점은 길이에만 있지 않았다. 날의 곳곳에 마치 가시처럼 뾰족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이건 살점을 베는 것과 동시에, 찢어 버리기까지 할 수 있는 특징을 지녔다.

상대를 고통 속에서 죽어 가도록 만드는 무기.

그것이 바로 이 검이었다.

자신의 무기는 꺼내 든 흑의인이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다.

스윽.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 그의 검이 빠르게 당소련의 옆구리로 날아들었다. 움직일 걸 예상하고 대비하던 그녀가 서둘러 비수로 공격을 받아 냈다.

그렇지만…….

피식.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순간 검이 비수의 날을 타고 팔 쪽을 향해 거칠게 밀려 올라왔다.

드드득!

비수의 날이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검날이 순식간에 팔등에 도달했다. 놀란 당소련이 황급히 팔을 뒤쪽으로 잡아당겼지만, 상대의 검은 이미 목적지에 도달해 있었다.

촤악!

빠른 움직임 덕분에 팔등은 피해 냈지만 팔목을 시작해서 팔꿈치까지 흑의인의 검이 베고 지나갔다. 동시에 보통 베였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피가 터져 나왔다.

"아악!"

비명이 흘러나오는 그 순간 흑의인의 반대편 손바닥이 그녀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부웅!

허공으로 뜬 당소련은 그대로 날아가더니 바닥에 처박혔다. 방 안은 이미 그녀의 팔에서 터져 나온 피로 엉망이 되어 버렸다.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켜 세운 당소련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커윽, 컥."

팔목부터 해서 팔꿈치까지 길게 생겨 버린 상처는 엉망이었다. 살갗이 찢겨져 나갔고, 피는 쉼 없이 흘러내렸다. 살덩이가 찢겨져 나간 탓에 지혈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거기에 복부에 틀어박힌 일격.

가뜩이나 비수 한 자루가 박히며 고통스러웠던 다리를 움직일 수조차 없게 만들어 버렸다.

‘일어나야 해.’

당소련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대로 앉아 있다가는 다음 공격을 받아 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았으니까.

그녀가 슬쩍 소매 안에 감춰 둔 뭔가를 확인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건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소매 안쪽 숨겨진 공간에는 쇄혼산이라는 이름의 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방 안에 이미 중독되어 죽어 가는 당율이 있었기에 가능하면 독의 사용을 자제하려 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어차피 둘 다 죽는다.

차라리 지금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당소련은 찢겨져 덜덜 떨리는 손을 억지로 움켜쥐었다.

하필이면 독을 하독해야 할 손이 다치는 바람에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흑의인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그때, 그가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벌써 죽으려 하면 어떻게 해. 내 어깨에 상처를 낸 대가는 꽤나 크다고."

성큼 흑의인이 다가서는 바로 그때.

걸음걸이를 통해 둘과의 거리를 계산하고 있던 당소련의 눈동자가 꿈틀했다.

‘지금!’

망설여선 안 된다.

기회는 찰나였고, 이걸 놓친다면 다음은 없다.

부들거리는 손을 들어 거칠게 흔드는 바로 그때, 소매 건너에 있었던 상대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흔들리던 손목은 허공에서 갑자기 멈춰 버리고 말았다.

흑의인의 얼굴이 당소련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의 웃는 눈동자가 잔인하게 빛났다.

"어딜."

손목은 이미 단단하게 잡혔고, 흑의인은 몸을 옆으로 비틀기까지 해 그나마 흘러나왔던 쇄혼산마저 피한 상황이었다.

그는 이미 당소련이 마지막 승부수로 독을 사용할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알아 버렸다.

살아서 이곳을 나갈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끝이구나.’

동시에 흑의인의 팔꿈치가 옆구리에 틀어박혔고, 무너져 내리는 당소련의 머리통을 움켜잡은 그는 곧바로 그녀를 반대편 벽을 향해 냅다 집어던졌다.

쿠웅!

벽에 충돌하며 다시금 바닥으로 나뒹구는 그녀를 향해 흑의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참내, 너무 뻔하잖아."

피를 토하며 쓰러져 있는 당소련을 보며 더는 길게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여겼는지 흑의인이 검을 고쳐 잡았다.

"자, 그럼 잘 가라고. 좀 많이 아플 거야."

멀리 집어던져 버린 당소련을 죽이기 위해 그가 성큼 걸음을 내디디며 입을 여는 바로 그 순간.

귓가로 무엇인가 맹렬한 파공음이 흘러들었다.

콰콰콰쾅!

날아드는 거센 기세에 놀란 듯 흑의인이 온몸을 회전하며 비틀었을 때다.

파라락.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그 거대한 뭔가가 모든 걸 박살 내다 땅에 틀어박히며 멈추어 섰다.

쿠웅!

허공으로 몸을 회전시켰다가 가까스로 착지한 흑의인이 놀란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시선을 잡아끄는 뭔가를 확인하는 순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람만 한 크기의 대검.

한 자루의 대검이 흑의인과 당소련 사이에 틀어박혀 있었다.

마치 이 건너로는 넘어갈 수 없다는 듯이.

놀란 건 비단 흑의인뿐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힘겹게 고개를 치켜들었던 당소련의 눈에도 둘 사이를 가로막은 커다란 대검이 보였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당소련 또한 눈을 치켜떴다.

‘이 대검은……?’

어찌 이 특이한 외형을 잊을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대검을 짊어지고 다니던 한 여인의 모습이 덩달아 떠올랐다.

적화신루의 사총관, 바로 그녀다.

그 순간 멀리에서 대검 주인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자, 다들 거기까지!"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에 방 안에 있던 흑의인도, 바깥에서 이 건물을 포위하고 있던 그의 수하들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한 여인이 있었다.

새하얀 백의를 입은 상대는 죽립을 깊게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목소리와 옷차림으로 여인이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아무런 것도 드러내지 않은 자다.

그렇지만 대검이 날아들며 뿜어냈던 파괴력만으로도 이미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저 여인이 있는 곳에서부터 이곳까지의 거리는 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맹렬하게 날아드는 대검이라니…….

흑의인은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귀찮게 하는군."

가능하면 당소련을 제거하고 빠르게 이곳 사천당문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여인 한 명이 상황을 무척이나 귀찮게 만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상황이 복잡해졌지만 흑의인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반드시 해야 할 건 다름 아닌 목표인 당소련의 제거였다. 이후의 일은 그다음에 고민해 봐도 될 문제였다.

흑의인이 입구 쪽을 막고 있는 수하들을 향해 급히 명령을 내렸다.

"방해하지 못하도록 너희가 막아. 나도 바로 합류하지."

"옙."

수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대로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고, 흑의인은 빠르게 일을 마무리를 짓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허나 막 고개를 돌리며 검을 움직이려던 흑의인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죽여야 했다.

만약이라도 당소련이 살아서 나간다면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걸 알지만 흑의인은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과 당소련의 사이에 틀어박혀 있는 한 자루의 대검,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바깥에 나타난 자와 마찬가지로 죽립을 쓴 정체불명의 상대를 마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바로 그 순간 흑의인은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언제 이 방 안에 나타났는지 예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흑의인은 누군가가 이토록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던 걸 고개를 돌려 확인하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이 차마 믿기 어려웠다.

흑의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넌 누구냐?"

흑의인의 질문에 죽립을 쓰고 나타난 천무진은 대답 대신 옆에 틀어박혀 있는 대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멀찍이에서 다가오고 있는 백아린을 향해 냅다 집어던졌다.

부웅 붕!

바람마저 베어 버릴 법한 괴성을 토해 내며 수십 장 너머에 있는 백아린에게 날아든 대검. 그녀는 허공에서 날아드는 대검을 가볍게 한 손으로 받아 챘다.

사람 크기만 한 대검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내는 그녀를 보며 천무진이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직접 들어 보니 묵직한 무게감이 보통이 아니거늘, 저걸 아무렇지 않게 휘둘러 대는 백아린이라는 여인이 참으로 신기했다.

잠시 그녀에게 향했던 시선이 이내 앞에 마주하고 있는 흑의인에게로 향했다.

백아린을 향해 대검을 던져 줬을 뿐이거늘 지레 공격하는 줄 알고 놀란 그가 움찔하며 옆으로 비켜선 상황.

천무진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놀라고 그래. 이제부터 시작인데 벌써 겁을 집어먹으면 재미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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