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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46화 (46/293)

46화. 위험 ― 이미 늦었어 (2)

물을 목 뒤로 넘기는 순간 동시에 밀려드는 불쾌한 느낌.

단엽은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기운을 느끼고는 서둘러 내공을 움직였다.

단번에 장기를 집어삼키려는 기운을 막아 내는 그 순간 속에서 무엇인가가 치고 올라왔다.

"우욱!"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던 단엽이 천천히 손을 뗐고, 손바닥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돌에 앉아 있던 단엽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중얼거렸다.

"……독이군."

반응이 빨라서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다면 몸 안으로 들어온 이 정체불명의 독은 더욱 큰 타격을 입혔을 게다.

순간적으로 몸 안에 퍼지는 독기를 최대한 억누르긴 했지만 이건 임시방편일 뿐, 완벽한 치료는 되지 못했다.

우선적으로 이 독이 혼자만의 힘으로 밀어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따로 치료제를 구해야 하는 건지 확인을 해야 했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럴 여유는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단엽이 고개를 치켜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어두운 숲 속,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버럭 소리쳤다.

"어이! 숨어 있지들 말고 나오라고!"

그의 외침이 파동이 되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고함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재차 소리를 치려는 그 순간.

한 명의 사내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제법 거리가 있는 곳에서 다가오는 그자는 중년의 사내였다.

얼추 사십 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외모의 그는 싸늘한 눈빛에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정체는 구마대(九魔隊) 대주 신욱(愼郁)이라는 자였다.

창을 사용하는 이 사내는 무척이나 뛰어난 무인이었다. 그가 서서히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독에 중독된 걸 알아차리면 곧바로 도망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군."

"도망이 뭔데? 아, 네가 잘할 것 같아 보이는 그걸 말하는 건가?"

히죽 웃으며 비꼬는 단엽의 말에도 신욱은 전혀 흔들림 없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단엽이 말을 이었다.

"혼자는 아닌 것 같고. 뒤쪽에 있는 녀석들도 이만 나오라고 하지 그래? 아무래도 보통 독은 아닌 것 같으니 한 번에 끝내 버리고 싶은데."

아까까지만 해도 알아챌 수 없었던 인기척들을 이제는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단엽이 독을 먹기 전까지는 이곳과 엄청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이제 독에 중독도 당했고 우두머리인 신욱이 이렇게 모습까지 드러낸 상황이다 보니 더는 멀리에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여긴 듯싶었다.

신욱이 손을 들어 올리자 나머지 이들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무려 오십여 명에 달했다.

마치 나무처럼 빼곡히 주변을 에워싼 그들을 둘러보며 단엽은 자신의 주먹을 어루만졌다.

"많이들도 오셨네."

"상대가 상대니까."

단엽, 나이는 어리지만 대홍련의 부련주이자 떠오르고 있는 사파의 가장 빛나는 별.

현 무림의 최고수인 우내이십일성을 위협할 수준에 다다랐다는 평까지 있는 그를 상대하는 데에는 당연히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신욱의 말에 단엽이 비웃듯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면서 고작 이 정도 데리고 온 거라면 실망인데."

"평소였다면 실패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가능해."

말과 함께 신욱은 여전히 단엽의 손에 들려 있는 수통을 가리켰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 안에 담긴 독이라는 걸 눈치챈 단엽은 수통을 바닥에 툭 내던졌다.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상대가 한 말대로 이 독은 보통의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몸 안에 억누르고 있는 독기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은 자명한 사실.

그 전에 이 싸움을 끝내야 했다.

그것도 최대한 내상을 입지 않으면서 말이다.

단엽은 곧바로 양손에 권갑을 채웠다.

찰칵.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여전히 자신감 가득한 얼굴이었다.

"가능한지 어떤지는 날 눕혀 놓고 떠들라고."

그 순간 신욱은 뒤편에서 다가오는 구마대의 수하들을 향해 나지막이 명령을 내렸다.

"죽여."

명령과 함께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신욱의 수하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오십여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순식간에 단엽을 에워싼 채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파앙 팡!

가장 먼저 날아든 것은 수십 개의 비수들이었다.

단엽은 코웃음을 치며 주먹을 내려찍었다.

쿠웅!

진동과 함께 주변으로 무형의 기운이 밀려 나갔다. 그 무형의 기운은 방패가 되어 날아드는 비수들을 모두 밀쳐 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꿈틀거리던 단엽의 주먹에서 권기가 쏟아져 나왔다.

파아앙!

한 곳을 노리고 날아드는 권기.

기운을 집중한 탓에 그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앞을 막고 있던 나무들을 모두 박살 내며 날아드는 권기는 사람의 몸마저 으깨 버릴 정도로 맹렬했다.

하지만 단엽을 죽이기 위해 이곳으로 온 구마대 또한 그리 만만한 이들은 아니었다. 그런 그들이 쉽사리 당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곧바로 주변으로 산개하며 그 공격을 피해 냈다.

최소 일류 이상의 무인들로 구성된 단체.

게다가 이곳에 온 이들은 특별히 또 선별된 인원들이었다.

당소련을 죽이려다가 천무진과 백아린의 손에 막힌 그들 또한 구마대의 무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과 이곳에 있는 이들은 질적으로 달랐다.

개개인의 실력 차도 컸지만 가장 큰 하나의 차이.

대주 신욱의 존재였다.

그는 이곳에 있는 수하들 모두를 합한 것보다 강했다.

수하들을 향해 재차 권기를 날리려는 단엽을 향해 신욱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창이 기기묘묘하게 휘어지며 단엽을 공격해 들어갔다.

단엽은 서둘러 권갑을 낀 주먹으로 창을 막아 냈다.

카앙!

막아 냄과 동시에 창은 마치 팔목을 타고 오르는 뱀이라도 된 것처럼 파고들었다.

단엽은 뒤로 물러서며 서둘러 양손으로 그 창의 날을 받아 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뒤편에서 수하 몇 명이 치고 들어왔다.

스윽.

아래로 밀려드는 검을 단엽은 반대편 주먹으로 쳐 냈다. 동시에 주먹이 상대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피를 흩뿌리며 날아가는 그자의 뒤편에서 또 다른 자가 날아올랐다.

"하압!"

전면에서 계속해 공격을 퍼부어 대는 신욱의 창을 막아 내는 와중에서도 단엽은 주먹을 올려 쳤다. 권갑에서 터져 나간 권기가 상대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허공에서 균형을 잃으며 상대는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몸을 비틀며 떨어지는 자를 피해 낸 단엽은 곧바로 신욱을 향해 연달아 주먹을 휘몰아쳤다.

파파팡!

순간 신욱의 창에 맺힌 기운이 앞으로 쏘아져 나왔다. 단엽이 어깨를 옆으로 트는 것과 동시에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옷 부분이 터져 나갔다.

그런 그에게 화가 난 듯 단엽이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옆과 뒤에서 밀려드는 구마대의 무인들, 동시에 신욱이 뒤로 슬쩍 물러나자 정면으로도 몇 명이나 더 되는 놈들이 달려들었다.

"귀찮게 하지 말라고!"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단엽이 양 주먹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달려들던 무인들이 밀려 나가는 그 찰나, 그들의 틈 사이에서 하얀 섬광이 일었다.

그게 뭔지 확인도 하기 전에 단엽은 직감적으로 팔을 들어 그것을 막아 냈다.

신욱의 창이 수하들의 옆구리 사이의 빈틈을 이용해 찌르고 들어온 것이다. 조금만 늦었다면 치명상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공격.

일부러 수하들을 가림막 삼아 공격을 가했던 신욱은 그 일격을 막아 낸 단엽의 모습에 놀란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신욱은 수하들의 뒤편으로 다시금 모습을 감췄다.

단엽이 버럭 소리쳤다.

"또 어딜 도망가!"

하지만 신욱을 잡기도 전에 이미 그 자리는 구마대의 무인들이 가로막은 상태였다. 그들은 재차 단엽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양손을 바삐 움직이며 단엽은 주변에서 몰려드는 수십여 개의 병기들을 쳐 내야만 했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공격.

그 와중에도 단엽은 가까이 있는 자의 목을 비틀어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그쪽으로 다가가며 주먹으로 뒤편에 있는 자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꽈드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신체가 무너져 내렸다.

그의 힘을 견디지 못한 이가 쓰러지려는 찰나 단엽은 그대로 상대의 발목을 잡아챘다. 그러고는 이내 그를 잡고 힘껏 돌리기 시작했다.

"으리야아압!"

주변에 있는 이들을 밀어낸 단엽은 곧바로 그자를 한쪽으로 내던졌다. 그러고는 곧바로 던져진 자로 인해 시야가 가려진 그쪽으로 힘껏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누군가가 다급히 소리쳤다.

"피해!"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하늘로 솟구친 단엽의 주먹에서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고, 곧바로 아래에 있는 이들을 향해 내뻗어졌다.

단엽의 무공 열화신공이 펼쳐진 것이다.

화악!

커다란 화마가 그들을 집어삼켰다.

"으아악!"

비명이 귓가를 때리는 그 순간 뒤편에서 밀려드는 싸늘한 기운을 느낀 단엽이 다급히 몸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창을 곧추세운 채로 날아들고 있는 신욱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저 단순한 찌르기가 아니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가르며 날아드는 찌르기.

창에 얼마나 막대한 기운이 담겼는지를 말해 주려는 것처럼 그가 달려드는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마치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밀려 나갔다.

단엽은 맨주먹으로 받아 낼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막 열화신공을 쏟아 낸 상황이었지만 그는 다급히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가까스로 날아드는 창에 주먹이 맞닿으려는 찰나 손을 보호하듯 불꽃이 피어올랐다.

두 개의 힘이 충돌했다.

쾅!

묵직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멈추어 선 주먹과 창. 동시에 주변으로 커다란 바람이 불어닥쳤다. 뜨거운 열기가 퍼져 나가며 일순 주변을 후끈거리게 만들었다.

단엽이 이를 꽉 깨물었다.

"이 자식이……."

말과 함께 입가에서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다.

급하게 내공을 쥐어짜면서 속이 뒤틀린 것이다. 평소였다면 큰 문제없었겠지만…….

울컥.

재차 단엽이 피를 쏟아 냈다.

억지로 누르고 있던 독 기운이 갑자기 치고 올라온 탓이다. 내상을 입게 되면서 몸 안에 눌려 있던 독기가 기다렸다는 듯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서둘러 내공을 이용해 상태를 진정시키긴 했지만 안색은 아까보다 하얗게 변해 있었다.

허나 단엽은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내공을 쏟아 내며 밀어붙이려는 신욱의 힘에 밀리지 않고 단단히 버티고 섰다.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오히려 조금씩 회복해 나가는 그의 모습에 신욱은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시대의 사파를 이끌 최고의 재목이라는 말이 허언은 아니군. 독에 중독당한 상태에서 이 정도의 내공을 끌어낼 줄은 몰랐거든."

"칭찬은…… 네놈 목을 비튼 이후에 들으마!"

말과 함께 단엽이 주먹에 힘을 쏟아 내며 그를 밀쳐 냈다. 동시에 그의 주먹에서 재차 불꽃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걸 태울 것 같은 뜨거운 열기가 치솟았고, 동시에 온몸의 근육들 또한 꿈틀거렸다.

손바닥 안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간 불꽃이 두 개의 회오리로 변했다.

천무진에게 펼쳤던 초식인 열화무쌍이었다.

"흐아아압!"

단엽의 손을 떠난 두 개의 회오리가 하나가 되며 주변을 뒤흔들었다.

천무진에게 펼쳤을 때만큼 위력적이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하는 것만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서게 만들 정도의 박력이었다.

위험하다는 걸 직감한 신욱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창을 움직였다.

주변으로 퍼져 나간 불꽃의 회오리들이 사방을 뒤덮었다.

콰콰콰쾅!

폭발과 함께 모든 것들이 붉게 변했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불꽃 사이에서 하얀 섬광이 재차 움직이고 있었다.

쒜엑!

창이 일직선으로 날아들며 뒤편에 있는 구마대의 무인들을 때려눕히고 있던 단엽의 심장을 노렸다.

그는 서둘러 주먹으로 날아드는 창을 올려 쳤다.

가까스로 방향을 바꾸는 데는 성공했지만 찌르고 들어온 신욱의 창은 결국 단엽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큭!"

어깨를 움켜쥔 채로 단엽이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가볍게 베인 정도가 아니라 창의 날이 손가락 한마디 가까이 살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재차 독기가 밀려드는 걸 채 누르기도 전에 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신욱이 달려들었다.

이번엔 복부를 노리고 날아드는 창을 단엽이 이를 악물고 쳐 냈다.

동시에 비어 있는 신욱의 안면에 정확하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쾅!

머리가 휙 돌아갈 정도의 충격, 하지만 당한 건 신욱뿐만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그가 창의 뒷부분으로 단엽의 복부를 친 것이다.

주춤 뒤로 밀려 나간 단엽의 뒤로 구마대의 무인들이 치고 들어왔다.

"으아아!"

단엽이 주먹으로 달려드는 상대들의 얼굴을 연달아 내리쳤다.

순식간에 다섯 명의 무인들을 바닥에 처박아 버렸지만 단엽 또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부상을 당한 어깨 아랫부분을 다시 한 번 베였고, 허벅지 옆 부분에도 자그마한 상처를 입고야 만 것이다.

내상을 입으며 들끓는 독을 내리누르면서 수십여 명의 무인들이 연달아 휘몰아치는 공격을 이 정도로 막아 낸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그리고 채 호흡을 가다듬기도 전에 다시금 신욱의 창이 움직였다.

카앙!

단엽은 권갑의 손등 부분으로 창을 밀어냄과 동시에 왼손으로 비어 있는 신욱의 어깨 부분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에서 터져 나온 기운, 열화폭뢰의 초식이 펼쳐지며 어깨의 살점과 피가 터져 나갔다.

"으음!"

고통을 꽉 누르며 신욱은 오히려 어깨를 움켜쥔 단엽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가 곧바로 소리쳤다.

"지금이다!"

이렇게 독에 중독당한 상황에서도 구마대의 많은 무인들을 죽인 위험한 자다. 거기다 멀쩡한 자신조차 조금 밀리고 있으니, 더는 날뛰기 어렵게 치명상을 입혀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이 기회였다.

단엽이 움직이기 어렵게 된 상황에서 여러 방면으로 수하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의 무기가 빠르게 단엽을 치고 들어갔다.

"큭!"

단엽은 짧은 소리와 함께 이를 악물었다.

한쪽 손은 이미 신욱에게 잡혀 있는 상태, 뿌리치려고 하면 할 순 있겠지만 그때는 이미 저들의 공격이 지척에 다다른 뒤일 것이다.

그리고 운 좋게 그걸 막아 낸다 해도 비어 있는 신욱의 손이 가만있지는 않을 터.

창을 막고 있는 손을 움직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지금 할 수 있는 건 결국 내공을 폭발시키는 것.

물론 그 이후에 독기가 재차 밀려들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게 최선이었다.

"크아압!"

단엽이 신욱을 향해 내력을 쏟아 내는 와중에도 힘을 분산하며 주변으로 열화신공을 쏟아 냈다. 덕분에 밀려들던 이들과 신욱이 덩달아 밀려 나갔지만, 그 대가는 컸다.

단엽이 한쪽 무릎을 땅에 댄 채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헉헉."

억눌러 놨던 독기가 재차 밀려들며 입에서 연달아 피가 흘러내렸다.

도대체 이 독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완벽히 단엽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보통의 독이었다면 단엽이 조금만 내공을 움직여도 이미 바깥으로 배출되었을 테지만, 이건 몸 안에 웅크린 채로 자신을 잡아먹을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젠장, 정말 좋지 않은데.’

단엽은 뒤틀린 속이 아픈지 가슴을 움켜쥐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처음 나타났던 오십여 명 중에 남아 있는 이들은 고작 스무 명 정도. 순식간에 서른 명을 쓰러트렸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이들을 모두 쓰러트린다 해도 눈앞에 창을 들고 있는 저 사내를 꺾지 못한다면 결국 죽게 될 것이다.

문제는 저자가 지금처럼 내공을 자제하면서 싸워서는 이길 상대가 아니라는 거다.

"하아, 하아."

단엽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 전부터 재수가 없더라니, 결국은 이렇게 되려던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단엽은 주먹을 꽉 쥐었다.

방금 전까지의 독기 어린 표정이 점점 사라지더니 이내 그의 얼굴이 평온해졌다.

표정이 돌변한 걸 보며 신욱이 입을 열었다.

"뭐야, 그 표정은? 포기라도 한 건가?"

"반은 맞는 소리네."

"그게 무슨 소리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묻는 신욱을 향해 단엽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무슨 소리긴. 포기를 한 건 이 싸움이 아니라, 내 목숨이라는 소리다."

말과 함께 단엽의 몸에서 폭발하듯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독기를 내리누르기 위해 나눠 놨던 내공 모두를 쏟아 내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그런 단엽의 모습에 신욱이 당황한 듯 말했다.

"미쳤군. 이미 독으로 엉망인 상황에서 지금처럼 내력을 모두 뿜어낸다는 건 곧 죽겠다는……."

"맞아, 그거야."

단엽은 손등으로 피가 흐르는 입가를 닦아 냈다.

그러고는 이내 살기를 풀풀 풍겨 대며 말을 이었다.

"난 지는 게 죽기보다 싫거든."

어차피 이 싸움이 길어지면 결론은 하나다.

독기를 내리누르며 싸워서는 절대 저자를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어차피 죽게 될 상황, 그렇다면 굳이 살기 위해 힘을 아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죽게 될 것이라면…… 차라리 화끈하게 싸우고 자신을 노렸던 모두를 길동무 삼아 가는 것이 바로 단엽이라는 사내였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자신이 먼저 저들을 다 때려죽일지, 아니면 독이 먼저 자신을 집어삼킬지.

단엽이 주먹을 움켜쥔 채로 그들을 박살 내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바로 그때였다.

"휘유, 이게 대체 뭡니까? 근처에 온천이라도 있나. 후끈후끈하네."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단엽은 물론이거니와 신욱과 구마대의 모든 무인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피비린내 가득한 싸움터에 모습을 드러낸 중년의 사내, 그런데 그의 얼굴은 이런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일말의 긴장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한천이었다.

그가 덥다는 듯 옷깃을 펄럭거리며 다가왔다.

한천을 알아본 단엽이 버럭 소리쳤다.

"어이! 아저씨! 당신이 낄 자리가 아냐! 도움도 안 되는데 괜히 쓸데없이 죽지 말고 빠져!"

단엽은 지금 나타난 한천이 도움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쓸데없이 죽지 말고 빠지라고 소리친 것이다.

단엽의 고함에 한천이 갸웃하며 말을 받았다.

"어라? 벌써 잊으셨습니까? 제가 말했잖습니까."

검집을 아래로 내린 한천이 엄지로 검의 손잡이를 슬며시 밀어 올렸다.

스르릉.

검날의 일부만 빼낸 그 상태에서 한천의 눈초리가 가늘게 휘어졌다. 웃고 있는 눈동자, 그리고 여전히 여유 가득한 그 표정.

한천이 입을 열었다.

"……엄청난 고수 백 명과 싸워서 이겼다고."

슬며시 열리는 그의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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