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인피면구 ― 도와줘 (2)
사천당문은 발칵 뒤집혔다.
최근 있었던 당백의 죽음, 그에 뒤이어 당율을 죽이기 위해 누군가가 침입한 사실 때문이다.
사경을 헤맬 정도로 큰 부상을 입고 간신히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다행이다 하고 넘길 정도로 가벼운 사안은 아니었다.
두 차례나 있었던 세가 내부의 주요 인물에 대한 피습. 이건 오대세가의 하나인 사천당문의 명예가 걸린 문제였다.
이리 쉽게 세가 내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거늘 어느 누가 자신들을 우러러 본단 말인가. 그랬기에 세가 내부적으로도 회의가 열리며 이 일의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었다.
오후에 벌어진 회의에서 큰 목소리들이 오갔다.
가주파와 반가주파가 혈안이 되어 서로를 물어뜯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반가주파 쪽의 인물이 먼저 소리를 높였다.
"다 세가가 흔들리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외다. 이대로 본가가 계속해서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는 걸 더 두고 봐야 한단 말이오?"
"그래서 지금 어쩌자는 소리입니까?"
"편찮으신 가주님 그만 괴롭히고, 새로이 가주를 뽑아 흔들리는 내부를 정리해야 한다는 뜻이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노고수 하나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 입 다물지 못할까! 당유문 고작 네깟 놈이 가주님의 자리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된다 여기더냐!"
"거참 뭐 그리 핏대를 세우시오. 난 가문의 일원으로서 할 말을 했을 뿐이오."
"저놈이 그래도……!"
"그만들 하지요."
흥분한 듯 소리치는 노고수를 말린 건 다름 아닌 당문추였다. 가주의 동생이자, 현재 천무진이 가장 의심하고 있는 자.
그가 입을 열자 모두가 입을 닫았다.
실질적으로 가주가 병석에 들어가고 세가의 많은 부분을 관리하는 자였으니까.
당문추가 방 안에 모인 스무여 명에 달하는 이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우리는 가족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보다 내실을 견고히 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말을 내뱉는 당문추의 맞은편에는 당소련이 자리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가주파를 이끄는 실세인 그녀가 말없이 당문추를 바라봤다.
‘……그 더러운 입으로 가족이라는 말을 내뱉을 자격이 있더냐.’
그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모든 말에 화가 치솟았다.
앞에서는 가족이라는 말을 내세우며 뒤에서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오랫동안 함께해 온 혈육들을 서슴없이 죽여 댄 그의 양면성에 구역질이 치밀 정도였다.
숙부라는 이유로 양보했던 많은 것들이 이제 와서 뒤늦게 후회로 돌아왔다.
그가 모두를 다독이듯 말을 이었다.
"본가가 안팎으로 시끄러운 건 사실인데 이 일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새로운 가주님을 선출하여 흔들리는 세가를……."
"이노옴!"
당유문의 말에 재차 노고수가 나서려고 할 때였다. 당문추가 손을 들어 올려 노고수를 제지하며 말을 받았다.
"다소 말이 과격하긴 하지만 이 또한 방법의 하나인 건 맞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자네는 누가 가주의 자리에 어울린다 보는가?"
당문추가 시선을 돌려 당유문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애초에 이건 모두 짜고 치는 판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당유문이 입을 열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현재 가주님의 뒤를 이으실 가장 적임자는 독륜원(毒侖院)을 이끄시는 당문추 원주님이시지요.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당유문이 주변을 둘러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반가주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동조의 뜻을 내비쳤다. 그에 비해 가주파들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 가장 큰 힘을 쥐고 있는 당문추의 앞에서 대놓고 반대의 의견을 내놓는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물며 가주인 당세종의 병세가 더욱 심해져 오늘내일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 지금, 가주파는 점점 발언권을 잃어 가고 있었다.
자연스레 가주파 인물들의 시선이 한 명에게로 향했다.
당소련, 그녀였다.
그런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던 당소련이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아직 새로이 가주님을 뽑을 시기는 아니라고 보이는군요. 조금 편찮으시긴 하지만 언제나 그러셨던 것처럼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실 거라 믿으니까요. 그리고 만약에 새로이 가주를 뽑아야 한다면……."
당소련이 잠시 말을 끊고는 맞은편에 있는 당문추를 바라봤다. 인자한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잠시 노려보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숙부님도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저는 운이가 더 낫다 보이는군요. 소가주이기도 하고요."
당운(唐雲), 현 가주 당세종의 아들이자 당소련의 동생이다. 애초에 가주파가 밀고 있는 다음 대의 가주 후보였기에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듯 반가주파 쪽 인물 하나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소가주는 너무 어리지요."
"이제 자기 앞가림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앞가림하는 정도로 되겠습니까? 지금은 세가의 위급 상황입니다. 앞에서 이끌 사람이……."
"도우면 되지요. 여기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많으시지 않습니까? 안 그런가요, 숙부님?"
"……허허."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져 오자 당문추는 그저 웃음으로 대답을 피했다.
그의 웃는 눈동자에 슬며시 짜증이 서렸다.
‘죽지 않고 살아서 끝끝내 귀찮게 하는구나.’
사실 이 자리에 당소련이 앉아 있어선 안 됐다. 어제 보냈던 살수들에게 그녀는 죽었어야 했고, 기둥을 잃은 가주파는 무너졌어야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의 숙원이었던 사천당문의 가주 자리가 손에 닿았다 여겼는데…….
당소련이 살아서 이곳에 앉아 끝까지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었다. 하물며 살아선 안 될 또 다른 한 명 당율을 손에 쥔 채로 말이다.
다리를 꼬고 앉은 당문추는 손가락 끝을 어루만졌다.
상황이 꽤나 골치 아프게 흐르고 있었다.
당소련을 죽이지 못한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욱 큰일은 당율이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놈의 입이 열리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터인데.’
사천당문 내부의 비밀스러운 독들이 바깥에 빠져나간 사실이 들통나면 무척이나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가주인 당세종의 금장전 출입 기록이 남아 있으니 그걸로 자신은 아니라고 우길 순 있겠지만…….
자신에게도 화가 돌아올 건 분명했다.
어쩌면 가주가 될 기회가 영영 사라질지도 몰랐다.
‘……그럴 순 없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지금 당장 우선해야 할 건 가주의 자리에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당율, 그의 입부터 막는 것이 순서였다.
그것만 가능하다면 그 후에 당소련을 죽이고 가주 자리에 오를 기회를 다시 만들면 그만이다.
당문추는 지금 이 자리에서 가주 자리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다른 일부터 정리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내 질녀의 말 또한 틀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은 가주의 교체에 대해 논의할 때가 아닌 듯싶군요. 그렇지, 련아?"
"동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숙부님."
너무도 순순히 물러나는 당문추의 행동에 반가주파의 인물들은 의아하긴 했지만 더는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일단은 가주 자리에 대한 욕심을 거둔 당문추가 다른 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금장전의 전주는 네가 모시고 있다고?"
"네, 제가 아는 안전한 곳에 모셔 뒀어요."
"그곳이 어디더냐?"
"그건……."
물어 오는 당문추의 질문에 잠시 입을 닫았던 그녀였지만 괜히 그를 의심하는 듯한 모양새를 비칠 이유는 없었다.
당소련이 말을 이었다.
"제 거처 안쪽에 있는 조그마한 내실에 모셔 뒀어요."
"그래? 경비를 조금 더 삼엄하게 하도록 부탁해야겠구나."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숙부."
"감사하긴. 당연히 가족의 일인데 나도 나서야지."
대화를 나누면서 당문추와 당소련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상대방을 향해 웃고 있는 겉모습과 달리 둘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신을 차리기 전에 죽여 그 입을 막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든 죽이려 하는 그와.
‘……먹이는 던져 뒀으니 어서 물어.’
그런 그를 막아 내려는 그녀까지.
* * *
당율의 얼굴을 한 천무진이 기거하고 있는 장소는 그 누구의 출입도 허락되지 않았다. 인근에는 무인들이 지키고 있었고, 유일하게 드나들 수 있는 건 당소련 하나뿐이었다.
허나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천무진이 기거하고 있는 내실은 몰래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하나 존재했다.
당소련의 방에서 드나들 수 있는 것으로, 비밀리에 오갈 수 있게 만들어 둔 것이었다.
백아린이 천무진이 있는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비밀 통로 덕분이었다. 당소련과 함께 천무진이 있는 방으로 들어섰고, 안에 자리하고 있던 그가 두 사람을 맞았다.
앉아 있던 천무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이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며 백아린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휴양하는 기분이 어때요?"
"이게 휴양이겠어? 오히려 억지로 누워 있느라 고역이야."
한나절 정도를 잠도 안 자고 죽은 듯이 누워만 있어야 하니 절로 온몸이 아렸다.
환자인 그가 편히 쉬어야 하기도 하고, 오히려 너무 경비가 삼엄해지면 마치 이곳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드러내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핑계 삼아 무인의 숫자는 일정 수준 정도만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들조차도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해 나름대로 빈틈을 만들어 뒀다.
만약 당문추가 직접 찾아오려고 한다 해도 쉽사리 침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둔 것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없었기에 대화를 나누는 것 또한 편안했다.
천무진이 물었다.
"회의는 잘 끝나셨습니까?"
"그럼요. 이제 대놓고 가주 자리에 욕심을 내더군요."
"상황이 그렇게 흐른다면 살아 있는 제가 더 눈엣가시처럼 느껴지겠군요. 제가 쓰고 있는 이 얼굴을 한 당율이라는 분만 죽인다면 더는 방해될 게 없을 테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그런지 사숙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말해 주셨습니까?"
"당연히요. 그런데 위험한 일에 본인이 직접 움직일지는 아직……."
살아 있는 당율을 죽이기 위해 직접 움직일 수도 있지만 그럴 확률보다는 그때처럼 외부에서 다른 누군가를 불러들일 공산이 더 컸다.
그것이 위험 부담이 훨씬 적었으니까.
허나 그건 천무진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여태까지도 자신이 찾는 그들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이 컸지만 이제는 상황이 보다 심각해졌다.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천무진도 알아야 했다.
그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아는지에 대해서도.
시간을 끌 여유가 없었기에 천무진은 결단을 내렸다.
"쉽사리 움직일 것 같지 않다면 아무래도 곧바로 다음 수를 써야겠군요."
천무진은 애초에 이곳에 가만히 누워 당문추를 기다리고만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그에게 문제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이곳에 있음을 알리고, 이후에는 점점 그가 달아올라 결국 다급히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애초의 목적이었다.
기다리다가는 놓치고 말 거라는 두려움을 당문추에게 심어 줄 것이다. 그래야만 그가 참지 못하고 움직이고야 말 테니까.
당소련은 가만히 천무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천무진이 자신의 작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외부에서 데리고 온 의원이 바삐 이곳을 드나들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 상태에 뭔가 긍정적 변화가 있는 것처럼 소란스러운 움직임을 보여 주시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마차 한 대를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마차를요?"
"네, 그리고 제가 그 마차를 타고 빠져나갈 겁니다."
"……숙부를 유인하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맞습니다. 우리의 예상이 맞다면 그는 이대로 절 보낼 수 없다 생각할 겁니다. 이렇게 빠져나가는 것도 분명 뭔가 이유가 있다 여기겠지요."
외부의 세력이 미리 준비되어져 있다면 그들을 이용해 죽이려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겨우 어제 그들이 천무진과 백아린의 손에 박살이 났다. 그리고 나머지 세력들 또한 단엽과 한천에 의해 모두 죽었다고 하니, 아마도 곧바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울 터.
결국 당문추가 직접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그때가 바로 천무진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순간이었다.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백아린이 입을 열었다.
"외부에서 영입해 저희와 손발을 맞출 의원은 제가 구해 올게요."
"그럼 전 이 일이 숙부에게 자연스레 흘러들어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죠."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진행되어지는 계획, 그리고 그만큼 그것에 당하는 상대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게다.
천무진이 말했다.
"자 그럼 슬슬…… 사냥을 시작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