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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58화 (58/293)

58화. 적화신루 ― 루주님을 뵙습니다 (2)

자신이 찾던 정체불명의 그들과 관련되었을 반조라는 사내를 놓친 이후 천무진은 결국 아무런 수확도 없이 거처로 돌아와야만 했다.

인근을 샅샅이 뒤졌지만 사라진 반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남은 건 깊은 고민뿐이었다.

다른 건 다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허나 단 하나,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이 있었다.

대체 그는 자신이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안 것인가?

자신이 찾는 무리의 일원인 반조라는 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그들 또한 이 사실을 안다고 봐야 무방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 걸까?

변하고 있는 미래.

하지만 과연 그 끝도 그럴까?

자신이 두 번째 삶을 산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고 있다면, 과거와는 다른 뭔가가 준비되어져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을 겪은 천무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대들 또한 자신이 그 같은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여태까지의 목적처럼 그들을 찾아내는 수밖에.

백아린이 알려 준 적화신루의 다른 이를 통해 반조라는 인물을 찾아 달라는 의뢰는 이미 해 뒀다.

하지만 여태까지 봐 왔던 자들과는 차원이 달랐던 자다.

천무진이 찾는 그들 깊숙한 곳에 자리했을 반조라는 사내를 찾는 건 그리 간단치 않을 거라는 예상이 들었다.

‘짜증이 나는군.’

계속해서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최소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만 안다면 조금 더 상황이 나아질 법도 하련만, 아직까지 천무진이 아는 건 너무도 적었다.

하나하나 알아 가며 그들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건 맞는 걸까?

밀려드는 의구심, 허나 이내 천무진은 그런 나약함을 털어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자신의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엔 없었던 일이 벌어진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이 나타났다는 것.

그건 곧 지금 자신이 하는 일들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방해 거리가 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굳이 자신의 앞에 나타났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천무진은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들이 자신이 두 번째 삶을 안다는 것은 분명 큰 위협이 되었지만, 반대로 자신 또한 다르지 않았다. 자신도 이번엔 그들을 아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당했던 저번 삶에 비하면 훨씬 공평하지 않은가?

생각과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 바깥에서 남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주인님, 깨어 계십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천무진이 입구로 다가가 문을 열었고, 바깥에는 역시나 남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영감."

"외부에서 연락이 와서 전달드리러 왔습니다."

"연락?"

"예, 여기."

남윤은 쥐고 있던 서신을 천무진에게 건넸고, 이내 그는 안의 내용을 확인했다. 뭔가 중요한 일인가 하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천무진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날아든 서찰에 적힌 것은 다름 아닌 방건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의 여동생인 방소청이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고, 미리 이야기된 대로 방건 또한 동행하기 위해 연락을 넣은 것이다.

천무진이 슬쩍 고개를 돌려 한쪽을 바라봤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러 명이 자리하고 있던 장소.

허나 얼마 전 무림맹에 사공량 패거리를 넘겼고, 이번엔 방건을 떠나보낼 차례가 된 듯싶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작은 주인님?"

갑자기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고 있는 천무진의 모습에 남윤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그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별일 아니야. 아무래도 저 안에 있는 손님을 내보낼 때가 된 것 같아서."

"손님이라면 그분을 말씀하시는 것이겠군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좋은 방에서 편안하게 머물렀던 방건을 기억해 내며 남윤이 대답했다.

그런 그에게 천무진이 말했다.

"가서 전해 줘. 나갈 준비를…… 아니다, 그건 내가 할 테니 영감은 이동시킬 마차를 준비해 줘."

"예, 그러지요."

이곳에서 방소청이 머무는 곳까지는 거리가 꽤 됐기에,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방건을 마차로 데려다줄 생각이었다.

말을 마친 천무진은 곧바로 방건의 거처로 향했다.

기상하기엔 다소 이른 시각, 그렇지만 하루 종일을 방 안에서 쉬고만 있었던 탓인지 방건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탁자에 자리하고 있던 그는 새벽에 갑자기 나타난 천무진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이야?"

"네 동생에게 연락이 왔어. 오늘 떠날 예정이라더군. 나갈 채비를 하라고 전하러 왔다."

"그래?"

동생을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방건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가만히 서서 웃고만 있는 그를 향해 천무진이 말했다.

"뭐해? 서두르지 않고. 짐 어서 챙겨야 갈 거 아냐."

"짐이라고 할 게 뭐 있나. 몸뚱이만 나가면 돼."

거의 시체가 되어서 이곳에 들어왔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적인 용품을 챙기고 왔을 리도 만무했고, 천무진이 준 옷 몇 벌 정도가 짐이라 할 만한 전부였다.

방건의 말에 천무진 또한 방 안을 스윽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허기야 것도 그러네. 여하튼 옷이라도 좀 갈아입어. 받은 것도 몇 벌 챙겨 가고. 먼 길 가야 할 거 같은데."

산동에 있는 옥수문이라면 가는 데만 수십여 일이 걸릴 정도로 긴 여정이다. 여벌의 옷 정도는 챙겨 가야 그나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천무진의 말에 방건은 옆에 있는 봇짐 안에 받았던 옷을 챙겨 넣었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서야 천무진을 향해 다가왔다.

"어때? 이제 좀 덜 환자 같아 보여?"

"……아까보다는."

방건은 동생인 방소청에게 자신이 다쳤다는 말을 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큰 걱정하지 않도록 최대한 멀쩡해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옷 하나 갈아입었다고 뭐 그리 달라지겠냐마는 그래도 천무진의 말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나았다.

천무진이 말했다.

"마차로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거야. 그리고 이곳에서 이동하는 동안에 잠깐은 눈에 안대를 해야 해.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곳이거든."

이곳은 천룡성의 비밀 거점이었기에, 아무에게나 드러낼 수 없었다. 그랬기에 마차를 태우러 가는 동안에 안대를 씌울 생각이었고, 마차가 출발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를 때까지 벗기지 않을 예정이었다.

방건이 순순히 대답했다.

"그렇게 할게."

"그리고 알겠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 가서도 하지 말고. 이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한 충고야."

무림맹을 떠나 오히려 산동 멀리에 있는 옥수문으로 가는 방건이다. 그런 그가 어디를 가서 이 같은 소문을 낼 거라는 의심은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무진은 다시금 되짚어 줬다.

자신의 정체는 이미 적들에게 드러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이런 말을 한 건 지금 이야기한 대로 방건을 위해서였다.

천무진에 대해 안다는 건 곧 방건에게 화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천무진의 말에 방건이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라. 너와 내 일은 여기에 묻으려고."

말을 하며 방건은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를 향해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원한다면 무림맹에 돌아올 수 있도록 이미 이야기해 뒀어. 혹시라도 나중에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을 거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는지 방건은 꽤나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천무진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가능하면 돌아오지 마라. 좋은 무인이 되라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건 불가능한 것 같다. 사실 넌 그리 재능이 없거든."

"면전에 대고 잔인한데?"

말은 그리했지만 방건은 피식 웃었다.

사실 방건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완벽히 회복되려면 긴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런 나이에 다시금 무림맹에 온다 해서 지금과 달라질 건 없다는 사실 정도는.

꽤나 긴 시간을 무림맹에 몸담았다.

그렇지만 방건은 그 안에서 전혀 빛나지 못했다.

본인 스스로도 슬슬 떠나야 할 때라는 걸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일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고, 오히려 그 덕분에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곳에서 또 새로운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기분이 나쁠 수 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편안한 얼굴로 있는 방건을 바라보며 천무진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방건과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천무진이 나지막이 할까 말까 망설였던 말을 꺼냈다.

"허나 이건 장담하지. 넌 좋은 무인은 못 되겠지만…… 좋은 사람은 될 수 있을 거다."

사실 초면부터 그리 유쾌한 인연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 댔고, 귀찮게 엉겨 붙어 짜증을 일게도 만들었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그는 악인은 아니었다.

때로는 순박했고, 번거롭긴 했지만 언제나 식사를 할 때는 천무진을 챙기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오라비였고, 또한 그런 동생을 아낄 줄 아는 사내였다.

그랬기에 천무진은 죽어 가는 그를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천무진의 말에 놀란 듯 눈을 치켜떴던 그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고맙다 무진아."

"초반에 신고식이니 뭐니 하면서 건드리는 건 고쳐. 그러다간 좋은 사람 되기 전에 죽을 테니까."

"야, 그거야 나도 당해서 해 본 거지. 솔직히 하면서도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아냐? 어쨌든 충고 받아들여서 앞으론 절대 그런 짓 안 하마."

웃으며 대답하는 방건과 마주하고 있던 천무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방건을 이동시킬 마차가 준비된 모양이다.

천무진은 가지고 온 검은 천을 내밀었다.

"이걸로 눈을 가리고 날 따라서 입구로 걸어 나와. 마차가 준비된 모양이니까."

그의 말에 방건은 순순히 시키는 대로 검은 천으로 눈을 가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천무진의 발걸음 소리를 따라 천천히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거처로 들어오고 단 한 번도 방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방건이, 눈을 가린 채로 마침내 바깥으로 나설 수 있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겨 마차에 이른 방건이 그 위로 올라탔다.

천무진은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방건을 대신하여 마차의 문을 닫았다.

덜컹.

문이 닫혔고, 이내 안에 있는 방건이 손으로 더듬더듬 창가를 어루만지며 바깥을 향해 고개를 돌릴 때였다. 천무진이 그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고생했다. 고향에 가서 잘 지내라."

왜일까?

고생했다는 그 한마디에 긴 시간 무림맹에서 아등바등 버티며 힘들게 지내 왔던 시간들이 마치 눈 녹듯 사라져만 가는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가린 채로 방건이 입가에 큰 미소를 지었다.

"너도 잘 지내, 무진아."

"그럼 슬슬 출발……."

말을 하는 천무진을 향해 방건이 다급히 소리쳤다.

"잠깐만!"

갑자기 소리를 치는 방건을 향해 천무진이 시선을 줬을 때였다. 보이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애써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은혜 언젠가 꼭 갚으마."

천룡성의 후계자인 천무진이 방건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과연 있을까?

허나 그런 생각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잠시 방건을 바라보던 천무진이 이내 출발하라는 듯 마차의 옆면을 가볍게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출발."

그 말과 함께 마차는 서서히 천룡성의 비밀 거점을 떠나갔다.

* * *

적화신루의 총회는 언제나처럼 이루어졌다.

특별한 일이 없는 신루의 고위직들은 모두가 참석했고, 그 숫자는 서른 명이 조금 미치지 못하는 정도였다.

적화신루의 총관은 정확하게 아홉 명.

헌데 신기하게도 부총관의 숫자는 그보다 한 명 많은 열 명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 각 부서들을 담당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숫자가 제법 되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두 명의 총관과 세 명의 부총관, 그리고 몇몇 부서장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참석했다.

적화신루에서는 총관의 앞에 붙는 숫자는 별 의미가 없다고들 말한다.

허나 그건 대외적인 말일 뿐, 실질적으로 적화신루 내부에서는 총관 앞에 붙는 숫자가 서열이라는 암묵적인 이야기들이 있었다.

일에서부터 구까지.

그 숫자가 바로 적화신루 내의 서열이라는 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예가 바로 저 사내였다.

휘장으로 가려져 있는 루주의 공간에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는 한 명의 인물. 나이는 육십이 조금 넘었지만 관리를 잘한 덕분인지 아직까지도 정정함이 잔뜩 묻어 나왔다.

흰머리를 깔끔하게 정돈해서 넘긴 그는 덩치가 조금 있는 편이었고, 눈매는 강인했다.

굳게 닫혀 있는 입은 평소 묵직한 그의 성정을 보여 주는 듯했다.

경거망동하지 않으며 모든 일을 침착하게 처리하는 사내.

바로 적화신루의 일총관 진자양(陳子陽)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적화신루 내에서 유일하게 두 명의 부총관을 허락받은 특별한 인물이었다.

총관에 비해 부총관이 한 명 많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기도 했다.

적화신루의 루주는 예로부터 언제나 휘장을 통해 정체를 가려 왔다. 그런 루주를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것이 바로 일총관 진자양이었다.

루주가 이야기를 꺼내면 진자양은 그걸 정리하고 다른 이들과 의견을 교류한다. 그리고 이내 그걸 다시금 정리해서 문서로 남긴다.

실질적인 적화신루의 이인자인 셈이다.

그런 그가 일총관이니 자연스레 그다음 서열인 이총관이 삼인자로 분류되는 건 당연했다.

입 밖으로 꺼내지만 않을 뿐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규칙.

그런 적화신루에서 사총관인 백아린의 위치는 꽤나 높았다. 그리고 그랬기에 어교연이 더욱 그녀를 미워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의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 여기고 있거늘 사총관인 백아린에 비해 자신은 고작 육총관의 직위에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불만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각 총관들은 두 개에서 많게는 세 개 정도씩 구역을 나눠서 담당했는데, 개중에 백아린이 담당하는 곳은 다름 아닌 사천성과 섬서성이었다.

거기다 호북의 일부 지역도 떠맡고 있으니 그야말로 알짜배기 같은 곳은 전부 그녀의 영역이라는 소리였다.

실질적인 중원의 중심 지역을 도맡고 있는 백아린이었으니,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어교연의 입장에서는 고까울 수밖에 없었다.

각 지역에서 모인 총관들의 보고가 이어졌고, 이내 루주와 일총관 진자양은 자그맣게 대화를 나누며 상황들을 정리해 갔다.

붉은 휘장 너머의 루주는 그림자만이 비칠 뿐,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허나 그 누구도 그런 모습에 의아해하지 않았다.

정보 단체의 수장으로서 수하들에게도 본모습을 감춘다. 그것이 바로 적화신루 루주들이 대대로 이어 온 방식이었으니까.

어느 정도 이야기가 끝나 가며 길었던 총회가 서서히 막을 내리려 할 때였다.

자신의 차례에서 준비된 것들을 보고하고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백아린이 손을 들어 올리며 발언권을 얻고자 했다.

그녀의 모습을 본 진자양이 말했다.

"사총관 말하시오."

"루주님께 하나 요청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붉은 휘장 너머의 상대를 향해 백아린이 말하자,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게."

"지금 배정받은 주요 임무를 위해 앞으로 있을 총회는 제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장소로 진행했으면 합니다."

백아린의 말에 자리하고 있던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여러 지역을 돌아가면서 총회가 있어 왔기 때문이다.

어교연이 이를 부드득 갈며 나섰다.

"사총관, 그건 너무 과한 요구 아닌가요?"

중원의 외곽인 하북과 요녕을 맡고 있는 그녀다. 백아린을 중심으로 진행하게 되면 이동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모든 일정을 자신에게 맞춰 달라고 하니 어교연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대답해 오는 어교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백아린이 말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리도 중요한가?"

들려오는 묵직한 루주의 목소리.

백아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루주의 말에 답했다.

"물론입니다. 그들은 정보를 다루는 저희가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던 세력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미 중원 곳곳에 박혀 있더군요."

"사총관은 그들이 위험하다 여기는군."

"네."

순순히 대답한 그녀가 이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지금 확인된 바로만 해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같은 곳들의 일부 또한 그들과 연관되었을 공산이 크다고 판단됩니다. 어쩌면 이미 완벽하게 넘어간 곳이 있을 수도 있죠. 정파 쪽이 이런데 사파나 마교 쪽까지 들어가면 그 크기는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고요."

"너무 과한 생각 아니오?"

일총관인 진자양이 끼어들며 물었다.

그녀가 무림의 전설적인 문파인 천룡성과 함께 뭔가를 조사해 나가고 있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정말로 그토록 큰 세력을 자신들이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는 건 쉽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믿기 어렵다는 건 백아린 또한 이해한다.

그렇지만 천무진과 함께하게 되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그들의 존재.

그들이 사천당문의 다음 가주 직을 노리는 이를 손바닥 안에 놓고 벌인 일을 직접 목도하기도 했다. 거기다가 정체불명인 그들의 검은 손이 무림맹 내부에도 뻗쳐 있다는 것 역시 확인하지 않았던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바로 정보 단체가 살아남을 방도라 여겼다.

그랬기에 백아린이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이 일은…… 중원 전체가 얽힌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커지기 시작했다.

적화신루의 일원으로서 그런 자들이 있는데 여태 알지 못했다는 걸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백아린은 그런 주변의 웅성거림은 아랑곳 하지도 않은 채 휘장 너머의 상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붉은 휘장에 가려져 있는 상대 또한 잠시 말없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어지던 침묵.

결국 휘장 너머의 루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청을 수락하지."

루주의 답이 떨어졌다.

몇몇 이들의 불만 어린 시선이 쏟아지는 걸 느끼면서 백아린이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루주님."

루주가 허락했고, 그것은 절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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