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별동대 ― 보고 올리겠습니다 (2)
자리에 앉은 이지강은 맞은편에 위치한 천무진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한번 보면 쉬이 잊기 힘들 정도로 준수한 외모, 그렇지만 젊은 나이 때문인지 전설로 알려져 있는 천룡성의 인물이라는 것이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 이지강의 시선을 느껴서일까?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천룡성의 인물이라는 게 안 믿어지십니까?"
"아뇨, 맹주님이 보증하시는데 당연히 진실이겠지요. 다만……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서 조금 놀란 것뿐입니다."
이지강이 화들짝 놀란 듯 손사래를 치며 둘러댔다.
평소 날카롭고 딱 부러지는 성격을 지닌 그조차도 전설의 문파, 천룡성의 무인인 천무진과의 첫 대면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만큼 천룡성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컸기 때문이다.
이지강의 시선이 맹주인 추자후에게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비밀 만남, 그리고 여태까지와는 다른 별동대의 구성과 임무까지. 그 모든 것들이 이곳에 자리한 천무진 때문이라는 걸 이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천룡성이 움직였다는 말은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예로부터 천룡성은 무림에 중대사가 벌어지려고 할 때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그들이 나타났고, 운남이 아닌 광서성으로 움직일 별동대를 구성하는 걸 보아하니 뭔가 자신이 모르는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지강이 추자후에게 물었다.
"이번 별동대가 구성되어지는 이유가 천룡성 때문입니까?"
"천룡성의 부탁이 있긴 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닐세. 이 일이 무림맹의 입장으로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판단이 섰기에 내린 결정이네."
"무슨 일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다 해도 이지강은 맹주인 추자후의 명령이라면 따를 것이다. 그는 그만큼 충성스러운 인물이었으니까.
그런 이지강의 성정을 알기에 이번 일의 적임자로 그를 내세운 것이기도 했다.
추자후는 숨기지 않고 답했다.
"고아들이 실종되고 있네."
"그런 경우는 원래 종종 있는 일 아닙니까? 멀리에 있는 혈육을 찾아서 가기도 하고……."
"수천 명일세."
"……예?"
"파악된 것만 수천 명이라고. 어쩌면 그 숫자는 수만이 될 수도 있고."
"정말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겁니까?"
"그렇다네. 그리고 그 단서를 천룡성에서 가지고 온 것이고."
이지강의 시선이 천무진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동안 사라진 수천의 고아들.
넓디넓은 중원 땅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지강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생각보다 훨씬 중대한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물었다.
"별동대를 어떤 식으로 구성하면 됩니까?"
"이거 받으시죠."
천무진은 가지고 있던 서찰 하나를 내밀었다. 서찰을 받아 든 이지강은 안에 적힌 내용을 살펴봤다.
내용이라고 해 봤자 아주 짧았기에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안에는 백아린과 한천, 그리고 천무진 본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찰의 내용을 모두 읽는 걸 확인한 천무진이 말을 이었다.
"서찰에 적힌 셋에, 길잡이로 저희 쪽 사람 하나를 심을 생각입니다. 그 넷을 제외하고는 평소처럼 구성하시면 됩니다."
"말했다시피 새외 세력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운남성으로 가는 시늉을 해야 하는 걸 잊지 말게. 동행하는 이들도 속일 수 있도록 그쪽 지역에 사는 이들은 배제해서 인원을 짜되, 최대한 여러 곳에서 인원을 차출하여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모습으로 보이도록 해야 하고."
추자후의 말을 들은 이지강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대외적으로 감추고 움직이는 건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굳이 별동대의 구성원들에게까지 내용을 감춰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건……."
추자후가 슬쩍 천무진을 바라봤고, 그가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별동대의 인원들 중에서도 그 일과 관련된 자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말도 안 됩니다. 별동대에 구성되어질 이들은 무림맹 소속의 무인들로 그들이 그런 악독한 일에 연루되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무림맹 소속 무인들이 절대 그럴 리 없다며 확신 어린 말을 내뱉는 그를 향해 천무진이 말했다.
"금호를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홍천관 관주 아닙니까."
"고아들의 납치를 주도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그 자입니다."
"……."
천무진의 말에 이지강은 순간 당황한 듯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지금 저 말이 사실이라면 관주씩이나 되는 인물이 이 일에 개입되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얼추 상황을 이해했을 거라 생각했는지 추자후가 분위기를 정리하며 말했다.
"상당히 위험한 일이 될 거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기도 하네. 그렇기에 난 이 일의 적임자로 자네를 선택했지. 어떤가? 할 수 있겠는가?"
추자후는 애초에 자신이 어떠한 대답을 할지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천룡성의 인물을 눈앞에 데려다 놓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지강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곧바로 답했다.
"준비하겠습니다."
* * *
무림맹에서 운남성으로 향할 칠차 별동대 인원들을 선별했다. 물론 이번엔 운남성이 아닌 광서성으로 향할 계획이었지만 그건 대외비였다.
직접적인 전투를 하기보다는 인근의 상황을 파악하고, 추가적인 조사를 하는 것이 임무였기에 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본래 그때그때 꾸려지는 별동대의 인원들은 각양각색이었다. 나이에서부터 소속, 성별까지 대부분이 제각각이었다.
허나 이번 별동대 구성원들의 나이는 평소보다 꽤나 젊은 편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경험 때문이다.
운남성으로 가는 시늉을 하며 광서성으로 향해야 하는 상황. 경험이 있는 이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최소한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경험 있는 무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젊은 무인들로 채웠다. 다행히 한천의 나이 또한 적당히 있는 편이었기에 그중 하나를 대신할 수 있었다.
별동대를 이끄는 수장은 이지강이었고, 그의 아래로 두 명의 부관이 뒤따랐다.
갑작스럽게 정해진 별동대의 인원들, 그렇지만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원래부터 계속해서 운남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무인들을 보내 왔으니까.
거기다가 거기서 머무르며 싸우는 부대가 아닌 조사를 임무로 하고 떠나는 것이었기에 다소 급한 소집이긴 했으나 무림맹의 무인으로서 감내해야 할 부분이었다.
별동대의 인원으로 뽑혔다는 사실이 전해진 이튿날.
무림맹 내부에 있는 넓은 연무장으로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이번 별동대로 뽑힌 이들이었다.
별동대의 수장인 이지강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먼저 나타난 두 명의 부관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이 조를 이끌 부관이자 아미파(峨嵋派)의 혜정(慧情)이라는 여승이었다. 그녀의 옆에 서 있는 이는 삼 조를 맡기로 되어 있는 남궁세가 소속 고수 남궁격(南宮格)이라는 자였다.
혜정이 몇 장의 서찰을 쥔 채 앞으로 나섰다.
"모두들 모인 것 같군요. 저는 아미파의 혜정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말과 함께 포권을 취해 보였다.
사십 대 중반 정도의 나이, 아미파를 이끄는 중견 고수 중 하나인 그녀는 꽤나 실력 있는 무인이었다. 혜정이 입을 열자 모두가 집중한 채로 단상 위에 서 있는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다들 알겠지만 이번 별동대는 다소 급하게 구성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에게는 그런 상황에서도 체계적이고, 확실하게 임무를 완수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말과 함께 그녀의 시선이 서찰로 향했다.
그곳에는 별동대 인원들의 명단과 각자 배정된 조가 적혀져 있었다. 혜정이 말을 이었다.
"저희의 숫자가 육십 명 정도이기에 조를 세 개로 나누어 운영할 예정입니다. 지금 호명하는 대로 각자의 자리로 가서 서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일 조부터 시작하죠."
말과 함께 혜정은 한 사람씩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일 조는 이지강이 이끌기로 되어 있었고, 상대적으로 구성원들 중에 실력이 있는 이들로 구성되었다. 전체적으로 나이대가 있었고,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일 조의 구성원 중 한 명.
한천이었다.
혜정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왔다.
"한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한천이 싱글벙글 웃으며 일 조의 인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먼저 와 있는 이들을 향해 특유의 친화력 가득한 모습을 보이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야, 반갑습니다. 다들 잘 지내보지요. 혹시 시간 괜찮으신 분들 계시면 이따가 술이라도 한잔하실까요?"
넉살 좋은 한천의 모습에 사람들이 피식 웃음을 흘릴 때였다. 멀리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백아린은 슬쩍 표정을 찡그린 채로 혀를 차고 있었다.
‘하여튼 저놈의 술은.’
일 조의 구성원들이 모두 호명되고 이내 이 조가 불리기 시작했다.
이 조는 다소 젊지만 명문정파의 인물들이 많이 포진되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이름난 젊은 무인들이 꽤나 많이 포함돼 있었다.
그렇게 이 조의 호명이 끝나고 이내 이어진 마지막 조, 삼 조의 순서가 왔다.
혜정이 계속해서 한 사람씩 이름을 호명했다.
"백아린."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백아린이 성큼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오며 짧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자신이 속한 삼 조의 인원들을 향해 걸어갔는데,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다른 조에 속한 사내들은 아쉬움을 삼켰다.
사실 이번 별동대에 백아린이 뽑힌 건 무림맹 내에서 화제였다.
무림맹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토록 이름을 날릴 정도의 미모,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조용히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백아린에 대한 소문은 이미 쫙 퍼진 상황이었다.
오늘 이곳에서 직접 그녀를 처음 본 이들 또한 쉬이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이내 혜정이 다른 이의 이름을 불렀다.
"무진."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선 천무진은 백아린이 서 있는 삼 조를 향해 다가갔다.
순서에 따라 섰기에 천무진은 자연스레 그녀의 옆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렇게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멀찍이 있던 한천이 히쭉 웃었다.
서로 모르는 척 서 있는 두 사람이지만 한천이 보기에 그 둘은 참으로 잘 어울렸다.
그렇게 삼 조의 구성원들까지 모두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섰다.
마지막에 호명된 삼 조.
삼 조 또한 이 조와 마찬가지로 대다수가 젊은이들이었지만 그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한 단계 낮은 실력자들이었다.
물론 너무 편파적인 구성은 다소 애매하다 여겼는지 이곳 삼 조에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무인들 일부가 자리하고는 있었다.
허나 누가 봐도 알 정도로 뛰어난 이 조 인물들에 비해 하나하나의 실력들은 다소 떨어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짜 신분이긴 하지만 뒷배경이나 실력적인 부분을 많이 낮추고 있는 천무진과 백아린이 삼 조에 포함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각자의 조가 모두 완성되었을 무렵이었다.
연무장의 입구로 한 명의 사내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날카로운 칼과도 같은 예기를 풍기며 다가오는 인물, 천무진과는 일면식이 있는 사내이자 이 별동대를 이끌 수장인 이지강이었다.
이지강은 단상 위로 향하며 힐끔 천무진을 확인했다. 아주 잠시 시선을 마주쳤던 두 사람이지만 이내 이지강은 자연스레 미리 단상 위에 올라와 있던 두 명의 부관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가 나타나자 혜정과 남궁격이 포권을 취하며 그를 맞이했다.
마찬가지로 포권으로 인사를 끝낸 이지강이 가장 앞으로 나섰다.
"이번 별동대를 이끌 점창파의 이지강이라고 한다. 다들 알다시피 이번 우리의 임무는 새외 세력들의 개입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운남성을 둘러보는 것이 주요 임무이고, 언제나 해 왔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임무를 가벼이 여겨서는 아니 된다. 주기적으로 무림맹에서 사람을 보낼 정도로 중요한 일이고, 우린 그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
긴말을 내뱉으며 이지강은 아래에 있는 육십여 명의 무인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번 비밀 임무를 위해 그가 여기저기서 뽑은 인원들이다. 이미 무림에서 상당히 이름을 날리는 이들도 있고, 갓 무림맹에 몸담은 신입도 있다.
이들을 이끌고 이번 비밀 임무를 완벽하게 끝마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지강이 해야 할 일이었다.
"출정은 삼 일 후, 오시(午時) 정각에 이곳에 모여서 출발하니 그 전까지 모두들 집합할 수 있도록. 질문 있는 사람 있는가?"
말을 끝낸 그가 슬그머니 아래쪽에 있는 천무진과 짧게 시선을 맞췄다.
천무진이 다른 이들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던 이지강이 이내 말을 이었다.
"없나 보군. 그럼 삼 일 후에 이곳에서 만나도록 하지.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