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임무 실행 ― 전 아닌데요 (1)
별동대의 대원들에게 밝혀진 진짜 목적지.
그 사실이 알려지자 내부에는 적지 않은 소란이 있었다. 물론 자신들의 진짜 목적지가 광서성이라는 것만 밝혀졌을 뿐, 그중에서 어디로 향하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했다.
그 넓은 땅덩어리에서 광서성이라는 지역만 듣고 어디로 향하는지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 자신들이 해야 할 임무 또한 모르는 상황.
별동대를 이끄는 이지강은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야 자신들의 임무가 무엇인지 알려 주겠다고 밝혔다.
뒤늦게 알게 된 진실에 크고 작은 불만들이 있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 일이 무림맹주의 직접적인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는 말에 맘에 들지 않아 투덜거리던 이들도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큰 불만을 가진 건 다름 아닌 당자윤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런 비밀 임무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토록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비밀 임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비밀스럽게 움직여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말은 반대로 그만큼 위험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했다.
굳이 이런 위험한 일에 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는 그였다.
허나 이미 이곳까지 와 버렸고, 무림맹주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별동대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랬기에 당자윤 또한 불만을 애써 누른 채로 계속해서 어딘지도 모를 목적지를 향해 움직여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움직이며 당자윤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임무인지 두고 보자.’
자신의 위명을 알리는 데 과연 도움이 될 만한 것인지 두고 보겠다며 간신히 분을 삭이는 그였다.
그렇게 불만들을 떠안은 채로 계속해서 움직이던 별동대는 마침내 목적지인 합포의 지척에 있는 서전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곧장 합포로 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인근 마을인 이곳 서전으로 들어선 건 이유가 있어서다.
의심하는 대로 정말 합포에 고아들이 사라지는 일과 관련된 자들이 있다면, 최대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유리했고 곧바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보다 확실하게 계획을 짜 둘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서전에 있는 가장 큰 객잔에 들렀지만 작은 마을이어서인지 별동대의 많은 인원이 한 번에 묵을 정도로 빈방은 없었다.
그랬기에 두 개의 객잔으로 사람들을 나눠서 배정했고, 오랜만에 취하는 제대로 된 휴식에 별동대들이 모두 여독을 풀고 있는 그때였다.
두 개의 객잔 사이에 있는 주루의 가장 안쪽 방에 이지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주루였고, 이지강은 미리 사람을 써서 이곳을 통째로 빌린 상황이었다. 그렇게 그가 잘 차려진 술상을 앞에 둔 채로 침묵만을 지키고 있던 도중 마침내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천무진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편에는 백아린이 함께였다.
같은 객잔에서 머물기로 되어 있었기에 둘이 함께 이곳 주루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천무진의 등장에 자리에 앉아 있던 이지강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포권을 취하며 그가 말했다.
"오셨습니까."
"먼저 와 계셨군요."
짧은 천무진의 대답을 들으며 이지강의 시선이 뒤편에서 함께 나타난 백아린에게로 향했다.
무림맹주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쪽이 적화신루의 총관이오?"
"네,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적화신루 사총관 백아린입니다."
그렇게 세 사람이 인사를 주고받는 그때였다.
주루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바깥쪽에서 또 다른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엽과 한천이었다.
여전히 죽립을 쓰고 있는 단엽과, 옆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한천이 이내 열린 문 근처에 서 있는 천무진과 백아린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대장, 오랜만입니다! 얼마나 대화를 나누고 싶던지 입이 근질근질하던데요?"
항상 같이 움직이긴 했지만 서로 모르는 척하던 중이라 이렇게 대놓고 대화를 나누는 건 꽤나 오랜만인 느낌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수다를 떨어 대는 한천을 보며 뒤편에서 단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튼 저놈의 호들갑은."
그렇게 두 사람까지 나타나자 문을 열고 서 있던 천무진이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머지 세 사람 또한 방 안으로 들어와 빈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 앉자 이지강의 시선이 천천히 한 사람씩을 살폈다.
천룡성의 무인 천무진, 그리고 적화신루의 총관인 백아린과 부총관 한천까지. 이렇게 세 사람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엽에게 시선을 둔 채로 이지강이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큰 도움을 받았네. 덕분에 구천회에서 별 문제없이 나올 수 있었어."
"그게 뭐 별거라고. 됐수다."
다른 이들 앞에서 무림맹의 길잡이 흉내를 할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말투다. 그때는 예의를 갖추어 대답했지만 지금은 거칠 것 없어 보이는 모양새였다.
벽에 기댄 채 한쪽 무릎은 추켜세운 상태로 앉아 있는 자세만 봐도 무척이나 호전적인 성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소 답답하다는 듯 단엽이 머리에 쓰고 있던 죽립을 벗어 옆에 두었다.
죽립 사이로 슬쩍슬쩍 보긴 했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하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허어."
생각보다 더욱 젊었고, 훨씬 곱상했다.
그랬기에 궁금증이 치밀었다.
대체 이런 사내가 어떻게 구천회에서 자신들을 아무런 문제없이 빼낸 것일까?
오는 내내 그 사실이 궁금했던 이지강이다.
그가 물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구천회의 심방을 설득한 겐가? 그자 생각보다 고집스럽고 성깔이 있는 인물인데 말이야."
"그거야……."
입을 열었던 단엽이 슬쩍 천무진을 바라봤다.
이야기를 해도 되냐는 듯한 눈빛.
천무진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무림맹주도 알고 있는 사실, 그리고 이지강은 그의 충복이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고, 천무진 또한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허락이 떨어지자 단엽이 곧바로 답했다.
"날 건드리면 구천회도 곤란해지거든."
"……자네가 누군데."
이지강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눈앞에 있는 이 사내가 대체 누구기에 사파를 대표하는 네 개 단체 중 하나인 구천회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단엽이 입을 열었다.
"대홍련 부련주야."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한마디.
그렇지만 그 말을 들은 이지강은 식겁해서 저도 모르게 몸을 꿈틀했다. 뭐를 안 먹고 있어서 망정이지, 입에 뭔가가 있었다면 자신도 모르게 뿜어냈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당황한 얼굴로 이지강이 되물었다.
"당신이 단엽이라고?"
"맞아."
"이런……."
기가 막힌다는 듯 이지강이 입을 쩍 벌렸다.
대홍련의 세력권인 운남성.
그리고 운남성은 이지강의 문파인 점창파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당연히 두 세력 간의 마찰은 꽤나 오랜 시간 이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최근에는 두 세력 사이에 크게 불거진 문제가 없긴 하지만…….
점창파의 인물인 자신이 이렇게 술자리에서 사파의 인물과 마주하고 있는 걸로 모자라 그 인물이 대홍련의 부련주라니, 실로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유쾌하지 않은 상대의 정체에 이지강이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때였다.
가만히 앉아 있던 한천이 앞에 놓여 있는 닭 다리 하나를 집으며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이야, 이게 얼마만의 진수성찬이야."
말과 함께 손에 쥔 닭 다리를 우적거리며 씹는 그에게 순간적으로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자 한천은 이내 어색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맛있는데 다들 드시죠."
가벼워 보이는 행동.
그렇지만 백아린은 알고 있었다.
한천이 지금 왜 이 같은 행동을 했는지를.
정파의 인물인 이상 사파인 대홍련의 부련주와 함께한다는 걸 그리 좋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점창파라면 더더욱 그랬다.
잦은 마찰이 있었을 테니 두 세력 사이에 원한 또한 확실하게 자리하고 있을 터.
분위기가 심각해지지 않도록 한천이 빠르게 상황을 넘긴 것이다. 그리고 한천의 계획대로 이지강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부릅떴던 눈에서 슬며시 힘을 풀었다.
분명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도 않고 꽤나 놀란 건 사실이지만…… 놀란 걸로 치자면 저기 자리하고 있는 천룡성의 무인 천무진을 만났을 때가 더 컸다.
한천의 말과 함께 단엽 또한 식사를 시작했다.
잠시 침묵하던 이지강이 조심스레 천무진을 향해 물었다.
"임무는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입니까?"
천룡성의 무인이어서 그런지 이지강은 천무진을 대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색했다. 자신이 나이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존댓말이 나가는 것 또한 그 때문이었다.
나이를 떠나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
그만큼 천룡성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는 걸 의미했다.
물어 오는 질문에 천무진이 답했다.
"무림맹에서 온 별동대 무인들도 고아들의 실종에 대해 조사하는 데 어느 정도 투입할 생각입니다. 다만 그걸 전담하는 건 별동대가 아닌 적화신루가 될 겁니다."
별동대 무인이라고 해 봤자 고작 육십 명.
거기다가 그들은 무공 능력이 출중한 것이지 정보를 찾아내고, 은밀하게 뭔가를 알아내는 데 뛰어난 건 분명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를 찾아낸다고 들쑤시고 다니다가 무림맹 별동대의 정체를 노출시킬 위험이 더 크다.
그랬기에 그런 부분의 일은 최대한 정보 단체인 적화신루가 맡는다.
옆에 앉아 있던 백아린이 곧장 말을 받았다.
"적화신루가 이미 합포를 중심으로 해서 움직이고 있어요. 이미 어느 정도 얻어 둔 정보도 있고, 추가적으로 계속해서 단서를 찾는 중이죠. 무림맹의 별동대는 구색을 맞출 정도의 조사와, 추후 뭔가를 밝혀냈을 때 그들을 제압할 무력을 맡아 주셔야 해요. 물론 무림맹이라는 이름은 추후에 이 일을 마무리함에 있어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정보 쪽에서야 적화신루가 낫다지만, 이 일을 해결하는 건 무공 실력이 훨씬 뛰어난 무림맹의 별동대가 나서야 한다.
대답을 들은 이지강이 백아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최소한의 구색 맞추기 정도로 진행하도록 하지."
이 일은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전해 들었다. 그 때문에 무림맹 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 단체인 적화신루의 도움을 업고 함께 움직여야 할 상황이다.
이지강의 대답이 끝나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합포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저희 모두가 자유롭게 움직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움직일 수 있도록 조를 짤 때 저희 셋으로 구성해 주셨으면 합니다."
단엽이야 어차피 길잡이로 따라나선 것이니 임무를 할 조 편성에 끼워 넣을 이유가 없었다.
대신 나머지 셋인 천무진과 백아린, 한천을 하나로 묶어 달라 말한 것이다. 천무진의 말에 이지강이 곧바로 답했다.
"그렇게 해 드리지요. 그럼 아예 세 명 정도로 한 조를 구성해 임무를 수행케 하겠습니다. 그들을 어떤 식으로 운용하면 좋겠습니까?"
"별동대가 해 줄 임무는 합포에서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감시하고,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또 뭘 하는지에 대해 조사를 하는 정도로 진행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겉핥기 식의 감시로 특별한 게 걸릴 것 같진 않지만…… 운이 좋다면 뭔가를 찾아낼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시키신 대로 진행하도록 하지요."
천무진과 백아린을 통해 어느 정도 별동대를 운용할 구성안을 마무리한 이지강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하다 보니 한곳에 있긴 했지만 사실 점창파의 인물인 그가 대홍련 부련주와 한자리에 있다는 건 무척이나 불편한 일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자리라면 모를까 이처럼 사적인 공간까지 함께하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이지강이 짧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건넸다.
"계산은 이미 해 두었으니 드실 만큼 드시고 가면 됩니다. 추후에 또 문제가 생기면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그럼 전 이만."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걸어 나가는 이지강을 향해 그 누구도 식사라도 하고 가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이유로 저처럼 행동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이지강의 잘못도, 단엽의 잘못도 아니었다.
무림에서 정파와 사파란 그런 것이다.
쉽사리 융화될 수도 없고, 엉키고 엉킨 실타래처럼 풀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했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 그게 오히려 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
물론…… 종종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크으, 이거 술 한 병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데 한 병 더 시키면 안 됩니까, 대장?"
얼마 안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으며 한천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자리하고 있던 단엽이 곧바로 바람을 불어넣었다.
"당연히 되지. 뭘 그런 걸 물어보고 시켜. 그냥 확 질러 버리라고."
천무진과 백아린이 이지강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순식간에 탁자 위에 있던 술 한 병을 비워 버린 한천과 단엽이다.
신이 나서 날뛰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백아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리 오래 비우면 안 돼서 식사만 하고 바로 돌아가야 되는데 무슨 술이야. 안 돼."
"……크윽."
한천이 못내 아쉽다는 듯 빈 잔을 곁눈질할 때였다. 그를 보며 단엽이 유쾌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클클, 포기한 모양인데 그럼 나 혼자 마셔야겠군. 한천 넌 내가 마시는 걸 구경이나 실컷 하라고."
약 올리는 듯한 말투로 단엽이 히죽거렸다.
그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어이, 여기……."
번쩍 손을 들어 올리며 단엽이 바깥에서도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높이려는 그때였다.
천무진이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단엽."
"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번쩍 손을 치켜든 채로 단엽이 고개를 돌려 천무진을 바라봤다.
천무진이 짧게 말했다.
"술은 방금 전이 끝이야."
"나, 나도 안 된다고?"
당황한 듯 단엽이 되물을 때였다.
옆에서 울상을 짓고 있던 한천이 기다렸다는 듯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암요, 역시 훌륭한 분답게 공명정대하기 그지없으시다니까, 하핫!"
"에잇! 좋다 말았네."
단엽은 손에 쥐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툴툴거렸다. 사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 또한 어차피 혼자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은 얼마 없었다.
애초부터 한천이나 좀 놀려 먹으려고 했던 말.
술잔을 대신하여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댄 단엽의 눈동자가 슬그머니 백아린에게로 향했다.
‘저 여자 명령이면 한천이 끔뻑 죽는단 말이지.’
사실 단엽으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대체 저 여자에게 어떤 능력이 있기에 한천 같은 사내가 이처럼 어떤 말이든 순순하게 따르는지 계속해서 의문이 든다.
자신이야 천무진에게 완벽하게 깨졌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같이 수하 노릇을 하고 있긴 하지만…….
‘뭐 약점이라도 잡혔나.’
궁금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던 그때 단엽의 시선을 느낀 백아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딱히 속내를 드러낼 생각이 없었기에 단엽은 찻잔을 탁 내려놓으며 괜히 툴툴거렸다.
"아니, 그냥…… 우리 둘 다 주인 운이 더럽게 없는 것 같아서. 안 그래 한천?"
자신을 향해 단엽이 화살을 돌리는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한천이 답했다.
"아뇨, 전 아닌데요?"
싹 잡아떼는 한천의 대답에 백아린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을 받았다.
"아니라는데?"
생각지도 못한 한천의 배신에 단엽이 당황한 듯 더듬거렸다.
"어어……."
천무진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쏟아지는 시선에 단엽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망할, 제대로 당했네.’
단엽은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머리를 쥐어짜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