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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72화 (72/293)

72화. 임무 실행 ― 전 아닌데요 (2)

무림맹의 별동대가 마침내 이번 임무의 목적지인 합포(合浦)에 들어섰다. 허나 그들의 모습은 처음 출발할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적으로 별동대는 비밀리에 만나 이야기했던 대로 세 명씩 나눠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림맹 무인의 모습이 아닌 완전히 다른 행색들을 한 채로 셋씩 나눠서 순차적으로 마을에 들어선 것이다.

어떤 이들은 평범한 장사꾼의 모습으로, 또 누군가는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나 여행자인 척하며 신분을 감췄다.

그렇게 육십 명에 달하는 별동대 무인들은 각기 같은 조로 구성된 이들과 합심하여 가짜 신분을 만들어 합포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거기다 사전에 이야기된 대로 객잔도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배정된 상태.

마을에 들어서기 전 약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지강은 작전을 설명했다. 제각각의 부대마다 감시를 할 지역과, 묵어야 할 숙소를 정해 줬다.

그리고 비상시 연락망까지 완벽하게 구성했다.

육십여 명에 달하는 인원들 중 중간책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일부 무인들을 제외한 오십 명 정도 되는 무인들은 낮과 밤으로 나누어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거기다 임무에 투입하기에 앞서 어느 정도 이곳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줘야 했기에 이지강은 절반 정도의 진실을 꺼냈다.

고아들이 실종되고 있고, 그 아이들의 행적이 이 인근으로 향했다는 부분이었다. 그것 정도면 이번 임무의 목적 정도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기에,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일절 밝히지 않았다.

그 숫자가 수천을 넘어 수만이 될지도 모른다는 거나, 사라진 고아들이 끔찍한 실험에 이용되었을 거라는 것 등은 굳이 말해 줄 이유가 없었다.

그저 아이들을 유심히 보고, 개중에 행색이 남루하거나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 조금 더 깊게 관찰하라는 명을 내렸다.

물론 뭔가를 알아내면 결코 혼자 판단하고 움직이지 말고, 곧바로 보고를 하라는 지시도 내려 둔 상태였다.

그렇게 모두가 가짜 신분을 한 채로 합포에 들어서고 있는 그 와중에 천무진 일행 또한 움직이고 있었다.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이지강은 천무진과 백아린, 한천을 하나의 조로 구성해 줬고 덕분에 이제는 움직이는 데 있어 딱히 누군가의 눈치를 살필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 길잡이 노릇을 하던 단엽 또한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든 장사꾼이나 다른 평범해 보이는 일행의 행색을 한 것에 반해 천무진 일행은 그것이 못내 어려웠다.

하나같이 외모들이 출중한 탓이다.

그런 이들이 장사꾼 흉내를 내 봤자, 오히려 이질감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이들이 맡은 역할은 귀한 귀족 집안의 부부와, 그런 둘을 지키는 호위 무사였다.

천무진과 백아린은 혼인한 부부를 연기했고, 한천과 아직까지도 죽립을 눌러쓰고 다니는 단엽은 호위 무사 역할을 맡았다.

자연스레 백아린이 짊어지고 있던 대검을 감싸고 있는 커다란 봇짐 또한 한천의 몫이 되어 버렸다.

맡은 역할이 그렇다 보니 이런 어마어마한 무게의 짐을 귀한 집안의 여인 흉내를 내고 있는 백아린이 직접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선두에서는 천무진과 백아린이 나란히 걸었고, 일정 거리를 둔 채로 단엽과 한천이 둘을 뒤쫓았다.

편안하게 움직이는 단엽과 달리 짐을 짊어지고 걷던 한천이 죽는소리를 해 대기 시작했다.

"아이고, 어깨야."

애초에 들으라고 내뱉은 말을 백아린이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그녀는 못 들은 척 뒤편에서 투덜거리는 한천의 말을 흘렸다.

지금 이들이 향하는 장소는 이 마을에서 머무는 동안 지내기로 되어 있는 사평객잔이라는 곳이었다.

적화신루의 거점은 중원 곳곳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아쉽게도 이곳 합포 쪽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가까운 마을에 있는 거점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고,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사평객잔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목적지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천무진이 이내 사평객잔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저쪽인가 보군. 가지."

천무진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의 일은 속전속결로 처리해야만 했다.

애초에 운남성으로 가는 척 천무진이 찾는 그들의 눈을 속이긴 했지만, 결국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자신들의 행보는 들통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찾으려 하는 단서 또한 자연스레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먼저 알아차리고 손을 쓰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이번 일의 배후를 찾아야 했다.

주어진 건 그리 길지 않을 시간, 마음이 조급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천무진 일행이 들어선 사평객잔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꽤나 잘 꾸며진 값비싼 곳이었다. 자연스레 모여드는 이들의 행색 또한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였다.

짧게는 하루 이틀, 길면 열흘 이상을 보내야 할 곳.

이들의 등장에 먼저 객잔에 자리하고 있던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쏠렸다.

천무진과 백아린이라는 너무도 빼어난 외모를 지닌 한 쌍은 모두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으니까.

마찬가지로 들어선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객잔 주인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서둘러 다가왔다.

다가서는 주인장의 앞으로 나아간 한천이 입을 열었다.

"며칠 머물다 갈 예정이니 방을 좀 부탁드립니다."

평상시의 방정맞은 말투가 아닌, 한껏 진지한 척 멋을 낸 목소리였다. 딴에는 호위 무사라는 역할에 맞는 중후한 목소리라 여기는 듯 보였다.

객잔 주인이 물었다.

"방은 몇 개나 드리면 되올 런지요?"

"그거야 당연히……."

말을 내뱉으려던 한천이 슬쩍 뒤편에 있는 나머지 일행들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곧 입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을 이었다.

"두 개면 됩니다."

한천의 말에 뒤편에 서 있던 천무진과 백아린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허나 두 사람이 채 뭔가 반응도 하기 전에 객잔 주인이 먼저 대꾸했다.

"그럼 그리 준비해 두지요. 식사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럼요. 여기 식당에서 먹고 갈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편안한 자리로 가시지요."

객잔 주인의 안내를 받으며 천무진 일행은 창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할 수 있었다.

막 자리에 앉아 간단한 주문을 끝내자 객잔 주인이 곧바로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백아린이 눈을 부라리며 작게 말했다.

"뭐하는 짓이야? 사람 수가 넷인데 왜 방을 두 개만 잡아."

"하하, 부부신데 당연히 방 두 개면 충분한 거 아닙니까? 왜요? 각방이라도 쓰시려고요? 그거 좀 이상한 거 같은데요."

"아니, 그거야 그렇지만……."

말을 내뱉던 백아린이 슬쩍 천무진의 눈치를 살폈다. 그 또한 잠시 당황하는 눈치였는데 지금은 한결 평온해 보였다.

백아린이 전음을 날렸다.

『불편하지 않으시겠어요?』

『뭐 처음엔 좀 당황하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 부총관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리고 어차피 천룡성의 비밀 거점에서 지낼 때도 내 집무실에서 거의 생활하다시피 했잖아? 크게 다를 건 없는 것 같은데.』

많은 시간을 천무진과 함께 그의 집무실에서 시간을 보내 왔던 백아린이다. 그걸 생각하면 굳이 다를 것도 없지 않느냐는 천무진의 말에 그녀 또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대로 부부를 연기하는 이상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이니.

천무진의 승낙도 떨어졌지만 백아린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그 시선이 느껴졌는지 한천이 변명하듯 전음을 보냈다.

『이왕 하는 거 완벽하게 가야죠. 굳이 의심받을 필요는 없잖습니까.』

『하아, 부총관은 내 걱정도 안 되나 봐.』

『걱정이 안 되긴요. 당연히 되죠. 그렇지만 걱정보다는 믿음이 더 크니까요.』

뻔뻔하게 둘러대는 한천의 말에 백아린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이내 눈을 부라리며 전음을 이었다.

『하여튼 또 이상한 짓 하기만 해 봐.』

막 전음을 주고받는 것이 끝난 그때를 기점으로 하여 하나씩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할 무렵.

차르륵.

입구에 걸려 있는 휘장을 걷어 내며 누군가가 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나이는 얼추 사십 대 중반 정도로 평범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화려한 의상에 커다란 봇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영락없는 장사꾼의 모습이었다.

허나 그건 겉모습일 뿐이었다.

그자의 진짜 정체는 다름 아닌 오늘 이곳 객잔에서 만나기로 한 적화신루 쪽의 인물이었으니까.

안에 들어선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그를 발견한 한천이 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어이, 이보시오! 이쪽이오!"

한천의 부름에 그 중년 사내가 반가운 얼굴로 성큼 다가왔다.

다가온 중년 사내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웃는 사내를 향해 백아린이 입을 열었다.

"부탁한 물건은 가지고 오셨나요?"

"물론입죠. 구하기 좀 어려웠습니다만……."

말과 함께 사내는 짊어지고 있던 봇짐을 슬쩍 풀었다.

그 안에는 화려한 비단들이 가득했다. 백아린이 드러난 비단들을 가볍게 어루만지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맘에 드는군요. 가문 어르신들의 옷을 만들기에 충분히 좋은 물건 같아요."

"물론입죠. 이 인근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별한 재질로 된 비단입니다요."

"값을 치르도록 해요."

말과 함께 백아린이 옆에 있는 한천을 바라봤고, 그가 준비해 두었던 전낭 주머니를 꺼내 사내에게 건넸다.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사내는 이내 싱글벙글 웃으며 꾸벅 인사를 전했다.

"그럼 찾고 계신 다음 물건이 들어오는 대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부탁할게요. 시간이 그리 넉넉지 않아서요."

"그러지요."

말을 마친 중년 사내는 한천에게 건네받은 전낭 주머니를 품 안에 넣고는 곧바로 객잔을 빠져나갔다.

갑작스레 비단을 사는 두 사람의 모습을 천무진과 단엽이 바라보고만 있던 그때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백아린이 입을 열었다.

"식사는 다 끝난 거 같은데 이만 올라가요."

말과 함께 백아린이 한천을 향해 비단이 든 봇짐을 가리켰다. 막 백아린의 대검이 든 봇짐을 어깨에 둘러메던 한천이 황급히 옆에 있는 단엽을 부를 때였다.

"어이, 이것 좀 같이……."

허나 입을 열기 무섭게 단엽이 재빠르게 자리를 박차고 쌩하니 계단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리고 자연스레 천무진과 백아린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얼결에 혼자 남게 된 한천이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양팔로 비단이 들어 있는 꽤나 큰 봇짐을 안은 채로 한천이 뒤뚱뒤뚱 계단을 올랐다. 그러고는 이내 세 사람이 먼저 들어가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한천이 발로 문을 탁 닫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이 정도 급여로 이렇게 부려 먹는 건 착취……."

"착취 같은 소리 말고 빨리 가지고 오기나 해."

백아린이 말을 툭 자르자, 한천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손에 들고 있던 봇짐을 백아린의 옆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곧바로 방 안에 있는 탁자 두 개를 연결하고는 옆에 놓여 있는 봇짐을 풀었다.

그러고는 이내 아무렇지 않게 값비싸 보이는 비단을 풀어 헤쳤다.

슥슥.

말려 있던 비단을 풀어 헤치는 순간 그 안에서 새하얀 종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휙휙.

백아린은 종이만 챙기고 비단들은 곧장 옆으로 내던져 버렸다. 커다란 봇짐 안에 가득 차 있던 값비싼 비단들, 허나 정작 중요한 건 그 안에 감춰져 있던 이 종이들이었다.

죽립을 벗은 채로 상황을 보고만 있던 단엽이 중얼거렸다.

"역시 그쪽 사람이었군."

갑작스럽게 비단을 사는 모습에 의아하면서도 어느 정도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단엽이다.

비밀리에 접선을 해야 했지만 아직 안전한 장소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

그랬기에 오히려 꽁꽁 감춰서 만나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눈에 띄어도 전혀 상관없는 방법을 마련해서 이렇게 정보를 건네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비단을 받으며 값을 치르기 위해 건네준 전낭 주머니.

그 안에는 다른 것에 대한 조사를 부탁하는 서찰이 들어 있었다.

지금 의뢰한 것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다면 오늘처럼 장사꾼 흉내를 내며 다시금 찾아오면 그만이다.

봇짐 안에 들어가 있던 서찰은 무려 삼십여 장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이 서찰 안에서 뭔가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지금 백아린이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 * *

청아원(靑兒院).

합포에 있는 꽤나 큰 고아원으로, 인근에서 제법 평이 좋은 곳이었다. 시설도 나쁘지 않고, 원장 또한 성품이 좋아 불쌍한 아이들을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해가 지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청아원 원장의 거처에 사내 하나가 찾아왔다.

바깥에 선 그가 조심스레 안쪽에 기별을 넣었다.

"원장님."

이미 기척 소리에 잠에서 깨어 있었던 것인지 방 안에 있는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이내 옆에 있던 촛불에 불이 확 붙으며 원장실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초에 불을 붙인 건 사십 대 후반 정도 되는 여인이었다. 웃는 눈매에 선한 인상이 절로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인물.

화려하다기보다는 수수한 느낌을 풍기는 고운 여인이었다.

그녀가 바로 청아원의 원장 두예진(斗藝珍)이었다.

두예진이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밤에 무슨 일이죠?"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말과 함께 사내가 조심스레 문을 열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선 이는 이곳 청아원의 부원장인 추경(秋慶)이라는 자로 사십 대 초반 정도의 나이에 평범한 외모를 지닌 사내였다.

머리는 위로 깔끔하게 묶었고, 무척이나 성실해 보이는 인상을 풍겼다.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외부 아이들 중 일부가 또 바깥에 나간 모양입니다."

추경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놀랍게도 두예진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돌변했다.

"하아?"

인자해 보이던 얼굴이 어느새 싸늘해져 있었다.

짜증 가득한 얼굴의 그녀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두예진은 곧바로 침상 옆에 있는 거울을 보며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단정하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내 차가워진 표정을 풀며 평소의 인자함 가득한 미소를 머금었다.

여전히 그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채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래서 애들은 질색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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