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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74화 (74/293)

74화. 연기 ― 뭐 하는 거야 (2)

"저기야?"

골목길에 몸을 감춘 채로 서 있던 천무진이 옆에 있는 백아린에게 물었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맞아요."

백아린의 옆에는 나머지 두 사람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그 네 명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자그마한 노점이었다.

장사 준비가 한창인지 노점의 주인으로 보이는 육십 대 초반의 노인은 무척이나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적화신루를 통해 들어온 정보.

저 노인이 얼마 전 이 마을에서 본 적이 없는 아이들 무리를 봤다는 제보를 했다는 거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지금 이들은 이곳에 나와 있었다.

백아린의 시선이 한천에게로 향했다.

"부총관, 부탁할게."

"그럼요. 조금만 기다리시죠. 제가 아주 싹 털어 올 테니까."

자신만만한 말과 함께 한천 혼자 노점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지금 굳이 정보를 캐기 위해 네 사람이 같이 움직여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랬기에 대표로 한 사람이 나서기로 했고, 그 적임자는 한천이었다.

이 무리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고, 또 적화신루에 오래 몸담아 왔던 만큼 필요한 정보를 가장 잘 얻어 올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해서다.

한천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과 함께 노점으로 다가가 한창 준비에 바쁜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어르신."

"죄송한데 아직 열려면 좀 시간이 남았습니다. 나중에 오시죠."

"아뇨. 여쭐 게 좀 있어서 왔습니다."

"어허, 지금 준비 중인 걸 뻔히……."

불만스레 말을 토해 내는 노인을 향해 한천이 빠르게 말을 받았다.

"얼마 전에 여기서 아이들을 보셨다는 말씀을 듣고 온 사람입니다."

"아아!"

그제야 노인은 불만스러웠던 표정을 지웠다.

그는 자신에게 그 같은 사실을 캐 간 인물들이 누군지 잘 알지 못했다. 적화신루 또한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정보를 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이토록 한천을 반기는 건 역시나 보상금 때문이었다.

노점 주인인 그가 물었다.

"오늘 낮에 다녀간 그 사람들이 보낸다는 그분이시구려."

"맞습니다. 어르신이 본 그거에 대해 좀 듣고 싶어서 왔는데요."

"허허 그거야 어렵지는 않지만 장사 준비를 좀 해야 하는지라……."

말과 함께 슬쩍 뒤편을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에 한천이 미소와 함께 준비해 두었던 전낭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그 주머니를 채 갔다.

묵직한 무게에 만족했고, 이내 안을 슬쩍 들여다본 노인의 입가에 큰 웃음이 걸렸다. 예상보다 훨씬 큰 금액이 들어 있는 덕분이다.

말 몇 마디 해 주는 걸로 족히 한 달은 놀아도 될 정도의 금액을 받았다.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노인이 말했다.

"뭐든 물어보시지요. 아는 한도 내에서는 다 말씀드릴 테니."

"몇 가지 여쭙고, 확인도 좀 해 보고자 하는데 아이들을 본 게 언제십니까?"

"음…… 그게 정확히 이틀 전 밤이군요."

그날이면 천무진 일행이 이곳 합포에 들어온 날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얼마 안 된 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한천이 재차 물었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아이들을 정말로 이 마을에서 본 적 없는 게 확실합니까?"

"그럼요. 제가 이 자리에서만 장사를 몇 년간 한지 아십니까? 사십 년이 훌쩍 넘지요. 이 근방에 사는 아이들을 모두 안다고 자부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을 따라 외지에서 온 아이거나, 아니면 어르신이 모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잖습니까?"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 한천은 다른 경우의 수를 꺼내어 들었다.

그렇지만 노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한 명이라면 모를까 무려 여덟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같이 있는데 하나같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니까요?"

"여덟이 모두 모르는 얼굴이라…… 분명 이 마을 아이들은 아니겠군요."

노인의 말대로 한 명이라면 고개를 갸웃하겠지만, 그 숫자가 여덟이나 된다면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 마을의 토박이인 노인이 뭉쳐 다니는 그 많은 아이들 중에 단 한 명도 알지 못한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한천이 물었다.

"그런데 숫자까지 정확하게 기억하시는군요. 일반적으로 그렇게까지 자세히는 기억하기 어려운데 말입니다."

"좀 기억이 남는군요. 행색이 너무 남루했거든."

"……그 말 자세히 좀 해 주시죠."

행색이 남루했다는 말에 한천이 재빠르게 물었다.

지금 자신들이 찾고 있는 건 고아들이다. 당연히 제대로 된 보살핌도 받지 못했고, 행색이 엉망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행색이 남루한 아이들 무리라니…… 뭔가를 잡았다는 느낌이 밀려왔다.

그렇게 노인의 말이 이어졌다.

"이틀 전 밤에 우리 가게로 군것질거리를 사 먹겠다고 우르르 몰려왔는데, 사실…… 좀 그렇지 않습니까. 행색을 보면 영락없는 거지꼴인지라 당연히 무전취식을 하려는 줄 알고 쫓아내려 했더니 가지고 있던 돈을 보여 주더라니까? 괜한 의심을 한 것이 좀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지불한 금액보다 조금 더 넣어서 보내 주기도 했으니 당연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지요."

나름 사건이 있었기에 노인은 그 아이들을 더욱 자세히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들은 한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 이후에는요?"

"다 먹고는 그냥 갈 길을 갔지요. 뭐 그 이후에는 딱히 본 적도 없고요."

"……그렇습니까?"

뭔가 지금 이야기만 들어보면 자신들이 찾는 그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아쉽게도 이 대화만으로는 뭔가를 유추해 내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이곳에 또 다시금 고아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 정도만이, 알게 된 전부였다.

한천이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뭐 조금 더 생각나시는 거 없으십니까? 아무거나 좋으니 생각나는 건 전부 말씀해 주시지요."

"음 그것이 딱히 뭐가 더 없는데……."

고민하는 얼굴의 노인을 바라보던 한천이 슬쩍 전낭 주머니 하나를 더 꺼내어 흔들었다. 그걸 보는 순간 노인이 결국 뭔가를 더 기억해 냈는지 손바닥을 마주쳤다.

짝!

"맞아, 분명 그 아이들은 이쪽에서 왔습니다."

노인은 노점 바깥으로 몸을 쭉 빼고는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노인의 말에 한천이 물었다.

"그게 뭐 특별한 의미라도 있습니까?"

"이쪽은 합포를 나가는 길목이거든요. 당연히 반대쪽에서 와야 정상인데 이쪽에서 왔다는 겁니다. 구경거리도 없고, 이 바깥에는 아이들이 지낼 만한 곳이 그리 많지 않을 터인데……."

"호오."

한천의 눈동자가 슬며시 빛났다.

어쩌면 지금 이 정보는 꽤나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한천은 들고 있던 전낭 주머니를 노인에게 건네고는 곧바로 뒤편에 있는 일행들을 향해 돌아왔다.

골목길 안에서 한천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백아린이 다급히 물었다.

"어떻게 됐어?"

"대화는 대충 끝냈고, 제가 봤을 때 저희가 찾는 그 고아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여덟 명이나 됐는데, 이 마을의 토박이인 저 영감이 모두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고 하더군요. 행색도 남루하고요."

"그래서 그 아이들을 찾을 만한 단서는?"

"별건 없었는데 결정적일지도 모르는 이야기 하나를 듣고 왔지요. 그 아이들이 저쪽에서 왔다는군요. 그리고 저쪽 길은 마을 바깥으로 나가는 길목이랍니다. 당연히 아이들이 올 만한 길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아마도 저쪽에 놈들의 거점이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말과 함께 한천이 노인이 말해 주었던 방향을 가리켰다.

이야기를 들은 백아린은 그럴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바로 품 안에 가지고 있던 서찰을 펼쳤다.

그 안에는 아직까지 의심을 하고 있는 일곱 개 단체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그리고 이중에 저쪽 길과 연결된 곳은…… 단 두 개였다.

백아린은 그 두 곳의 이름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양화방(兩華幇), 그리고 청아원……."

양화방은 중도 성향을 지닌 무림문파였다. 그리 크진 않아 이 인근에서나 알려진 자그마한 문파, 그리고 청아원은 평범한 고아원이었다.

두 개의 이름을 입에 올렸던 백아린이 천천히 천무진과 시선을 맞췄다.

그 상태로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좀 의심스러운 생각이 드는 곳이 있는데 그쪽은 어때?"

"뭐, 저도요. 아마 우리의 생각이 일치할 것 같은데요."

그렇게 시선을 맞춘 채로 두 사람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청아원."

"청아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말을 내뱉은 두 사람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생각이 일치했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 * *

청아원은 오늘도 무척이나 분주했다.

고아들의 숫자가 백 오십 명에 달할 정도로 커다란 고아원이니 당연히 그만큼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나라에서 지원을 해 주는 고아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이 모자라 외부에서 인력을 따로 구해 와야 할 정도였다.

바쁜 만큼 소란스러운 청아원의 내부.

시끌시끌한 소리를 듣고 있던 청아원 원장 두예진은 자신의 방 침상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녀는 지끈거리는 자신의 이마를 누르며 화를 삭이고 있었다.

"망할. 애새끼들이라 그런가 시끄러워 죽겠네."

평소 두예진의 모습을 아는 이라면 식겁할 만한 말투와 모습이었다.

주변에 알려진 올곧은 품성과 자애로운 성격과는 무척이나 거리가 먼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멀리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는 소리조차도 듣기 싫은지 그녀가 인상을 팍 구길 때였다. 방의 입구로 익숙한 수하의 모습이 들어왔다.

청아원의 부원장이자 두예진의 오른팔처럼 움직이고 있는 추경이었다.

그가 서둘러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입을 열었다.

"원장님!"

"또 뭐야?"

짜증 가득한 얼굴로 두예진이 물었다.

이틀 전에도 귀찮은 일을 전해 왔던 추경이다. 오늘도 혹시 모를 뭔가가 또 벌어졌나 하며 그녀가 폭발하려고 하는 그때였다.

추경이 말했다.

"후원자가 왔습니다."

"후원자?"

"예, 그것도 상당한 재력가인 듯합니다."

"……그래?"

짜증 가득했던 얼굴이 슬그머니 풀어졌다.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만으로는 고아원을 운영하기 어려웠고, 자연스레 후원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지원받으며 이곳 청아원을 운영한다.

물론 자신들의 뒤에 있는 이들을 통해서 운영에 충분할 정도의 돈은 들어오고 있다.

허나…… 그건 자신의 돈이 아니었다.

말대로 이 청아원을 운영하고, 또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이다. 그 돈에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결코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두예진은 오래전부터 후원금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는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침상에 누워 있던 두예진이 벌떡 일어나더니 이내 엉망이 된 옷매무새를 단정케 손질했다. 그러고는 거울을 보며 마지막으로 얼굴까지 확인한 그녀가 추경을 향해 말했다.

"부원장 안내해 줘요."

아까와는 완전히 달라진 인자하고, 배려심 가득한 목소리였다.

순식간에 돌변한 모습에 기가 막힐 법도 하련만 이런 그녀에게 익숙해져서인지 추경은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청아원의 원장실이자, 손님을 맞는 접객실로 사용하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이윽고 원장실의 입구에 도착하자 잠시 걸음을 멈춘 두예진은 양손으로 자신의 볼을 슬며시 끌어 올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소.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로 그녀가 닫혀 있는 원장실의 문을 열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안에는 미리 이곳에 안내받아 먼저 의자에 앉은 채로 기다리고 있던 일련의 무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가짜 미소와 함께 안으로 들어선 두예진이 순간 움찔했다.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쌍의 남녀 때문이었다.

후원자라고 나타난 상대가 너무도 젊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두 사람의 외모가 더 시선을 잡아 끌었다.

잠시 멈칫했던 두예진은 황급히 정신을 다잡으며 입을 열었다.

"어머, 후원자 분이 오셨다고 들어서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젊으신 분들일 줄은 몰랐어요. 청아원의 원장, 두예진이라고 합니다."

웃고 있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사내.

그가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은 채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저는 무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자신을 무진이라고 밝힌 사내는 다름 아닌 천무진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자리하고 있는 건 역시나 백아린이었다.

애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백아린을 바라보며 천무진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 안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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