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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75화 (75/293)

75화. 청아원 ― 네가 활약할 시간이야 (1)

반 시진 전.

한창 바쁜 시간이니 만큼 청아원의 부총관인 추경 또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렇게 바삐 움직이던 도중 그가 일하고 있는 안채로 일련의 무리가 찾아왔다.

"부원장님, 안에 계십니까?"

"뭔가?"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예, 원장님을 뵙고 싶다고 하셔서요. 그래서 부원장님께 우선 모시고 왔습니다."

원장을 보러 왔다는 말에 추경은 하던 일을 멈추고 성큼 걸어 나왔다. 바깥에는 이곳 청아원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사내 하나가 처음 보는 일행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사내 셋에 여인 하나로 구성된 인원.

그들의 정체는 바로 천무진 일행이었다.

의심스러운 청아원 내부를 살피기 위해 이들은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은밀하게 잠입을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원장이라는 자와도 만나 보고 싶었기에, 가짜 신분을 이용해 방문을 한 것이다.

훤칠하고 아름다운 천무진과 백아린을 보며 추경은 내심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허나 이내 그는 놀라움을 추스르고 땀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입을 열었다.

"어휴, 죄송합니다만 지금이 워낙 바쁜 시간이라 방문 일정을 잡으신 것이 아니라면 추후에 다시 약속을 잡으시고 오시는 게……."

"후원인을 구한다고 들었습니다."

후원이라는 말에 추경은 귀를 쫑긋 세웠다.

지금 자신의 상관인 두예진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에, 괜한 불똥이 튀지 않게 찾아온 손님들을 돌려보내려던 추경이다.

하지만 후원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추경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시군요. 그럼 원장님께 말씀은 드려 보겠습니다. 우선 절 따라오시죠."

말과 함께 추경은 천무진 일행을 데리고 청아원 내부를 걷기 시작했다.

청아원.

많은 고아들이 지낸다는 고아원답게 그 크기나 시설은 꽤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고아원은 흡사 커다란 장원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워낙 많은 고아들이 지내는 장소라 그런지 커다란 담장에 곳곳에 있는 수십 개의 전각까지. 창고도 꽤나 많아 생각보다 많은 물건들을 쌓아 놓을 수 있는 내부 구조를 지녔다.

천무진을 비롯한 나머지 세 사람 모두가 추경의 뒤를 따르는 척하며 연신 주변의 모습들을 눈에 새겼다.

점심시간이 다소 지난 시각.

고아원의 아이들이 신이 나서 뛰어다니거나 함께 모여서 노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백아린이 일부러 말을 걸었다.

"아이들이 참 순해 보이네요."

"그렇지요? 저희 청아원에 있는 아이들 모두가 참 착하고 좋은 녀석들이랍니다. 하하."

웃으며 말하는 추경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백아린의 눈빛이 묘했다.

과연 지금 저 말이 진심일까?

아니면…… 인두겁을 쓴 악마의 입에 발린 거짓말일까.

후자라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런 웃는 말투로 아이들을 칭찬하는 자가 사실은 고아들을 납치하고, 또 실험의 대상으로 삼아 대는 자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니 구역질이 치밀었다.

백아린이 애써 그런 감정을 조절하고 있을 때 앞장서서 걷던 추경이 슬쩍 떠보듯 물었다.

"아, 혹시 후원금은 어느 정도를 생각하시는지……."

"뭐 정확한 금액이라기보다는 매달 이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과 함께 천무진은 준비해 온 주머니를 슬쩍 열어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은을 보는 순간 추경의 눈동자가 당장이라도 쏟아져 나올 것처럼 커졌다.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매, 매달 그 정도 금액을 말입니까?"

"왜요? 적습니까?"

"그, 그럴 리가요! 충분합니다. 하하, 아이들에게 참 좋은 일이군요."

천무진이 내보인 금액은 이 청아원의 한 달 유지비와 맞먹을 정도였다.

그런 금액을 매달 지원해 준다?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원장님께 빨리 알려야겠군!’

이건 절대 놓쳐선 안 될 기회라고 여긴 추경이 마른 입술을 깨물며 걷는 속도를 올렸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비어 있는 원장실로 일행을 안내했다.

방에 들어간 천무진이 가볍게 주변을 스윽 둘러보고는 말했다.

"원장님이 안 계시는군요. 오늘 못 뵙는 겁니까?"

"아닙니다. 지금 용무가 있으셔서 잠시 다른 곳에 계신데 제가 곧바로 모셔 오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편히 쉬고 계시지요. 차를 올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차는 괜찮습니다."

말과 함께 천무진은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고, 그의 옆에 백아린이 나란히 자리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추경이 급히 입을 열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오겠습니다."

혹여나 이들이 떠날까 봐 염려되었는지 말과 함께 추경은 급히 원장실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렇게 그가 사라지고 조금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파아. 무게 잡고 있는 건 역시 힘들군요."

뒤편에서 입을 꾹 닫은 채로 진지한 척 서 있던 한천이 힘들다는 듯 의자에 기대어 섰다. 그는 어느새 평소의 능글맞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었다.

백아린이 말했다.

"오면서 내부의 건물과 구조 확인들 했죠? 이따가 추가적으로 조금 더 살필 때도 어딘가 이상한 장소가 있으면 따로 생각해 뒀다가 나중에 말해 줘요."

지금 제일 급한 건 이들이 과연 자신이 의심하고 있는 그들과 연관되어 있는 게 맞는지에 대한 진위 여부다.

그리고 만약에 그렇다면 납치된 아이들은 이곳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분명 오는 길에 보아 왔던 그 아이들은 갇혀 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곳은 나라에서까지 지원하는 큰 고아원이다.

대놓고 고아로 들어온 아이들을 팔아넘겼다면 여태까지 무사히 운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만약에 정말로 이곳 청아원이 그들과 관련된 곳이라면, 넘겨야 할 아이들은 따로 관리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방금 전 오면서 보아 왔던 그런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말이다.

천무진이 작게 말했다.

"내부 구조가 조금 특이하긴 하던데……."

"맞아요. 고아원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세가나 상단의 구조를 하고 있더군요."

백아린이 품 안에 가지고 있던 종이 뭉치를 꺼냈다.

여덟 장의 그림.

이건 다름 아닌 정보를 전해 주었던 노점의 노인을 통해 전해 들은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물론 잠깐 보았고, 설명만 듣고 그린 그림이다 보니 모자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최대한 특징을 살려 두었으니, 어쩌면 이 중 하나는 알아볼 수도 있었다.

백아린이 그림을 넘기며 말했다.

"시간 남으니까 그림들 다시 한 번 확인하죠. 혹시나 오는 길에 비슷한 얼굴을 본 적은 없는지 생각해 봐요. 그리고 나갈 때까지 계속 긴장을 놓아도 안 돼요."

어린아이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를 보며 단엽이 투덜거렸다.

"젠장, 이걸로 뭘 어떻게 알아봐. 바로 코앞에 있어도 모르겠는데."

단엽이 투덜거릴 정도로 초상화는 간단했다.

하지만 단서가 모자란 지금 이 초상화는 천무진 일행에게 확신을 가져다 줄 최고의 증거품이 될 수 있었다.

다시금 여덟 명의 초상화를 빠르게 돌려 본 이후 백아린은 그 그림들을 다시금 품 안에 넣었다.

그때 한천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여기 원장이라는 사람 인품이 그렇게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말이죠."

이미 이곳 청아원에 오기 전에 어느 정도의 조사는 끝나 있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도 최대한 알아봤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당연히 이곳 청아원의 원장인 두예진에 관한 것도 있었다.

이곳 합포 인근에서 그녀의 인품은 꽤나 훌륭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한천의 말에 단엽이 답했다.

"그게 진짜 얼굴일지, 가면일지가 문제겠지."

"거참…… 어떻게 되든 씁쓸한 결말일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렇군요."

이곳 청아원의 원장인 두예진이라는 인물이 자신들이 찾는 그들과 관련되어 있어도, 반대로 그렇지 않아도 그리 유쾌한 결말은 아닐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찾는 이들이 맞다면 이곳에 있는 고아들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같은 말도 안 되는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의 손에 아이들을 계속 맡겨 둘 생각은 없었지만.

잠시 자그마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은 이내 입을 닫았다.

멀리에서부터 들려오는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내 그 인기척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대로 상대는 바로 이곳 청아원의 원장, 두예진이었다.

문을 열고 나타난 그녀의 표정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천무진은 빠르게 상대의 겉모습을 살폈다.

소문대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허나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할 정도로 어수룩한 자는 지금 이 방 안에 아무도 없었다.

"어머, 후원자 분이 오셨다고 들어서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젊으신 분들일 줄은 몰랐어요. 청아원의 원장, 두예진이라고 합니다."

천무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준비했던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저는 무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시선을 백아린에게 주며 천무진이 말을 이었다.

"제 안사람입니다."

안사람이라며 소개하는 천무진의 말에 백아린은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들이 부부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 이상할 건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 한마디가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감상에 젖어 있을 정도로 지금 상황은 좋지 못했다.

서둘러 정신을 추스른 백아린이 입을 열었다.

"뵙게 돼서 반가워요. 원장님."

"너무 아름다우신 분이군요. 거기다 아이들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까지 가지시고 정말 대단하세요."

"과찬이세요. 이렇게 훌륭하게 고아원을 운영하고 계신 원장님도 계신데요."

"저야 뭐……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는 게 삶의 보람이죠."

방금 전까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짜증을 토해 내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맘에도 없는 소리를 먼저 내뱉은 두예진이 이내 본격적으로 물었다.

"실례가 아니라면 뭐하시는 분인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꽤 큰 후원을 해 주신다고 들어서요."

"전장 하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젊으신 분이 전장을요?"

전장이라면 환전을 해 주거나, 돈 거래를 하며 재산을 맡기는 곳이다. 당연히 튼튼한 곳일수록 어마어마한 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천무진이 담담하니 말을 받았다.

"황룡전장(黃龍錢莊)이라고 원래는 아버님께서 하시던 일인데 이번에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제게 모두 맡기고 물러나셨습니다. 본거지는 하북에 있는데 이번 기회에 광서 쪽에도 거점을 하나 내 볼까 싶어서 돌아다니던 중입니다."

천무진은 그냥 아무 이름이나 되는대로 내뱉었다.

황룡전장이라는 이름은 어딘가에는 있을 법한 명칭이었고, 설령 그걸 알아내기 위해 사람을 보낸다 해도 하북은 이곳과는 너무도 먼 곳에 있다.

곧바로 정보를 캐내려 한다고 해도 족히 보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전에 천무진의 용무는 끝나 있을 테고.

천무진은 돈 이야기를 길게 이어 가기 귀찮다는 듯 아까 전에 부원장인 추경에게 보여 줬던 전낭을 그대로 보여 주며 말을 이어 나갔다.

"후원은 매달 이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룡전장이 있는 하북에서는 예전부터 고아들에 대해 이 정도 지원을 하고 있었고, 이왕 광서성에 거점을 내는 김에 여기서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어떨까 싶어서 말입니다."

"……그럼요. 정말 훌륭하신 결정이세요."

최대한 담담한 척 말을 잇고 있었지만 사실 두예진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이 정도 금액이 다달이 들어온다는데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때 천무진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소문으로는 익히 훌륭한 원장님이라 들었지만 내심 어떤 분이실까 궁금했는데 직접 이리 뵈니 마음이 좀 놓입니다. 하지만 후원을 하기 전에……."

그가 의미심장하게 말을 끌었다.

조급해진 두예진이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물었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별건 아닙니다만, 개인적으로 후원을 완전히 결정짓기 전에 이곳을 좀 둘러보고 싶군요. 최소한 제가 후원을 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뭔가 바라는 것이 있어 보여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치잇, 귀찮게 하는군.’

착한 사람인 척 연기를 하는 것은 신물이 날 정도로 지겨웠지만, 그래도 두예진은 미소를 유지했다. 오랜 연습의 효과이기도 했고, 다달이 들어올 후원금이라는 이름의 돈 또한 그녀를 웃게 만들어 줬다.

귀찮은 속내와는 달리 오히려 겉으로는 크게 동조하며 두예진이 말했다.

"그럼요. 당연히 한번 둘러보셔야죠. 언제든 오셔서 시설도 확인해 보시고, 아이들과도 시간을 보내 주신다면 원장인 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너무 감사할 뿐이지요."

"그럼 말 나온 김에 잠시 둘러봐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제가 안내하죠."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천무진 일행은 두예진의 안내를 받으며 원장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녀가 익숙하게 일행들을 이끌고 청아원 내부를 걷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아이들의 식사를 만들어 주는 주방을 보여 줬고, 그 이후에는 지내는 거처를 확인시켜 줬다.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보니 먼저 짚고 넘어가는 듯했다.

걷는 내내 두예진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곳 청아원의 역사와, 고아로 자라지만 성년이 되기까지 어떤 식으로 지원을 하여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주는지에 대해서도.

아이들의 처우에 각별히 신경 쓴다거나 주기적으로 의원을 불러 건강 확인도 해 준다는 둥의 이야기 또한 길게 이어졌다.

그렇지만 천무진과, 나머지 일행들은 그 말에 고개만 끄덕일 뿐 모든 신경을 다른 곳으로 쏟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아이들의 얼굴을 놓치지 않고 확인했고, 의심스러워 보이는 장소를 찾기 위해 예의 주시했다.

허나 정해진 길을 따라 안내를 받고 있는 상황, 그 안에 어떠한 이상한 것도 있을 리가 없었다.

약 반 시진 정도 둘러보며 내부를 살펴보던 천무진이 떠보듯 물었다.

"창고도 많던데, 거기에는 뭐가 있습니까?"

"그거야 뭐 다양하죠. 식재료도 있고, 식기도 모여 있고요. 아이들의 옷을 만들 천이나, 계절에 맞는 침구류도 창고에서 보관하죠. 아무래도 부피가 크니까요."

"그래요? 구경을 해도 되겠습니까?"

천무진이 슬쩍 패를 던졌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두예진이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그곳은……."

말을 하던 그녀의 시선이 슬그머니 한편에 자리한 부원장 추경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원장님, 아이들과 있으실 시간입니다. 슬슬 가실 채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이런 벌써 그렇게 됐나요? 창고는 아쉽게도 다음 기회에 안내해 드려야겠네요. 저희는 아이들이 많아 창고의 숫자가 꽤나 많거든요. 아마 구경하시려면 하루는 족히 걸리실 거예요."

은근슬쩍 말을 돌리는 걸 눈치챘지만 천무진은 그에 관해서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군요. 어쨌든 잘 봤습니다. 시설이 기대 이상이군요."

"만족하신 것 같아 저도 좋군요. 그러면 후원은 어떻게……."

"당연히 처음 말씀드린 대로 진행해야지요. 계약서를 적어야 할 거 같은데 저희 쪽도 준비해야 할 것이 있어서 이틀 정도 걸릴 예정입니다. 괜찮으시지요?"

"그럼요. 연락 기다리지요."

말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 두예진은 곧바로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추경이 일행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제가 입구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추경은 천무진 일행을 곧바로 청아원의 입구로 데려다주었고, 이내 입구에서 인사를 건넸다.

"그럼 살펴 가시지요.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부원장님도 나중에 뵙죠."

천무진은 짧게 대답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청아원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무진 일행이 청아원과 적당히 떨어진 곳까지 이동한 직후였다.

꾹 참고 있던 단엽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주인, 저기 엄청 수상한데."

그런 그의 말에 한천이 동조하고 나섰다.

"그러게요. 뭔 고아원에 무인이 저리 많습니까? 일하는 사람 서너 명 중 하나 꼴로 무인이던데요."

일하는 사람들로 위장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무인들이 뒤섞여 있었다.

물론 너무나 잘 숨기고 있어 어지간한 이들은 절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지만, 천무진 일행은 그 범주 훨씬 바깥에 있는 이들이었다.

두예진이 청아원의 내부를 안내해 주는 내내 그런 이들과 마주쳤으니, 이상함을 눈치를 채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봤을 때 여기 맞아. 그냥 지금 당장 뒤집어엎어 버리면 되는 거 아냐?"

단엽이 굳이 왜 이렇게 뜸을 들이냐는 듯 물었다.

그러자 천무진이 짧게 답했다.

"인질이 있잖아."

"인질? 누구?"

"고아들. 우리가 움직이면…… 그 아이들이 죽어."

이곳을 뒤집어 버리는 것 정도는 무척이나 간단한 일이다.

이들은 천무진 일행의 무력을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다만 문제는 아이들의 행방이다. 그 아이들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잡혀 있을 그들이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증거를 남기고 싶지 않을 테니까.

이곳 청아원에, 아니면 연관되었을 어딘가에 갇혀 있을 그 아이들의 위치부터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만약 이 안에 있다면 지금 가장 의심스러운 장소는 역시나 창고였다.

허나 창고는 한두 곳이 아니어서 모두 확인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그곳이라 확신하고 움직였다가 아니라면? 곧바로 진짜 아이들이 갇혀 있는 곳으로 여기서 있었던 일이 전해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아이들은 죽는다.

천무진이 말했다.

"들키지 않고 창고 내부만 샅샅이 뒤질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며 내부를 조사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창고를 뒤지기 위해서는 결국 그곳을 지키고 있는 무인과의 마찰이 필수였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천무진은 어떻게든 그 불가능에 가까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천무진이 깊은 고민에 빠지려는 바로 그 찰나.

"방법 있어요."

생각에 잠겼던 천무진도, 답답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단엽도 말을 내뱉은 백아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무진이 믿기 어려웠는지 되물었다.

"방법이 있다고?"

"네, 이 일 제가 마무리 지을게요. 저한테 맡겨요."

"그래 주면 당연히 좋지만 대체 무슨 수로……."

물어 오는 천무진과 마주 서 있던 백아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치치."

백아린이 나지막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소매 속에서 치치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바닥에 착지한 치치가 가만히 백아린을 올려다볼 때였다.

그녀가 갑자기 품 안에 넣어 두었던 어린아이들의 인상착의가 그려진 초상화를 꺼내어 들었다. 그러고는 치치에게 그 초상화에 그려진 얼굴들을 하나씩 볼 수 있게끔 쫙 펼쳤다.

한 장 한 장씩 옆으로 넘기는 백아린의 행동에 단엽이 입을 열었다.

"어이, 지금 뭐하는……."

"쉿."

옆에 있던 한천이 단엽의 말을 저지하고는 조용히 하라는 듯이 검지를 세웠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초상화를 보여 주는 걸 반복하던 백아린이 이내 여덟 장을 모두 확인시킨 후에야 치치와 시선을 맞췄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다 봤지?"

"끽끽."

치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하는 치치를 향해 백아린이 말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네가 활약할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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