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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77화 (77/293)

77화. 춘몽(春夢) ― 다행이네 (1)

늦은 밤.

청아원과 다소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하나둘씩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의 정체는 이곳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나타난 무림맹의 별동대였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몸을 감춘 채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림맹 별동대를 이끄는 수장 이지강.

그가 높은 나무 위에 올라선 채로 아주 멀리에 떨어져 있는 청아원을 응시했다.

‘……믿을 수가 없군.’

고아들에게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인 이들이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말에 이지강은 실로 놀람을 감추기 어려웠다.

만약 이런 사실을 전한 것이 천무진이 아니었다면 쉬이 믿기 어려웠을 게다.

오늘의 작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

저곳에 있는 아이들의 안위와, 주범들을 체포하는 것이었다.

세 개의 조로 구성되어진 별동대.

이들에게는 각각의 명령이 떨어져 있었다.

가장 먼저 일 조의 임무는 적들을 제압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일 조가 무공이 뛰어난 이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적들과 맞서 싸우는 데 가장 제격이었다.

그리고 이 조의 임무는 창고에 갇혀 있는 아이들의 안전을 맡고, 추가적으로 그곳에 올 적들을 막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 조.

그들은 이곳 청아원에 또 다른 아이들. 즉,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는 백오십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을 지키는 일을 맡았다.

허나 그 모든 임무와 별개로 세 명.

천무진과 백아린, 한천은 따로 이지강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번 범인을 알아 온 것이 이들이라는 그럴싸한 핑계가 있었던 덕분이다.

나무 위에서 청아원을 바라보던 이지강의 뒤편으로 천무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슬쩍 뒤를 돌아본 이지강이 이내 입을 열었다.

"그 친구가 안 보이는군요."

단엽을 말하는 거다.

그걸 알기에 천무진이 짧게 답했다.

"가능하면 싸움에 끼기보다는 멀리서 상황을 보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도움을 주는 식으로 움직이라고 명령해 뒀습니다."

"그렇군요."

무림맹의 별동대가 나서는 일, 거기에 사파인 대홍련의 부련주가 껴 있으면 뭔가 그림이 이상해질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내린 명령이다.

그리고 더불어 아이들의 안위를 지키는 것에도 그게 더 낫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했고.

이지강이 물었다.

"……얼마나 많은 아이가 있을까요?"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족히 창고 몇 개에는 갇혀 있다는 걸 보면 그 숫자가 적지는 않을 겁니다."

아이들이 갇혀 있을 창고를 급습할 이들에게 이미 중요한 단서를 전해 둔 상황이다. 창고의 외벽 구석에 치치가 낸 흔적.

그걸 보고 동시다발적으로 창고를 진압해야 한다.

조금의 오차가 큰 피해를 불러올 수 있는 상황, 그랬기에 이지강은 몇 번이고 이 조를 이끄는 조장인 혜정에게 완벽하게 움직여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

청아원을 말없이 바라보는 이지강의 뒤편에 서 있던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준비되셨습니까?"

천무진의 물음에 이지강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각자의 자리에서 수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별동대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지강이 입을 열었다.

"별동대 준비 완료입니다."

* * *

스슥.

별동대 이 조의 무인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장악해야 할 창고의 숫자는 다섯 개. 그리고 무인의 숫자는 조원 서른 명과, 조장인 혜정까지 해서 서른하나였다.

여섯 명씩으로 구성원들을 나눴고, 그들이 제각기 하나씩의 창고를 제압하도록 명령해 놨다.

한 몸처럼 움직이며 창고 인근에 다가선 이들은 빠르게 자신들이 들이닥쳐야 할 곳이 어딘지 확인했다. 치치가 낸 창고 외벽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찾았습니다.』

『여기도 있습니다.』

『이쪽도 하나 있습니다, 조장.』

주변에서 속속들이 창고의 위치를 확인했다는 전음이 날아들었다.

인근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에 몸을 감춘 채로 명령을 준비하고 있던 혜정은 수하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을 하나씩 확인했다.

정확하게 다섯 군데 모두를 찾아낸 상황.

근처를 감시하며 무인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던 혜정이 빠르게 수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그녀가 날아올랐다.

파라라락!

아미파의 지공인 복호지(伏虎指)가 펼쳐졌다.

휘익.

날아든 지공이 정확하게 무인들의 혈도를 두드렸다. 아직까지 직접 눈으로 납치된 고아들을 본 건 아닌 상황, 그랬기에 우선은 죽이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쪽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혜정과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 또한 빠르게 상대를 혼절시켰다.

그녀가 빠르게 창고를 향해 다가갔다.

현재 이 조를 제외한 나머지 조들은 자신들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창고 안에 정말로 납치된 고아들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혜정의 손이 창고의 문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뒤편으로 어느새 이 조 무인들이 다가와 있었다.

혜정의 손이 닫혀 있는 창고의 문을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그 문틈 사이로 조금씩 냄새가 밀려 나왔다.

"윽, 이게 무슨……."

코가 썩을 듯한 냄새에 뒤편에 있는 무인들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윽고 완전히 열려 버린 창고의 문.

그 안에는…… 백여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웅크린 채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자그마한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들과도 같아 보였다.

빠드득.

혜정의 얼굴이 분노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쏴."

"예?"

"신호탄 쏘라고!"

피융!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얇은 실과도 같은 붉은 신호탄. 그것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기다리고 있던 나머지 인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 조는 예정대로 아이들이 자고 있는 거처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였다.

"누구냐!"

갑작스러운 외부인의 침입에 놀란 누군가가 소리쳤지만 별동대 무인들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슉슉슉!

날아드는 검이 곧바로 상대를 제압했다.

이곳 청아원에 있는 무인들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은 되는 이들이었지만 상대가 좋지 못했다.

정도 무림을 대표하는 무림맹의 무인들이다.

고아들이 있는 곳의 경비를 담당하는 자들 정도로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거다. 거기다가 숫자 또한 훨씬 더 많았으니 밀리는 건 당연했다.

삼 조가 청아원에 정식으로 들어와 있는 아이들의 거처를 확보하던 시각, 일 조는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일 조가 청아원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일 때였다.

두예진은 깊고 달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어제 있었던 천무진과의 만남 이후 그녀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다달이 들어올 엄청난 금액의 후원금이 그녀를 기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단잠에 빠져 있던 두예진이 갑자기 꿈틀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지?’

잠결에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느꼈다. 자리에서 일어난 두예진의 귀로 무기끼리 충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고아들이 지내는 청아원이다.

그런 장소에서 쇠끼리 부닥치는 소리가 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녀가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거처를 감싸는 담장 때문에 아직까지는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나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소리에 두예진은 옆에 있는 난간을 가볍게 손으로 밀며 그 반동을 이용해 허공으로 솟구쳤다.

파라락.

긴 옷자락을 회전시키며 하늘 높게 치솟은 그녀가 가볍게 지붕 위에 착지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청아원의 광경.

부드러웠던 그녀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입에서는 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런 미친……."

설마 도적 떼라도 들이닥친 건가 했던 두예진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 있었다. 누가 봐도 알 정도로 상대들은 잘 훈련된 무인들이었다.

고작 도적 떼가 아니라는 거다.

주변을 휙 둘러보며 두예진은 얼추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제일 중요한 아이들을 가둬 둔 창고 쪽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는 지붕 위에서 재차 도약했다.

휘익.

하늘 높게 솟구친 덕분에 멀리 떨어진 창고 쪽까지 시야 안에 넣을 수 있었던 두예진, 그곳에 시선을 준 그녀의 얼굴이 심각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창고의 문이 모두 활짝 열려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탁.

솟구쳤던 몸이 지붕 위에 가볍게 내려섰다.

‘어쩌지?’

들이닥친 이들이 누군지도, 대체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지금.

확실한 것 하나는 자신들이 노출되었다는 거다.

대체 어떻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당장에 가장 중요한 건 현실을 직시하는 거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실험에 필요한 아이들을 관리하는 청아원은 중요한 거점이다. 그리고 그런 거점을 맡고 있는 두예진은 뛰어난 무인이기도 했다.

‘가서 다 죽여 버릴까?’

수하들을 모아 싸운다면 쉽게 지지 않을 정도의 자신은 있었다. 허나 이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건 목숨을 걸고 이곳을 지키는 일이 아니다.

저토록 잘 훈련된 자들이 들이닥친 걸 보면 어차피 이곳은 노출되었다고 봐야 옳다.

상황이 이리된 이상 청아원을 지켜 낸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더 많은 숫자의 무인들이 밀려올 테니까.

이곳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허나 이곳을 지키지 못한 것보다 더욱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뭔가를 두예진은 가지고 있었다.

‘우선은 그것부터 없애야겠어.’

이미 드러난 이상 이곳 청아원은 버린다.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증거를 없애고, 새로운 거점을 만드는 것이 지금으로선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막 생각을 정리하는 찰나, 입구를 통해 십여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뛰어 들어왔다.

선두에 있는 이는 부원장인 추경이었다.

그가 지붕 위에 있는 두예진을 발견하고는 급히 소리쳤다.

"원장님! 기습입니다!"

"나도 알아! 그걸 안 게 언젠데 이제야 보고해?"

두예진이 버럭 짜증을 냈다. 그러고는 이내 지붕을 박차며 수하들이 있는 곳을 향해 순식간에 다가갔다.

가벼운 발 구르기 한 번으로 수십여 장의 거리를 날아오른 셈이다.

그녀의 무공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자신에게 다가온 두예진에게 추경이 상황을 알렸다.

"외곽은 완전히 뚫렸고, 곧 이곳까지 적들이 몰려올 겁니다. 정확한 숫자는 아직 파악이 안 됐지만 사오십 명가량은 족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건 됐고 혹시 놈들 정체는 파악했어?"

"그것이 아무래도…… 무림맹 같습니다."

"무림맹?"

생각보다 훨씬 더 커다란 놈들이 꼬였다고 느끼며 두예진이 인상을 구겼다.

그녀를 향해 추경이 말했다.

"예, 각양각색의 정파의 무공들이 보이는 걸 보면 그들이 맞을 겁니다."

"망할. 무림맹이 어떻게 우리를 알고 움직인 거지?"

"어쩔 생각이십니까? 싸울까요?"

"멍청한 소리. 지금 우리가 저들과 싸워서 뭐가 달라지는데?"

어차피 지금 이곳에서 쓸 만한 무인이라고는 자신과 추경, 그리고 그 외에 서너 명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는 기껏해야 일류 정도 되는 수준의 무인일 뿐.

상대가 무림맹이라는 걸 알자 두예진의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다.

"피해 없이 빠져나가려면 기회는 지금뿐이야. 서두르자고."

"허나 그렇게 되면 청아원이……."

"멍청아! 노출이 된 순간 이미 여기는 끝났어. 아직도 그걸 모르겠어?"

그녀의 말에 추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드러나면 안 될 짓을 벌이던 비밀 거점이다. 그런 곳의 존재가 드러났으니, 그 순간부터 이곳의 의미는 사라진 것과 다를 게 없다.

두예진이 말했다.

"서둘러. 장부부터 빼돌려야 해. 그것까지 저들의 손에 넘어가면 다른 거점도 잃게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대화를 끝낸 두예진은 추경과 그가 데리고 온 무인들을 데리고 뒷문을 통해 움직였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장부는 비밀스러운 장소에 감춰 두었고, 지금 그걸 찾아 이곳에서 사라지려 하는 것이었다.

뒤쪽에 샛길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인지 다행히도 그곳엔 아무도 없었고 덕분에 두예진은 자신의 목적지까지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청아원을 벗어나 약 일각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사당에 도착했다.

그간 힘겹게 쌓아 놓은 청아원이라는 거점을 잃었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밀긴 했지만…….

별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사당 앞에 선 두예진이 추경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사당으로 다가간 그가 이내 안쪽에 감추어져 있던 나무 상자를 꺼내어 들었다.

그 상자를 보는 순간 두예진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아."

"장부는 회수했는데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우선 여기부터 뜨자고. 우리가 없는 걸 눈치채면 곧바로 주변부터 샅샅이 뒤질 테니까."

무림맹의 무인들이라면 금방 포위망이 펼쳐질 것이 자명한 사실. 그 전에 이 인근에서 최대한 멀어져야 했다.

그녀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네. 장부는 지킬 수 있어서."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작스러운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파앙!

갑자기 추경의 손에 들려 있던 나무 상자가 쏜살같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상자를 들고 있던 추경도, 막 걸음을 옮기던 두예진조차도 놀라 그쪽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손을 대지 않고도 내공만으로 물건을 움직일 수 있다는 허공섭물(虛空攝物)이 분명했다. 다만 놀라운 건 기의 흐름을 채 느끼기도 전에 허공섭물로 물건을 앗아 갔다는 거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

"안됐네. 장부도 지킬 수 없게 된 것 같은데 말이야."

"……누구냐."

두예진의 목소리에 살기가 서렸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저 장부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할 물건이었으니까.

누구냐는 질문과 함께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천무진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방금 전 추경이 들고 있던 장부가 든 상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두예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는……."

후원금 운운하며 방금 전까지 그녀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줬던 상대. 그런 자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자신을 보며 놀라는 두예진을 향해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후원 계약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원장이라는 작자가 맘에 안 들어서 말이야."

천무진이 자신을 노려보는 적들과 마주한 채로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계약은 없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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