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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83화 (83/293)

83화. 내부 조사 ― 두 번짼가 (1)

천무진이 바위에 박혀 있는 천인혼을 발견하고 정신이 팔려 있는 그때였다.

"어이, 이봐! 거기 뭐하는 거야?"

대열을 이탈해서 옆에 서 있는 천무진을 향해 험상궂어 보이는 사내가 표정을 찡그린 채 다가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뭔가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천이 빠르게 둘 사이에 끼어들어 천무진의 옷자락을 잡아챘다.

"이 친구야, 그쪽이 아니라니까."

옷자락을 쥐고 흔든 한천의 손놀림 덕분에 천무진이 서둘러 정신을 추슬렀다. 그러고는 이내 다가온 사내를 향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곧바로 사과를 하는 천무진의 모습에 사내는 가볍게 혀를 차며 말을 받았다.

"쯧, 그쪽 길은 네가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조심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천무진은 곧바로 한천과 함께 대열 사이에 다시금 끼어들었다.

모든 일을 철두철미하게 해 나가던 천무진이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뭔가에 홀린 듯 멍하니 시선을 주고 있으니 한천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천이 조심스레 전음을 날렸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아니야. 그냥…… 옛날 생각이 잠시 나서.』

『갑자기 웬 옛날 생각입니까?』

『그런 게 있어.』

전음으로 대충 대화를 끝낸 천무진의 시선이 다시금 옆으로 향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금지된 장소에 자리한 천인혼이 눈에 들어온다. 천인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천무진이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궁금한 게 많았다.

왜 이곳에 천인혼이 있는지, 그리고 마치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 울어 대는 저 검의 울음소리는 무엇이었는지도.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천무진으로서는 그 어떠한 것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뒤를 쫓을 뿐이었다.

짐을 든 두 사람은 그렇게 창고로 향했다.

꽤나 커다란 창고 몇 개가 순식간에 가득 찼다.

그만큼 많은 양의 물건들이 금황상단의 배를 타고 이곳으로 전달되어진 것이다. 몇 개의 짐을 더 나르고 나자 일은 끝났고, 이내 일행들은 모두 넓은 공터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식사를 위해 음식들이 준비되어져 있었다. 꽤나 많은 이들을 위한 연회. 오늘 이곳에 온 금황상단의 사람들을 위해 술과 식사를 준비해 둔 것이다.

물론 이 연회에 금황상단의 뱃사람들만 자리하는 건 아니었다. 상당수의 흑마련 인물들 또한 이 연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흑마련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이었다.

섬이다 보니 그들의 입장에선 술을 마음껏 마실 기회가 흔치 않았다. 그 때문에 이런 연회에 몰리는 건 아무래도 흑마련 내의 하급 무사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말이 연회지 그저 많은 일꾼들이 뒤섞인 술자리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런 자리에 흑마련의 주요 인물들이 나설 이유가 없었다.

"자자, 먼 길들 오느라 고생들 하셨는데 와서 식사들 하면서 한잔하시구려!"

거뭇거뭇한 수염이 가득한 거구의 사내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크게 소리쳤다. 쩌렁쩌렁한 고함 소리에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빈자리에 착석했다.

이백에 가까운 인원들이 뒤섞인 커다란 술자리에서 천무진이 슬그머니 일어섰다.

순식간에 달아오른 분위기, 오래 이곳에 있다가는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다 여겨서다.

천무진이 곧바로 한천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이봐, 부총관. 움직이자고.』

『에에? 벌써요?』

『여기서 계속 있을 생각이야?』

『이런, 눈앞에 술을 두고 가야 한다니…….』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한천을 향해 천무진이 재차 전음을 날렸다.

『아니면 이곳에 있다가 잡혀 가던가. 뭐, 알아서 하라고.』

말을 마친 천무진은 곧바로 몸을 돌려 뒷간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매몰차게 가 버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천이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앞에 있는 잔을 들어 곧바로 입 안에 술을 털어 넣으며 전음을 날렸다.

『가, 같이 갑시다!』

서둘러 천무진의 뒤를 쫓아 다가온 한천이 천무진을 향해 투덜거렸다.

"거 사람이 그렇게 매몰차면 못쓰는 법인데……."

근처에 사람이 없었기에 천무진 또한 직접 말로 대꾸했다.

"부총관은 술에 눈이 팔리면 정신을 못 차리니 이런 식으로 강하게 나가라고 그쪽 대장이 가르쳐 주던데?"

"하아, 하여튼 우리 대장은 날 너무 잘 알아서 문제라니까."

투덜거리며 한천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뒷간이 있는 건물의 벽을 돌았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천무진과 한천의 몸이 귀신처럼 사라졌다.

스스슥.

둘은 순식간에 거리를 벌려 연회장과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이르러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사이에 몸을 감춘 채로 둘은 주변을 둘러봤다.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지 않을 법한 외곽으로 움직였고, 예상대로 주변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천무진이 슬쩍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시각, 아직 밤은 오지 않았지만 곧 주변이 어둑어둑해질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천무진이 전음을 날렸다.

『아무래도 둘이 같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나눠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럼 그렇게 하죠.』

『그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묻고 싶은 게 있다는 말에 한천은 고개를 돌려 천무진을 바라봤다.

천무진이 진지한 눈빛을 한 채로 물었다.

『내가 그쪽 실력을 어느 정도까지 믿으면 되는 거지?』

단엽을 통해 한천이 보통 무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리고 며칠 전 청아원의 일을 해결할 때도 잠깐이지만 그의 실력을 눈으로 확인했다.

분명 단엽의 말대로 일개 정보 단체 부총관의 실력은 아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한천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여기기엔 아는 게 부족했다.

그랬기에 이 모든 걸 시작하기 전 어느 정도라도 한천의 실력에 대해 가늠해 두려 하는 것이다. 그래야 보다 정확하게 상황 판단이 가능해질 테니까.

천무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의미를 알아서일까?

한천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음. 뭘 기준으로 말씀을 드려야 하나…….』

뭔가 딱 잘라 말할 만한 기준이 없었기에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천무진이 더 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음을 날렸다.

『이곳의 수장 흑마신에 대해 알지?』

『어휴, 그럼요. 그 무시무시한 사람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사파 내에서도 지독한 놈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지 않습니까.』

사파의 인물들조차 꺼릴 정도로 잔혹한 성정과 포악한 짓을 일삼았던 것이 바로 흑마신이다. 그가 이곳 사해도로 거점을 잡은 것도 중원에는 적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살 떨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한천에게 천무진이 다시금 전음을 보냈다.

『아니까 됐네. 그럼 물을게. 부총관 당신과 흑마신이 붙었을 때 승산은?』

지금 천무진의 질문을 누군가가 듣는다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 보일 게다.

흑마신이 누구인가?

사파에서 알아주는 고수 중 하나다.

중원 최고 고수를 뜻하는 우내이십일성에는 들지 못하지만 그 바로 뒤를 잇는 인물이라고 봐야 옳다. 천무진은 지금 그런 엄청난 자를 적화신루의 일개 부총관과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어른과 어린아이를 비교하는 것 이상이었다.

절대로 같은 선상에 이름을 놓을 수 없는 둘.

그런데…….

한천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이고, 그자는 너무 강한데…….』

허나 천무진이 듣고 싶은 대답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가 다시금 딱 잘라 물었다.

『그래서 이길 수 있어? 없어?』

말과 함께 천무진의 시선이 한천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러자 이내 한천이 씩 웃으며 나지막이 전음을 날렸다.

『……있습니다.』

기가 막힌 질문에 이어 돌아온, 기가 찰 대답까지.

한천의 믿을 수 없는 대답을 마주하고 있던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부총관이 이쪽을 맡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의심스러워 보이는 곳 위주로 확인해 줘.』

천무진이 손으로 얼추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도가 없는 이상 정확한 분담은 어렵고 어느 정도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구역을 나눈 것이다.

한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어디서 만날까요?』

『우선은 일행들과 헤어졌던 거기서 만나지.』

『알겠습니다. 그럼 저 먼저 움직이죠.』

『조심해. 들키면 골치 아파지니까.』

걱정 말라는 듯 씨익 웃어 보인 한천은 이내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천무진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럼 나도 슬슬 움직여 볼까.’

천무진의 몸이 빠르게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쉭쉭.

보다 안쪽으로 움직이며 천무진은 주변의 모든 기척에 감각을 집중시켰다. 납치된 아이들이 잡혀 있을 장소를 찾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존재가 드러나서는 안 된다.

순식간에 흑마련의 본거지 안쪽 깊숙이까지 잠입한 천무진은 이내 벽에 몸을 기댔다.

옆에서 일련의 무리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숨죽인 채로 벽에 기대 있던 천무진의 시선이 주변을 살폈다.

‘이쪽이었던가?’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완벽하지는 않지만 단 하나 확실히 기억하는 길이 있다.

바로 흑마련의 수장인 흑마신의 거처로 향하는 길목이다.

과거의 삶에서 천무진은 백아린과 단엽을 대기시켜 둔 그곳에서부터 곧바로 흑마신을 죽이러 들어왔다. 빠른 길을 타고 그가 있는 거점을 먼저 기습했고, 이내 몰려들던 다른 흑마련 무인들과 계속해서 싸움을 벌였다.

당시 흑마신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상당히 곤란했던 기억이 얼핏 났다. 허나 결국 그가 이 사해도를 빠져나가기 전에 잡아서 목을 날려 버렸지만 말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길목을 바라보던 천무진이 이내 주변을 지나가는 이들이 사라지자 담장을 껑충 뛰어넘었다.

탁.

가볍게 착지한 천무진의 시선이 주변을 확인했다.

눈길이 닿는 먼 끝자락에 찾고 있던 흑마신의 거처가 보였다. 석탑 모양의 전각은 무려 오 층으로 되어 있었다.

‘그대로네.’

외부는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화려하면서 그 크기 또한 컸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훨씬 시간이 흐른 후인데, 우습게도 건물의 외관은 그때보다 더욱 새것처럼 보였다.

허나 그건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천무진이 찾아오게 되었던 건 지금부터 십 년 정도 흐른 후였으니까.

목표물을 확인하자 천무진은 곧바로 움직였다.

달리는 와중에 그는 슬쩍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흑마신의 오 층 전각이 있는 곳과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단상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천인혼이 박혀 있는 돌이 자리한 단상이다.

사실 천무진은 이곳에 오기 전에 저곳을 먼저 들를까 하는 고민도 했다.

그토록 그리웠던 천인혼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천무진은 애써 그런 생각을 접었다.

지금은 천인혼을 회수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서다.

아까 전 처음 천인혼이 있는 단상 위를 확인했을 때만 해도 그 주변에는 그것을 지키는 것으로 보이는 무인 몇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을 제거하면서까지 천인혼을 회수한다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있는 지금으로선 아쉬워도 참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천무진은 순식간에 흑마신의 거점과 거리를 좁혔다.

어느 정도 거리에 이르자 그는 움직임을 멈춘 채로 근처의 상황을 살폈다.

‘역시 예상대로 경비가 삼엄하군.’

수장인 흑마신의 거처여서일까?

아니면…… 이 안에 감출 뭔가가 있어서일까.

근처의 경비는 무척이나 철통같았다.

수십여 명의 무인들이 줄지어 주변을 돌았고, 각 층의 바깥에도 몇 명이 되는 무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섬이다 보니 오랜 시간 그 누구의 침입도 없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삼엄한 경비라니…….

허나 많은 숫자의 무인들을 보자 오히려 천무진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맞힌 건가?’

천무진이 주변에 의심스러워 보이는 몇몇 장소들을 무시한 채 곧바로 이곳 흑마신의 거처로 온 건 역시나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전생의 기억과 관련이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 들이닥쳤던 그때 흑마신은 이곳 건물을 비밀리에 빠져나갔다.

천무진은 그 점이 의심스러웠다.

자신이 분명 똑똑히 살피고 있었는데, 아무리 싸움을 하는 혼란스러운 와중이라도 자신의 눈을 피해 도망칠 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마신은 이곳을 빠져나가 배를 타는 인근까지 도주하는 데 성공했다. 만약 당시 천무진이 조금만 늦었다면 결국 그는 배를 타고 사해도에서 도망치는 걸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역시 결론은 하나였다.

저 건물 내부에 사해도 어딘가와 이어져 있는 비밀 통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비밀 통로는 천무진이 찾고 있는 그 고아들이 있는 장소와 연관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다만 문제는…….

‘내부로 들어가 그곳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군.’

비밀리에 잠입하는 것까지야 큰 문제는 아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어떻게든 방도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테니까. 다만 문제는 들어간다고 해도 어디에 비밀 통로가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

허나 딱히 다른 단서가 없는 지금으로선 그저 직접 부닥쳐 보는 수밖에 방도가 없었다.

천무진의 시선이 전각 꼭대기로 향했다.

아무래도 아래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저 지붕 위로 잠입하는 것이 감시를 피하는 데 훨씬 용이할 것이다.

답이 나오자 천무진은 다시금 기척을 감춘 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보초를 서는 무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자는 주변의 지형지물에 몸을 은신한 채로 스쳐 지나가는 천무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빠르게 보다 안쪽으로 움직인 천무진은 곧바로 옆에 있는 돌을 박차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슈슈슉!

날아오르는 와중에도 주변의 기척을 확인하며 천무진은 조심스레 움직였다.

일직선으로 지붕 위로 타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이동하기도 하면서 아래와 각 층을 감시하는 이들의 시선까지 완벽히 피할 수 있는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다행히도 해가 저문 덕분에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지붕 꼭대기에 오른 천무진이 이내 안쪽으로 잠입하기 위해 창문들을 확인하던 그때였다.

쿠웅.

커다란 소리와 함께 일 층의 정문이 벌컥 열렸다.

지붕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던 천무진이 서둘러 몸을 낮췄다. 몸은 지붕의 바닥과 밀착한 상황에서 그는 아래쪽의 동태를 살폈다.

열린 문을 통해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모습을 살피던 천무진의 눈동자가 한 명에 이르러 멈춰 고정되었다.

사십 대 중반의 나이.

날카로운 분위기에 머리는 뒤로 확 틀어 묶은 무척이나 거친 인상의 소유자였다. 올라간 입꼬리와 예리한 눈초리는 그자의 성격이 무척이나 잔혹하다는 걸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자의 정체는 바로 흑마신이었다.

‘……양휴에 이어서 이걸로 두 번짼가.’

자신이 죽였던 이와 마주하는 경험.

전생에서 죽였던 상대를 보고 있으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든다. 그것도 한참은 젊어진 상대를.

흑마신은 주변에 있는 수하를 불러 뭔가를 지시하는 듯싶더니 이내 안에서 함께 나온 이들과 바깥으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천무진의 눈동자가 빛났다.

건물 내부를 조사하는 데 있어 가장 거치적거리는 존재는 당연히 흑마신이었다.

그는 흑마련의 최고 고수였으니까.

그런 흑마신이 직접 자신의 발로 자리를 비워 주고 있다.

이건 다시없을 기회였다.

천무진이 갑자기 아래로 휙 하고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 상황, 그의 손이 지붕의 끝자락을 움켜잡았다. 동시에 몸의 반동을 이용한 천무진이 열려 있던 창문 안쪽으로 휙 하고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탁.

순식간에 전각 내부로 들어선 천무진이 천천히 상체를 들어 올렸다.

깜깜한 내부.

어두운 공간을 확인하며 천무진이 가볍게 몸을 풀었다.

가능하면 흑마신이 돌아오기 전까지 비밀 통로나, 그와 관련된 어떠한 단서라도 찾아내야만 한다.

그가 걸음을 내디뎠다.

‘좋아,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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