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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95화 (95/293)

95화. 준비된 함정 ― 쉴 틈이 없네 (1)

무림맹주 추자후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이를 드러낸 양승필을 지그시 응시했다.

무림맹주의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이 있냐 따져 묻는 그 무례한 말투에 일부 무인들이 당황하고 있는 그때였다. 자리에 앉아 있던 유평이라는 사내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

"이 무슨 예의 없는 소린가!"

"사형은 빠지십쇼."

양승필은 자신을 향해 붉어진 얼굴로 소리를 내지르는 유평을 향해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같은 종남파 소속의 무인, 그리고 같은 사부 아래에서 무공을 배운 관계이긴 하지만 둘은 엄연히 가는 길이 달랐다.

양승필은 반맹주파로, 유평은 맹주의 측근으로 각자의 길을 걸은 지 오래였다.

어릴 적엔 친형제처럼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물어뜯을 수 있을지 혈안이 된 상태다.

"이놈이 감히!"

유평이 당장 검이라도 뽑아 들 것처럼 살기를 쏟아 낼 때였다.

추자후가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확인받고자 하는 게 있는 모양이로군."

"물론입니다."

"좋네, 뭐 의견을 내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니까. 다만……."

콰드드득.

회의장의 절반 가까이 길게 이어져 있던 커다란 탁자가 반으로 갈라지며 부서져 버렸다.

너무도 깨끗하게 부서진 탁자가 곧바로 무너져 내렸고, 동시에 회의장에는 숨 막힐 것만 같은 무거운 공기가 밀려들었다.

웃고 있는 추자후, 그렇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탁자를 반으로 갈라 버린 그가 손으로 부서진 탁자의 일부를 턱 하고 짚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내뱉을 그 말에 책임은 그대가 져야 할 게야."

"……."

경고 어린 추자후의 말에 양승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확신한 뭔가를 잡았기에 당당하게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압도당해 버렸을 정도로 추자후라는 사내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거대했다.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렸던 양승필이 이내 이를 꽉 깨물었다.

이미 시작해 버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추자후의 말대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자신이다.

양승필이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무림맹을 떠난 별동대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그가 내뱉은 말에 이번엔 추자후가 움찔했다.

‘이건 생각 외인데…….’

저들이 물고 늘어질 수많은 사건들을 떠올렸다. 허나 아쉽게도 그 안에 별동대에 관한 건 없었다. 그것이 크게 트집 잡힐 이유는 없었으니까.

일순 당황했지만 그는 그런 속내를 감춘 채로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해 보게."

기껏 해 봐야 왜 알려져 있는 곳과 다른 목적지로 이동했느냐 정도인데 겨우 그거 가지고 자신을 맹주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문제는 그 사실을 저들 또한 모르지는 않을 터.

대체 무엇일까?

물어 오는 추자후와 시선을 마주한 채로 양승필이 준비해 온 말을 꺼냈다.

"얼마 전 이지강을 필두로 떠난 별동대가 애초 알려진 목적지인 운남성이 아닌 광서성으로 향했다더군요. 알고 계셨을 걸로 판단됩니다만 아닙니까?"

"알고 있었네. 내가 시킨 일이었으니까."

자신에게 직접 말을 꺼낼 정도라면 이미 이들 또한 확실히 알게 된 상황, 굳이 숨겨야 할 이유는 없었다.

추자후가 순순히 대답하자 맹주파의 무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광서성에 별동대를 보낸 이유를 그들 또한 알지 못했으니까.

허나 그것만으로 큰 문제까지 되는 건 아니었기에 모두가 침묵한 채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걸 바라보고만 있었다.

양승필이 닦달하듯 말했다.

"그럼 묻지요.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비밀 임무였기 때문이네."

"비밀 임무라……."

양승필이 갑자기 비웃듯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애초부터 이런 대답이 돌아올 거라는 걸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그가 재차 물었다.

"그 비밀 임무가 뭔지 물어도 됩니까?"

"굳이 원한다면 들려주지. 광서성 쪽에 오랜 시간 고아들을 납치해 오던 이들이 있다는 정보를 받았네. 그래서 그들을 뿌리 뽑기 위해 별동대를 파견한 거고. 뭐 문제 있는가?"

추자후의 말에 맹주파 무인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말한 일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얼마나 의로운 일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대답이 떨어지자 양승필이 곧바로 답했다.

"그렇군요. 정말 좋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게 전부입니까?"

되물어 오는 상대의 모습에 추자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 전부냐니?"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지 않으셨습니까, 맹주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로 하게. 괜히 알아듣지 못할 말을 빙빙 돌려 하지 말고."

추자후가 쓸데없는 간 보기를 멈추고 본론으로 들어가라 재촉했다.

양승필 또한 서둘러 이 일을 터트리고 싶은 마음에 입이 근질근질했는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고아들을 구해 낸다는 임무는 눈속임용일 뿐, 진짜 목적은 영천교(永天敎)였겠지요."

"영천교라고?"

양승필의 말에 누군가가 놀란 듯 되물었다.

영천교는 최근 날뛰고 있는 새외 세력 중 하나로 무림맹조차 무척이나 예의 주시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영천교라니?

그들과 무림맹주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을 향해 양승필이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운남성 하구(河口) 지역을 그들에게 그냥 넘겨주신 일이 많이 의아했는데 이번 일이 그 의문을 깨끗이 해결해 주더군요. 맹주님이 그들 영천교와 모종의 밀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요,"

"……밀약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듣고만 있던 노고수 하나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빠르게 대답했다.

"별동대가 돌아오던 길에 광서성에 있는 영천교의 분타와 접촉을 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하구를 넘겨준 일까지. 그게 뜻하는 바가 뭐겠습니까?"

"지금 양 대협은 맹주님께서 그들과 개인적인 거래라도 하셨다고 말하고 싶은 게요?"

"무조건 그렇다 말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분명 그냥 넘기기엔 석연치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저 또한 맹주님을 믿고 싶으니 확실한 조사를 통해 무죄를 증명하셔야겠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맹주님."

양승필이 자연스럽게 말을 추자후에게로 돌렸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결코 간단히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림맹주 직을 내려놓는 건 당연하고, 여태까지 쌓아 온 모든 명성을 잃을 것은 자명했다.

영천교는 사파다.

그것도 그리 질이 좋지 못한 이들로, 무림맹으로서는 반드시 척결해야 하는 존재로 분류하는 이들이다. 그런 자들과 뒷거래를 했다는 사실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영천교와 엮으며 따지고 들어오는 양승필의 모습에 순간 말문이 막히긴 했지만, 이내 추자후가 모두를 향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그래. 허나 이 모든 소문이 가짜라는 걸 증명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지."

잠시 말을 멈춘 그가 좌중을 스윽 훑어봤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음을 확인한 추자후가 말을 이었다.

"별동대네. 그들이 돌아온다면 내 결백을 증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까."

영천교 분타와 접촉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만 증명한다면 이건 그저 뜬소문에 불과하다. 오히려 반맹주파의 기세를 일시적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추자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승필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였습니까?"

"뭐가 말인가?"

"돌아오던 별동대 전부를 죽인 이유 말입니다."

"그게 무슨……."

추자후가 눈동자를 크게 치켜떴다.

별동대가 죽다니?

그것이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직까지 그 정보가 들어오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추자후로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놀란 그를 향해 양승필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듯 몰아쳤다.

"모두가 죽는다면 이대로 흐지부지 넘어갈 수도 있다 생각하신 모양인데 아쉽게도 그러실 순 없을 것 같군요. 저희 쪽에서…… 생존자를 확보했으니까요."

웅성웅성.

생존자가 있다는 말에 회의장에 모인 이들이 놀란 듯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양승필이 이렇게 자신 있게 나서는 이유가 그 생존자에게서 뭔가 전해 들은 것이 있어서일 거라는 판단을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추자후가 침묵하는 사이 양승필이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열흘 안에 증인이 도착할 것이고, 그때에 맞춰 본회의 개최를 청하는 바입니다."

오늘보다 더욱 많은 인원들이 모이는 본회의.

그때 반맹주파는 증인을 내세워 추자후를 맹주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들 것이다.

그리고 이미 각본은 완벽하게 짜져 있는 상황.

추자후로서는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허나 양승필의 말은 끝이 아니었다.

보다 확실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조금의 숨통조차 남겨 둬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았으니까.

그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맹주님의 모든 권한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자택에 구금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말을 끝낸 양승필의 얼굴엔 자신만만한 표정이 걸렸다.

업무에서 손을 떼게 하는 것과 동시에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도록 거처에 가둬 두려 하는 것이다.

눈과 귀를 잃고, 팔다리마저 잘려 나간다면 제아무리 추자후라 할지라도…… 빠져나갈 수 없다.

묘하게 변한 추자후의 표정.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혼란스러워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번 별동대의 일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군사 위지겸만이 구석에서 조용히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함정이다. 영천교까지 엮어 넣어 맹주님을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려는 게 분명해.’

알고는 있지만…….

추자후의 시선이 위지겸에게로 향했다.

많은 의미가 담긴 시선을 받은 위지겸이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삐 움직여야 할 때가 온 모양이다.

* * *

백아린에게 말했던 삼 일이라는 시간.

그 두 번째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별동대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인근을 다시금 수색했지만 별다른 건 찾아내지 못했다. 그녀에게 말했던 삼 일 중 절반 이상이 흐를 때까지 아무런 것도 찾지 못하니 마음은 점점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으로 인근을 수사하는 건 천무진과 단엽이 맡았고, 그 외에 두 사람은 적화신루를 통해 다른 단서를 찾기 위해 분주히 애썼다.

오늘도 어제처럼 빈손으로 거처에 돌아온 상황에서 단엽이 투덜거렸다.

"주인, 거기는 더 뒤져 봤자 답이 없을 거 같은데."

"……."

단엽의 말에 천무진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말대로 지금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적화신루가 샅샅이 뒤졌고, 그 이후에 자신과 단엽이 찾아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뭐가 보이지 않는다면 거기엔 단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일하게 알고 있는 건 싸우면서 점점 동쪽으로 움직였다는 것 정도다.

완벽하게 지우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조금의 흔적으로 적화신루가 파악해서 보내 줬던 정보다.

허나 그것만으로 뭔가를 더 알아내기엔 정보가 너무도 없었다.

‘돌아가야 하나.’

무림맹으로 돌아가 이번 일을 수습하는 것이 더 올바른 일인가 고민이 들었다. 허나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 때문에 천무진은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루 종일 땅을 파 헤집고 다니며 신경을 쓰던 일에 지쳤는지 단엽이 침상 위에 축 늘어져 있을 때였다.

헐레벌떡 다급한 걸음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벌컥.

열리는 문 쪽으로 천무진과 단엽의 시선이 향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대검을 짊어지고 있는 백아린과 한천이 있었다.

천무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백아린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따라와요. 보여 줄 게 있어요."

뭔가를 찾은 듯한 표정.

자리에 누워 있던 단엽이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작게 투덜거렸다.

"끄응, 쉴 틈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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