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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00화 (100/293)

100화. 야망 ― 욕심이라뇨 (1)

덜컹 덜컹.

달리는 마차에 앉아 있는 당자윤의 표정은 애매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 한 여인 때문이었다.

나이는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였고, 새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이 무척이나 도드라졌다.

반 정도 묶은 머리는 위로 올려 비녀로 고정시켰고, 나머지는 자연스레 뒤로 늘어트린 그 여인은 왠지 모를 요염함이 풍겼다.

사내의 마음을 단번에 흔들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

옷차림은 화려했고, 몸에 걸고 있는 장신구들 또한 하나같이 값비싸 보였다.

그렇지만 지금 당자윤이 그녀를 신경 쓰고 있는 이유는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이 여인이…… 자신의 목숨 줄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동대를 버리고 도망쳐 나온 그날 당자윤은 곧바로 잡혀 버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별동대에 대한 모든 정보를 넘겼다. 기회를 주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제안을 전부 믿지는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가능성이 있기에 모든 걸 술술 불었다.

그리고 돌아온 결과.

놀랍게도 그들은 정말 약속대로 당자윤을 살려서 보내 주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성대한 환대와 더불어 말이다.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되는 상황이기에 하루의 대부분을 마차에서 보내야 하긴 했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여섯 명 정도가 항상 마차를 따라다니며 호위 중이었는데, 그 모두를 이끄는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여인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주란(珠蘭)이라 밝힌 여인.

그녀는 자신에게 슬쩍슬쩍 향하는 당자윤의 시선을 느꼈는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움찔한 당자윤이 자연스레 어색한 미소를 머금었다.

정파의 후기지수 중 하나로 자존심이 무척 강한 그이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당자윤을 마주 보고 있던 주란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요?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어요?"

"아닙니다."

"아니긴요. 다 알아요. 궁금한 게 많으실 테죠. 당연한 거예요. 이해하니 굳이 감추실 필요는 없어요."

마치 사람의 속을 모두 다 안다는 듯한 저 검은 눈동자.

당자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며칠을 함께하며 어느 정도 알게 된 사실들 중 하나.

주란이라는 이름의 이 여인은…… 위험하다.

특별한 뭔가를 본 건 아니지만 당자윤의 감각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거기다 수하들이 주란을 대하는 태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그녀에 대한 감정은 상관에 대한 공경도, 어려움도 아니었다.

두려움.

오직 그거 하나뿐이었다.

지금 동행하고 있는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거늘, 그런 이들조차도 두려워한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이 여인이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상대는 아니라는 걸 뜻했다.

그걸 알기에 당자윤 또한 최대한 주란에게 조심스레 행동했고, 그녀는 언제나 저 뜻 모를 웃음 가득한 얼굴로 그를 대했다.

지금 주란의 말대로 궁금한 건 너무도 많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질문을 던졌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애써 말을 아껴 왔다.

그러던 차에 이어진 대화.

당자윤은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상대가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요. 지금 이렇게 잘 모셔서 집으로 보내 드리고 있잖아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란이 대답했다.

그녀의 확실한 대답에 당자윤이 다소 커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정말 이대로 그냥 보내 주시는 겁니까?"

"그럼요."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

가장 궁금했던 사안을 확인하자 당자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그 또한 알고 있었다.

자신을 살려 준다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랬기에 당자윤이 직접적으로 물었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자신을 살려 주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게 뭔지 알아야 했다.

당자윤의 질문에 주란의 눈동자가 가볍게 꿈틀했다.

그녀가 답했다.

"……명문정파의 자제분이라 그러신가. 참 영특하시군요."

감춰야 할 이유는 애초에 없었다.

당자윤의 예상대로 그를 굳이 살려 주는 건 확실한 이유가 있어서였으니까.

주란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별거 아니에요. 그저…… 우리를 위해 종종 힘을 좀 써 주시면 돼요."

"그 힘을 쓸 일이란 게 뭡니까?"

걱정스러워 보이는 당자윤의 모습에 주란이 가벼운 미소와 함께 답했다.

"아, 걱정할 거 없어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미 무림맹 내에서 저희와 뜻을 함께하고 움직이시는 많은 분들이 있거든요. 그냥 그들과 함께한다 정도로만 생각하시면 조금 마음이 편하실 거예요."

"무림맹에 말입니까?"

"네, 그러니 전혀 걱정하실 것 없어요. 소협이 앞으로 저희를 위해 나서 주실 일은 결코 지금 지니신 신분을 흔들리게 만들지 않을 테니까요. 그냥 정파의 후기지수로 끝내실 거 아니잖아요? 쭉쭉 나아가셔야죠. 사천당문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리고 훗날엔 가주까지도 노려볼 만한 그릇이라 생각해요."

그저 가볍게 대답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 주란의 말 하나하나는 완벽하게 짜여 있었다. 당자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또 어떠한 성격인지도 이미 완벽하게 파악한 덕분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주란의 말은 당자윤의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었다.

혹시나 이들이 마교나, 사파와 연관된 것이 아닐까 염려했다. 그렇다면 추후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너무도 컸으니까.

허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다행히 그런 존재는 아닌 듯싶었다.

이미 무림맹의 많은 이들과 연결된 자들.

그렇다면 단순히 생각해서 그저 하나의 파벌에 속한 것뿐이지 않은가.

거기다 가주라는 말이 더더욱 당자윤의 구미를 당기게 만들었다.

욕심이 많은 그이니 가주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던 건 당연하다. 허나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림의 후기지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그건 동년배에 한해서다. 운이 없다면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가주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

지금 사천당문의 상황만 봐도 그렇다.

외부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천당문 내부에서 내전이 있었고, 놀랍게도 그 싸움의 승자는 당소련이었다.

당문추와 당소련의 오래된 힘 싸움.

사실 당자윤은 그 싸움의 승자가 당문추가 될 거라 여겼다. 또 그러길 바랐다.

그런데 당문추는 해선 안 될 일을 벌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당소련 측의 공격으로 완전히 힘을 잃고 재기불능의 상태가 되어 버렸다.

사실 이 일이 최근 당자윤의 기분이 나빴던 이유 중 하나였다.

당소련의 승리.

그것은 바로 다음 대 가주가 당운이 될 거라는 의미였으니까.

현 가주의 아들이자 당소련의 남동생.

다만 문제는 그 당운의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거다.

당자윤보다야 당운이 열 살 이상 많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비슷한 세대의 인물, 그가 가주가 되면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당자윤이 가주가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요원한 상태다.

눈을 빛낸 당자윤이 물었다.

"제가 가주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당장엔 나이 때문에 어려우시겠지만 저희만 잘 도와주신다면야 십 년 후에 그 자리는 당 소협의 것이 되어 있을 거예요. 운이 좋다면…… 맹주 자리도 불가능은 아니겠죠."

"……!"

맹주라는 말에 당자윤의 눈동자에 깃들어 있던 탐욕이 더욱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무림맹주라니.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정파의 무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신분이었으니까.

당자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그 정도의 욕심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욕심이라뇨."

짧게 말을 끊었던 주란이 이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힘이 없는 자가 가지는 것이 욕심이고, 힘이 있는 사람이 가지는 건…… 야망이죠."

그녀가 던진 그 한마디에 당자윤은 마치 벼락에 맞은 것처럼 가볍게 몸을 떨었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밀려오는 작은 경련.

위기라 여겼다.

허나…… 아니었다.

이건 위기가 아닌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당자윤의 눈동자가 변해 가는 걸 주란은 그저 말없이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주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주란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붉은 입술을 스윽 훑었다.

완전히 변해 버린 당자윤의 얼굴.

그랬기에 알 수 있었다.

‘……넘어왔네.’

손으로 슬그머니 가린 그녀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 * *

"맹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저녁 식사를 끝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무림맹주 추자후의 거처에 군사 위지겸이 찾아왔다.

"들어오게나."

방에 앉아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던 추자후의 승낙이 떨어졌다.

곧 문이 열리고 문 바깥에 있던 무인들을 지나 위지겸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추자후를 향해 포권을 취해 보였다.

펼치고 있던 서책을 접으며 그가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자리에 앉으며 위지겸이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경호가 삼엄해서 한번 찾아뵙는 것이 쉽지가 않네요. 이거야 원 살수들이 무더기로 와도 맹주님의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할 수준이더군요."

그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이곳 맹주의 거처에 들어오며 무려 다섯 차례가 넘게 검문을 받았다.

말이 경호지 반쯤 감시나 다름없었다.

예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

개인의 사욕으로 별동대를 움직였고, 또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살인멸구를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임시이긴 하지만 모든 맹주의 권한을 박탈당하고 이곳에 갇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추자후였다.

증거를 없애려 들 수도 있다는 이유로 외부인과의 만남도 극히 제한적으로 변해 버린 지금, 아무리 군사인 위지겸이라 해도 그를 만나러 들어오는 건 간단치가 않았다.

복잡한 절차를 통해 간신히 맹주와의 면담을 허락받은 위지겸의 가시 박힌 말에 추자후가 웃으며 답했다.

"허허, 부러우면 자네도 해 달라고 하게나."

"그 무슨 끔찍한 소리십니까."

절대 싫다는 듯 위지겸이 손사래 쳤다.

지금 이곳은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위지겸이 물었다.

"혹시 뭐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특별한 건 없네. 하도 할 일이 없어서 서책이란 서책은 모두 읽은 것이 흠이네만……."

"그럼 보실 만한 서책을 몇 권 더 넣어 드리도록 하지요."

"그래 주겠는가? 그럼 나야 고맙지."

다음 회의를 통해 의심을 벗기 전까지 많은 부분을 제한받게 된 상황에서 추자후는 아무런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손발이 되어 주는 것이 바로 위지겸이었다.

바깥에 있는 무인들에게도 들릴 법한 두 사람의 대화. 허나 그 둘은 전혀 거리낌 없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시간을 보낼 서책을 들여보내 주겠다는 것이 문제 될 부분은 전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현재 움직이는 수상쩍은 움직임들에 대해 모두 파악해 냈고, 들여보내는 서책에 암어로 남겨 두겠습니다. 그 외에 다른 정보들도 실어 두지요.』

치밀한 검사를 받고서야 들어올 수 있는 맹주의 거처다. 당연히 그 많은 정보가 적힌 서찰을 전달할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이런 상황에는 미리 준비되어진 것처럼 서책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았다.

서책에 대한 이야기를 오히려 들으라는 듯 떠들어 대는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바깥에 있는 이들은 은연중에 맹주를 감시하고 있을 터, 추후에 서책이 들어온다 해도 크게 이상히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내용이야 물론 확인하겠지만 암어를 알지 못한다면 겉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을 것들.

서책을 통해 정보를 보내겠다는 전음을 전달받은 추자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별동대에 대한 소식은 없는가?』

『……아쉽게도요.』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다는 말에 추자후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의 머리는 복잡했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면 여태까지 그들에 대한 소식을 알아내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 말은 곧 정말로 별동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걸 의미했다.

애초에 별동대를 물고 늘어질 때부터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군사인 위지겸이 직접 움직이고도 찾지 못했다고 하니 아주 조금의 희망마저도 산산조각이 나 버린 기분이었다.

별동대에 속해 떠났던 이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아는 얼굴도, 모르는 얼굴도 많았다.

허나 분명한 건 그들 모두가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그 먼 곳까지 향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모두 죽었다니…….

맹주 자리에 있으며 많은 이들을 죽게도, 살게도 만들었다.

오랜 시간 이 자리에 있었으니 이런 고통이 익숙해질 법도 하련만, 신기하게도 그 괴로움은 전혀 작아지지 않았다.

이지강을 떠올리며 추자후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는 추자후의 충성스러운 수하이자, 좋은 동료였다.

오랜 시간 함께 싸웠고 자신의 명이라면 어떠한 임무라도 흔쾌히 나서 줬던 이다. 그랬기에 믿고 이번 천룡성의 일도 맡기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런 그가 죽었단다.

밀려드는 괴로움에 추자후가 절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지강 이 친구야…… 그리 가면 어쩌라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그때였다.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그가 걱정스러웠는지 위지겸이 조심스레 전음을 날렸다.

『맹주님 흔들리시면 안 됩니다.』

『……알고 있네.』

그들이 바라는 바가 바로 그거라는 걸 알기에 추자후는 애써 담담한 척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음 아파하는 추자후를 바라보는 위지겸 또한 속이 복잡했지만 아쉽게도 그 같은 이야기를 나눌 여유는 두 사람에게 없었다.

"시간 다 되어 갑니다. 나올 채비를 하시지요."

바깥에서 들려오는 무인의 목소리.

짧은 만남만을 허락받았었고, 이제 그 시간이 다 되어 가는 모양이다.

위지겸이 서둘러 전음을 보냈다.

『우선 전 그들의 계획이 뭔지 더 파악해 보고, 최후의 경우를 대비하여 다음 수를 준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함세.』

『다시 연락드릴 테니 그동안 몸조심하십시오. 맹주님.』

전할 말을 끝낸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권을 취해 마지막 예를 갖추고 막 걸음을 옮기려던 위지겸이 멈칫했다.

그가 퍼뜩 생각났는지 전음을 이었다.

『아, 그리고 회의 날짜가 잡혔답니다.』

『언젠가?』

물어 오는 추자후를 향해 위지겸이 답했다.

『엿새 후랍니다.』

엿새 후.

무림의 운명을 뒤바꿀 그 시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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