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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01화 (101/293)

101화. 야망 ― 욕심이라뇨 (2)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군사 위지겸의 말대로 그가 다녀간 이후 정확하게 엿새 후로 정식 회의가 잡혔다. 거처에 거의 감금되어 있다시피 한 추자후는 이튿날이 돼서야 그 소식을 전달받았다.

그리고 위지겸이 보낸 암어가 가득 섞인 서책을 통해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일정 부분 파악할 수 있었다.

맹주의 손발을 묶어 둔 상태로 반맹주파는 빠르게 움직였다. 동조를 해 줄 세력들을 구슬러 하나라도 더 많이 무림맹의 이번 회의에 참석하게끔 손을 썼고, 맹주파의 인물들과도 잦은 만남을 이어 갔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맹주파에 일부를 자신들 쪽으로 흡수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계획의 일부는 먹혀들었다.

평소 쉽사리 이를 드러내지 않던 반맹주파가 대놓고 적의를 드러냈다. 그 말은 그만큼 확실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거기다가 그들이 주장하는 맹주의 악행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이건 제아무리 그 대상이 추자후라 해도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충성심이 강하지 않은 이들은 슬그머니 반맹주파에 붙거나, 방관자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추후 결과를 보고 확실하게 누구의 편을 들지 정하겠다는 의미다.

기존에는 맹주파의 세력이 보다 컸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힘의 추가 넘어갔다.

반맹주파 쪽에 보다 많은 힘이 실렸고,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들도 상당히 늘어 버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맹주에게 정말로 뭔가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된다면 반맹주파는 결코 이 기회를 놓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평소에 보기 어려운 무인들도 무림맹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만큼 사안이 중대했던 탓이다.

무림맹주가 바뀔지도 모를 회의.

그리고 그 회의를 위해 며칠 전부터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던 인원들이 마침내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에 선 채로 들어서는 이들을 알리던 수문위사가 목소리를 또 한 번 높였다.

"무당파 장문인 드십니다!"

말과 함께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는 한 명의 노고수.

바로 구파일방, 오대세가에서도 손꼽히는 세력인 무당파를 이끄는 청허진인(靑墟眞人)이었다.

푸르른 도복에 백발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그는 누가 봐도 나이가 제법 있어 보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겨져 나오는 기백이 그가 보통 노인은 아니라는 걸 말해 주는 듯싶었다.

무림맹이 있는 사천성과 가까이에 위치한 호북성에 자리한 무당파였기에, 그 수장인 청허가 직접 이곳까지 발걸음 한 것이다.

평소 대변인을 통해서만 회의에 참석하던 그가 나타나자 많은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

무림에서 배분이 무척이나 높은 인물이자, 우내이십일성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고수이기도 했다.

입구까지 동행했던 이들 또한 무당파에서 나름 알아주는 고수들이었지만 아쉽게도 그들에게 허락된 곳은 바로 그곳까지였다.

회의장 안에 들어오지 못한 채로 그들은 청허진인을 배웅만 할 뿐 뒤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줄줄이 각 문파를 대표하는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안에는 사천당문 또한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 사천당문의 대표로 나선 건 다름 아닌 당소련이었다.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가는 가주 당세종이 직접 올 수 없었기에 그녀가 대신 이곳에 자리한 것이다.

평소와는 다른 인물들로 회의장이 가득 채워지긴 했지만 당소련처럼 이곳에 있는 모두가 각파의 수장들인 건 아니었다.

사정이 있는 경우도 있었고, 거리가 너무 멀어 기한 내에 회의에 참석하기 어려운 이도 많았다.

그런 이들은 평소처럼 대변인을 내세우기도 했는데, 대변인들조차 무림에서 알아주는 이들인 건 당연했다.

시끄러운 소리가 회의장 근처에서 울려 퍼졌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표정이 슬쩍 찡그려졌지만, 그중 누구도 크게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지금 나타나는 이가 누구일지 너무도 잘 알았으니까.

이윽고 그 소란과 함께 하나의 거지 패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지들의 집단, 개방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커다란 청록색의 타구봉과 허리에 매어진 아홉 개의 매듭이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개방에서 매듭의 숫자는 그자의 신분을 의미했다.

그리고 아홉 개의 매듭이 허락되는 건 단 한 명. 용두방주라 불리는 개방의 우두머리뿐이다.

나이는 대략 사십대 후반 정도.

그는 행색이 무척이나 허름했고, 머리는 산발이었다. 지저분한 옷차림,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이 빛나는 눈동자마저 감추는 건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개방 방주 장량(張良)이었다.

입구로 다가온 그를 발견한 수문 위사가 급히 소리쳤다.

"개방 방주님 오셨습니다!"

"여, 이거 오랜만들입니다."

자신을 소개하는 수문 위사를 가볍게 밀치며 안으로 들어선 그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악취가 절로 풍기는 모양새였지만 많은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

개방의 방주란 결코 우습게 여길 상대가 아니었다.

뒤편으로 고개를 돌린 장량이 수하들을 향해 귀찮다는 듯 말했다.

"이 망할 놈들아. 네놈들 냄새 때문에 코가 썩겠다. 썩 꺼져라."

"예, 방주님."

히죽 웃으며 거지 무리가 곧바로 몸을 돌려 회의장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런 그들과 반대로 장량은 성큼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걸어가던 그가 옆에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반갑다는 듯 다가섰다.

허나 다가오는 장량을 보며 그 당사자는 움찔했다.

그 상대는 다름 아닌 하후경(夏候瓊)이라는 이로 하후세가를 이끄는 가주였다. 오대세가에는 끼지 못하지만 나름 그 세력이 탄탄한 문파로, 제법 알려져 있는 가문이었다.

하후경의 나이는 장량과 비슷해 보였고, 행색은 그와는 반대로 무척이나 깔끔했고 화려했다.

다가간 장량이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야, 이게 누구야. 하후 가주 아니야."

"오랜만이오."

"아니 딱딱하게 왜 이래. 우리 나이도 비슷한데 편히 하자니까."

"괜찮소. 난 이게 편하오."

애써 담담하게 말하는 하후경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멀리서도 느꼈던 지독한 악취를 가까이에서 맡게 되니 참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 뭐 그쪽은 그렇게 하시던가. 그럼 나중에 보자고."

슥슥.

말과 함께 장량이 어깨 부분을 두드리는 척하며 손을 닦아 냈다. 그러고는 히죽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후경이 속으로 이를 갈았다.

‘저 더러운 새끼가 이게 얼마짜리 옷인데…….’

짜증이 치밀었지만 그런 속내를 드러내기엔 상대가 좋지 않았다.

친한 척 다가왔지만 사실 하후경과 장량의 사이는 그리 좋지 못했다.

하후경은 대표적인 반맹주파의 일원 중 하나였고, 장량은 과거 그런 그와 마찰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다 털고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칼이 잔뜩 감춰져 있었다.

이렇게 다가와 친한 척하며 손을 잡아 대고 한 것도 하후경이 이런 걸 싫어하는 걸 알기에 한 행동이었다.

자리에 가서 앉은 장량은 히죽거리며 표정을 구기고 있는 하후경을 바라봤다.

순간 그의 옆에 있는 누군가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거 유치하게 너무 대놓고 도발하시는 거 아닙니까?"

"어? 뭐야? 내 옆에 총군사였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위지겸이었다.

그리고 위지겸을 발견한 장량이 웃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런 그를 향해 위지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받았다.

"이 자리는 다들 싫어하시는 것 같아 제가 맡았습니다."

"내 옆에 앉는 걸 싫어한다고? 왜?"

"그걸 굳이 말로 해야 아십니까."

코 막는 시늉을 하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위지겸의 모습에 장량은 자신의 옷에 코를 가져다 대고는 킁킁거렸다.

"아무 냄새 안 나는데?"

"그거야 워낙 오래되셨으니 코가 마비되신 거겠지요."

"거참, 총군사가 뭘 모르네. 우리 소굴에 가 봐. 내가 제일 깨끗하다니까?"

"어련하시겠습니까."

가벼운 대화로 분위기를 풀었을 무렵.

팔짱을 끼며 앞으로 시선을 돌린 장량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모두가 싫어하는 내 옆자리에 앉아 준 건 고맙게 생각하겠지만…… 아쉽게도 그쪽 편은 못 들어 줘."

다른 이들이 싫어해서 옆자리에 자신이 앉았다 말한 위지겸의 말을 장량은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알고 있었으니까.

마구잡이로 잡아 놓은 듯한 자리 배치.

하지만 이것 또한 하나하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장량의 옆에 굳이 위지겸이 자리한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였다.

최악의 경우 그의 힘이 필요했으니까.

장량은 분명 반맹주파는 아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맹주파인 것도 아니다.

그는 항상 중립을 지켜 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보를 사고파는 개방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한쪽의 손을 들어 주는 건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피해야 할 부분이었다.

단번에 자신의 속내를 알아차린 장량.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란 말이야.’

한 무리의 수장치고는 다소 젊은 나이.

허나 그는 결코 얕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경망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알고 보면 모두 이유가 있는 인물.

구파일방의 하나를 이끌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닌 자다.

자신의 속셈을 알아차렸지만 위지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방주님께서는 언제나처럼 현명한 선택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래? 뭐 그렇게 말해 준다면야 하하!"

웃고 있는 얼굴, 그렇지만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차분했다.

거물인 청허진인과 장량의 등장.

그리고 뒤이어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등장해 빈자리를 채워 가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오대세가의 가주 또한 있었다.

남궁세가 가주 남궁위무(南宮威武), 그가 회의장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의 안건이 안건이니 만큼 모두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개중에 남궁위무는 특히나 그러했다.

그 이유는 이번 별동대에 나섰던 이들 중 남궁세가의 무인이 무려 둘이나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별동대를 이끌었던 삼 조 수장 남궁격은 그의 친동생이었다.

나이 차가 제법 났기에 직접 키우다시피 했던 동생.

그랬기에 유독 더 아꼈거늘, 그런 자신의 동생이 죽었단다. 그것도 맹주의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말이다.

그 말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남궁위무는…… 결코 참지 않을 것이다.

"오셨습니까."

위지겸이 남궁위무를 향해 예를 갖춰 인사를 전했다. 평소 어느 정도 가까이 지냈던 두 사람이었지만…….

슬쩍 위지겸을 바라본 남궁위무는 그의 인사를 무시하고는 싸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맹주를 의심하는 지금 최측근인 위지겸을 좋게 볼 리 만무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위지겸의 표정이 굳어졌다.

‘예상은 했지만…….’

반맹주파가 집중적으로 만남을 주선했던 인물들 중 하나가 바로 남궁위무다. 그가 돌아서면 큰 힘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어색하게 돌아서는 위지겸의 시선에 자신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머금고 있는 누군가가 들어왔다.

종남파의 진환(進環)이라는 자였다.

장문인을 대신하여 이곳에 올 정도로 종남파 내에서 큰 힘을 지닌 그는 대표적인 반맹주파의 인물 중 하나였다.

슬쩍 시선을 맞췄던 위지겸은 못 본 척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진환의 옆에 자리하고 있는 건 점창파의 장로, 호두개(胡斗愷)라는 자였다. 팔십이 넘은 나이에, 날카로운 눈매가 무척이나 고집이 있어 보였다.

그는 예전부터 명문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넘은 집착을 보일 정도로 고지식한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명문가의 인물이 아닌 맹주 추자후를 탐탁지 않게 여겨 왔다.

그런 이유로 추자후와 마주하는 것조차 싫어하던 그가 이번이 기회라 여겼는지 직접 이곳까지 나선 것이다.

위지겸이 골치 아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상대하기 귀찮은 자들이 제법 보이는군.’

준비되어진 오십 개의 자리가 대부분 찬 지금 자신의 힘이 되어 줄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십 명 중에 고작 열 명 정도만이 확실한 아군이었다. 그리고 스무 명 정도는 적의를 드러낼 테고 나머지 인원들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지금 주어진 이 난관에 대해 상념에 잠겨 있는 그때 한쪽에 위치하고 있던 무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위지겸이 상념에서 빠져나와 사람들이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줬을 때였다.

그곳에서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화산이 낳은 최고의 검객.

자운(紫雲)이다.

그리고 그를 보는 순간 위지겸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왔구나.’

사십 대 중반의 나이.

화산파 최고 고수로 그곳의 장문인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고작 사십의 나이로 우내이십일성의 반열에 들었고, 지금은 그중에서도 손가락으로 꼽히는 실력자가 바로 그다.

일부에서는 곧 천하제일인이 될 사내라 떠받들어지는 인물.

그리고 다음 맹주의 자리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반맹주파의 구심점이자, 가장 위험한 상대.

사십 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젊어 보이는 얼굴과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 거기에 키도 훤칠하고 준수하여 여인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모든 무림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무인.

그런 그가 지금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자운 대협이 오셨……."

수문 위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대협 오셨습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전하시군요!"

쏟아져 나오는 강렬한 환대 속에 자운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로 포권을 취해 보였다. 그는 가장 먼저 윗 배분의 선배들을 향해 예를 갖췄다.

"선배님들을 뵙습니다."

인사를 건네는 그를 향해 주변에서는 큰 칭찬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이 모든 상황을 보고 있는 위지겸의 표정은 불만으로 가득했다.

비단 그가 반맹주파의 인물이라서가 아니다.

‘처음부터 계획했군.’

마치 올 줄 알았다는 듯 동시에 일어나 인사를 던진 것을 시작으로 이 회의장에 흐르고 있는 분위기를 보라.

오늘 이 회의는 맹주 추자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다.

헌데 지금 저들은 이 자리의 주인공을 자운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모른다는 듯 교묘한 미소 뒤에 숨어 있는 자, 그것이 바로 자운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언제나 좋은 사람으로 불렸고, 또 그렇게들 여겼다.

위지겸이 불쾌한 표정을 추스르고 있는 그때 옆에 앉아 있던 개방의 방주 장량이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저 친구는 항상 인기가 아주 좋단 말이야. 그런데 오늘 이 자리가 이리도 즐거울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

마치 비웃는 듯한 한마디.

장량 또한 지금 반맹주파가 수작질을 한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물론 장량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자리한 몇몇 이들 또한 그 같은 사실을 알아차렸다.

허나 그건 단순한 심증에 불과했다.

오히려 잘못 나섰다가는 옹졸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었기에 모두가 조용히 말을 아낄 뿐이었다.

웃는 얼굴로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던 자운이 위지겸의 앞에 다다랐다.

그는 여전히 여유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건강하신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총군사님."

"아, 그래요? 이상하군요. 요새 잠을 통 못 자서 건강이 엉망인데 그게 좋게 보이시다니……."

"이런 잠을 통 못 주무신다니 뭔가가 머리를 어지럽히시나 봅니다."

"네, 아무래도 좀 상황이 그렇군요."

"그래요?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리도 고민하시니…… 곧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말을 내던지는 자운의 표정이 어쩐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돌려 말하고 있었지만 위지겸은 알 수 있었다.

오늘 이 회의 이후, 고민할 필요조차 없도록 완전히 끝내 주겠다 말하고 있다는 것을.

그걸 알기에 위지겸 또한 웃음을 잃지 않고 답했다.

"기대하지요."

"그럼."

짧게 인사를 마친 자운이 몸을 돌렸다.

웃고 있던 그의 표정이 아주 일순 차갑게 변하는 그 찰나였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수문 위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립(起立)!"

일어서라 외치는 그 한마디에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수문 위사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맹주님 드십니다!"

말과 함께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추자후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인 그가 마침내 이곳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추자후를 향해 시선을 던졌던 자운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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