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피아(彼我) ― 들어오시죠 (2)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는 추자후의 그 말에 이지강은 오히려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맹주님. 수하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살아 있었기에 오히려 죄인이 된 느낌.
그건 바로 죽어 버린 오십여 명이 넘는 수하들 때문이었다. 별동대를 이끌었던 수장으로서 그것에 대한 죄책감은 꽤나 컸다.
고개 숙인 이지강의 모습에 추자후가 여전히 어깨를 꽉 쥔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닐세. 그 책임은 자네가 아니라 내가 져야 할 부분이지. 명령은 내가 내린 것 아닌가. 자네는 내 명령을 수행하며 해야 할 몫을 한 것뿐이야. 이후의 일에 자네 책임은 없네."
추자후가 그렇게 이지강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회의장 한 곳에는 다른 의미로 깜짝 놀란 누군가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사천당문의 대표로 이곳에 자리한 당소련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별동대의 생존자 무리와 함께 나타난 여인, 백아린에게 향해 있었다.
‘저 대검은……!’
집채만 한 대검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여인.
처음 보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저 모습은 무척이나 낯이 익을 수밖에 없었다.
사천당문을 도왔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줬던 바로 그 적화신루의 사총관이 분명했다.
백아린의 정체를 파악하니 자연스레 먼저 나타났던 천무진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왠지 모르게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적화신루의 사총관과 함께 죽립을 쓰고 나타났던 그 사내다.
당소련이 식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맙소사."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이 천룡성의 무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자 놀람은 클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이 놀라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한쪽에서는 무척이나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자운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슬그머니 손으로 이마를 감싸 안았다.
‘망할, 왜 다른 생존자가 나오는 거야? 그것도 하필이면 이지강 본인이 살아서 오다니…….’
이지강이 살아온 건 여러 가지 의미로 문제였다.
그리고 개중에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자신들이 내세운 증인들의 발언이 이지강과 연관이 있다는 점이었다.
"반가운 만남은 여기까지 하고 그럼 이야기를 이어 가 볼까요? 별동대를 이끌었던 이지강 대협에게 하나 묻고자 하는 게 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이지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고, 천무진이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별동대를 기습한 이들이 나타났을 때 맹주님께서 보낸 이들이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실 이 말은 천무진이 이곳 회의장에 나타나기 전에 나왔던 말이다.
허나 천무진은 그 전부터 회의장 인근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랬기에 어렵지 않게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불렀던가.
이지강이 살아 있는 것을 아는 천무진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내뱉은 결정적 증언이라는 게 오히려 자신들을 유리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천무진의 질문에 이지강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딱 부러지게 말했다.
"결단코 없습니다."
"그럼 저자가 한 증언은 뭘까요?"
"새빨간 거짓말이지요."
그 새빨간 거짓말의 당사자가 된 모용진은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이지강이 죽기 직전 적들을 향해 맹주가 보내서 온 이들이냐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막상 그 당사자가 살아 있다.
애초에 죽었다고 말한 당사자가 살아 돌아왔을 때부터 모용진의 말에서 신뢰도가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거기다 그 당사자가 자신이 들었다고 증언한 그 말을 거짓말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당연히 이후의 상황이 어찌 흘러갈지는 바보가 아니고서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이 모든 죄를 물게 될 걸 알았기에 모용진은 황급히 소리쳤다.
"부, 분명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제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실로 쓸모없는 귀로군그래. 그런 귀라면…… 없어도 상관없을 터. 감히 내 명예를 흠집 내는 걸로 모자라 맹주님까지 건드리다니."
말과 함께 이지강이 서슬 퍼런 표정으로 허리춤에 있는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 모용진의 귀를 날려 버릴 것만 같은 기세였다. 이지강의 모습에 모용진이 움찔했고, 추자후가 손을 뻗어 그런 그를 제지했다.
힘으로 해결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추자후의 만류대로 굳이 이지강이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이미 회의장 내의 분위기는 반맹주파가 증인으로 내세웠던 모용진과 노효방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게 흐르고 있었다.
모용진의 증언에 노효방은 분명 힘을 실어 줄 수 있었다.
자신도 그리 들었다고 우길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아쉽게도 생존자는 이지강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네 명의 생존자들.
노효방이 그리 나선다면 저들 또한 마찬가지로 이지강의 말에 힘을 실을 것이다.
그랬기에 노효방은 오히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나서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번 회의가 시작한 이후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있던 청허진인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네놈 혼자 벌인 일은 아닐 테고 누가 그리 말하라 시키더냐."
작지만 묵직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모용진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변명을 쏟아 냈다.
"저, 정말로 그리 들었습니다. 전 결백합니다."
"그건 조사를 해 보면 알 터. 허나 분명한 건 두 사람의 증언을 믿을 수는 없을 것 같군."
청허진인까지 나서는 걸 보며 자운을 비롯한 반맹주파의 표정은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평소 이런 일에 쉬이 나서지 않을 정도로 신중한 그다. 그런 청허진인이 나서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꽤나 컸다.
무당파가 이번 일에서 맹주의 손을 들어 줬다는 의미였으니까.
천무진은 흘러가는 분위기에 맞춰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아하니 두 증인의 말에 신빙성은 없는 듯한데 이래도 맹주님에 대한 의심이 남아 계신 분 있으십니까?"
말을 하는 천무진의 눈동자가 자연스레 자운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마주하는 자운으로서는 속으로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자운의 귓가로 하후경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어떻게 할까요? 최후의 증인을 내세울까요?』
『…….』
사실 반맹주파가 준비한 건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결정적 증언을 하기 위해 준비시켜 둔 또 한 명의 생존자가 있었으니까.
허나…….
『그 계획은 취소시키도록 하지요.』
『하지만 그러면 이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지강이 살아온 이상 준비해 놨던 또 다른 증언이 얼마나 먹혀들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괜히 저희 쪽 패만 노출하게 될 확률이 큽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봐야 합니다.』
『이런 기회는 또 오기 힘듭니다.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다급히 전음을 보내 오는 하후경을 향해 자운이 고개를 돌렸다.
무표정한 얼굴.
그렇지만 그 얼굴에 감돌고 있는 싸늘한 눈빛에 하후경이 움찔했다.
그 눈빛은 수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침묵한 그를 향해 자운의 전음이 들려왔다.
『경거망동하지 마시지요. 기회는 또 옵니다. 없다면…… 제가 만들 겁니다.』
전음을 내뱉은 그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기다려 왔던 기회인가. 누구보다 기다려 왔던 순간이기에 밀려드는 분노 또한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허나 자운은 그런 자신의 감정을 잘 내리눌렀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정확하게 아는 것.
더욱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가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강점이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상황.
천무진이 쐐기를 박듯 말했다.
"아무도 없는 듯하군요."
말과 함께 천무진이 슬쩍 기회를 보고 있던 위지겸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제 자신이 나설 순간이라는 걸 느낀 위지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맹주님의 권한을 다시 복구하고, 이번 일에 대해서는 엄중히 조사를 하여 왜 이 같은 말도 안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번 회의를 마무리 지으려 하던 그 찰나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잠깐. 그 전에 천룡성의 분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만."
번쩍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내뱉은 사람은 개방의 방주 장량이었다.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지저분한 행색에 장난스러운 모습.
허나 그 안에 감춰진 개방의 방주라는 이름에 걸맞은 무게감을 지닌 상대다.
위지겸이 힐끔 천무진을 확인했고,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장량을 향해 말했다.
"하시죠."
"맹주님과 함께 그 악랄한 집단을 찾아 헤맸다 하셨지요?"
"네, 그리 말했습니다."
"그런데 왤까요. 개방의 방주인 저는 그런 의뢰에 대해 일절 알지 못하는데……."
이상하다는 듯한 중얼거림.
하지만 그 안에는 정말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의중이 담겨져 있었다.
개방조차 처음 듣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만에 달하는 고아들을 납치할 정도의 일이라면 보통 사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이 알지 못했다는 것.
정보를 취급하는 개방의 입장에서 그건 부끄러운 일이면서도 그만큼 상대가 꽁꽁 몸을 감춘 대단한 자들이라는 걸 뜻했다.
그런 자들을 쫓기 위해서 정보가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정보가 필요했다면 자연히 개방에 도움을 청했을 터.
그런데 개방의 방주인 자신은 아무런 것도 알지 못했다.
당연히 천무진이 맹주와 함께 그들의 뒤를 쫓아 왔다는 말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장량은 묻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니면 아예 거짓말은 아닐지라도 맹주를 구하기 위해 천무진이 뭔가 가짜 진실의 일부를 꺼내어 든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 순간 여태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백아린이 앞으로 나섰다.
백아린이 갑자기 앞으로 걸어 나오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녀에게로 쏠렸다. 원래부터 주목을 끄는 여인인 그녀다.
수많은 무림의 인물들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거늘 백아린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움직임을 이어 나갔다.
포권을 먼저 취해 보인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개방 방주님의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제가 해도 될까요?"
"……그쪽은 누구지?"
"적화신루의 사총관 백아린이라고 합니다."
적화신루와 사총관이라는 말에 장량의 눈동자가 슬그머니 흔들렸다.
같은 정보 집단인 개방의 방주로서 그들에 대해서는 나름 세세한 정보들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사총관이라면…….
장량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소문의 그 사총관이군."
"어떤 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사총관은 맞아요."
"뭐 별건 아니었어. 그냥…… 참 아까운 인재를 놓쳤다는 것 정도?"
손꼽히는 정보 집단인 건 사실이지만 아직 적화신루를 개방에 비교하는 건 상당한 무리가 있었다.
허나 개방의 방주인 장량은 잘 알고 있었다.
최근 들어 그들이 꽤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배후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몇몇 존재했는데, 그중에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이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인물.
사총관이라 알려진 여인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 여인을 마주하고 장량은 꽤나 놀랐다.
젊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너무도 눈에 띄는 외모까지.
백아린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들에 대한 정보를 구해 온 건 저희 적화신루예요. 천룡성과 인연이 닿아 저기 계신 분을 위해 움직여 왔어요."
"한마디로 여태 적화신루가 천룡성을 도와 그들의 뒤를 쫓았다, 이 말인가?"
"네, 맞아요."
"흠……."
장량의 표정은 애매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허나 여러 가지 이유로 속이 복잡했다.
개방이 아닌 적화신루를 선택한 이유부터, 이번 일로 적화신루가 알게 된 정보의 상황까지.
침묵이 감도는 그때 앉아 있던 당소련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사천당문의 당소련, 지금 적화신루의 주장이 진실이라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생각지도 못한 당소련의 개입에 장량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사천당문은 오대세가의 하나.
그런데 그런 그들이 천무진과 백아린의 주장에 힘을 싣겠다 나섰다.
사천당문과 개방의 사이가 좋지 못하긴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이렇게 나설 리는 없을 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본가에 있었던 안 좋은 일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알고들 계실 겁니다."
쉬쉬하고는 있지만 세상 모든 입을 막을 순 없다.
내분이 있었고, 그 싸움에서 당소련이 승리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 그녀가 자리할 수 있었다.
당소련이 말했다.
"사실 당시에 전 정체불명의 살수들에 의해 죽을 뻔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당시 절 구해 주셨던 것이 바로 저 두 분입니다. 그때도 저 두 분은 함께 누군가를 쫓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살 수 있었고요."
"그 말뜻이 뭡니까? 지금 맹주님과 천룡성의 무인분이 쫓고 있는 그들과 관련된 자가 사천당문에 있었단 말입니까?"
사실 이건 사천당문의 입장에선 치부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허나 당소련은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 전 그렇게 생각해요. 저 정도로 끔찍한 일을 벌여 대던 자들이라는 건 지금 알았지만요. 그리고 적어도 그것이 우리 가문만의 일이 아니라 여기기에 지금 이렇게 나선 것입니다."
"그 말은…… 무림맹 내에도 그들과 관련된 자들이 있다 이 소리로 들리는군요."
"아니길 바라지만요."
당소련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다른 곳도 아닌 오대세가의 하나인 사천당문의 일이었기에 단순히 비웃고 넘어갈 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장량이 불편한 얼굴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자신이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개방의 수장으로서 썩 유쾌하지 않았다.
* * *
그 시각 회의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한 명의 사내가 서성이고 있었다.
그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사천당문의 당자윤이었다.
모종의 세력이 도운 덕분에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무림맹 내부에 있는 밀실에 자리하고 있던 그다.
뭔가 긴장되는지 평소보다 살짝 굳은 얼굴로 서 있던 당자윤은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이내 닫혔던 밀실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모습의 미녀.
주란이었다.
여기까지 함께한 그녀는 놀랍게도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간단하게 무림맹 내부로 들어왔다. 그랬기에 당자윤은 더욱 궁금했다.
대체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들어선 그녀를 향해 당자윤이 입을 열었다.
"시작입니까?"
오늘 있을 일에 대해 미리 전해 들었던 당자윤이다.
무림맹주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린다.
실로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흥분됐다. 훗날 자신을 사천당문의 가주로 만들어 주겠다고 너무도 쉽게 말하던 이들이다.
그 같은 약조를 한 이들이 맹주를 바꾸겠다 말했을 때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꿈 또한 분명 이루어질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물어 오는 당자윤의 질문에 주란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오늘 계획은 취소예요."
그녀의 대답에 당자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말입니까?"
"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네요."
"그게 뭡니까?"
다소 짜증스러운 목소리.
그런 그를 향해 주란이 말했다.
"회의장에 이지강이 살아서 나타났다는군요."
"……뭐라고요?"
대답을 들은 당자윤의 낯빛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가 살아 돌아왔다면 자신이 별동대를 버리고 도망친 사실 또한 드러날 것이 자명할 터.
그 일이 밝혀지는 순간 당자윤은 무인으로서의 삶이 끝장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그가 중얼거렸다.
"대체 그가 어떻게 산 겁니까? 그 상황에서 살아나올 방도가 없었을 텐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향해 주란이 말했다.
"천룡성의 무인이 나타났거든요."
"……!"
천룡성이라는 말에 당자윤이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이내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천룡성이라니…… 대체 그들이 왜 이때 나타나 자신을 곤란에 빠지게 만든단 말인가.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은 충격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당자윤을 향해 주란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은…… 우리가 지켜요."
"……진심이십니까?"
"그럼요. 이제 우리는 한 배를 탄 동료니까요."
주란이 웃는 얼굴로 답했다.
그리고 지금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대로 당자윤이 무너지게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직 이자는 이용할 가치가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