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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10화 (110/293)

110화. 전세역전 ― 다시 한 번 말해 보지 (2)

당자윤은 자신의 앞에 놓인 상차림을 보며 슬쩍 미간을 찡그렸다.

환자 시늉을 하고 있는 탓에 매끼 죽을 먹어야만 했는데, 그게 오늘로 벌써 삼 일째다.

아픈 사람인 척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삼 일 내내 이 맛없는 죽으로 식사를 대신해야만 하는 그였다.

그릇 안에 든 묽은 죽을 수저로 떴다, 쏟아내기를 반복하는 그를 보며 옆에 있던 의원 당사옹이 입을 열었다.

"왜? 입맛이 없느냐?"

"먹을 게 있어야 입맛도 있고 없고 이야기하는 거 아닙니까?"

죽을 먹고 싶지 않았는지 두어 수저 뜨던 당자윤은 결국 손을 내려놨다. 그가 소매로 입가를 닦아 내며 말했다.

"며칠이나 더 이러고 있어야 됩니까?"

"한 사나흘 정도는 더 고생해야 할 게야."

이미 사전에 모종의 세력과 모든 말을 맞춰 둔 당사옹이다. 자신은 그것에 맞춰 움직이기만 하면 되고, 당자윤 또한 거기에 따라 주면 그만이다.

삼 일을 누워만 있어야 했던 당자윤은 무척이나 따분했다.

그랬기에 지겹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사숙 안에 계십니까."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 그리고 그건 바로 당소련의 것이었다.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린 당자윤은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로 했고, 당사옹 또한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며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이내 당사옹이 입을 열었다.

"예, 안에 있으니 들어오시지요."

허락이 떨어지자 의방의 문을 열고 당소련이 들어섰다.

들어선 그녀를 당사옹이 웃는 얼굴로 맞았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사숙, 말 편히 하세요."

"그럴 순 없지요. 지금 사천당가의 가주 대행을 맡고 계신 분이신데요."

현재 실질적으로 사천당문을 이끌고 있는 건 당소련이다. 그러다 보니 윗 배분의 인물들도 어느 정도 예를 갖추고 있는 추세였고, 당사옹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이는 그가 훨씬 많았지만, 가문 내에서의 위치를 생각하면 당소련이 윗사람인 셈이다.

워낙 활동하는 분야도 다르고, 특별히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기에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나는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당사옹이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이곳에 직접 발걸음을 하셨는지요?"

"아, 잠시 자윤이와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렇습니까?"

당사옹이 힐끔 당자윤을 바라봤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심하라는 경고가 담긴 시선을 보낸 그가 이내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전 그럼 잠시 나가 있을 터이니, 편히 대화하다가 가시지요."

"고마워요 사숙."

"뭘요. 그럼 전 돌봐야 할 다른 환자들이나 보고 오겠습니다."

말과 함께 당사옹이 문을 닫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자 당소련이 침상의 옆으로 다가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얼굴에 불만을 가득 담고 있던 당자윤이었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힘없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힘겨운 척 연기를 하며 말을 내뱉었다.

"가주 대행을 뵙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를 당소련이 황급히 손을 들어 제지했다.

"괜찮으니 그냥 누워 있으렴."

"하지만 그건 예의가……."

"예의보다는 네 몸이 먼저지. 이건 명령이니 꼭 따르도록 해."

웃으며 하는 당소련의 말에 당자윤은 못 이기는 척 다시금 침상에 몸을 눕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침상 옆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그녀가 말했다.

"일어났다는 말은 진작 들었지만 좀 쉬고 난 이후에 찾아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오늘 발걸음 했단다. 양해 좀 해 주렴."

"이렇게 찾아 주신 것만 해도 어딘데요. 충분히 감사합니다."

괜찮다며 손사래 치는 그를 향해 당소련이 물었다.

"몸은 좀 어떠니?"

"많이 좋아졌습니다."

"안색이 여전히 안 좋은데……."

걱정스레 말하는 당소련의 말에 당자윤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겨우 이 정도로 어찌 죽는소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서 죽은 다른 동료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 부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제가 죽고 동료들이 살았어야 했는데……."

말을 하는 와중에 당자윤은 감정이 복받친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런 당자윤의 연기에 당소련이 안타깝다는 듯 그의 등을 다독였다.

눈물까지 뚝뚝 떨어트리는 당자윤의 모습은 정말로 죽은 동료들에 대한 슬픔이 묻어 나는 듯했다.

당소련이 토닥이며 말했다.

"진정하거라. 이미 벌어진 일이다. 후회를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이번 일의 배후를 밝혀내는 것이 동료들을 위한 일일 것이다. 내 힘닿는 데까지 노력할 테니 너무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거라. 알겠지?"

"예, 대행."

힘겹게 눈물을 닦아 내는 당자윤의 모습을 마음 아프다는 듯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퍼뜩 생각이 난 것처럼 말했다.

"아 참, 오늘 저녁에 잠시 시간을 좀 내줬으면 하는구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자윤은 멈칫했다.

그가 물었다.

"시간 말입니까? 무슨 하실 말씀이시라도……."

물어 오는 당자윤의 질문.

당소련이 방금과 같은 말을 한 이유는 천무진의 부탁으로 오늘 있을 자리에 당자윤을 불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분명 확실한 목적이 있었지만…….

당소련은 목구멍까지 치미는 말을 억지로 눌렀다.

약속을 했고, 당소련은 그걸 지킬 생각이었으니까.

그녀가 웃는 얼굴로 말을 받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좀 나누고 싶어서 그렇단다. 거기다 기력도 많이 상한 것 같은데 특별히 좋은 것도 좀 먹이고 싶고."

말을 내뱉는 당소련의 모습을 살피던 당자윤은 짐작했다.

‘하고 싶은 말이라면 아마도 그 일이겠지?’

생존자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당자윤이다. 당연히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터.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친 것 같다는 말이 언젠가 흘러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맞는 방비 또한 이미 해 둔 상태.

그랬기에 오히려 당자윤은 이걸 기회로 여겼다.

‘해명을 할 때, 내 편이 되어 줄 이가 있다면 더욱 쉽겠지.’

애초부터 그 일에 대한 뒷이야기가 나오면 사천당문 내의 높은 이에게 먼저 조작된 증거를 제시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당소련은 그 모든 것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지금 당장 사천당문 내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당자윤 또한 기다리고 있었던 일이었기에 쉽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그럼 언제쯤 찾아뵈면 될까요?"

"저녁 식사를 하기 좋게 술시(戌時)에 보자꾸나. 그럼 좀 쉬어야 할 테니 난 이만 물러가마."

말을 마친 당소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당자윤이 공손히 답했다.

"예, 대행."

포권을 취하며 슬쩍 숙인 고개.

당자윤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마치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 * *

술시가 되어 갈 무렵 당자윤은 약속된 장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며칠 만에 의방을 벗어난 덕분인지 당자윤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약 냄새만 진동하던 의방은 그에게 그리 맞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픈 척 연기를 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자리했던 곳.

‘그나저나 왜 여기지?’

지금 당자윤이 도착한 이곳은 은경관이라는 곳이었다. 사천당문 내 외곽 부분에 위치한 곳으로 손님들이 기거하는 장소기도 했다.

최근 내전으로 인해 손님들을 받는 장소를 제한시켰고, 그로 인해 이곳 은경관은 텅텅 비어 있었다.

장소적으론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당연히 당소련의 장원에서 만날 거라 여겼다.

그런데 그녀가 보내온 사람을 통해 들은 목적지는 바로 이곳 은경관이었다.

그 부분이 다소 이상하긴 했지만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기에 그는 별다른 의심 없이 이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은경관 내부로 들어선 당자윤이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방 안으로 들어서며 포권을 취했다.

"많이 기다리셨……."

공손하게 말을 내뱉던 당자윤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동시에 그의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그리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천무진과 백아린, 두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

왜 이들이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둘은 자리에 앉은 채로 인사를 건네고 있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당자윤이 빠르게 방 안을 살폈다.

방 내부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확인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 안에 당소련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그가 돌변했다.

"뭐야. 네놈이 왜 여기 있어?"

"오랜만에 뵙습니다, 당 소협."

천무진이 예의를 갖춘 목소리로 답했다.

허나 그런 그에게 당자윤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물었잖아. 왜 네가 여기에 있느냐고."

"사천당문에 잠시 일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네깟 놈이 우리 가문에 용무가 있다고?"

비웃는 것이 명백한 목소리.

천무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잠시 불쾌한 표정으로 천무진을 바라보던 당자윤은 이윽고 빈 의자를 끄집어내서 앉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백 소저도 왔구려."

아는 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아린에게서 별반 대꾸가 없자 자연스레 당자윤의 시선이 다시금 천무진에게로 향했다.

그가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큭큭, 하여튼 운도 참 좋은 놈이군."

천무진이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저 말입니까?"

"그래, 너. 청아원 이후에 따로 움직인 덕분에 이렇게 살아 있잖아.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무진 네놈은 분명 죽었을 텐데 말이야."

"그랬을까요?"

"당연하지. 네깟 놈이 살 수 있었을 리가 없잖아."

무시하는 투로 답한 당자윤이 이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깝게 됐어. 네놈도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이봐요, 말 좀 가려 하시죠."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백아린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어쩔 거냐는 듯 자신만만한 얼굴로 당자윤은 킥킥 웃어 댔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자신이 막말을 한다 한들 그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물며 그 상대가 보잘것없는 자들이니 더더욱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가 웃음을 흘리고 있는 그때 뒤편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확인한 당자윤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예상대로 뒤편에서는 당소련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행, 여기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자리를 옮기셔야……."

그녀를 발견한 당자윤이 웃는 얼굴로 입을 열 때였다. 그의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당소련이 천무진을 향해 포권을 취해 보였다.

당자윤은 자신의 뒤편을 향해 예를 갖추는 당소련의 모습에 순간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당소련이 입을 열었다.

"천룡성의 무인을 뵙습니다."

천룡성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당자윤은 너무 놀라 두 눈이 튀어 나올 뻔했다.

천룡성이라니?

대체 누가!

당자윤이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볼 때였다.

자리에 앉아 있던 천무진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천룡성의 무인이 회의장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이미 주란을 통해 전해 들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이건 계산 밖의 일이었다.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려 왔다.

말로만 듣던 전설의 문파인 천룡성의 무인이…….

‘……저놈이었다고?’

당자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서 있는 그때였다.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어이, 당자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예의를 갖춰 존댓말을 내뱉던 천무진의 말투가 돌변해 있었다.

여태까지는 당자윤의 모든 행동에 그저 당해 주기만 했던 천무진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더는 그래야 할 이유가 사라졌으니까.

마침내 홍천관 무인 중 한 명이었던 무진이 아닌 천무진이라는 진짜 모습으로 당자윤의 앞에 선 것이다.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천무진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방금 전에 당자윤이 한 말을 고스란히 되물었다.

"내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고?"

웃고 있는 얼굴.

허나 그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당자윤은 바짝 긴장한 채로 마른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표정과 말투에 담긴 날카로운 가시들.

그 가시들이 비수가 되어 당자윤을 쿡쿡 찌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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