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왕-130화 (130/293)

130화. 귀명신단 ― 불가하네 (2)

한천의 아리송한 대답에 의선은 선뜻 어떠한 말도 꺼내기 어려웠다. 그만큼 그의 대답은 모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눈앞에 있는 이 한천이라는 사내의 인생을 함축하고 있었으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적화신루의 부총관으로만 여겼던 상대다.

허나 지금 대화를 나누며 이 한천이라는 사내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밀려왔다.

침묵한 채로 자신을 응시하는 의선을 향해 한천은 평소처럼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흘렸다.

지금 자신이 찾아온 건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그랬기에 그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확인하셨으니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지요. 이 손 회복 가능하겠습니까?"

한천이 자신의 오른손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그런 그의 물음에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빠른 답변이 돌아왔다.

"불가하네."

불가능하다는 말에도 한천은 동요하지 않고 곧장 질문을 이었다.

"아주 조금도요? 검을 쥐고 휘두를 수 있는 정도도 안 되겠습니까?"

"너무 늦었어.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놀라울 정돌세."

"역시 그렇군요."

부정적인 대답이었거늘 한천은 여전히 미소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향해 의선이 물었다.

"대체 왜 바로 치료하지 않았는가? 이정도 부상을 입었다면 고통도 참기 어려웠을 터인데……."

"치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의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지요."

한천의 대답에 의선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대로 이 정도의 부상은 어지간히 실력 있는 의원이라 해도 손댈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중원을 대표하는 세 명의 의원 중 하나인 의선 정도나 돼야 장담할 수 있을 정도니, 설령 치료를 하고자 했다 해도 제대로 치료가 되었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

오랫동안 많은 환자들을 봐 왔던 의선이다.

일반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직후 내비치는 감정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슬퍼하거나 화를 내기도 하고, 모든 걸 포기하는 자도 있다.

그런데 이 사내는 그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웃고 있는 얼굴에는 자신이 아는 일반적인 감정들 중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랬기에 물었다.

"내 눈이 틀리지 않다면…… 고쳐 줄 수 없다는 말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것 같군. 아닌가?"

"이런, 그렇게 보였습니까? 사실 엄청 슬픈데 말이죠."

장난스러운 말투를 내뱉으며 히죽거리던 한천을 의선은 계속해서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봤고, 이내 그가 미소를 거두며 말했다.

"뭐, 맞습니다. 애초에 가능성이 없을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혹시나 조금이라도 오른손을 쓸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욕심에 묻긴 했지만 불가능하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날 찾아온 게 그 팔의 치료가 목적이 아니었군."

"맞습니다."

애초부터 이 다친 오른팔을 치료하고자 백아린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며 비밀리에 의선을 찾아온 것이 아니다.

백아린을 속여야만 했던 이유.

그건 자신이 지금 원하는 걸 그녀가 알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한천이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귀명신단(鬼命神丹)을 구해 주시지요."

"……뭐?"

한천의 입에서 귀명신단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의선이 기겁하며 되물었다.

귀명신단.

귀신의 목숨이라는 의미를 지닌 귀명이라는 이름에서 전해져 오는 음산함만큼 너무도 위험한 물건이었다.

귀명신단은 금지된 단환이었다.

일순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신체의 능력이 증가한다. 일례로 발목이 잘린 상태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닐 정도의 일을 가능케 하는 것, 그게 바로 귀명신단이었다.

의선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설마 자네 귀명신단을 먹고 그 오른손을 움직이려 하는 겐가?"

"뭐 그렇긴 합니다만."

"미쳤는가! 그랬다가 자네는 그때의 몇 곱절 되는……."

차마 의선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사라졌던 고통이 약효가 떨어짐과 동시에 밀려들 것이고, 원래 받았어야 할 수준의 몇 곱절 이상 되는 충격이 고스란히 몸으로 밀려든다.

그 때문에 약효가 다하면 사망하거나 살아도 폐인이 될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단환이 바로 귀명신단이다.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의선을 향해 한천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휴, 저도 먹을 생각은 없습니다. 오른팔이 망가졌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잘 아는데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습니까? 그때의 몇 곱절은 되는 고통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울상을 지어 보인 한천이었지만 이내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지독한 고통을 겪어 봤으니 절대 먹을 생각은 없지요. 다만…… 인생엔 언제나 만약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요."

지금 자신들이 쫓고 있는 그들의 존재.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자들이었다. 그랬기에 한천은 만약을 위한 대비를 하길 원했고, 그것이 바로 귀명신단이었다.

귀명신단이 있다면 아주 잠시일지라도 예전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한천을 바라보는 의선의 표정은 복잡했다.

만약의 사태가 오면 귀명신단을 먹으려 한다는 걸 알아서이기도 했지만, 사실 더 놀라운 건 그가 이 단환의 존재를 안다는 부분이었다.

그랬기에 의선이 물었다.

"대체 자네가 귀명신단을 어찌 아는가? 이것에 대해서는 제아무리 정보 단체라 한들 이렇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닐 터인데……."

애초에 귀명신단은 군인들에게 사용하기 위해 황실에서 비밀리에 제작되던 물건이다.

전쟁에서 큰 부상을 당한 이들이, 고통과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도 잊고 죽기 직전까지 싸우게 만들기 위해 말이다.

그렇지만 너무도 잔혹하고 부작용이 심해 결국 그 단환은 세상에 모습을 내비치기도 전에 사라졌다.

무림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그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은 물건.

그렇게 사라진 단환을 대체 이 한천이라는 사내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또 그 귀명신단이 자신에게 있다는 건 어찌 아는 건지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귀명신단에 대해 아는 이는 분명 몇 명 되지 않았으니까.

귀명신단의 제작에 많은 의원들이 투입되었지만, 정작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하는 연구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귀명신단에 대해 알고 연구했던 몇몇 소수의 의원들과, 그걸 승인했던 황제. 그리고 그 모든 걸 진두지휘했던 대장군이라는 자뿐이라고 들었는데…….

물론 의선은 직접 귀명신단 제작에 참여했던 건 아니다.

의선의 역할은 마지막에 단환을 검토하는 것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귀명신단이 가진 위험성을 파악해 이것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을 했던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귀명신단에 대한 미련이 남았던 황제가 혹시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비책이 있는지 찾아보라며 일부를 넘겼고, 그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이 꽤나 오래전의 일이었고, 이제는 귀명신단이라는 이름조차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져 가는 이때 갑자기 이 사내가 그것을 다시금 끄집어내고야 만 것이다.

대체 귀명신단에 대해 어찌 아느냐는 의선의 질문에 한천은 그저 뜻 모를 미소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의선이 재차 질문을 던졌다.

"자네 대체……누구인가?"

의선은 직감했다.

이 사내는 적화신루의 일개 부총관을 맡고 있을 자가 아니라는 걸.

허나 이 질문에 대해서도 한천은 답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의선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말씀은 전했습니다. 부탁드리지요."

말을 끝내고 성큼 뒤로 물러난 한천이 포권을 취해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서둘러 돌아갈 것처럼 몸을 돌리다가 멈칫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아 참, 의선 어르신."

"……?"

"아시겠지만 오늘 일은……."

말을 내뱉던 한천이 검지를 세워 입술 앞에 가져다 댄 채로 빙긋 웃었다.

"모두에게 비밀입니다."

* * *

중원에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자그마한 산.

인근 마을 사람들이나 오갈 정도로 이 산은 크기도 그리 크지 않았고, 별반 대단한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장소였다.

아무도 이 산을 찾지 않는 늦은 시각.

산을 오르는 한 명의 노인이 있었다.

그저 가볍게 산길을 오르고 있을 뿐이거늘, 주변에는 쉽사리 범접하기 힘든 기운을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 노인의 정체는 바로 천운백이었다.

천룡성의 주인인 그가 늦은 시각 이름도 없는 산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손에는 술이 담긴 하얀색 호리병이 들려 있었다.

시원한 바람을 마주한 채로 산길을 오르던 천운백이 멈추어 선 건 중턱에 위치한 자그마한 무덤 앞이었다.

무덤이 있는 곳에 도착한 천운백은 주변을 휘이 둘러봤다.

주변에는 몇 그루의 나무들만이 존재했을 뿐 별다른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 천운백은 이내 시선을 돌려 자신의 앞에 있는 무덤을 마주했다.

그가 씨익 웃었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는가?"

말을 끝낸 천운백은 무덤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 화려하지 않은 무덤이긴 했지만 누군가 관리하는 이가 있는지 상태는 괜찮은 편이었다.

잠시 앉아서 무덤을 바라보던 천운백은 이내 막 생각났다는 듯 손에 든 호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뽕.

시원한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렸고, 천운백은 안에 담긴 술을 무덤 근처에 가볍게 뿌렸다.

안에 담긴 술의 절반가량을 뿌린 그는 호리병을 입에 가져다 댔다.

호리병 안에 있는 술을 목구멍으로 넘긴 천운백이 짧게 탄성을 토해 냈다.

"크으, 어떤가? 자네를 위해 나름 괜찮은 녀석으로 구해 봤는데 맘에 들지 모르겠군그래."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운백은 무덤에게 연신 말을 걸었다. 마치 무덤이 살아 있는 지기라도 되는 것처럼.

말없이 무덤을 바라보던 천운백은 다시금 호리병을 입에 가져다 댔다.

남은 술을 단번에 마신 그가 소매로 입가를 닦아 냈다.

따뜻한 눈동자로 무덤을 바라보던 천운백이 갑자기 자신의 이마를 치며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런 내 정신 보게. 오늘은 자네에게 알려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왔네."

잠시 먼 곳을 보던 천운백이 무덤을 향해 고개를 돌린 채로 말했다.

"내가 이어 주기도 전에 자네의 제자와 내 제자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네. 이런 걸 보면 운명이라는 건 실로 재미있단 말이야."

뜻 모를 말을 마친 천운백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묘비를 가볍게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먼지에 가려져 있던 묘비에 새겨진 이름이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 적힌 이름.

그건 바로…….

한신(韓信)이었다.

놀랍게도 이곳은 바로 백아린의 스승이자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던 검왕 한신의 무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방금 천운백이 언급한 무덤의 주인인 한신의 제자라는 건 백아린을 뜻하는 것일 터.

그가 운명을 운운하며 던진 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여전히 무덤을 바라보며 천운백이 말을 이었다.

"자네의 제자가 아주 멋지게 자랐더군. 물론 내 제자도 그렇지만 말이야."

천무진을 떠올린 천운백이 피식 웃었다.

아마도 지금 그는 자신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허나 그걸 알면서도 천운백은 천무진에게 가지 않았다.

아니, 못 간다고 해야 옳을 게다.

무덤 속에 있는 한신을 향해 천운백이 말했다.

"너무 걱정 말게. 아직까지 모든 건 계획대로 잘 되어 가고 있으니 말이야."

말을 끝낸 천운백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직 새벽이 오기엔 많이 이른 시각.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궁금하군그래. 과연 우리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