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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38화 (138/293)

138화. 검산파 ― 지켜 줘야지 (1)

적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무리하다시피 일정을 소화한 덕분에 천무진 일행은 고작 구 일 만에 섬서성 서안(西安)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를 머물기 위해 객잔에 있는 방을 잡았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정하기 위해 그들은 한곳에 모였다.

이곳 서안에서 천무진의 목적지인 여산이나, 단엽이 가려고 하는 화산은 같은 동쪽에 위치한 곳이었으나 가는 길이 다소 달랐다.

이왕이면 같이 움직이는 것이 더욱 좋겠지만…….

"무리야. 그놈이 언제 화산파를 떠날지 몰라서. 화산파의 행사가 끝나면 또 다시금 숨어 버릴 수도 있거든."

단엽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천무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십천야에게 자신의 움직임을 읽히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빠르게 움직인 것이었다.

그런데 화산파를 먼저 들렀다가 온다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맞지 않았다.

그 말은 곧 따로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단엽의 대답에 예상했다는 듯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향해 단엽이 재차 말했다.

"미안해, 주인. 웬만하면 같이 움직이고 싶은데 이번엔 나도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이해 좀 해 주라고."

"충분히 이해해. 네 의중을 알았으니, 잠시 백아린과 단둘이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말을 마친 천무진은 방 안에 자리하고 있는 단엽과 한천을 바라봤다.

무슨 이야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천무진의 말에 두 사람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지자 백아린이 입을 열었다.

"저랑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요?"

"응, 검산파의 일도 그렇고 단엽의 상황도 좀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아서."

"왜요?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요?"

"가능하면 이번에 단엽이 움직일 때 한천도 같이 따라 붙였으면 해서."

"부총관을요?"

물어 오는 백아린을 향해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엽의 실력을 믿는다.

하지만 상대가 워낙 위험한 자들이다 보니 단엽 혼자 보내기보다는 옆에 다른 누군가를 붙여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그 적임자는 당연히 한천이었다.

단엽은 천무진이 선택한 최고의 방패였고, 그런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걸 원치 않았다.

천무진이 말했다.

"사실 저번 생에서도 단엽은 혈우일패도 나환위를 죽여. 그런데 시기가 지금은 아니었지. 거기다가 목적지도 화산파고, 혹시 십천야가 개입하게 되면 단엽 혼자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차라리 둘씩 나눠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아."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사실 백아린도 이번 일에 단엽을 혼자 보내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았다.

보통 일이었다면 모를까 분명 어린 그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 게다.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준다는 게 어쩌면 단엽에게 큰 힘이 될 수도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백아린이 이내 답했다.

"부총관에게 저도 그렇게 전달할게요. 절 두고 가는 걸 그리 내켜 하진 않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말대로 둘씩 나눠서 움직이는 게 더 좋겠어요."

"부탁할게."

"아, 말이 나와서 물어보는데 검산파에 가서 뭘 할 생각이에요? 설마 전생처럼 모두 죽이려는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정체불명의 그녀가 왜 검산파를 없애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기에, 그들이 얼마 전 제거한 흑마신처럼 적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피해자였을지도 모를 그들을 아무런 증거도 없는 이런 마당에 모두 죽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천무진이 답했다.

"생각을 좀 해 봤는데…… 그 보석을 훔칠까 생각 중이야."

"검산파의 보석을요?"

전생에서 정체불명의 그녀가 했던 부탁은 검산파를 없애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검산파에 있는 보석이 갖고 싶다는 부탁이었고, 그 과정에서 천무진은 그들 대부분을 죽여야만 했다.

과연 그녀가 원했던 건 검산파를 없애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그 보석 자체였던 걸까.

그걸 알기 위해 천무진은 전생에 손에 넣었던 검산파의 그 보석을 다시 한 번 훔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당시 그 보석을 빼앗으며 직접 보긴 했지만 특별히 뭔가 떠오르는 건 없었다. 허나 그때는 이미 그녀에게 정신을 제압당한 상황이었기에, 지금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천무진이 담담하게 답했다.

"혹시 그 보석에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군요."

백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보석을 훔치는 게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 같던데요."

"맞아. 내부가 꽤나 복잡해. 그리고 곳곳에 진법이나, 함정들도 있어서 외부인의 침입을 완벽히 차단하지."

"하아. 그렇다면 지도를 구해야 하는데 아무리 적화신루라 해도 그게 쉽지는……."

걱정이 되는지 한숨까지 쏟아 내던 백아린이 천천히 말꼬리를 흐렸다.

뭔가를 떠올린 그녀가 혹시나 하는 얼굴로 천무진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에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보면 어느 정도 기억날 수준은 될 거야."

"그거 참 좋은 소식이네요!"

만약 내부의 지도를 구해야 한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거기다 힘겹게 지도를 구한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정확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직접 그곳에 가 본 천무진의 존재가 있었기에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대화가 얼추 매듭지어지자 백아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적화신루에 잠시 의뢰를 넣어야 할 것이 있었는데 그럼 곧바로 두 사람한테 이번 결정을 전달하고, 저는 움직이도록 하죠."

말을 마친 백아린은 곧장 바깥으로 나갔고, 이내 아래층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단엽, 한천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단엽이 입가를 닦으며 물었다.

"뭐야? 중요한 이야기 같던데 벌써 끝난 거야?"

"하여튼 두 분은 우리가 술 먹는 걸 못 보신다니까."

막 입가에 가져다 댔던 술 생각이 나는지 한천이 은근슬쩍 투덜거릴 때였다.

백아린이 말했다.

"부총관, 이번 일정에서 단엽이랑 같이 움직여 줬음 해."

"제가 말입니까?"

"응, 검산파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물건을 훔치는 일이 될 거라 많은 인원은 필요치 않거든. 차라리 단엽 쪽에 힘을 실어 주는 게 나을 것 같아."

백아린의 말에 한천은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죠, 대장."

알겠다고 대답하는 한천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단엽은 당황한 듯 손사래를 쳤다.

"됐어. 뭔 도움이야. 나 혼자서도 충분한데."

"네가 못할까 봐 붙여 주는 게 아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려고 하는 거지. 그리고 말한 것처럼 검산파의 일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 없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냥 같이 움직여."

"아니, 그래도 괜히……."

백아린의 대꾸에도 뭔가 도움을 받는 것이 머쓱한지 단엽이 말을 이어 가려던 때였다.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단엽."

"……?"

"같이 다녀와."

"말은 알겠는데 굳이 내 일에 이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대답하는 단엽을 향해 천무진이 표정을 찡그린 채로 입을 열었다.

"무슨 멍청한 소리야. 그게 왜 너만의 일이야. 우리의 일이지."

생각지도 못한 천무진의 말에 단엽이 움찔했다.

우리? 우리 일이라고?

단엽은 천무진에 이어 백아린,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지나며 나름 친해지긴 했지만 이들과 자신의 사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어쩌다 보니 얽혔고, 하나같이 재미있는 이들이다.

뛰어난 실력자들이라 언젠가는 한 번씩 싸워 보고 싶은 상대들.

그저 그 정도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천무진의 그 한마디에 처음으로 단엽은 이들과 자신 사이의 관계가 생각보다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엽이 괜스레 머리를 긁으며 모르겠다는 듯 툴툴거렸다.

"뭔 소린지 모르겠네."

허나 이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

"좋아, 그럼 일정대로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두 명씩 나눠서 움직이자고. 추후에 만날 장소는 다시금 일정 계산해서 정리하도록 하고."

천무진의 말이 끝나자 백아린은 옆에 있는 한천을 툭툭 치고는 이내 말했다.

"저희는 잠깐 의뢰를 할 게 있어서 다녀올게요."

"엇, 저는 시켜 둔 술이……."

한천이 아래에 시켜 둔 술이 생각나는지 말을 내뱉다가 이내 가볍게 흘겨보는 백아린의 시선에 다급히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이내 단엽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제발 나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약속은 못 하겠는데?"

단엽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고, 그런 그에게 한천은 울상을 지어 보였다.

한천을 뒤로한 채로 백아린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이내 한천이 재차 단엽에게 말했다.

"꼭 남겨 놔."

그 말을 끝으로 한천은 먼저 움직인 백아린의 뒤를 서둘러 쫓았다.

커다란 마을인 서안이니만큼 이곳에도 적화신루의 거점이 있었고, 의뢰를 하기 위해 두 사람은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적화신루의 거점을 향해 나아가던 도중 백아린이 입을 열었다.

"하아, 그나저나 둘을 보내기로 하긴 했는데 영 불안하네."

"뭐가요?"

"술 마시다가 사고 치는 거 아냐?"

"에이, 저희가 무슨 애도 아니고……."

"차라리 애는 혼내기라도 하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백아린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로 걸음을 옮기던 두 사람이 마침내 인적이 없는 장소에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한천이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급히 의뢰를 하실 거라뇨? 그게 뭡니까?"

한천의 질문에 백아린이 답했다.

"단엽에 관해서."

"……뒷조사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그럴 리가. 그 녀석처럼 단순무식한 사내를 굳이 뒷조사할 게 뭐 있어.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물어보기만 해도 술술 말해 줄걸. 돈도 안 들고 시간도 절약할 방법이 있는데 의뢰는 무슨."

"그럼 뭘 하시려고요?"

물어 오는 한천을 향해 백아린이 곧장 답했다.

"단엽이 죽일 그자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나환위에 관해서 말입니까?"

"응.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갑자기 그는 왜요?"

"부총관도 알잖아. 나환위를 죽인 이후 어떤 후폭풍이 밀려올지."

백아린이 준비하려고 하는 건 혈우일패도 나환위가 죽은 이후의 일이었다.

분명 그를 죽임으로써 단엽은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무림에서 선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는 자니까.

직접적인 위험이 생길 수도 있고, 어쩌면 많은 이들을 적으로 돌리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단엽이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건 안다. 그 같은 것들이 무서워서 하려는 일을 멈출 사내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들어 주면 된다.

단엽이 나환위를 죽인 일이 정당하다는 그 명분을 말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 백아린은 적화신루의 정보망을 움직이려 하는 것이었다.

굳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천은 이미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뭔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한천이 슬며시 미소를 짓는 그때였다.

백아린이 담담하게 말했다.

"지켜 줘야지. 동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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