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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43화 (293/293)

143화. 화산 ― 아직 안 돼 (1)

백아린의 빠른 판단으로 내린 명령.

소맷자락 안에 있던 치치가 은밀하게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이내 치치는 바닥 한쪽에 굴러가 자리한 붉은 보석을 향해 재빠르게 달려 나갔다.

타다다닥!

백아린이 몸으로 가리고 있는 덕분에 뒤편에서는 볼 수 없는 재빠른 움직임들이 이어져 가는 그 순간.

소소홍이 불만스레 입을 열었다.

"뭐 하냐고 했잖아. 내 말 안 들리는 거야?"

재차 터져 나온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불쾌감.

‘계속 막고만 있으면 오히려 의심을 살 수도 있어.’

뭔가 수상쩍게 보이는 건 피해야 할 일이다.

치치가 이미 보석을 쥐고 움직이기 시작한 걸 확인한 상황이었기에 굳이 더 그녀를 가로막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치치가 탁자 아래로 몸을 감추는 그 짧은 순간만 벌어 주면 그만이었으니까.

백아린은 큰 목소리로 입을 열며 시선을 끌었다.

"뭐야? 또 발작이라도 일으킨 거야?"

말과 함께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는 그녀의 행동에 뒤편에서 표정을 구겨 가던 소소홍이 의아한 듯 물었다.

"발작?"

백아린이 빠르게 몸을 돌렸다.

어깨 너머로 천무진만 슬쩍 보이게 만든 상황에서 그녀가 말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내당주. 저희 쪽 서기관이 종종 발작을 일으키는데 하필이면 지금……."

"설마 구토라도 한 건 아니지?"

"그런 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비켜 봐."

말과 함께 백아린을 옆으로 밀치며 소소홍이 성큼 안으로 들어설 때였다. 몸을 돌려 뒤편의 상황을 확인한 백아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치치가 이미 꽁꽁 숨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덕분이다. 방 안의 상황을 살펴본 소소홍은 불편했던 표정을 한결 풀 수 있었다.

의자가 넘어진 걸 제외하고는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이 없어서다.

혹시 뭐라도 망가진 게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거늘…….

소소홍이 쓰러져 있는 천무진을 향해 막 입을 열때였다.

"넌……."

"왜 이럴 때 발작이 오고 난리야?"

소소홍의 말을 자르며 백아린이 천무진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이내 몸을 낮춘 그녀가 바닥에 엎어진 상황에서 힘겹게 상체만 일으키고 있는 천무진과 시선을 마주했다.

고통이 가득한 표정.

그리고 그 고통스러움 속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안도감까지.

백아린의 빠른 행동 덕분에 훔쳐 나온 붉은 보석을 완전히 감출 수 있었다. 그랬기에 천무진은 이같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안도할 수 있었다.

소소홍을 등진 상태로 백아린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고통으로 하얗게 질린 얼굴과, 힘없는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아파 왔다.

역용술을 펼쳤던 부분도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변장까지 함께한 덕분에 아직까지는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소소홍이 애초부터 천무진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것도 큰 몫을 하긴 했지만.

백아린이 천무진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괜찮아요?』

천무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백아린이 전음을 이었다.

『조금만 참아요. 바로 나갈 수 있도록 할게요.』

서둘러 소소홍과의 일을 매듭짓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녀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일어서려는 백아린의 옷소매를 천무진이 꽉 움켜쥐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녀는 놀란 듯 고개를 돌렸고 바라본 곳에서는 천무진이 입꼬리를 슬쩍 비튼 채로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가 입을 벙긋거렸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 하지만 백아린은 천무진의 입 모양만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천무진이 내뱉은 그 한마디.

고마워.

왜일까?

고맙다는 이 한마디가 이리도 마음을 아리게 하는 이유는.

아마 지금 이같이 새하얗게 질려 버릴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보석을 감췄다는 사실에 안도를 하는 그의 모습 때문이리라.

눈을 치켜뜬 채로 가만히 천무진을 바라보던 백아린은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동시에 방금 전까지 그녀의 얼굴에 가득했던 안타까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상의 역할을 하며 완벽하게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상황. 그녀는 애써 마음을 감춘 채로 소소홍이 있는 탁자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탁자에 기대듯 선 채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내당주님. 방을 어지럽혔군요."

"뭐 맘에는 안 들지만…… 특별히 대상을 봐서 넘어가도록 하지. 그나저나 크게 놀라지 않는 걸 보아하니 자주 발작이 있던 모양이네?"

"자주까지는 아닌데 지병이 있는 탓에 종종 저렇게 발작을 하고 쓰러지곤 해서요."

"그래? 대상도 힘들겠네."

"힘들긴요. 제가 해야 할 일인 걸요."

말을 나누는 사이 백아린의 손은 탁자 아래로 향해 있었다. 그녀가 가볍게 소매를 흔들자 안쪽에 숨어 있던 치치가 보석을 든 채로 휘리릭 뛰어올랐다.

동시에 백아린은 치치의 손에 들린 붉은 보석을 손으로 건네받았다. 소매 안에 준비해 둔 자리에 보석을 넣은 그녀가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곧 아까 보셨던 물건들을 따로 정리해서 이곳으로 보내 드릴 터이니 금액은 그들을 통해 전달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확인하시고 대금을 주시는 걸로 마무리 짓지요."

"그렇게 해. 그리고 아까 한 약조는 잊지 않았지?"

"물론이죠. 앞으로 새로운 물건이 들어올 때마다 내당주님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호호, 그래.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그건 제가 드릴 말씀이지요. 그럼 전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백아린은 곧바로 포권을 취해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녀는 천무진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백아린 또한 여인치고 무척이나 큰 편이었지만 천무진의 키가 워낙 컸던 탓에 자세가 다소 엉거주춤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천무진을 부축한 채로 백아린이 다시 한번 소소홍에게 인사를 건넸다.

"제 아랫사람 때문에 못 볼 꼴을 보여 드려 죄송해요. 나중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사과의 뜻을 전하는 백아린의 옆에서 천무진은 역용술이 풀린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고개를 숙인 채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결례를 용서……."

바짝 마른 목소리로 어렵사리 말을 꺼내는 천무진을 향해 소소홍이 귀찮다는 듯 물러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걸 본 백아린은 재빨리 천무진을 부축한 채로 걸음을 옮겼다.

겉보기에는 어느 정도 천무진이 걷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거의 발에 힘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백아린이 거의 들다시피 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상인 흉내를 내는 상황이었기에 대놓고 힘을 보여 주기보다는 그저 조금의 도움을 주는 듯한 흉내를 내고 있었지만.

그런 백아린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천무진은 심장을 쥐어뜯기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와중에도 애써 발을 움직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를 부축한 채로 움직이던 백아린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버텨요. 거의 다 와 가니까."

마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고 싶었지만 지금 이곳 검산파를 나가기 전까지는 상인의 연기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가슴을 부여잡고 헐떡이는 천무진을 보고 있노라면 계속해서 마음이 약해졌지만, 백아린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천무진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았으니까. 어떻게든 검산파에서의 일을 잘 매듭짓기 위해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계획이 어긋나지 않은 걸 보며 기뻐하던 그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기에…….

꾸욱.

주먹을 꽉 쥐며 백아린은 보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마음이 급한 탓인지 들어올 때보다 몇 곱절은 더 길어 보이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마침내 두 사람은 검산파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을 알아본 입구를 지키던 무인이 인사를 건넸다.

"일이 끝나셨나 봅……."

"비켜요."

백아린이 앞을 막아서는 무인을 슬쩍 노려보며 말했고, 그가 움찔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녀는 뒤도 보지 않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내 검산파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무인들이 시선에서 사라졌을 그 무렵 백아린은 부축하는 척하고 있던 천무진을 급히 등에 업었다.

더는 연기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무공을 사용해야 했기에 백아린은 얼굴에 했던 변장을 빠르게 손으로 지우고, 골격을 바꿨던 역용술도 없앴다.

혹시라도 검산파의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킬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검산파에 드나들었던 상인이 무공을 펼쳐 대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됐으니까.

백아린은 곧장 천무진을 업은 채로 여산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경사는 가팔랐지만 그 정도로 그녀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

팍!

땅을 박차고 도약하는 순간 십여 장에 가까운 거리를 치고 나가는 움직임.

빠르게 달리는 와중에도 백아린은 혹여 천무진에게 충격이 전해질까 싶어 최대한 움직임에 신중을 가했다. 마치 구름 위를 움직이는 것처럼 내달리는 백아린의 모습은 쏘아진 화살처럼 빨랐다.

* * *

백아린이 향한 곳은 자신들의 거처인 중화객잔이 아니었다.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천무진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먼저였다.

그녀는 여산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작 십여 채의 가구들로 구성된 규모는 마을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긴 했지만 한시가 급한 지금으로선 천무진의 상태를 확인하기 가장 적당한 장소인 건 분명했다.

그 자그마한 마을로 들어선 백아린은 곧바로 사람들을 통해 빈방 하나를 돈을 주고 구했다.

덜컹.

문을 열고 들어선 백아린은 옆에 놓여 있는 이불을 꺼내 급히 바닥에 팽개쳤다. 그러고는 곧바로 등 뒤에 업고 있던 천무진을 그 위에 조심스레 눕혔다.

아직까지 하얗게 질려 있는 천무진을 보며 백아린은 그의 손목을 조심스레 짚었다.

‘맥은 정상이야.’

맥을 확인한 직후 백아린은 곧바로 천무진의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는 그의 뒤로 가서 앉았다. 그러고는 양손을 뻗어 천무진의 등에 가져다 댔다.

백아린의 손바닥을 통해 은은한 내력이 천무진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싸아아아.

눈을 감은 백아린은 곧바로 천무진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그녀의 내력이 몸 안으로 퍼지며 곳곳에 있는 기의 흐름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뭐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뭔가가 천무진의 가슴 부분을 시작으로 해서 주변으로 퍼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은 천무진의 몸 안에 있어야 할 내력들의 움직임을 막아서고 있었다.

백아린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섣부르게 그 기운을 건들이지 않았다. 잘못했다가는 치명적인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지만 백아린의 그런 생각은 길지 않았다.

백아린의 내력이 스치듯 닿자 그 기운이 조금씩 움츠러드는 것 같더니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깜짝 놀랐던 백아린이지만 이내 확신이 들었는지 조금 더 많은 기운을 그 정체불명의 뭔가를 향해 쏘아 보냈다.

그러자 그것은 더 옅어지더니 이내 점점 작아져 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천무진의 거칠었던 숨소리 또한 잦아드는 것이 귓가로 들려왔다.

그렇게 약 일 각가량 조심스레 내공을 움직이던 백아린이 천무진의 등에서 손을 뗐을 때였다.

"하아."

천무진의 입에서 터져 나온 깊은 한숨.

동시에 그의 입술을 타고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깜짝 놀란 백아린이 황급히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마주한 채로 물었다.

"괜찮아요?"

"……보시다시피."

천무진이 소매로 입가를 닦아 내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분명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 훨씬 괜찮아 보였다. 아까보다 훨씬 또렷해진 목소리로 대답하는 천무진의 모습을 보는 순간 백아린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밀려왔는지 그녀는 천무진의 앞에 바로 마주 앉았다.

그러고는 그의 얼굴을 비롯한 몸 곳곳을 손으로 만지며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몸 찬 거 봐."

얼음장 같이 차가운 손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어 나가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천무진이 바짝 마른 입술을 힘겹게 들썩였다.

"……좀 눕고 싶은데."

"아, 미안해요."

백아린이 황급히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몸 전체가 마치 쇠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린다. 아까의 고통이 사라지긴 했지만 천무진의 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었다.

버티기 힘들었는지 천무진이 천천히 자리에 누웠다.

백아린은 그런 천무진을 가만히 바라봤다.

사실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백아린은 아무런 것도 묻지 않았다. 당장에는 그런 걸 확인하는 것보다 그가 쉬는 게 더 급선무였으니까.

자리에 누운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잠시만…… 쉴게."

"네, 제가 옆에 있을 테니 걱정 말고 푹 쉬어요."

백아린의 말에 천무진은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백아린의 얼굴에서 수심이 가득 느껴졌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일까?

천무진은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런 모습에 백아린이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그럼 어떻게 해. 옆에 앉아서 그렇게 아픈 자식을 바라보는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데."

천무진의 그 말을 듣고서야 백아린은 자신의 표정이 그렇게 심각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황한 듯 스스로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는 백아린을 향해 시선을 준 채로 천무진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자면 나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사실 천무진은 백아린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매번 도움을 받아 왔지만 오늘 역시 그녀 덕분에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으니까.

고맙다는 말로도 모자랄 정도의 이런 감정을 뭐라 설명해야 좋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뭔가 더 말을 하기에는 천무진의 몸이 버텨 주지를 못했다.

그 말을 끝으로 슬그머니 눈을 감은 천무진은 곧바로 혼절하다시피 잠에 빠졌다. 백아린은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곧바로 한쪽에 자리하고 있던 이불 하나를 꺼내어서 천무진에게 덮어 줬다.

혹여라도 자신 때문에 자는 것이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는지 백아린은 자리에서 금세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방 바깥에서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방을 막 빠져나가려던 백아린의 시선에 이불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는 천무진의 한쪽 손이 보였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손이 기억난 그녀가 몸을 굽혔다. 그러고는 이불 속에 넣어 주기 위해 빠져나와 있는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조심스레 잡은 손.

‘……여전히 차네.’

걱정이 되어 차가운 손을 막 이불 안에 집어넣어 주고 움직이려던 그때였다.

꽉.

손을 떼려는 그 순간 천무진이 그녀의 손을 갑자기 움켜쥔 것이다. 천무진의 손길에 백아린이 움찔하며 그의 얼굴을 확인했지만 작게 들려오는 숨소리를 보건대 잠에 빠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차가운 손은 마치 놓고 싶지 않다는 듯 그녀를 꽉 움켜잡고 있었다. 마치 옆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당황스럽다는 듯 마주 잡은 손을 바라봤다.

‘이걸 어쩌지?’

상대는 잠들어 있는 상태. 억지로 풀려고 하면 손을 빼내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반쯤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던 그녀는 오히려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듯 잡고 있는 천무진의 손을 오히려 더욱 꼬옥 잡아 줬다.

차가운 그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백아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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