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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48화 (147/293)

148화. 격돌 ― 실수였거든 (2)

꼬맹이라 말하는 나환위의 모습에 단엽은 그가 자신을 기억해 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단엽은 기분이 좋았다.

적어도 이제 다시는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하게 될 테니까. 물론…… 오늘 이 자리 이후에 그가 살아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단엽이 여전히 손을 움켜쥔 상황에서 입을 열었다.

"이제 기억이 났나 보네?"

"……."

나환위는 선뜻 대답을 하기 어려웠다.

물론 대내외적으로는 별문제가 없었던 사건이다. 오히려 자신은 산채에 납치당한 이들을 구해 낸 것으로 더욱 위명을 떨쳤었다.

당시 산채에 납치되어 있던 이들 또한 그 모든 것이 자신들의 계획이었다는 것도 모르고 오히려 일을 꾸민 당사자인 나환위에게 고마워하는 상황.

‘하필이면 그 꼬마가 대홍련의 부련주가 되었단 말인가?’

당시 쓰러진 채로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질러 대던 꼬마를 비웃으며 한마디를 던졌던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런 자그마한 방심이 이렇게 큰 칼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침묵하는 나환위를 향해 단엽이 말했다.

"왜?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고 싶은 건 아니지?"

"……그럴 리가. 난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네."

꺾여 비틀려 버린 왼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억누르며 나환위가 답했다.

어차피 증거는 아무런 것도 없다.

그저 어린 날의 단엽에게 자신이 웃으며 말했다는 기억 그 하나뿐이거늘, 고작 그거로는 자신이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트릴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을 기억해 내고도 전혀 잘못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나환위였지만 단엽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범주 안에서의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단엽이 몸을 더 밀착시키며 입을 열었다.

"좋은 대답이야. 사실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기를 더 바랐거든."

"……네가 이겼다 생각하느냐? 까불지 마라!"

캉!

말과 함께 나환위가 권갑에 막혀 있던 도를 힘껏 밀어붙였다. 덕분에 잠시 벌어진 틈으로 그가 빠르게 자신의 무기를 비집어 넣었다.

파앗!

팔을 노리고 날아든 공격, 그랬기에 단엽은 움켜쥐고 있던 나환위의 왼손을 놓으며 뒤로 물러섰다.

팡.

소맷자락이 터져 나갔다.

뒤로 물러서는 단엽을 보며 나환위는 미간을 찌푸렸다. 왼손 다섯 손가락의 뼈마디 모두가 박살이 나 버렸다.

‘왼손은 이제 쓰기 힘들겠군.’

가뜩이나 뭔가 자신이 밀리고 있었던 상황, 거기에 왼손까지 이렇게 되어 버리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리고 역시나 무엇보다 신경이 쓰이는 건…….

뒤편에 있는 자운의 존재였다.

이름을 떨치는 젊은 고수라고는 해도 자신이 질 가능성은 일 할도 없다 여겼다. 그러니 혼자서도 전혀 문제없다며 호언장담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자신이 모습을 보라.

이처럼 우스운 꼴이라니…… 자운의 눈에 어찌 보일지가 너무나 신경 쓰였다.

‘시간을 더 끌어선 위험해.’

잃게 된 왼손.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상황은 자신에게 더욱 불리하게 흘러갈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공격으로 승부를 내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현명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이거겠지.’

스르릉.

커다란 도를 옆으로 눕힌 채 슬며시 어깨 위로 올렸다. 너무 큰 힘이 뿜어져 나오는 탓에 한 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공.

그랬기에 평소에는 양손을 사용했지만 왼손이 박살 난 지금 임기응변을 보여 주는 것이다.

어깨에 도를 올려 균형을 잡은 나환위가 내력을 끌어올렸다.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도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뒤편에서 이 싸움을 초조하게 보고 있던 자운은 나환위가 무슨 무공을 펼치려고 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단 한 번의 공격.

그것만으로 모든 걸 베어 넘긴다고 알려진 혈라성강참(血羅星强斬)이다.

나환위가 지닌 최고의 무공. 그랬기에 자운은 짐작했다.

‘승부수를 던지려고 하는군.’

그걸 알기에 자운의 표정은 한결 더 진지해졌다.

어쩌면 이번 일격으로 이 싸움의 승패가 결정될 테니까.

혈라성강참을 펼치기 위한 내력을 끌어모은 나환위가 입을 열었다.

"내가 마지막 기회를 주지. 여기서 물러난다면…… 자네는 살 수 있어."

사실 나환위가 최고로 원하는 그림은 이쯤에서 단엽이 알아서 물러나 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면도 서고, 굳이 대홍련과 마찰이 생기는 일도 피할 수 있었다.

허나 그런 그의 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단엽은 곧바로 웃으며 답했다.

"겁먹은 주제에 선심 쓰는 척하긴. 까불지 말고 와 보라고."

"……굳이 죽겠다면야."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기에 나환위는 곧장 어깨에 얹고 있던 도에 더욱 강한 힘을 불어넣었다. 폭발하듯 밀려들던 내공을 감당하기 어려운지 도가 흔들리는 바로 그 찰나!

단엽의 등 뒤로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밀려왔다.

동시에 그의 주먹에 커다란 불꽃이 확 하고 피어올랐다.

열화신공(熱火神功) 삼(三)초 열화풍절(熱火風絶).

상대가 정면으로 승부를 걸어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그를 향해 단엽은 마찬가지로 정면 대결이라는 답을 내려 준 것이다.

‘네깟 놈에게 물러서지 않는다.’

단엽이 성큼 앞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내 그 한 걸음은 곧 두 걸음이, 그렇게 점점 속도가 빨라지던 그의 몸이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피어오른 불꽃이 순식간에 팔목을 넘어 팔꿈치까지 집어삼켰다.

달려드는 단엽의 모습에서는 마치 한 마리의 성난 맹수가 비치는 듯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오는 단엽의 모습을 보며 나환위는 서둘러 도를 움직였다.

부웅, 붕!

단 한 번의 베기.

그걸로 끝을 내야만 한다.

"받아랏!"

소리를 내지른 나환위가 도에 맺힌 강기와 함께 단엽을 향해 껑충 뛰어올랐다. 서로를 향해 일격필살의 공격을 펼치는 두 사람에게 뒤는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두 사람의 주변에서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쿠웅, 쿵!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두 개의 힘이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동시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붉은빛이 나환위의 도에서 터져 나왔다.

"윽!"

자운조차도 손을 들어 올려 시야를 보호하며 껑충 뒤로 뛰어올랐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충돌한 두 개의 힘.

쾅쾅쾅!

우지끈!

땅에 깊숙이 박혀 있던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목들이 뽑혀져 사방으로 날아갔다.

"진형을 갖춰라!"

놀란 화산파 무인들은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각자의 자리로 가서 날아드는 나무나, 바위들을 쳐 내기 급급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화산파 장문인의 여식인 양소유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놀란 듯 눈을 치켜뜨고 지금 이 상황을 온전히 체감해야만 했다.

화산파에 몸담고 오랜 시간을 지내 온 그녀조차도 이 정도 수준의 무인들끼리 생사를 건 격돌을 하는 건 처음 보는 것이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친 바람이 시야를 어지럽히는 지금.

승자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머리에 떠오르는 그 순간이었다. 전방을 주시하던 자운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젠장."

그 욕설을 듣는 순간 양소유는 알 수 있었다.

이 싸움의 승자가 누구인지.

걷혀 나가기 시작하는 흙먼지 속에서는 두 사람이 여전히 똑바로 서서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의 상태는 완전히 달랐다.

바짝 붙어 있는 두 사람.

나환위의 어깨에는 부러진 도가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도의 날을 잡고 어깨에 박아 넣고 있는 건 단엽이었다.

어떻게든 더 깊게 박히는 걸 막으려는 듯 마찬가지로 부러진 도의 날을 움켜잡고 있었지만, 힘에서 이미 차이가 나는 걸 경험하지 않았던가.

조금씩 도가 깊숙이 몸 안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으으윽!"

부러진 도가 점점 깊게 박히며 나환위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환위의 도를 박살 낸 건 역시나 단엽의 주먹이었다.

충돌한 상황에서 단엽의 힘을 버텨 내지 못한 도가 결국 박살이 나 버렸고, 그걸 허공에서 움켜잡은 그가 곧바로 나환위의 어깨에 박아 넣어 버린 것이다.

나환위가 부상을 입은 건 비단 지금 도가 박힌 어깨뿐만이 아니었다.

두 다리 중 하나는 이미 피투성이라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고, 머리에도 치명상을 입었는지 얼굴도 피투성이다.

엉망이었던 상의는 아예 보이지 않았고, 드러난 상체는 피투성이에 심지어 깊게 파인 상처까지 있어 조금만 건드리면 몸 안에 있는 내장들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물론 단엽도 아예 멀쩡할 순 없었다.

최고의 절기끼리 격돌하며 퍼져 나온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으니까.

평소보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

끼고 있는 권갑 사이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 아마도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저 권갑 안쪽 주먹 역시 꽤나 다친 것이 분명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단엽의 부상은 나환위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을 정도였으니까.

조금만 더 깊게 부러진 도가 틀어박히면 그 즉시 심장이 찢겨져 나갈 수 있는 상태였다.

"크으으으."

연달아 터져 나오는 나환위의 신음.

그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간신히 상황을 버텨 내고 있었다. 사실 지금 단엽은 양손이 모두 온전한 반면, 나환위는 오직 한 손만 사용할 수 있었던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깨로 박아 넣은 도를 쥐고 있는 건 단엽의 한 손뿐이었다.

나환위가 버틸 수 있는 건 그 때문이었다.

만약에 지금이라도 단엽이 두 손을 쓴다면 나환위는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상황을 보게 된 나환위의 수하들, 비월조가 서둘러 무기를 뽑아 들었다.

"대장!"

허나 그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수하들은 당황한 얼굴로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서둘러 돕지 않으면 나환위의 숨이 끊어질 것 같았지만 일대일의 대결이었다.

거기에 대장인 나환위가 물러서 있으라고 했던 상황인지라 함부로 끼어들기엔 맘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멈칫하는 비월조의 모습을 보며 자운이 표정을 구겼다.

‘뭣들 하는 거야! 당장이라도 가서 도와야지!’

자신이 직접 움직이기는 애매한 상황인지라 자운으로서는 비월조가 뭔가를 해 주기 바랐다. 허나 그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자운은 명령이 없다면 쉽사리 움직일 이들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어떻게 하지? 이대로 죽게 둬? 하지만 지금은 분명 천룡성에 타격을 줄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인데…….’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어 가고 싶었던 자운은 서둘러 생각을 쥐어짰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젠장, 결국 내가 나서야겠군.’

가능하면 훗날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왕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새로운 작전을 펼쳐야만 했다.

당장 최우선의 목표는 단엽의 죽음이다.

물론 운이 좋아 나환위가 살면 더 좋겠지만 그 과정에서 죽게 되더라도 어차피 단엽만 제거할 수 있다면 실보다는 득이 더 많다.

어떻게 해서든 단엽을 죽인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자운이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앞으로 성큼 나섰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만하시죠."

차가운 자운의 목소리.

히죽거리며 나환위의 어깨에 박힌 도를 움켜쥐고 있던 단엽이 슬쩍 시선을 옆으로 향하며 자운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내 짧게 말했다.

"화산파는 빠져."

"여태까지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 되겠군요. 승패는 이미 어느 정도 난 것 아닙니까? 여기서 그만하시지요."

그만 멈추라 말을 하고 있었지만 자운은 알고 있었다.

단엽이 결코 손을 거두지 않을 거라는 걸.

그리고 그런 자운의 생각은 적중했다.

단엽이 비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싫은데? 내 싸움을 왜 네놈이 끝내라 마라 말하고 있어. 이 싸움의 끝은…… 내가 정해."

"분명 말했습니다. 경고는 이번 한 번뿐입니다. 손을 거두시죠."

말과 함께 자운이 자신의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어차피 처음부터 직접 손을 써서 나환위를 구해 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를 이용해 비월조도 움직이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조금씩 도움을 줘서 지금 부상을 입은 단엽을 쓰러트리려 하고 있었다.

자운이 움직이자 화산파의 무인들 또한 덩달아 무기를 뽑아 들려고 하는 찰나였다.

양소유가 손을 들어 올렸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움직임이 뜻하는 바는 확실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장문인의 여식인 그녀의 명령에 검에 손을 가져다 댔던 화산파 무인들이 움찔하며 결국 움직임을 멈췄다.

뒤편에서 느껴지는 그런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한 자운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화산파 무인들까지 함께 움직여 줘야 더 명분이 서거늘 눈치 빠르게 선수를 쳤군.’

그 사실이 못내 아쉬웠지만 지금은 그런 일들에 연연할 때가 아니었다.

단엽을 제거하기 위해선 우선 나환위를 살려 두는 게 먼저였으니까.

적어도 단엽의 숨을 끊는 게 자신이면 안 됐기 때문이다.

막 단엽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려던 찰나.

스윽.

갑자기 옆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탓에 자운의 움직임이 멈췄다.

한천이었다.

자운이 표정을 찡그렸다.

"넌……."

"설마 일대일 대결에 낄 생각이십니까? 그것도 화산파에서 위명 높기로 유명한 자운 대협이 말입니다."

"시끄럽다. 당장 비켜라."

"그럴 순 없죠. 지금 저 싸움에 대협이 끼시는 건 반칙이니까요."

"감히……!"

말과 함께 빠르게 검이 뽑혀져 나왔다.

차앙!

뽑혀져 나온 자운의 검은 한천이 쓰고 있던 죽립의 앞부분을 정확하게 베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런 자운의 움직임에 한천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위로 솟구쳤다가 떨어져 내리는 잘려진 죽립.

툭.

죽립 조각이 떨어진 직후 차가운 시선과 함께 자운이 입을 열었다.

"이번엔 손속에 사정을 두어 죽립으로 끝났지만 계속해서 이리 내 앞을 막는다면 다음엔…… 네 목이 이리 떨어지게 될 것이다."

자신이 검을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꼼짝도 하지 못한 상대.

관심도 없다는 듯 한천을 지나쳐 가려고 할 때였다.

한천이 앞으로 손을 쭉 내밀며 입을 열었다.

"워워워. 끼면 반칙이라니까 그러시네."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게냐?"

"흠, 어쩌지. 죽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죠. 그럼 역시 답은 하나겠군요."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하던 한천이 죽립을 아래로 꾸욱 눌러 살짝 드러난 얼굴을 다시금 감췄다.

그가 자세를 잡았다.

허리춤에 있는 검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댄 한천이 슬그머니 손가락을 움직였다.

스르릉.

손가락에 밀려 나가며 검의 일부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검도 뽑지 않은 채로 자운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 상대의 모습을 보며 자운이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좌수검이군.’

자세가 왠지 조금 특이하다 싶더니 왼손을 사용하는 모양이다.

허나 잠시 시선이 갔을 뿐 관심은 곧장 사라졌다.

어차피 자신의 적수가 되지 못할 자다.

뭘 믿고 이리 까부는지 모르겠지만…….

자운은 아무렇지 않게 방금과 똑같이 검을 휘둘렀다.

휘익!

이들을 직접 죽일 생각은 없었기에 협박과는 달리 다시금 죽립을 노리고 날린 공격.

그런데…….

캉!

들려선 안 될 소리와, 느껴져선 안 될 감각이 그를 당황하게 했다.

어느덧 뽑혀져 나온 한천의 검이 날아든 자운의 공격을 받아 낸 것이다.

당황한 얼굴을 한 자운을 향해 한천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선수는 양보해 드렸으니…… 예의는 갖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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