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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52화 (151/293)

152화. 화산파 ― 생각났을 뿐이야 (2)

방 내부를 두리번거리던 조수아가 입을 연 건 바로 천무진이 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직후였다.

"장문인, 천룡성 무인이 왔다고 들었는데 어디에 간 거죠?"

물어 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려 왔다.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등장에 잠시 당황했던 양우조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있지 않은가."

"눈앞요?"

의아하다는 듯 말하는 그 순간 천무진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천무진입니다."

"아……."

대답을 하는 천무진을 바라보는 조수아의 얼굴에 맺힌 실망 가득한 표정. 그걸 보는 순간 천무진은 알 수 있었다.

‘사부를 생각하고 있었나 보군.’

조수아가 이토록 다급히 왔던 이유, 그건 바로 천무진의 사부인 천운백이 이곳에 온 것이라 여겨서였다. 천룡성의 무인이 나타났다는 말에 당연히 그를 떠올렸던 그녀다.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속내도 모르고 양우조가 물었다.

"대체 사매가 여긴 어쩐 일인가? 그리 연락을 해도 코빼기도 안 비추더니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로 이리 나왔는가."

"……이번에 팔순이라고 하셨죠? 축하드려요, 장문인."

자신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밝히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기에 조수아는 은근슬쩍 말을 돌렸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대답을 회피한다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지만 양우조 또한 그것에 대해 더는 캐묻지 않았다.

이렇게 말을 돌린다는 것 자체가 대답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캐물을 만한 사안이 아니라 여겼기에 결국 양우조는 모르는 척 넘어가 줬다.

"허허, 팔순이라. 사매도 나도 참으로 많이 늙었군그래."

"아직 정정하신걸요."

"그래 보인다면 다행이지. 아 참, 그런데 갑자기 비틀거리시던데 혹시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양우조가 천무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이마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던 천무진이 쓰러질 뻔했고, 그런 그를 옆에 있던 백아린이 거의 안듯이 부축했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보았기에 혹시 어디 안 좋은 곳은 없는지 물은 것이다.

더불어 천룡성의 무인인 천무진을 아무렇지 않게 부축하는 백아린이라는 여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살폈다.

둘 사이에 꽤나 깊은 친밀감이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물어 오는 양우조의 질문에 천무진이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좀 지쳤나 봅니다."

"아, 그렇군요. 먼 길 오신 손님을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나 봅니다. 치료가 끝나셨다면 우선 제가 마련해 둔 거처로 가서 쉬시지요."

"감사합니다."

대화가 끝나자 양우조는 곧바로 가볍게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의방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인 하나가 재빠르게 모습을 드러냈다. 화산파 무인인 그를 향해 양우조가 명령을 내렸다.

"손님들을 모시거라."

"명 받듭니다."

부복한 채로 짧게 대답한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천무진 일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절 따라오시죠."

"그럼 이만."

천무진이 대표로 양우조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이내 걸음을 옮겼다. 먼저 움직이는 그를 따르기 위해 나머지 세 사람이 뒤를 쫓을 때였다.

스윽.

스쳐 지나가는 천무진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조수아를 힐끔 살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조수아 또한 그런 천무진과 가볍게 시선을 맞췄다.

그렇게 잠시 시선을 맞췄던 두 사람은 곧장 멀어졌고 조수아는 가만히 선 채로 비어 버린 공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옆에 있던 양우조가 입을 열었다.

"사매."

"아. 네, 장문인."

"오랜만에 봤는데 차라도 한잔 어떤가?"

친근하게 물어 오는 양우조를 바라보며 조수아가 애써 생각을 지우며 씩 웃었다.

"좋죠."

천무진 일행이 안내를 받은 곳은 화산파 내에 있는 커다란 장원이었다. 방의 개수도 꽤나 많아 각자 배정받을 수 있었고, 그 모두가 독채였다.

화산파가 큰 문파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이 정도 크기의 거처가 많은 건 아니었다.

그만큼 천무진을 특별하게 대우를 해 주고 있는 셈이었다.

거처로 안내받은 천무진은 이내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다들 고생 많았을 텐데 오늘은 푹들 쉬어. 시간도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보자고."

"아고, 몸이 늘어지는 게 독한 술 한잔하면 푹 잘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한천이 길게 기지개를 피며 말을 받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단엽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한잔할까?"

"뭔 소리야 환자가. 너 때문에 못 마시는 거거든?"

"쳇."

곧장 돌아오는 한천의 핀잔에 단엽이 혀를 찰 때였다. 백아린이 말했다.

"술들은 꿈도 꾸지 말고 각자 방에들 가서 쉬어. 그리고…… 잠시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죠?"

"물론이지."

"그래요. 그럼 당신 방으로 가죠."

말을 끝낸 백아린은 곧장 천무진과 함께 배정된 거처로 향했다. 천무진에게 주어진 독채는 주변에 커다란 나무들이 몇 그루가 자리하고 있어, 무척이나 경관이 좋았다.

그렇게 거처 안으로 들어서자 백아린은 곧장 입을 열었다.

"몸 괜찮아요?"

"역시 그거 때문이었군.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혹시 검산파에서 있었던 그 일의 여파는 아니죠?"

아까 아니라는 대답을 듣긴 했지만 그곳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일부러 그런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그녀의 물음에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던 대로 그냥 기억나지 않았던 과거가 하나 떠올랐을 뿐이야. 갑자기 그게 떠오르면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오더군."

"기억나지 않았던 과거라면 뭘 말하시는 거죠?"

"사부가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이 났거든."

천무진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전해 들은 백아린이었기에 그녀는 대충 어떠한 상황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검산파에서 보석을 훔친 이후 찾아왔던 정체불명의 고통이 아니라는 말에 그나마 안심이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아린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요?"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할 수도 있다 생각한 그녀가 걱정을 내비치자 천무진은 피식 웃었다.

"괜찮지 그럼. 오히려 생각나 줘서 고마울 정도야."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요."

"어쨌든 너무 걱정하지 마. 몸도 많이 좋아졌고, 다시 그날처럼 아플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알겠으니까 걱정 말고 가서 쉬어. 여기까지 오느라 나보다 당신이 더 고생했잖아."

아픈 천무진을 살피느라, 또 여러 가지 정보들까지 전달받느라 백아린은 화산파에 오는 내내 쉼 없이 움직여야 했다.

가까스로 단엽과 나환위의 싸움이 매듭지어지는 순간 나타날 수 있었던 모든 배경에는 그런 그녀의 노력이 있었던 덕분이다.

가서 쉬라는 천무진의 말에 백아린이 문을 열며 슬쩍 반 정도 몸을 바깥으로 꺼냈다.

자신이 가야 천무진도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다.

가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내 마음이 다 놓이진 않았는지 이내 안에 있는 천무진을 향해 말했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저 부르고요. 꼭요."

"질기긴. 알겠으니까 가서 좀 쉬어."

가는 와중까지 자신에 대한 걱정에 다짐받으려는 듯 말하는 백아린의 행동에 천무진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겠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백아린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약속했으니 믿고 갈게요. 그럼 푹 쉬어요."

"당신도."

말을 끝낸 백아린이 문을 닫다가 갑자기 문틈 사이로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그러곤 이내 그 웃는 얼굴로 장난스레 입을 열었다.

"가는 줄 알았죠?"

생각지도 못한 그 행동에 천무진이 픽 하고 헛웃음을 터트렸을 때였다.

백아린이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럼 진짜 갈게요."

말을 끝낸 그녀는 이번엔 정말로 문을 닫았다.

뚜벅뚜벅.

닫힌 문 건너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를 천무진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이내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그제야 천무진은 자신의 짐을 내려놓고 침상에 걸터앉았다.

침상에 앉은 천무진이 중얼거렸다.

"하여튼 특이하다니까."

말을 끝낸 천무진은 곧장 침상 위에 벌러덩 몸을 뉘었다.

방금 전에 방을 나간 백아린을 생각하니 재차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것과는 참으로 다른 여인이다. 어찌 보면 백아린은 무척이나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지니기도 했다.

정보 단체의 인물답게 일 처리에 있어서도 깔끔하고, 뭐든 칼처럼 잘라 낸다.

당연히 무척이나 냉정할 거라 여겼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그녀는 따뜻한 여인이었다.

누군가를 걱정하고 배려해 주는 행동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은근히 장난기도 있으면서도, 또 상대의 마음도 헤아리는 성품을 지녔다.

저번 삶에서 당했던 경험 때문에 차갑게 변해 버린 천무진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따뜻함을 가진 여인.

침상에 누워 방금 전 백아린의 행동을 생각하며 웃고 있던 천무진은 이내 스스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천무진은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렇게 자주 웃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과거로 돌아온 이후 처음 거울을 보며 억지로 짓던 미소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다시 이렇게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게 된 게.

천무진이 막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였다.

자신이 있는 거처를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 누워 있던 천무진이 벌떡 일어나 입구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이내 문을 열어젖히며 막 입을 열었다.

"쉬라니까 왜……."

백아린이 돌아온 것이라 생각하며 말을 던지던 천무진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천무진의 눈앞에 있는 건 백아린이 아니었으니까.

조수아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부드러웠던 표정이 한결 딱딱하게 변하는 그 순간 조수아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시간 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대화를 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천무진이 답했다.

"제 사부님에 관련된 이야기겠군요."

천무진이 무덤덤하게 대답했지만, 당사자인 조수아는 움찔했다.

"알고…… 있었어요?"

물어 오는 그녀를 향해 천무진은 옆으로 몸을 비켜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줬다. 그러곤 짧게 말을 이었다.

"우선 들어오시죠."

* * *

천무진의 거처에 조수아가 나타났을 그 무렵.

백아린은 자신의 거처로 향하고 있었다. 독채 앞에 위치한 연못을 지나쳐 자신의 거처로 들어서던 백아린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독채의 입구 앞에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던 탓이다.

그리고 그가 누군지 백아린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의아했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백아린이 채 의아함을 지우기도 전, 거처 앞에서 기다리던 그자 또한 그녀를 발견했는지 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백아린과 거리를 좁혀 오는 그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화산파의 자운이었다.

화산파를 대표하는 고수이자, 천무진이 찾고 있는 십천야의 일인인 그가 바로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천무진은 엄밀히 따지면 맹주파다. 그리고 자운은 그 반대편에 위치한 이들의 수장.

당연히 백아린 또한 이 사내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자운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오십니까?"

걸어오는 대화에 백아린이 불편한 표정을 감춘 채로 물었다.

"설마 절 기다리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거리를 좁힌 채로 말을 이어 가는 그를 보며 백아린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도저히 이 사내와 자신이 만나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결국 그녀가 물었다.

"왜요?"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

그런 백아린을 바라보며 자운이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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