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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62화 (161/293)

162화. 왕도지 ― 우연이라 (2)

백아린의 자신만만한 한마디가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자신이 이긴 건 우연이 아니라는 것.

그런 그녀와 마주한 왕도지는 손에 든 도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시간이 얼마 없다.’

당장에는 천무진이 보이지 않지만, 결국 언제라도 그가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다. 최대한 빠르게 백아린을 제거하고 이곳에 남아 있는 흑주염 역시 모두 없애야 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굳이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고 전략을 짤 여유 따위는 없었다.

부웅!

가볍게 허공을 가르며 도를 움직인 왕도지가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나간 그가 옆으로 움직이는 백아린을 향해 자신의 도를 휘둘렀다. 왕도지의 도에서 순식간에 수십여 개의 도기가 피어오르며 백아린이 움직이는 장소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콰콰콰쾅!

도기가 휩쓸어 버린 공간에서는 큰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부와아악!

흙먼지를 가르며 커다란 대검 한 자루가 밀려들었다. 바닥에 착지하던 왕도지는 밀려드는 공격에 황급히 도를 움직였다.

캉!

그렇지만 힘에서 밀린 탓에 도는 위로 밀려 나갔고, 흙먼지 사이에서 백아린의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나타난 그녀가 반대편 손바닥으로 가슴을 후려쳤다.

장력이 밀려드는 걸 확인한 왕도지가 빠르게 손등을 이용해 날아드는 손바닥을 옆으로 밀쳐 냈지만 아슬아슬하게 장력이 어깨에 적중했다.

"큭!"

상체가 흔들리는 그 찰나의 순간.

허공으로 뛰어올랐던 백아린의 발이 왕도지의 얼굴로 날아들고 있었다.

빠악!

황급히 고개를 숙였지만 날아든 발바닥이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적중당한 왕도지는 몸을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에 백아린의 대검이 균형을 잡으며 빠르게 날아들었다.

허나 왕도지 또한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재빠르게 그가 날아드는 대검을 도로 받아 냈다.

드드드득!

몸이 밀려 나가며 가까스로 공격을 받아 낸 왕도지는 절로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 힘은 뭐야?’

전신이 근육으로 뒤덮였고, 힘이라면 어디 가서도 밀리지 않는다 자부해 오던 그다. 그런 자신이 이처럼 호리호리한 여인에게 힘에서 밀리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자이기에…….

대검을 든 채로 힘 싸움을 걸어오는 백아린, 그런데 점점 밀려 나가고 있는 건 자신이었다.

강하게 밀고 들어오는 백아린과 그걸 어렵사리 버티고 서 있는 왕도지. 그리고 점점 왕도지의 팔이 안쪽으로 꺾이고 있었다.

"으으으!"

왠지 모를 패배감이 치밀어 올랐기에 이를 부드득 갈던 왕도지는 결국 발을 사용해 그녀를 밀쳐 냈다. 그 덕분에 맞닿아 있던 상황에서 벗어나는 건 성공했지만 기분은 썩 유쾌하지 못했다.

자신이 힘 싸움을 견디다 못해 피해 버린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그런 수치심을 지우기 위해서일까?

백아린을 밀어내는 것과 동시에 빠르게 도를 위에서 아래로 후려쳤다. 찰나의 움직임,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도 도에는 어마어마한 내력이 몰려들었고 이내 그것은 강렬한 강기가 되어 쏟아져 나갔다.

폭렬쇄(爆裂碎)!

곤(丨)으로 그어지는 간단해 보이는 움직임.

그런데 그 움직임만으로도 놀라울 만큼 많은 힘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연달아 강기가 바닥을 두드렸다.

두두두두두!

선산을 쪼개 버릴 것만 같은 강기가 연신 바닥을 찢어발기는 그때였다.

백아린의 몸이 빠르게 뒤로 움직이며 공격 범위 안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왕도지가 성큼 걸음을 내디디며 도를 휘둘렀다.

부웅!

백아린은 몸을 낮추며 날아드는 공격을 피해 냈다.

서걱.

그녀의 뒤편에 줄지어 있던 나무들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을 쏘아 보냈지만 백아린은 단번에 알아차리고 그걸 흘려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공격을 쏟아부은 왕도지가 재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다시금 도를 움직였다.

피어오른 강기가 백아린을 덮치려는 그 순간.

그녀의 손에 들린 대검이 허공을 갈랐다.

파파파팡!

강기가 주변으로 밀려 나가며 백아린의 몸이 곧장 왕도지를 향해 치고 들어왔다.

‘이런 망할!’

너무도 쉽게 강기를 받아치며 거리를 좁혀 오는 백아린의 움직임은 치명적이었다. 왕도지는 서둘러 주먹을 휘둘렀다.

그런데 주먹이 향하는 곳은 백아린이 아닌 바닥이었다.

그의 주먹이 향한 곳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힘이 전해지자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며 백아린을 향해 밀려 나갔다.

달려들던 그녀는 시야를 가리며 날아드는 돌을 주먹으로 쳐 냈다.

웬만한 장정보다 커다란 바위의 정중앙에 박힌 백아린의 주먹. 동시에 바위가 가루가 되며 주변으로 쪼개져 나갔다.

그렇게 바위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 회전하고 있는 왕도지가 눈에 들어왔다.

용권풍이 치솟듯 바닥에서부터 회전하던 그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동시에 백아린의 몸 또한 휘둘러지는 도의 간격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카카캉!

연달아 날아드는 도를 백아린은 대검을 이용해 서둘러 막아 냈다.

소맷자락이 바람에 휩싸이며 터져 나갔고, 얼굴에 스치듯 핏줄기가 튀어 올랐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백아린은 침착했다.

결국 중요한 건 이렇게 눈을 어지럽히는 자잘한 공격들이 아니다.

화려함 속에 감춰져 있을 치명적 일격.

그걸 놓쳐선 안 됐다.

그 순간 백아린의 감각 안에 미묘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휘몰아치던 바람이 왕도지의 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순간 왕도지가 백아린을 향해 방금과 전혀 다를 것 없는 공격을 펼쳐 냈다.

허나 뭔가를 알아차린 듯 백아린은 방금과 다르게 슬쩍 옆으로 물러서며 대검으로 그 공격을 받아치기보다는 가볍게 흘려 내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옆으로 밀려 나간 도.

그리고 그 도에서 맹렬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쿠콰콰쾅!

허나 옆으로 도를 흘려 낸 덕분에 그 공격은 백아린의 옆쪽으로 빗나갈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뻐억!

허공에 떠 있는 상태에서 날아든 백아린의 주먹이 비어 있는 왕도지의 복부에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왕도지는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컥컥."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왕도지는 거칠게 숨을 토해 내야만 했다.

회전하던 용권풍 속에 자리하고 있던 자신의 회심의 일격을 옆으로 흘려 낸 것만으로 모자랐는지 그녀는 정확하게 복부에 일격을 꽂아 넣었다.

그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

"……실력이 제법이구나."

말과 함께 도를 고쳐 잡는 왕도지를 향해 백아린이 여유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제야 좀 긴장한 모양이네?"

놀리듯 말을 내뱉는 그녀를 바라보는 왕도지의 눈동자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주란을 이긴 것이 우연이라 믿었다.

허나 직접 손을 겨뤄 보니 알겠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에 백아린이라는 이 여인은…… 너무 강하다.

처음부터 방심은 하지 않았지만 왕도지는 쉽게 여겼던 생각을 조금 바꿨다. 천무진이 나타나기 전에 서둘러 끝내려고 했던 것이 실수였다.

물론 그것이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천무진을 신경 쓰기에 앞서 당장 눈앞에 있는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다른 경우의 수까지 염두에 두며 싸워서 이길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자세를 잡은 왕도지의 도에서 은은한 도기가 피어올랐다.

방금 전처럼 파괴적인 힘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더욱 날카로워진 기세가 풍겨져 나왔다.

그만큼 그가 지금 이 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기도 했다.

유혈마라절도(有血魔羅絶刀).

왕도지가 익힌 도법으로 움직임은 간결하지만 그만큼 공격 하나하나가 상대를 압도해 가는 무공이다.

그의 장점인 신체적 능력을 십 할 발휘할 수 있는 무공이기도 했다.

타악.

발이 앞으로 내뻗어지며 땅을 밟기 무섭게 손에 들린 도가 백아린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타앙! 탕!

백아린은 재빠르게 공격을 받아 내며 마찬가지로 묵직한 대검을 움직였다.

부웅!

캉!

흘리지 않고 받아 내긴 했지만 백아린의 대검에 실린 힘 때문인지 뒤편에 있던 나무가 흔들렸다.

대검과 도가 맞닿는 그 순간 두 사람의 내력이 폭발했다.

쿠아아앙!

서로를 향해 쏟아져 나가는 내력.

그리고 둘의 몸이 동시에 뒤로 밀려 나갔다.

허나 둘은 곧바로 지지 않겠다는 듯 자세를 고쳐 잡고는 상대를 향해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카캉! 캉! 카앙!

힘 대 힘의 대결.

서로의 장점인 힘으로 맞붙는 순간 그저 무기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주변의 것들이 초토화가 되며 으깨져 나갔다.

백아린의 대검이 그의 도를 밀쳐 내며 빈틈을 파고들었다.

피잇!

서둘러 몸을 움츠린 덕분에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지만 팔뚝에 길게 베인 상처가 생겨나 버렸다. 허나 그 상황에서도 왕도지는 이를 악물고 공격을 펼쳤다.

지금 일격을 허용했다고 뒷걸음질 친다면, 그 순간 백아린의 공격이 휘몰아칠 것을 너무도 잘 알았으니까.

빠른 판단 덕분에 연달아 움직이려던 백아린은 휘몰아칠 흐름을 잃고 슬쩍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숨을 돌리는 짧은 찰나 그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던 왕도지가 뒤로 두어 걸음 껑충 물러서더니 이내 빠르게 도를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하늘을 향해 치켜 오른 도.

그의 도에서 도강이 치솟아 올랐다.

부아아악!

순식간에 위쪽으로 솟구쳐 오른 도강은 산을 반 토막 낼 것처럼 맹렬한 기운을 쏟아 냈다.

백아린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건 위험해.’

엄청난 내력이 실린 일격. 어중간한 정도로 받아 냈다가는 오히려 밀려드는 내력에 내상을 입게 될 수도 있었다.

상황이 그랬기에 백아린 또한 왕도지의 도강을 상대하려는 듯 하나의 무공을 펼쳤다.

그녀의 선택.

그건 바로 검왕의 무공인 나선칠선파였다.

나선칠선파를 펼치기 위해 백아린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팽이처럼 회전하기 시작한 몸, 그녀의 주변으로 밀려드는 일곱 개의 나선 모양의 고리까지.

도강이 워낙 빠르게 날아들었기에 백아린은 나선칠선파를 채 완성시키기도 전에 그것을 쏟아 내야만 했다.

둘의 힘이 가까운 거리에서 충돌하며 그 충격파가 산을 흔들었다.

쿠웅!

산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 당연히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를 향해 이처럼 위력적인 공격을 펼친 백아린과 왕도지 또한 멀쩡할 수는 없었다.

그 충격을 몸으로 받으며 두 사람이 허공으로 치솟음과 동시에 반대편으로 밀려 나갔다.

균형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밀려 나가던 그 찰나.

허공에서 백아린이 빠르게 왼손을 움직였다.

순간 그녀의 손을 감싸고 있는 붉은 천으로 된 장신구 속에 감춰진 은빛 실.

귀린사가 쏘아져 나갔다.

휘리릭!

귀린사는 빠르게 근처에 있던 나뭇가지에 감겼고, 그걸 이용해 그녀는 뒤로 밀려 나가던 움직임에 반동을 줄 수 있었다.

부웅!

뒤로 밀려 나가던 힘까지 이용해 세게 앞으로 날아든 백아린이 대검을 휘둘렀다.

튕겨져 나가던 상대가 오히려 그걸 이용해 더욱 빠르게 자신을 향해 날아들자 왕도지로서는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젠장!’

가뜩이나 나선칠선파의 충격을 전신으로 받은 상황.

거기다 자신의 몸은 뒤로 밀려 나가고 있었고, 백아린은 반대로 반탄력까지 이용해 달려들고 있는 모양새다.

이대로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을 경우 어느 쪽이 손해일지는 너무도 명확했다.

허나 지금으로선 손해를 보는 것 정도를 두려워할 상황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치명상이 될 수도 있는 공격이었으니까.

피할 수도 없는 상황,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왕도지는 날아드는 백아린의 대검을 도로 받아 냈다.

그렇지만 예상대로 힘을 버텨 내지 못한 그는 그대로 땅바닥 아래로 처박히듯 내리꽂혔다.

콰앙!

"우욱!"

입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고, 등부터 시작해서 손가락과 발가락 전신이 마치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저릿거렸다.

내력이 실린 백아린의 힘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은 형상이었으니 온몸의 뼈가 부서진 듯한 충격을 받는 건 당연했다.

왕도지를 바닥에 처박은 백아린은 그대로 위에서 대검을 곤두세운 채로 떨어져 내렸다.

파앙!

아슬아슬하게 몸을 굴리며 대검을 피해 낸 왕도지가 서둘러 주먹을 휘둘렀다.

재차 공격을 펼치기 위해 달려들던 백아린은 날아드는 권풍을 막기 위해 대검을 옆으로 돌리며 커다란 날로 그 충격을 버텨 냈다.

짧은 찰나긴 하지만 발을 잡아 둔 덕분에 왕도지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서둘러 몸을 일으켜 세운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흐으, 흐으."

그가 숨을 고르며 손등으로 이마를 닦아 냈다.

방금 전 땅에 처박히며 입은 부상으로 피가 묻어 나왔다.

왕도지는 이를 악문 채로 눈앞에 있는 상대를 노려봤다. 서로를 덮친 충격파로 인해 처음과는 달리 다소 흐트러진 모양새였지만, 겨우 그뿐이다.

피를 토하고, 부상을 입은 자신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순간 왕도지의 머릿속에 끔찍한 가정이 떠올랐다.

‘내가…… 진다고?’

허나 이내 그는 머리를 마구 저었다.

그럴 순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가.

십천야다.

세상 위에 군림할 이들의 집단인 십천야!

그런 자신이 이런 곳에서 패할 순 없었다.

왕도지가 다시금 투지를 불태우며 백아린을 노려보고 있는 바로 그때.

그녀가 갑자기 자세를 바꿨다.

스윽.

상체를 낮췄고, 들고 있는 대검은 당장이라도 앞으로 찌를 듯이 치켜세웠다. 그 독특한 모습에 왕도지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때였다.

백아린의 주변에 흐르던 기의 흐름이 매섭게 변했다.

촤촤촤악!

갑자기 백아린의 몸 주변으로 날카로운 칼날을 연상케 하는 검은 색의 검기들이 솟구쳐 올랐다.

새카만 기운들이 이내 모습을 바꿔 마치 꽃잎처럼 피어오르는 그 순간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백아린을 감싸 안았다.

마치 수십여 개의 연꽃잎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듯한 모습.

대검을 치켜든 그녀가 짧게 말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사실 이 무공이 얼마나 강할지는 나도 아직 가늠이 안 되거든."

천무진에게서 건네받은 무공.

잔마폭멸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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