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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65화 (164/293)

165화. 마교행 ― 구하셨습니까 (1)

십천야의 비밀 거점.

그리고 그 비밀 거점에서 통칭 어르신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존재. 언제나 휘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떨려 왔다.

"왕도지가…… 죽었다?"

"예, 어르신."

대답을 하는 건 다름 아닌 정보 단체 귀문곡을 이끄는 상무기였다. 보고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다른 의미로 떨리고 있었다.

곧 터져 나올 어르신의 분노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휘장 안에서 들려온 그의 목소리.

"……흑주염은? 설마 그것까지 넘어간 건 아니겠지?"

"송구합니다만 지금 상황이라면 팔 할 이상의 확률로 제련된 흑주염이 그들의 손에……."

상무기의 말은 채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부웅! 챙!

휘장 안쪽에서 벼루가 날아들었고, 그것이 벽에 부딪히면서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근방에 자리하고 있던 상무기에게 벼루에 담겨 있던 먹물과, 깨어진 파편들이 적잖이 튀었지만 그는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르신의 분노가 얼마나 클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휘장 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가 연신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쾅쾅쾅쾅!

"지금 이게 무슨 꼬락서니란 말이냐! 뭐? 왕도지가 죽은 건 그렇다 쳐도 제련된 흑주염이 천룡성의 손에 들어가? 그걸 지금 내게 보고라고 하고 있느냐!"

"죄, 죄송합니다!"

상무기는 서둘러 고개를 조아렸다.

사실 그의 잘못이랄 건 크게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휘장 안의 어르신이 말했다.

"대체 뭘 하면 한 놈에게 이리도 휘둘릴 수 있단 말이냐? 고작 한 놈이다 한 놈! 그것도 용이 될 수 없는 이무기 따위에게 지금 우리가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느냐?"

이자는 언제나 천무진을 이무기라 칭했다.

용이 될 수 없는 존재.

그랬기에 언제나 우습게 여겼다. 다소 귀찮은 일을 벌여 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았다.

그것이 그리 타격이라 여기지도 않았고, 또한 죽일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건은 아니었다.

십천야 중 하나를 죽였고, 제련된 흑주염을 손에 넣었다. 만약에 천무진이 그걸 통해 흑주염으로 만들어지는 몽혼약의 해독약을 만들어 내기라도 한다면…….

휘장 안의 인물은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입에 가져다 댔다.

잘근잘근.

기분이 좋지 못했다.

그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미리 천무진이 간다는 정보를 주었음에도 왜 그리 당한 게냐?"

"놈들이 생각보다 빨랐습니다. 그리고…… 왕도지를 죽인 건 천무진이 아닌 것 같습니다."

"뭐? 천무진이 아니라고?"

"예, 현재 파악 중인 정황으로 보건대 왕도지를 죽인 건 적화신루 총관인 백아린일 확률이 큽니다."

양가장에 심어 둔 간자를 통해 대충 상황이 진행되어 가던 과정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라면 왕도지가 사라진 이후에 천무진과 단엽이 먼저 모습을 나타냈다 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사내 한 명이 더 나타났다고 하니 그 자리에 등장한 건 한천이라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백아린 한 명뿐이었다.

천무진이 아닌 백아린에게 당했다는 말에 휘장 안의 그림자가 머리를 감싸 안았다.

"하, 또 그 이름이로군."

백아린이라는 이름이 슬슬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대체 뭘 하는 자이기에 고작 적화신루의 총관 따위가 자신들의 앞길을 이리도 막아 낼 수 있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고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분노가 밀려들었지만, 그는 애써 그런 감정을 추슬렀다.

정체불명의 인물이 입을 열었다.

"상무기."

"네, 어르신."

상무기가 눈치를 보며 재빠르게 답한 그때였다.

휘장 속에 자리한 그가 뜻 모를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혹시 모르니…… 천무진에 관련된 일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겠군."

"지, 지금 말입니까?"

상무기가 놀란 듯 되물었다.

천무진과 관련된 일.

십천야 내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되어진 계획 중 하나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은 절대 그 계획을 실행할 때가 아니었지만 휘장 속에 자리한 그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것이다.

물론 그도 당장에 그 계획을 발동시키고 싶진 않았다. 그랬다가는 또 다른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어르신이 말했다.

"물론 당장에는 조금 더 두고 볼 생각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허나 지금보다 더 날뛰면서 우리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그때는 결단을 내려야겠지."

우선 확실히 알아내야 할 건 천무진에게 제련된 흑주염이 넘어갔느냐, 아니냐였다. 그것부터 확인한 이후 앞으로의 일을 확실하게 결정할 생각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천무진의 손에 흑주염이 있는지부터 알아내도록 해. 그리고 마교로 가서 그가 하는 일거수일투족 모두를 감시하고. 시간이 없다. 서둘러."

"예, 그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상무기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서두르라고 하니 기회다 싶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어선 상무기는 곧장 휘장 안쪽을 향해 포권을 취해 예를 갖추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그렇게 상무기가 나간 직후 텅텅 비어 버린 방 안.

홀로 남은 어르신이라는 존재가 의자에서 일어나 휘장 안쪽에서 서성거렸다.

손에 들린 기다란 곰방대를 입에 가져다 댄 그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후우."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던 그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천무진 네놈이…… 용이 되려 하는가."

말을 내뱉은 그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막아야 했다.

세상에 용은…… 하나로 족했으니까.

* * *

섬서성 양가장에서 출발한 천무진 일행은 곧장 마교가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양가장과 마교는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었던 탓에 이동하는 데만 해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길고도 긴 시간을 부지런히 달린 덕분에 어느덧 마교가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차 안에서는 이미 축 늘어진 한천이 죽는소리를 하는 중이었다.

"아이고, 대장. 대체 언제 도착한답니까? 저 죽습니다."

"거의 다 왔다니까 그러네."

말을 하며 백아린은 슬쩍 손에 들린 지도를 살폈다. 사실 마교와는 아직도 조금 거리가 남아 있었지만, 어차피 지금 향하고 있는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었다.

마교에 들어가기 앞서 가고 있는 곳.

다름 아닌 의선과 마의가 함께 있다는 장소였다.

양가장의 선산에서 적잖은 제련된 흑주염을 구해 냈다. 이것이 있다면 현재 의선과 마의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엄청난 진전이 생길 수도 있었다.

선산에서 구한 제련된 흑주염의 삼분지 이 이상은 지금 몇 개의 봇짐에 나눠서 가져왔고, 나머지는 적화신루를 통해 비밀 장소에 감춰 둔 상황이다.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여분의 비상용 재료들을 숨겨 놓은 것이다.

마차에 기대어 앉아 있던 단엽이 바깥을 살피다 중얼거렸다.

"여긴 별로 오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대홍련의 부련주인 단엽은 이곳 마교에 와 본 경험이 있었다. 그랬기에 그가 슬쩍 다른 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 채로 물었다.

"마교에 와 봤던 적 있는 사람?"

"허허, 이런 무서운 곳에 내가 와 봤을 리가."

한천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백아린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나도 마교에는 특별히 온 적이 없어. 여기는 내 구역도 아니고."

마교 인근에서 적화신루가 크게 거점을 내고 활동하는 것도 어렵긴 했지만, 애초에 이 인근은 사총관인 그녀의 영역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온 적 없다 대답하자 자연스레 다른 이들의 시선은 아직까지 대답이 없는 천무진에게로 향했다.

조용히 창밖을 보고 있던 천무진은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끼고는 마차 내부에 있는 다른 이들을 슬쩍 바라봤다.

그가 말했다.

"뭐야? 나도 말해야 되는 건가?"

"그럼 다 말했는데 당연히 하셔야죠. 치사하게 혼자만 빠지시는 건 반칙입니다."

"굳이 이런 거에 반칙까지야……."

한천의 말에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리던 천무진은 다시금 바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천무진은 마교에 온 적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저번 생의 일이었고, 지금 마교 소교주의 요청을 받고 움직이는 것과 반대로 그를 죽이기 위해 이 길을 지났었다.

바깥의 경치를 바라보며 천무진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와 본 적이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고."

"그게 뭡니까? 왔으면 온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천무진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한천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유일하게 천무진의 비밀을 알고 있는 백아린이 서둘러 말했다.

"그보다 의선 어르신한테 우리가 오늘 도착한다고 연락은 해 둔 거야?"

"아, 그거야 당연히 했죠. 아마도 두 팔 벌려 저희를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하하."

한천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을 내뱉었다.

백아린이 한천의 대답에 뭐라 더 말을 하려는 그때, 바깥을 바라보고 있던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저기 뭐가 보이는데."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아직 점으로도 보이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크기의 무엇.

허나 마차 안에 있는 네 사람은 모두 그렇게 멀리 떨어진 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외딴곳에 위치한 하나의 장원이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입구부터 꽤나 많은 숫자의 무인들이 삼엄하게 지켜 서고 있는 곳.

바로 마의의 거처였다.

마의는 마교를 대표하는 의원, 당연히 그가 지내는 거처의 경비 또한 엄청난 수준일 수밖에 없었다. 마의의 거처는 몇 개가 있었는데 크게 내성 안에 있는 곳과, 연구를 위해 사용하는 외부에 장원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조금씩 더 또렷하게 보이는 저곳이 바로 외부에 있는 장원이었다.

마차는 순식간에 목적지인 마의의 장원을 향해 내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입구.

"워워."

마부가 서둘러 말의 고삐를 잡아당기며 속도를 줄였다. 거리가 좁혀지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마교의 무인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흉흉한 기운을 뿜어 대는 이들.

자연스레 마차를 끌었던 마부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차로 다가온 무인들 중 한 명이 창문 바로 옆으로 다가왔다.

그가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천무진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출입증을 제시하시오."

"그런 건 없는데."

"그럼 이곳은 출입 불가요."

딱 잘라 말하는 것과 동시에 그는 살기를 뿜어 댔다. 혹시 모를 불청객이라면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마차 안에 자리한 이들 중 마교 무인의 기운에 짓눌릴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천무진은 가지고 온 천루옥 하나를 꺼내어서 그에게 내밀었다.

갑작스럽게 천루옥을 건네받은 마교 무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것이 천루옥이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그에게 지금 이것은 평범한 옥구슬에 불과했다.

잠시 의아해하던 마교의 무인은 곧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지금 나한테 뇌물을 주는 거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말투.

하지만 그런 그를 향해 천무진이 짧게 대꾸했다.

"여기 주인장에게 그걸 전해 줘. 그럼 알 테니까."

화를 쏟아 내려던 마교의 무인은 움찔했다. 이걸 뇌물이라 생각하고 화를 내려던 것인데, 뭔가 의미가 있는 물건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잠시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천무진을 바라보던 그가 이내 뒤편에 있는 수하에게 손짓했다. 사내는 곧 다가온 수하에게 손에 들고 있던 천루옥을 건넸다.

그러고는 짧게 명령을 내렸다.

"가져다 드려."

"넵, 조장."

말을 끝낸 수하는 곧장 장원 안으로 사라졌고, 마차를 포위하는 듯 다가온 마교 무인들은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반대편에 있는 창문으로 밖을 살펴보던 한천이 혀를 내둘렀다.

"이거야 원. 경비가 보통이 아니네."

"마의는 마교에서 주요 인물이니까."

단엽의 말에 한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대로 마의는 마교에서 무척이나 큰 비중을 지닌 인물이다. 마교의 수많은 무인이 그에게 은혜를 입었을 뿐 아니라 마교 최고의 의원이라는 상징성도 지닌 자였다.

마교 입장에서 엄청난 숫자의 호위 무사를 붙여 주는 건 당연했다.

쏟아지는 살기 속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때, 안으로 들어갔던 무인이 곧장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서둘러 조장이라 불렀던 사내에게 달려가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서둘러 안으로 모시랍니다."

안쪽에서 승낙이 떨어지자 조장이라 불린 사내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마차를 포위하고 있던 마교의 무인들이 썰물이 밀려 나가듯 빠져나갔다.

조장 사내는 곧장 포권을 취해 보이며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말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장원의 문이 열렸고, 마차는 그곳을 통해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마차가 장원 내부로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창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시피 하던 한천이 입을 열었다.

"어? 저기……."

안쪽으로 가고 있는 마차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두 명의 노인.

의선과 마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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