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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73화 (172/293)

173화. 소란 ― 늦었네 (1)

죽립을 쓴 백아린을 비롯한 단엽과 한천은 계속해서 일련의 무리를 뒤쫓았다.

적당한 거리를 둔 채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 따라가는 탓에 그들이 쫓고 있는 상대들은 지금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여섯 명으로 구성된 그들은 거침없이 마교 외성을 걸으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멈추어 선 곳은 외성 번화가 안에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다관이었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다관에 들어서는 여섯 사내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던 한천이 코웃음을 흘렸다.

"거참, 숨길 거면 그럴싸하게 해야지. 생긴 거에 안 어울리게 웬 다관이랍니까? 저 얼굴에 다관이라니."

험상궂은 외향과 달리 다관으로 들어서는 그 모습에 한천은 기막혀했다.

거기다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객잔에서 잔뜩 술을 퍼마시던 이들이 아니던가.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다관이라…….

제법 먼 거리에서 멈추어 선 채로 그들이 들어선 다관 입구를 바라보던 한천이 재차 입을 열었다.

"아마…… 저기겠죠?"

말대로 몇 시진이나 술을 마시던 이들이 다관으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뭔가 어울리지 않는 상황. 그랬기에 백아린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짧게 답했다.

"아무래도 찾은 것 같은데."

지금 이 세 사람이 뒤를 쫓은 여섯 명의 사내들. 그중 덥수룩하게 턱수염이 난 인물은 다름 아닌 귀문곡의 인물이었다.

중원을 대표하는 네 개의 정보 단체 중 하나인 귀문곡은 현재 악준기의 정보로 인해 천무진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

귀문곡이 십천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상황에서 백아린이 뭔가를 노리고 이처럼 그 뒤를 따라붙은 것이다.

귀문곡의 본거지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 또한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설령 찾는다 해도 정보 단체의 특성상 계속해서 본거지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개방의 경우야 구파일방의 하나이다 보니 예외지만 나머지 세 개의 세력들은 오랜 세월 동안 계속해서 거점을 바꾸며 살아왔다.

잘못해서 위치가 노출되었다가는 원한을 지닌 이들에게 노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주기적으로 바꾸는 본거지와는 달리 각 지역마다 있는 거점을 옮기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연락망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연결된지라 지역의 거점들은 쉽사리 옮기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거점을 옮기기 위해서는 복잡한 사전 준비가 필요했고, 바뀌는 기간 또한 상당히 길게 잡을 수밖에 없었다.

벽에 기대어 서 있던 한천이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대장?"

"어떻게 하긴. 계획대로 움직여."

이미 계획은 모두 세워져 있었다.

방금 전의 무리들이 사라진 다관이 귀문곡의 마교 거점으로 의심되는 상황.

하지만…… 그녀의 목표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귀문곡주였다.

본거지에 숨어 계속해서 몸을 감추고 있을 그를 이쪽에서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랬기에 백아린은 생각을 바꿨다.

찾기가 어렵다면?

스스로의 발로 걸어오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지금 마교의 거점을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백아린은 죽립을 고쳐 쓰고는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단엽과 한천이 그런 그녀의 뒤를 쫓아 움직였고, 이내 세 사람은 다관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를 즐기기에는 다소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큰 다관이었던 탓인지 내부에는 아직 몇몇 손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성큼 다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곧장 다관에서 손님을 맞는 어린 소년이 다가왔다.

"세 분이신가요?"

고개를 끄덕인 백아린은 곧장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 자리에 앉아도 되겠니?"

"넵, 물론이죠. 이리로 오세요."

소년은 다관에서 일하는 것이 익숙한지 능숙하게 세 사람을 데리고 백아린이 가리킨 자리로 갔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간단하게 즐길 차를 시켰다.

주문을 받은 소년이 사라질 무렵 백아린은 재차 주변을 확인했다.

다관에 들어오면서부터 확인한 부분이지만…….

‘역시 없네.’

방금 전에 걸어 들어온 여섯 명 중 그 누구도 이곳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는 방에서 차를 즐기는 경우 또한 배제할 순 없었지만, 사실 희박한 확률이었다.

백아린이 굳이 직접 자리를 선택한 건 이곳이 여러 가지로 유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건물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어서 안에서 뭔가 소란이 일면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모든 동선을 눈에 담을 수 있어 만약의 사태에도 빠른 방비가 가능했다.

"여기 차 나왔습니다."

소년이 들고 온 따뜻한 차가 세 사람 앞에 한 잔씩 놓였다. 아무렇지 않게 차를 들어 삼키던 단엽이 표정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차를 마시니 뭔가 좀 이상한데."

"그러게 말이다. 왜 다관에서는 술을 안 팔까?"

아쉽다는 듯 말하는 한천의 모습에 백아린이 기가 차다는 듯 대꾸했다.

"그럼 그게 다관이야? 기루지?"

짧은 말을 던진 그녀는 이내 슬쩍 시선을 돌려 구조를 다시금 확인했다. 지금 들어선 다관 곳곳의 모습과, 이곳의 직원들이 오가는 건물도 보인다.

겉모습과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며 백아린은 머릿속으로 동선을 짜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모든 답을 내렸을 때였다.

백아린이 짧게 말했다.

"단엽."

"엉? 왜?"

"네가 그자를 맡아. 좌측으로 가면 될 것 같아."

"내가?"

단엽이 되물을 때였다. 그 물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린의 시선이 한천에게로 향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서류들은 부총관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단엽이나 한천 모두 백아린의 말뜻을 이해하고 있었다. 사전에 모두 작전을 짜 놓고 온 덕분이다.

하지만…….

"귀찮은 일을 우리한테 다 시키면 넌 뭘 하려고?"

"나야 당연히…… 제일 중요한 일을 해야지."

말과 함께 백아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제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단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투덜거렸다.

"이거 아무리 봐도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은데……."

허나 투덜거림과는 달리 단엽은 쥐고 있던 찻잔을 손에서 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가 더 편한 일이고 아니고를 떠나 이 작전을 지휘하는 건 백아린이다. 그랬기에 그녀의 명령대로 움직여 줄 생각이었다.

물론 단엽이 고분고분 말을 들어준다는 것 자체가 백아린이라는 여인의 실력을 인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명령을 가만히 듣지 않았을 테니까.

"자, 그럼 움직여 볼까나."

길게 기지개를 편 단엽은 아직까지 앉아 있는 한천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고는 움직이자는 듯 가볍게 고갯짓을 해 보였다.

한천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이 단엽은 막 곁을 지나가는 종업원 소년을 불렀다.

"어이, 소년."

"예?"

"여기 뒷간이 어디지?"

"뒷간은 이 길을 따라 쭉 가시면 됩니다."

"그래? 고맙다."

말과 함께 단엽이 먼저 뒷간이라 말해 준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한천이 백아린과 잠시 시선을 주고받고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천은 곧바로 단엽의 뒤를 따라 움직였고 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이다.

아무렇지 않게 차를 마시며 두 사람의 동선을 머리로 그리고 있던 백아린이 이내 입술에 가져다 대고 있던 찻잔을 천천히 떼어 냈다.

지금쯤이라면 둘 모두가 일차 목적지에 도달했을 게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그녀가 움직일 시간이었다.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백아린의 눈동자가 그녀가 앉아 있는 곳과는 반대편 쪽에 자리한 화단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위치한 곳과는 다소 떨어진 장소, 그랬기에 더더욱 준비한 일을 벌이기에 용이했다.

탁자 아래로 팔을 늘어뜨린 백아린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딱.

동시에 손가락을 거점으로 피어오른 자그마한 불씨. 그녀는 곧장 내력을 실어 그 불씨를 반대편으로 날려 보냈다.

말은 간단했지만 어마어마한 내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신묘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보일락 말락 한 자그마한 불씨가 목표했던 화단 근처로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 백아린이 내력을 터트렸다.

화아악!

볍씨보다도 작았던 불꽃이 갑자기 확 피어오르며 화단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퍼져 나가는 불길들이 주변을 집어삼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관에 있던 손님들 모두가 놀란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불이야!"

"불이다, 불!"

다관에서 일하는 이들이 놀란 듯 소리를 쳐 대고, 안쪽에서 쉬고 있던 다른 인원들까지 서둘러 바깥으로 뛰어나왔다.

그런 그들을 지그시 응시하던 백아린은 개중에 몇몇 익숙한 얼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까 전 이곳에 왔던 여섯 명의 사내들 중 일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줄곧 감시했던 턱수염을 한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허나 백아린은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부터 그가 이런 소란에 뛰쳐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 턱수염의 사내가 바로 이곳 거점의 수장이었던 탓이다. 그런 임무를 지닌 자가 불이 났다는 소란에 쉽사리 움직일 리가 없었다.

아마도 그가 움직여 나타난다면 그건…… 불이 난 장소가 아닌 중요한 정보들을 모아 놓은 장소여야 옳을 터.

갑자기 피어오른 불길은 거세게 주변으로 퍼져 나갔고, 많은 이들이 그걸 끄기 위해 옆에 있는 연못에서 물을 퍼다 뿌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백아린이 슬며시 다관의 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직은 이 소란이 끝나지 않길 바랐으니까.

그리고 아직까지도 숨어 있을지 모르는 이곳의 수장을 확실히 움직이게 만들려면 오히려 조금 더 큰 소란을 일으켜야 할지도 몰랐다.

벽에 닿은 손에서 천천히 내력이 뻗어져 나갔다.

일반적으로 백아린의 손바닥이 닿은 곳을 기점으로 벽이 박살 나야 했지만, 그녀는 절묘한 힘의 배분을 통해 그 충격의 위치를 조금 더 옆으로 움직였다.

마치 앞에 있는 물건을 통과하여 뒤편에 있는 것을 파괴하는 격공장(隔空掌)과도 같은 원리로.

완벽하게 의심을 피하기 위한 백아린의 묘수였다.

쩌저적.

귀에 울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와 함께 벽면에 균열이 생기며 곳곳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백아린이 있는 곳과는 다소 떨어진 곳에서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일이었다.

"벼, 벽이!"

놀란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곳곳의 벽들이 흉물스럽게 변해 가고 있었다.

소란이 더욱 커져서일까?

건물 안에서 몇몇 인원들이 더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들은 다관에서 일하는 이들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아마도 저들은 귀문곡 소속의 인물들일 것이다.

그리고 소란스러운 무리 사이에는 아까 전 자신들이 미행했던 그들 모두가 자리하고 있었다.

우두머리 사내 하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 모두를 확인한 백아린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 소란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안채의 건물들.

백아린은 자신이 해야 할 모든 것들을 끝냈다.

이제부터는 저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의 몫이었다.

그녀가 소란스러운 사람들 사이에 섞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뒷일은 두 사람이.’

* * *

바깥에서 울려 대는 목소리들에 사내는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백아린이 단엽, 한천과 함께 비밀리에 쫓았던 자.

귀문곡의 마교 거점을 맡고 있는 장달(長達)이라는 사내였다. 그가 짜증스레 물었다.

"이게 무슨 소란이야?"

"바깥에 불이 난 모양입니다."

"불이 났다고? 그럼 끄면 되잖아?"

"그게 생각보다 불길이 좀 거세서…… 거기다가 갑자기 외벽에도 균열이 생기며 일부분이 무너져 내린 모양입니다."

"외벽까지?"

술을 잔뜩 마셔서 피곤하긴 했지만…….

장달은 수하에게 말했다.

"뭐 하고 있어? 너도 어서 나가서 돕지 않고."

"지부장님께서는 어쩌시고요?"

"어쩌긴 난 혹시 모르니 창고에 가 봐야지."

아주 만약이긴 하지만 불이 옮겨붙는 불상사는 피해야 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정말 생각만으로도 끔찍할 정도였다.

말을 끝낸 장달은 거처를 빠져나가 뒤편에 있는 샛길을 통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곧장 도착한 창고의 입구.

겉으론 수많은 물건들을 놔두는 그냥 평범한 창고로 보이지만 사실 이곳은 마교 내에서 오고 가는 의뢰에 대한 정보들을 보관하는 장소였다.

아무렇지 않게 창고의 문을 열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댔던 장달은 고개를 갸웃했다.

굳게 닫혀 있어야 할 창고의 문이 열려 있어서다.

그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망할 놈의 새끼들. 그렇게 조심하라니까."

수하들 중 누군가가 이 문을 열어 놓았을 거라 생각하며 창고의 문을 옆으로 열어젖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창고 안쪽으로 시선이 향하는 것과 동시에 장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커다란 보따리 안에 종이들을 쓸어 담고 있는 생면부지의 사내 하나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 문이 열리는 순간 종이를 쓸어 담고 있던 인물 또한 마찬가지로 장달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 사내는 바로 한천이었다.

그렇게 두 사내의 눈이 마주치는 그때.

종이를 쓸어 담던 한천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가벼운 말투로 말을 내뱉었다.

"어라? 들켰네."

"너 이 새끼 누군데 지금……!"

탁.

막 목소리를 높이려는 그때 장달의 뒤편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 위쪽에서 뛰어내려 착지를 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놀란 장달이 막 고개를 돌리려 할 때 종이들을 담던 한천이 손을 올리며 상대를 맞았다.

"여, 늦었네?"

웃으며 말을 던지는 한천의 말에 뒤편에 착지한 그 누군가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

단엽이 한 걸음 다가서며 툴툴거렸다.

"망할 새끼가 반대로 빠져나오더라고. 뭐…… 어차피 상관은 없지만."

말과 함께 단엽은 자신의 주먹을 들어 올렸다.

빠앙!

단 일격.

그걸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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