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왕-175화 (174/293)

175화. 밀려오는 위기 ― 찾아야 한다 (1)

연못 한가운데 위치한 화려한 정자 위에 앉아 있던 악자헌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교의 교주인 그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세상에 몇 안 되는 인물이 지금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악자헌은 무덤덤한 눈으로 정자에 올라서는 두 명의 사내를 바라봤다.

단엽과는 구면이었던 탓에 악자헌은 둘 중 누가 천무진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어나 있던 악자헌은 앞장서서 다가오는 천무진을 향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마교 교주 악자헌입니다. 천룡성의 무인을 뵙습니다."

말과 함께 포권을 취해 보이는 악자헌을 향해 천무진 또한 주먹을 말아 쥐며 답했다.

"마교 교주님을 뵙습니다. 천무진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인사를 건네고 뒤이어 단엽 또한 악자헌에게 포권을 취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교주님."

"자네는 예전에 봤을 때랑 그대로군. 그런데…… 그건 겉모습뿐인 것 같군. 자네 이야기가 아주 자자해. 얼마 전에 혈우일패도(血雨一覇刀)를 꺾었다는 소문도 있던데……."

말을 하는 악자헌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단엽에게 보냈다.

그런 그의 질문에 단엽은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곧 알려질 일이고, 이미 알면서 이 같은 질문을 던졌을 가능성 또한 컸기 때문이다.

단엽이 답했다.

"네, 맞습니다. 벌을 줘야 할 이유가 너무 많은 놈이었거든요."

단엽이 움직인 이유야 개인적인 원한으로 누이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였지만, 백아린이 이미 손을 써서 혈우일패도 나환위가 벌인 모든 악행이 세상에 밝혀진 상황이다.

단엽이 그를 쓰러트린 일에 명분을 주기 위해서다.

그랬기에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만들지 않고 이처럼 대의명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단엽의 대답에 악자헌이 혀를 차며 답했다.

"허어, 대단하군. 아무리 말석에 놓인 자라고는 하나 그래도 우내이십일성으로 불리던 자를 이기다니. 이젠 나도 자네를 그저 후기지수 중 하나로 여기긴 어렵겠군그래."

악자헌 또한 우내이십일성의 하나라 꼽히는 인물. 당연히 나환위를 꺾은 이상 그 자리는 단엽의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분명 우내이십일성 안에서도 수준 차이는 존재했지만 같은 급으로 분류된다는 사실만으로 이제 더 이상 단엽을 그저 젊은 무인으로만 볼 수는 없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천무진의 시선이 빠르게 악자헌의 전신을 훑었다.

‘……무서울 정도로 멀쩡하군.’

정말로 겉보기만으로는 이상해 보일 것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가벼운 농담과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지금 저 모습이 어찌 조종을 당하는 이의 모습으로 보이겠는가.

허나 그렇다고 해도 천무진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애초부터 이렇게 외관을 살피는 것만으로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을 거라 여기지 않아서다.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일반적인 몽혼약에 당한 것처럼 그저 단순하게 영혼 없는 인형이 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건 마치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새로운 인격이 본래의 것을 잡아먹은 듯한 상황이라 해야 정확할 게다.

그랬기에 더욱 문제였다.

차라리 아예 꼭두각시가 되어 버린다면 어딘가 수상쩍게 보일 수라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엔 성격이 조금 변했구나 하는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혀 조종당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악자헌의 모습을 보며 천무진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이 모습이었겠지?’

조종을 당하며 살아온 십수 년에 달하는 삶.

그때의 모습이 어땠을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웃고 있고,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자신의 의지는 남아 있지 않은 행동들.

그것이 얼마나 비참할까?

그리고 또 얼마나 슬플까?

천무진이 의심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악자헌의 모습에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찾던 그때, 악자헌이 입을 열었다.

"이런 손님들을 모셔 놓고 자리에 세워 두기만 하다니. 결례를 범했습니다. 어서들 앉으시지요."

악자헌의 말에 천무진과 단엽은 곧장 준비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의 앞에 위치한 탁자.

그 위에는 이미 천무진과 단엽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준비해 둔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즐비해 있었다.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말이 어울릴 법한 대접이었다.

자리에 앉은 천무진을 향해 악자헌이 말했다.

"무엇을 즐기시는지 몰라 종류별로 준비했습니다. 혹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이 탁자에 오르지 않은 음식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인데 모자랄 리가요. 충분합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한결 마음이 편하군요. 자, 그럼 우선들 드시지요."

말을 마친 악자헌은 곧장 옆에 두었던 술병을 들어 자신의 잔을 채웠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단엽 또한 옆에 놓인 술을 잔에 따랐다.

단엽은 곧장 술을 입 안에 털어 넣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오, 보통 술이 아닌데."

"부련주는 생각보다 술을 즐기는 모양이군그래. 단번에 이 북두주(北豆酒)의 묘미를 알아차리는 걸 보면 말이야."

"이 술 이름이 북두주입니까? 꽤나 좋은 술이군요."

단엽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재차 잔에 술을 채워서는 들이켰다.

유쾌한 표정으로 잔에 술을 채우는 단엽을 잠시 응시하던 악자헌의 시선이 이내 천무진에게로 향했다.

오늘 이 자리에 두 사람이 오긴 했지만, 사실 악자헌이 용무가 있는 건 천무진 하나였다.

간단한 대화들을 주고받으면서 식사를 이어 가며 때를 기다리던 악자헌이 슬그머니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 무림맹 쪽에 잠시 계셨다 들었는데 그곳에서의 일은 마무리가 되신 겁니까?"

별 대수롭지 않은 질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주고받았던 가벼운 대화와는 달리 천룡성의 무인으로서 천무진이 벌인 활약과 관련된 질문이었고,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차피 환영의 의미만 지닌 자리가 아님을 알고 있던 상황.

악자헌이 정말로 조종을 당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이것은 천무진에게서 뭔가를 캐내고자 함이 분명했다.

그랬기에 천무진은 최대한 두루뭉술하고, 의중을 파악하기 힘든 답변을 내뱉었다.

"확신하긴 어렵군요. 추후를 지켜봐야 할 일인지라."

"흐음, 그렇다면 역시 본교에 오신 것도 뭔가 이유가 있으시겠군요?"

악자헌이 자연스레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허나 이 또한 천무진은 애매한 답변을 남겼다.

"뭐…… 찾고 있는 게 좀 있어서 말입니다."

"찾고 있는 것이요?"

"오래된 기억이랄까요."

뜻 모를 그 말에 악자헌은 잠시 멈칫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대화를 이어 가기 힘든 대답이었다. 애초에 의미하는 바도 유추하기 어려웠고, 기억이라는 말로 개인적인 문제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더는 캐묻기 어려워진 것이다.

말을 끝낸 천무진은 앞에 놓인 술잔을 입가로 들어 올리며 맞은편에 자리한 악자헌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를 보며 천무진은 술잔으로 입가를 가린 채 슬쩍 웃음을 흘렸다.

‘나에게서 뭘 캐내는 건 불가능할 거야. 만약에 오늘 이 자리에서 뭔가를 얻어 가는 자가 있다면…… 아마도 그건 나일 테니까.’

설령 가식뿐인 자리라 할지라도 어차피 한 번은 가져야만 했던 만남이다. 어차피 양쪽 모두 서로에게 패를 보일 리 없는 상황, 이렇게 형식적인 만남으로 끝날 공산이 컸다.

허나 상관없었다.

서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천무진에겐 이득이었으니까. 이번 만남을 통해 천무진이 원했던 건 조종당하고 있을 거라 판단되는 교주 악자헌의 모습을 한 번 보는 것뿐이었다.

정작 중요한 계획들은 이미 물밑으로 모두 시작된 상황이었기에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지금 천무진이 맡은 역할은 이렇게 직접적으로 시선을 잡아끌며, 뒤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집중을 흐트러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 지금도 백아린은 바삐 움직이고 있을 터다.

천무진은 눈앞에 있는 악자헌을 조용히 응시했다.

허나 지금 그의 눈이 쫓고 있는 건 악자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뒤에 숨어 있을 진짜 적.

십천야, 이번엔 자신이 어둠 속에 있는 그들을…… 끄집어내고야 말 것이다.

천무진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음식 맛이 좋군요."

* * *

십천야의 일원이자, 정보 단체인 귀문곡의 수장인 상무기의 표정은 무척이나 좋지 못했다.

며칠 전 마교 내에 있는 귀문곡 거점에 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화제와 외벽의 붕괴.

허나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장 큰일은 그런 혼란 속에서 거점의 우두머리였던 장달이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중요한 의뢰서들과 각종 서류, 그리고 꽤나 많은 양의 재물을 가지고.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내 장달에 관한 정보들과, 수상쩍은 정황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종합해 본 결과 자연스레 장달의 행동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사라진 재물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허나 지금 상무기를 조급하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의뢰서, 그리고 의뢰에 맞춰 조사한 보고서들이 사라졌다는 부분이었다.

만약 이러한 일이 소문이라도 난다면…… 귀문곡은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

상무기가 앞에 부복하고 있는 수하를 향해 짜증스레 말했다.

"환장하겠군. 아직도 못 찾았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분명 꼬리를 잡았는데 갑자기 모습을 감추는 바람에……."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곧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왔기에 내심 안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를 놓쳤다고 하니 절로 울화통이 치밀 수밖에 없었다.

막 화를 쏟아 내고 있는 그때였다.

"곡주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바깥에서 수하 하나가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런 수하의 모습에 상무기가 욕설을 토해 냈다.

"망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새끼가 어딜 이렇게……."

눈을 부라리는 상무기에게서 진득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 그의 모습에 막 뛰어 들어왔던 수하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찢어 죽일 것처럼 노려보는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고 있자니 서둘러 입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 급히 전해야 하는 보고입니다."

수하의 말에 상무기가 몸을 돌려 그에게 성큼 걸어갔다. 이를 꽉 깨문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움찔하며 뒷걸음질 치는 수하를 향해 상무기가 차갑게 말했다.

"어디 한번 지껄여 봐. 그게 네놈이 지금 이 자리에 뛰어들 정도로 급한 일이 아니라면 죽을 각오는 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만약에 그 보고라는 것이 같잖은 것이라면 화를 솟구치게 만든 것에 대한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만들어 주겠다는 듯 경고를 하는 상무기를 향해 수하가 조심스레 답했다.

"사, 사라진 의뢰서의 내용이 흘러나왔답니다."

"……뭐?"

수하의 말을 듣는 순간 상무기가 움찔했다.

그가 가장 염려했던 상황이 무엇인가? 당연히 비밀에 부쳐져야 할 의뢰에 관한 내용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그 의뢰를 한 이들 또한 문제가 생길 공산이 크다.

간단하게 말해 누군가에 대한 뒷조사를 의뢰했다 치자. 당연히 그 비밀이 바깥으로 새어 나간다면 뒷조사를 의뢰했던 이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약과였다.

귀문곡은 휘하에 귀살(鬼殺)이라는 살수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당연히 이들이 하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암살이고, 관련 의뢰 또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의뢰가 누가 했고, 누굴 표적으로 했는지가 밝혀진다?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놀란 듯 부들부들 떨던 상무기가 다급히 소리쳤다.

"얼마나!"

"현, 현재로서는 십여 건 정도로 파악이 됩니다만, 더 늘어나는 것도 시간문제가 아닐는지……."

"이런 망할!"

욕설과 함께 상무기가 발로 옆에 있는 탁자를 걷어찼다. 그러자 위에 자리하고 있던 비싼 도자기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쨍그랑!

허나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상무기는 검을 쥔 반대편 손으로 이마를 감싸 안았다.

상무기가 물었다.

"설마 귀살의 의뢰까지 샌 건 아니겠지?"

"그, 그것이……."

머뭇거리는 수하의 모습.

그것으로 이미 대답은 들은 거나 다름없었다.

"크윽!"

상무기는 표정을 와락 구기며 짧은 신음 소리를 토해 냈다. 머리가 아파 왔고,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가 그 상태로 물었다.

"귀살의 의뢰를 제외한 것들 중에 큰 문제가 될 만한 건수는 뭐지?"

"대교방(大蛟幇)과 마교 무인인 혈인귀(血人鬼)의 의뢰가 큰 건수로 확인됩니다. 그런데 다행히 이 의뢰에 대해서는 아직 완벽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의뢰를 했다는 사실 정도만 퍼졌고, 내용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하의 설명에 상무기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체 왜 의뢰를 한 사실만 퍼지고, 정작 중요한 의뢰 내용에 대한 것은 알려지지 않은 걸까?

상무기가 물었다.

"의뢰 내용은?"

"대교방은 세력을 넓히기 위해 다른 지역에 터를 잡고 있는 가문의 약점에 대해 의뢰를 했고, 혈인귀는 숨겨진 아들에 대한 건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마교에 소속된 세력인 대교방도 그렇고 혈인귀 또한 쉽사리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 둘의 비밀스러운 일들이 바깥으로 흘러나왔으니…….

그때 바깥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 곡주님! 급한 정보입니다."

그 외침에 상무기는 절로 안 좋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뭐야 또?"

물어 오는 질문에 서둘러 안으로 들어선 다른 수하가 입을 열었다.

"대교방의 방주가 이번 일로 인해 노발대발하며 저희 쪽에 항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수하의 말에 상무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이 사실이 벌써 대교방 방주에게까지 들어갔지?"

정보를 접하고 자신에게 연락을 취하는 데까지 얼마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정상일 터.

그런데 그 정보를 전달받는 것과, 사실을 알고 항의한다는 정보가 겹쳐서 들어왔다.

그 말은 곧 자신보다 대교방이 먼저 이 사실을 알았다는 건데…….

현실적으로 정보 단체인 자신들보다 대교방이 먼저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물어 오는 상무기의 말에 수하가 자신이 전해 들은 것에 대해 보고했다.

"그것이 누군가가 대교방에게 직접 이 같은 사실을 전달한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돈을 내지 않으면 의뢰한 내용을 발설하겠다는 겁박을 했다고……."

수하의 말에 그제야 상무기는 알 수 있었다.

왜 의뢰의 내용까지 퍼트리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의뢰자를 협박하려면 당연히 모든 걸 발설해서는 안 될 테니까.

상무기가 입을 열었다.

"설마 장달 그놈이?"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아마 아닌 것 같습니다. 장달이 포착됐던 곳과는 정반대 방향이라서요."

"그 말은 곧…… 한패가 있다?"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상무기는 자신의 방 안을 잠시 서성였다.

‘가뜩이나 어르신의 눈 밖에 난 상황에서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천룡성과, 적화신루에 속한 인물들의 일로 인해 연거푸 어르신에게 질책을 받았던 상무기다. 그런 와중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만약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십천야 내에서 자신의 위치는 너무도 볼품없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지금 흘러나간 열 몇 건의 의뢰만으로도 상무기를 곤혹스럽게 하긴 충분했지만, 그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만약 사라진 모든 의뢰들이 세상에 밝혀진다면 그땐…….

상무기가 이를 악물었다.

그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수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대교방으로 움직여서 겁박을 한 놈에 대해 알아봐. 만약 서찰로 온 거라면 그걸 받아서 오고. 종이의 재질이든, 필체든 뭐든 좋으니 조사하고 또 조사해. 아주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도록 말이야."

말을 끝낸 상무기가 몸을 돌리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찾아야 한다. 다른 정보가 새어 나가기 전에 어떻게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