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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77화 (176/293)

177화. 은형방 ― 내가 누군지 알겠네 (1)

귀살의 살수들이 야음을 틈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약 사십여 명에 달하는 살수들의 선두에는 귀문곡주인 상무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르신의 눈 밖에 나게 된 상황에서 보다 완벽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 나은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상무기는 귀살을 이끌고 약 하루 정도를 달려 마침내 표적인 은형방이 있는 하원이라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먼 거리를 쉼 없이 달려 왔지만 상무기는 쉴 생각이 없었다. 이곳 하원은 은형방의 구역, 자신들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들이 곧장 알아차릴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오히려 하원에 들어서기 전, 아무도 없는 숲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누구의 방해도 없어야 했기에 일부러 밤이 되어서야 하원에 들어선 것이다.

하원을 오는 건 처음이었지만 상무기는 능숙하게 지붕을 따라 움직였다. 이미 이곳의 지도를 완벽히 숙지했고, 은밀히 움직일 만한 길목도 정해 둔 상태다.

그런 그의 뒤를 따르는 귀살의 살수들 또한 이런 일에 능숙한 이들이니만큼 최대한 흔적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쉭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이 들리며 사십여 명에 달하는 살수들이 지붕 뒤를 껑충껑충 뛰어넘었다.

그렇게 하원으로 들어서서 꽤나 달린 이후, 먼 곳에 자리한 하나의 장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명한 정보 단체인 귀문곡은 계속해서 본거지를 옮기며 버텨 왔지만, 표적인 은형방 같은 경우는 다르다.

그들 또한 성세를 이루던 때야 같은 방식으로 본거지를 옮겨 가며 세력을 유지했지만, 오히려 지금처럼 그 이름값이 떨어진 때는 한곳에 확실한 거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있는 의뢰조차도 쉽사리 받기 어려운 탓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은형방이 터를 잡은 이곳 하원에 위치한 장원.

인근에 있는 건물 지붕 위에서 장원의 외벽을 살피던 상무기는 목에 걸고 있던 두건을 입까지 끌어 올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뒤편에 있던 이들 또한 복면을 쓴 채로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준비가 끝난 수하들을 확인한 상무기의 시선이 슬쩍 하늘로 향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눈으로 살핀 그가 이내 자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목숨이 있는 놈은 단 하나도 놓치지 말고 죽여라. 개미 한 마리도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돼. 그리고 혹시라도 이 모든 일의 사달인 장달을 보게 된다면…… 사지를 찢어도 상관없으니 목숨만 붙여서 나한테 데려와. 그놈은 내가 죽인다."

말을 끝낸 상무기가 손가락으로 한쪽에 위치한 열 명가량의 살수들에게 명령을 이었다.

"너희들은 바깥에서 장원을 포위하고 있다가 혹시라도 누군가가 빠져나온다면 제거하도록 해. 은형방의 뒤를 봐주는 군마련이 나타나도 막도록 하고."

"예, 곡주님."

따로 열 명의 인원만 제외한 상무기는 이내 장원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가 슬쩍 입을 열었다.

"나머지는 모두 나를 따라 움직인다."

그 말을 끝으로 상무기의 몸이 지붕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소리도 없이 바닥에 착지한 그의 뒤편으로 서른 명의 귀살 살수들이 줄지어 내려섰다.

그들까지 모두 내려선 직후 상무기가 장원을 향해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점점 걸음걸이에 속도를 올리는 듯싶더니 단번에 장원의 담장을 향해 날아올랐다.

파라라락!

담장을 넘어서는 상무기의 뒤쪽으로 수하들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순식간에 모든 인원이 장원 안쪽으로 들어서자 상무기가 손가락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리 큰 장원은 아니었기에 패거리를 두 개로 나눈 채 상무기는 곧장 앞으로 움직였다. 다른 이들에게 수하들이 있는 별관을 치게 하고, 상무기 본인은 이곳 은형방의 방주를 노리고 있었다.

‘서훈(徐焄)이라 했던가?’

은형방의 방주를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대충 중년의 사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서훈이라는 이름을 지녔고, 무공 수준은 좋게 봐 주면 일류 정도다.

서훈의 거처가 어느덧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고 상무기는 곧장 손가락으로 양쪽을 번갈아 가리켰다. 그곳에 자리하고 있을 수하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이었다.

그 상태로 상무기는 혼자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장원 내부는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조용했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식은 죽 먹기군그래.’

서훈 정도 되는 자가 십천야인 자신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고, 그렇다면 그의 죽음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변수라고는 오로지 하나, 이곳 은형방의 뒤를 봐주는 군마련이 귀찮게 개입하는 것뿐이다.

물론 그들이 이곳으로 온다 한들 이미 이곳의 방주인 서훈은 죽은 이후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방주의 거처를 향해 나아가던 상무기는 문득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만일을 위해 은형방에 있는 이들을 죽인 후 군마련 또한 지워 버려야겠군. 그놈들 또한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야.’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군마련의 사람들까지 모두 죽여야겠다고 결정을 내릴 무렵, 그의 몸이 어느덧 방주의 거처 입구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입구에 도착한 상무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찮은 새끼가 감히 날 건드려?’

한동안 자신을 힘들게 만들었던 모든 일의 원흉이 이 안에 있다 생각하니 절로 살기가 꿈틀거렸다.

상무기는 서훈을 절대 편안하게 보내 주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방 안에 있는 상대의 기척까지 확인한 상무기는 망설일 것이 없었다. 그는 조용히 들어가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지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동시에 안쪽을 향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어이, 서훈!"

문을 열며 들어선 방주 서훈의 거처는 정면이 긴 복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복도의 양옆으로는 방이 하나씩 있었고, 길을 따라 들어가면 그 끝에는 많은 자료들을 모아 두는 집무실이 자리했다.

복도에 들어서며 상무기가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디에 숨었느냐, 이 쥐새끼야!"

말은 그리하고 있었지만 상무기는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기척이 감지되고 있는 상황, 서훈이 이 복도 끝에 위치한 집무실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양쪽에 위치한 문들을 벌컥 열어젖히며 괜히 더 목소리를 높였다.

비밀리에 다가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상무기가 이 같은 선택을 한 건 상대에게 겁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간 당해 온 것에 대한 화가 쌓인 탓에 그냥 죽이기보다는 조금 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최후를 맞이하길 바랐다.

그것이 자신에게 도전을 한 서훈이 맞아야 할 최후라 여겼다.

어차피 상무기가 이곳까지 들어온 이상 서훈 정도 되는 실력자가 그의 손아귀에서 도망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미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는 와중에 그가 도망친다 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따라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마치 상대를 찾는 듯이 양옆을 헤집으면서 도착한 집무실.

닫혀 있는 집무실의 문을 상무기가 거칠게 열었다.

드르르륵!

문을 옆으로 미는 것과 동시에 상무기는 그대로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시선에 보이는 건 입구를 등지고 앉아 있는 한 사내의 등이었다.

상무기는 드러난 공간을 가볍게 둘러봤다.

집무실이라 들었거늘 서류는 그리 많지 않았고, 오히려 텅텅 빈 넓은 공간이 연무장이라 봐야 더 맞을 것 같았다.

그만큼 일거리가 없었다는 말이었기에 절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런 놈들이 욕심에 못 이겨 자신에게 어찌하려 했다니……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별 볼 일 없는 집무실의 모습을 살피던 상무기의 두 눈이 등을 지고 앉아 있는 사내에게로 향했다.

자신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미동도 없는 움직임.

겁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

상무기가 비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큭큭, 비굴하게 도망이라도 치려고 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군. 아니면 무서워서 아예 몸이 굳은 건가? 그것도 아니면 포기한 걸지도 모르겠네. 뭐, 생각해 보면 현명하긴 하군. 어차피 도망가려고 했다 한들 네깟 놈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야."

상대를 향해 조롱 섞인 말을 쏟아 내는 바로 그때.

등진 채로 앉아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 어디 숨었냐는 소리가 나한테 한 말이었어? 난 또 쥐새끼라기에 스스로한테 하는 말인 줄 알았지 뭐야."

생각지도 못한 상대방의 말에 상무기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스스로의 귀를 후볐다.

그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겁이 나서 실성이라도 했나.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나 봐?"

"상황 파악 못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 같은데."

이어지는 도발에 상무기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하, 하하! 내가 알아본 바로는 이렇게 겁 없는 놈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나도 네가 이렇게 눈치 없는 놈일 줄 몰랐는데."

"이 새끼가 계속!"

웃고 있던 상무기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상대를 찢어 죽일 것처럼 매섭게 돌변했다. 처음 웃을 때부터 이미 기분은 좋지 않았던 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성질을 건드리는 상대의 모습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두둑, 두두둑.

가볍게 주먹을 풀며 상무기가 살의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부터 편안하게 보내 줄 생각은 없었지만, 네놈은 사지를 갈가리 찢어서 죽여야겠다. 손톱이건 발톱이건 간에 모두 다 하나씩 뽑아 주고, 신체는 마디마디를 끊어 줄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게 해 주지."

섬뜩한 말을 내뱉은 상무기가 아직까지도 등을 돌린 채 미동도 않는 그를 향해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등을 돌리고 있을 생각이야? 그런 식으로 시간을 끌 속셈인가 본데…… 아쉽게도 네 부하들은 안 와. 그곳에도 이미 우리 쪽 인원들이 찾아갔거든."

상무기의 그 말이 떨어진 직후였다.

등을 돌리고 있던 사내가 중얼거렸다.

"흐음, 그럼 그쪽들은 벌써 시작했겠군."

"그게 무슨……."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상무기가 질문을 던지는 찰나였다.

등을 돌리고 있던 이가 천천히 의자에 앉은 채로 상반신을 돌렸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상대.

상대를 응시하며 살기를 쏟아 내던 상무기의 눈동자가 당혹스러움으로 물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상반신을 비틀어 얼굴을 마주한 상대.

그런데 그 상대는…… 서훈이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서훈을 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자가 그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나이가 맞지 않았으니까.

서훈은 중년의 사내라 들었거늘, 눈앞에 있는 자는 무척이나 젊었다.

고작 이십 대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외모.

예상치 못한 상황에 상무기가 다급히 물었다.

"너 누구야? 서훈이 아니잖아?"

물어 오는 질문에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던 사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선 채로 상무기와 마주한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나 보네. 당연히 알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네깟 놈을 어찌 알아? 시끄럽게 혓바닥 놀리지 말고 지금 서훈이 어디에……."

막 거칠게 말을 내뱉던 상무기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상대방 사내의 허리에 자리하고 있는 한 자루의 검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붉은 악귀 형상이 새겨져 있는 손잡이.

저 무기는…….

"천인혼?"

어찌 천인혼을 모르겠는가.

몇 번 직접 눈으로 본 것은 물론이고 손으로 만져 보기도 했다. 상무기 또한 칠신기의 하나인 천인혼에 욕심이 있었지만 그걸 다룰 수 없었기에 포기해야만 했었다.

놀란 듯 중얼거리는 상무기를 향해 천인혼의 주인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천인혼을 알아봤으니 이젠 내가 누군지도 알겠네."

말을 내뱉는 상대를 바라보는 상무기의 낯빛이 흑색으로 물들었다.

천인혼을 확인하는 순간 상대방의 정체는 자연스레 떠오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천룡성의 작은 용, 천무진. 바로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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