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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79화 (178/293)

179화. 착오 ― 이제 끝인가 (1)

도망치기 위해 뿌렸던 연막탄이 실패로 돌아가자 상무기는 잠시 정신을 추스르기가 어려웠다. 계획도 실패했을뿐더러 안면에 정확하게 박힌 일격이 다리의 힘마저 풀리게 만들었다.

허나 상무기에게 더 앉아서 놀라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안개를 걷으며 성큼 다가온 천무진이 곧바로 발을 내지른 탓이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발을 보는 순간 상무기는 뒤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옆으로 굴렀다.

쾅!

발길질에 적중당한 벽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 낸 상무기가 빠르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박살이 난 벽면을 통해 주변을 가득 채우던 연막탄이 빨려 나갔다.

점점 주변이 뚜렷해지는 사이 상무기는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천무진에게 안면을 적중당하며 입 안이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탓에 연신 피 맛이 느껴졌다.

그것이 무척이나 불쾌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이런 부상에 신경 쓰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망할. 이걸 어쩐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천무진이라는 존재.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에 상무기는 마른침을 삼켜야만 했다.

십천야 내에서도 천무진의 적수가 될 만한 이는 채 몇 명 되지 않았다.

허나 아쉽게도 그 안에 상무기는 없었다.

상무기 또한 우내이십일성 수준에 오른 고수라고는 하지만 그 안에서도 등급은 있다. 그리고 아무리 좋게 봐 줘도 자신이 천무진을 이길 확률은 일 할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도망치기 위해 펼쳤던 비장의 한 수가 실패로 돌아간 지금.

‘치잇, 결국 싸워야 하나.’

당장으로선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살기 위해선 뭐라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상황을 보아하니 자신은 천무진이 짜 놓은 함정에 영락없이 빠졌고,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기도 어려웠다.

적당한 거리를 둔 채로 천무진을 예의 주시하던 상무기가 슬그머니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피던 상무기의 돌변한 기세를 느낀 천무진이 픽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싸울 생각이 좀 들었나 봐? 아까까지만 해도 어디로 도망가나 눈을 데굴데굴 굴리느라 바쁘더니."

"……그 입 닫아라."

더는 정체를 감출 이유가 없었기에 상무기가 돌변한 말투로 답했다.

어차피 천무진은 자신의 정체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고, 방금 전 사용했던 연막탄 또한 십천야의 일원인 반조를 통해 본 적이 있다.

지금 같은 때에 발뺌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검을 뽑아 든 상무기를 바라보며 천무진이 짧게 말을 받았다.

"그럼 슬슬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말과 함께 천무진의 몸이 갑자기 연기처럼 흩어졌다. 동시에 상무기의 눈동자가 꿈틀했다.

그의 손이 재빠르게 옆으로 움직였다.

카앙!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천인혼을 받아친 상무기가 빠르게 소매를 움직였다. 동시에 소맷자락 안에 있던 암기 통에서 자그마한 변화가 일었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암기 통에 감춰져 있던 작은 비침들이 번개처럼 쏟아져 나왔다.

거리는 지척.

운이 좋다면 한두 개 정도는 적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비침에는 치명적인 독이 묻어 있었고, 중독당하면 어지간한 무인이라도 채 열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죽을 정도의 독성을 지녔다.

그만큼 치명적인 극독.

하지만 상무기 또한 이것에 적중당한다고 해서 천무진이 죽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독이 우내이십일성 수준의 고수에게 통할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허나 적어도 독침이 적중한다면 천무진의 힘을 조금이나마 약화시킬 수 있었기에 상무기는 그것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그의 바람이 무색하리만큼 천무진은 너무도 쉽게 날아드는 비침을 받아 냈다.

파악!

손을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리긋는 순간 묵직한 기운이 상무기를 짓눌렀다. 동시에 천무진을 향해 날아들던 비침들도 힘을 잃고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내리눌러지는 압력으로 인해 몸을 움츠렸던 상무기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이게 무슨…….’

하지만 이번에도 놀라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날아드는 천인혼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큿!"

급히 몸을 젖히며 그것을 피해 낸 상무기의 눈에 비어 있는 천무진의 옆구리가 보였다. 아슬아슬하게 피해 낸 덕분에 오히려 공격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지금!’

파라락!

소매 안에 있는 짧은 단검을 손가락 끝으로 끄집어낸 상무기가 곧장 비어 있는 옆구리를 향해 치고 들어갔다.

‘좋아! 먹혔……!’

단검이 옆구리 근처까지 다가가는 걸 보며 순간적으로 눈을 빛내던 상무기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 하나의 그림자가 시야 속에 아른거렸다.

스윽.

단검이 천무진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가는 찰나.

그 그림자가 상무기를 뒤덮었다.

퍼억!

안면에 정확하게 틀어박힌 일격에 상무기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가, 튕기듯 뒤로 나뒹굴었다.

벽을 뚫고 바깥까지 굴러간 그가 얼굴을 부여잡은 채 기침을 토해 댔다.

"컥컥."

힘겹게 내뱉는 숨과 함께 입 안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허나 나오는 건 피뿐만이 아니었다.

몇 개나 되는 이가 그대로 박살이 나서 피와 함께 바닥으로 쏟아져 나왔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댄 채로 간신히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을 그 무렵.

천무진이 베인 옆구리를 한 손으로 감싸 쥔 채 구멍 난 벽 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탁.

그가 바닥에 내려서자 상무기는 황급히 몸을 마저 일으켜 세우고는 뒷걸음질 쳤다. 여전히 한 손으로는 얼굴을 감싸 안은 상무기가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천무진의 모습을 살폈다.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오는 그에게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섬뜩함이 느껴졌다.

천무진의 모든 행동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상무기는 일격을 맞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잊을 정도로 큰 의문에 빠져 있었다.

‘이건 도대체…….’

천무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됐다 여겼다.

그가 실력을 보여 줬던 몇 가지 정확한 정황들이 있었으니까.

흑마신을 죽였고, 십천야 중에서도 반조는 직접 손을 겨뤄 보기까지 했다. 그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전해 들었고, 객관적인 판단도 이미 끝이 났다.

그런데 지금 이건 자신이 파악한 수준의 실력이 아니었다.

그래, 인정한다.

처음엔 천무진과 그의 일행들 모두를 얕봤다. 그랬기에 착오가 있었고, 그로 인해 어르신에게도 큰 질책을 받았다.

그랬기에 상무기는 자만심을 버리고 냉정하게 여러 번의 검토를 통해 평가를 내렸다. 그로 인해 새로이 천무진에 대한 냉혹한 평가를 끝낼 수 있었다.

자신이 천무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처음부터 인지한 것 자체가 그 증거이기도 했다.

예전의 정보였다면 싸운다 해도 승산이 반 이상일 거라 여겼을 테니까.

그렇게 새로이 내린 판단, 분명 이번엔 정확하다 여겼다.

그런데…… 이번에도 틀렸다.

‘우리의 정보가 또 틀렸다고?’

천무진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허나 상무기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순 없었다.

반조가 천무진을 직접 상대한 것부터, 흑마신과의 싸움까지.

둘 모두 채 반년도 지나지 않은 일들이다.

흑마신이야 죽었으니 직접 뭔가를 전해 듣지는 못했다 쳐도 반조는 손을 겨뤄 보고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오지 않았던가.

그랬기에 상무기는 확신했다.

정보는 틀리지 않았다.

단지…… 그가 강해졌을 뿐.

‘……반년 동안 이렇게 강해지다니.’

이것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는 일.

물론 이 또한 쉬이 믿기는 어려웠다. 제아무리 타고난 재능을 갖췄다 한들 이 정도 속도의 발전은 불가능한 일이다.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천무진을 바라보는 그.

그리고 상무기의 생각은 옳았다.

반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천무진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천룡성의 무공인 천룡비공의 토대가 되는 천룡무극심법. 상무기가 천무진에 대해 판단을 내렸던 당시에는 칠성의 경지에 들어서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팔성을 넘어선 상황이었으니까.

당연히 그때의 정보로 판단한 천무진의 실력이 지금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건 당연했다.

물론 이처럼 빠른 속도로 천룡무극심법의 단계가 올라가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상무기의 판단 기준이 되어 주는 그 당시에도 갓 칠성에 올라선 상태로 그들에게 혼란을 줬을 정도였으니까.

허나 천무진에겐 뛰어난 재능과 더불어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또 한 번의 삶.

이미 모든 걸 익히고 깨달았던 길이었기에 천무진은 너무도 빠르게 천룡성의 무공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물론 아직 사부인 천운백에게 천룡성의 마지막 비기를 전수받지 못해 더는 지금처럼 순식간에 엄청난 발전을 보이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미 천무진의 힘은 십천야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성장해 있었다.

천무진의 실력이 예상을 훨씬 웃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상무기는 더욱 답답해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자신보다 강했던 상대, 그런데 가늠했던 것 이상의 실력을 지녔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으드득.

상무기는 이를 갈았다.

말대로 상황은 점점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해야 할 것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손에 들린 검을 앞으로 겨눈 상무기가 눈을 번뜩였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기 시작한 살기가 주변을 뒤덮었다.

그런 상무기와 마주한 천무진 또한 천인혼을 비스듬히 든 채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상무기가 먼저 움직였다.

타다닥!

빠르게 땅을 박차며 상무기가 옆으로 내달렸다. 그러고는 곧장 몸을 허공으로 날리며 소매를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비문폭사(飛紊爆死)!

수십여 개의 암기들이 기다렸다는 듯 천무진을 향해 꿈틀거렸다. 하늘 위로 솟구쳤던 암기들이 그가 있는 바닥을 향해 마치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파파팡!

천무진이 가벼운 움직임만으로 그것들을 피해 내던 찰나.

공격을 펼쳤던 상무기가 이를 꽉 깨물었다.

애초부터 이 암기로 천무진에게 피해를 입힐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이 비문폭사라는 초식, 그건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었으니까.

땅에 박힌 암기들에 실려 있던 내력이 폭발했다.

동시에 암기 손잡이 안에 특수 제작되어 숨겨져 있던 콩알만 한 크기의 벽력탄들이 반응했다.

우우웅!

갑자기 밀려드는 이상한 낌새에 암기를 피하기 위해 옆으로 비켜섰던 천무진이 움찔했다.

‘이건?’

코를 찌르는 묘한 냄새.

화약 냄새였다.

천무진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마치 천무진을 포위하듯 그 주변으로 떨어져 있는 암기들, 그제야 그는 상무기의 속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허나 깨닫는 것과 동시에 숨겨져 있던 벽력탄들이 폭발했다.

콰콰콰콰쾅!

커다란 굉음과 함께 주변에 있던 건물이 폭발에 휩쓸렸다. 동시에 범위 안에 있던 상무기가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기회다!’

천무진이라는 자를 상대로 이처럼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기회는 결코 흔치 않을 터.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천무진이 반응하지 못한 지금이 몰아붙여야 할 절호의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상무기의 손에 들린 검이 낮게 울렸다.

동시에 그의 검 주변으로 강기가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그렇게 그 기운이 하나의 커다란 형상이 되는 순간.

쿠우웅!

검강이었다.

상무기는 검강이 실린 검을 전면을 향해 냅다 휘둘렀다.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터져 나가는 벽력탄 사이에 자리하고 있을 천무진!

연달아 폭발하는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천무진이 자리하고 있던 곳을 검강이 뒤덮었다.

콰아아앙!

벽력탄에 이어 재차 터져 나오는 폭음.

주변의 땅이 세게 진동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발이었다.

쩌저적.

땅이 갈라지고, 온 세상이 뒤흔들린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큰 충격파가 주변으로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며 상무기는 자신도 모르게 악에 받친 듯 소리를 내질렀다.

"어떠냐 이 자식아! 천룡성이면 다냐? 날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제대로 한 방 먹여 줬다는 생각에 잔뜩 신이 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상무기였다.

바로 그 순간.

"……겨우 이 정도로 이렇게 호들갑 떨 일인가?"

폭발이 끝나고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

애초에 이 공격으로 천무진이 죽을 확률은 미미하다는 걸 알았기에 그가 살아 있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흙먼지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천무진의 상태를 확인한 상무기의 표정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폭발에 휘말린 탓에 옷매무새는 엉망이었다.

그리고 다소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살짝 베인 듯한 몇 개의 흔적들.

허나 그게 전부였다.

검강과 벽력탄의 폭발에 휘말렸던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상태다.

하물며 그게 우내이십일성 수준에 있는 상무기가 펼친 것이었다면 결코 그 위력이 가벼웠을 리가 없다.

놀란 듯 굳어 있는 상무기를 향해 천무진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여 줄 건 이제 끝인가?"

마치 고작 이게 다냐는 듯한 말투에 상무기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이이……!"

"아무래도 너한테서 더 기대할 만한 건 없을 것 같네."

천인혼을 든 천무진이 앞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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