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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80화 (179/293)

180화. 착오 ― 이제 끝인가 (2)

천무진과 하나가 된 천인혼이 옆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 공격을 받아 내긴 했지만 상무기의 몸은 옆으로 밀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의 호흡.

하지만 그 순간에 수십 차례의 공격이 쏟아져 들어왔다.

카캉캉!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매섭게 휘몰아치는 천무진의 공격에 상무기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빠른 공격, 거기다가 정확함과 묵직한 힘까지.

제아무리 십천야 중에서 무공이 약한 편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도 일방적으로 밀리고만 있었다.

매섭게 쏟아지던 천무진의 공격을 받아 내기 급급하던 상무기가 기회를 노리다 치고 들어갔다.

파바박!

검을 쥔 반대편 손으로 짧은 단검을 뽑아 든 그가 천무진의 상체를 할퀼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거리는 가까웠고, 단검이라는 특이점을 이용해 펼친 공격이었다.

하지만 천무진은 그 공격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막아 냈다.

단검을 쥔 채로 움직이는 손을 손바닥으로 연신 받아 내며, 그 공격들을 단번에 무위로 돌려 버린 것이다.

재빠르게 변화를 보이며 사이로 파고들어 가 보려 했지만 천무진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손바닥으로 모든 공격들을 사전에 차단했다.

게다가 공격을 막는 걸로 모자라 손바닥에 힘을 실어 오히려 상무기에게 일격을 가했다.

쿵!

땅을 강하게 내리밟으며 움직인 천무진의 손바닥과 단검을 쥔 상무기의 주먹이 충돌했다.

으드득!

마치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상무기의 팔목이 꺾이며 뒤로 밀려 나갔다.

고통에 이를 악무는 찰나, 천무진의 천인혼이 날아들었다.

부웅!

‘더럽게 빠르네!’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온 그의 움직임을 보며 상무기는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다급히 몸을 비틀며 천인혼을 흘려보낸 상무기는 곧장 발을 올려 차며 천무진의 턱을 노렸다.

파앙!

공격은 애꿎은 허공을 갈랐고, 공격을 피한 천무진은 곧장 몸을 낮추며 땅을 디딘 채 버티고 서 있는 상무기의 발을 걷어찼다.

퍽.

한 발로 몸을 지탱한 채 허공을 향해 다리를 추켜올렸던 상무기로서는 균형을 잃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것은 정확하게 자신의 몸통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천인혼이었다. 허공에 뜬 상태에서 상무기는 다급히 회전을 함과 동시에 손을 움직였다.

손바닥에서 뻗어져 나간 장력이 천무진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다만 상무기 또한 완벽하게 천인혼을 피해 내지는 못했다.

탁!

가까스로 바닥에 착지한 상무기는 허리춤을 움켜쥐었다. 뜨거운 피가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흘러넘쳤다.

휘두른 일장을 가슴에 적중시키며 밀어낸 덕분에 다행히 치명타는 피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옆구리에 입은 이 상처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상무기는 공격이 이어질 것을 대비해 황급히 뒤로 수십여 걸음을 물러섰다.

그리고 상무기는 곧장 피가 쏟아지는 옆구리 부분의 혈도를 점혈했다.

그는 한 손에는 검을, 반대편 손에는 짧은 단검을 쥔 채로 양손을 교차시키고는 그 틈으로 천무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몇 차례 연신 피를 쏟아 낸 탓인지 안색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거기다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 막막함으로 인해 가슴까지 답답했다.

상무기는 이를 악문 채로 고민에 잠겼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사실 이대로는 결과가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죽음.

그 최악의 상황이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기분이었다.

도망을 치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이었는데, 문제는 아무런 방패막이도 없는 지금은 그것 또한 불가능했다.

완벽하게 함정을 파고 자신을 기다렸던 천무진이다.

함께 들어온 귀살 전원 또한 이 정도 소란이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이곳 은형방의 별관과, 인근에 있는 다른 거처들을 치러 간 이들 또한 모두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다리고 있던 천무진 일행과 조우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상대는 단엽과, 믿을 수 없는 실력을 보여 준 적화신루의 백아린과 한천.

세 사람 모두가 엄청난 실력자들이니 제아무리 수하들의 숫자가 서른 명이 된다 해도 승산은 없었다.

‘수하 몇 명만 데리고 왔다면 어떻게든…….’

뒤늦은 후회를 곱씹던 상무기의 표정이 일순 돌변했다.

어떠한 생각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 탓이다.

‘잠깐?’

잊고 있었던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건 다름 아닌 바깥에 두고 온 수하들이었다.

이곳 은형방까지 데리고 온 건 대략 사십여 명 정도였다.

개중에 서른 명을 데리고 내부로 들어왔고, 나머지 열 명의 귀살 살수들을 주변을 감시하며 혹시 모를 군마련의 도움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바깥에 배치해 뒀다.

그렇다면……!

체한 듯 답답했던 속이 확 하고 후련해진 기분이 들었다. 살 수 있는 방도가 떠오르자 잔뜩 어그러져 있던 표정 또한 한결 나아졌다.

바깥에 놔둔 열 명이나 되는 귀살의 살수들.

물론 그들이 개입한다고 해서 천무진을 이길 수 있을 확률은 극히 낮았다. 허나 적어도 그들이 있다면…… 도망치는 건 가능했다.

그 열 명이라면 최소한의 시간은 벌어 줄 테고, 그걸 이용해 자신은 도망치면 그만이었으니까.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상무기는 재빨리 품 안에 손을 넣었다. 그러고는 이내 품속에 감춰 둔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건 다름 아닌 신호탄이었다.

상무기는 천무진에게 저지를 당할까 염려가 되었는지, 신호탄을 꺼내어 들기 무섭게 재빨리 그것을 사용했다.

신호탄의 아랫부분을 가볍게 쳤지만 그것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았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흐음."

천무진은 신호탄이 향했던 위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그의 눈에도 아무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천무진은 알고 있었다.

특별히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건 이 신호탄이 특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애초에 살수 집단인 귀살을 이끄는 귀문곡주가 사용한 신호탄이다. 아무나 알아차릴 수 있게 소리가 나거나, 빛이 새어 나가는 방식을 이용할 리가 없다.

아마도 특별한 훈련이 된 이들만 알 수 있는 무엇이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리라.

상대가 신호탄을 사용한 것을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천무진의 행동에는 동요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불량품은 아닐 테고 보이지 않는 뭔가로 수하들을 불러오려는 모양이군."

"분하지만 혼자선 널 감당할 수 없어서 말이야."

"뭐, 좋은 판단이네. 다만……."

천무진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누가 올 수 있다면 말이지."

의미심장한 천무진의 그 한마디에 상무기는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여유 있게 천무진의 말을 받아쳤다.

"은형방에 들어온 놈들이 내가 데리고 온 인원의 전부라고 생각하나? 그랬다면 착각이야."

말을 끝낸 상무기는 손에 들린 검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신호는 보냈고, 이제 남은 건 오직 하나.

그들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뿐이었다.

‘최대한 거리를 두고 싸운다.’

어차피 목표가 확실한 이상 수하들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는 것에 주력할 생각이었고, 당연히 근거리보다는 원거리에서 움직여 주는 게 시간을 끄는 데 용이했다.

상무기는 재빨리 손에 들린 단검을 던졌다.

카앙!

천무진이 가볍게 단검을 쳐 내는 사이 상무기가 재빠르게 옆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슈슈슈슉!

소매 속에 감춰진 암기 통에서 비침들이 쏟아져 나왔다. 허나 천무진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거리를 벌리려는 상무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웅!

비침들이 지척에 도달하는 순간 천무진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고, 이내 빠르게 떨어져 내리며 단번에 상무기를 덮쳤다.

카카캉!

어차피 힘에서도 밀려 버티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애초부터 거리를 벌린 채로 도망치며 싸우기로 정한 상황. 상무기는 그 힘에 밀려 나가듯 뒤편으로 다시금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천무진 또한 쉽사리 놓치지 않으려는 듯 휘두른 천인혼에서 검기 하나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껑충 뛰어오르며 그것을 가까스로 피해 낸 상무기는 재빨리 뒷걸음질 쳤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천무진의 입가가 씰룩였다.

‘시간을 끌 생각인가 본데.’

천무진은 손에 들린 천인혼을 향해 내력을 쏟아부었다.

그 순간 천인혼 주변으로 새카만 기운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천무진이 등 뒤쪽까지 내뻗었던 천인혼을 번개처럼 휘둘렀다.

그 순간 천인혼을 감쌌던 흑색 강기가 요동치듯 쏘아져 나갔다.

날아드는 흑색 강기를 확인한 상무기는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몰려드는 기운을 감지했을 때부터 보통 공격이 아니라는 건 느꼈지만, 막상 마주하는 순간 느껴지는 그 위압감은 더욱 컸다.

흡사 쩍 벌린 호랑이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공포.

천룡비공의 흑령무상(黑靈無狀)이라는 초식이었다.

마치 채찍처럼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강기를 보며 상무기는 마찬가지로 강기로 대적할 수밖에 없었다.

파라벽강기(破羅霹罡氣)!

어르신에게 전수받은 무공으로 오래전 천하를 좌지우지하던 벽력염왕(霹靂閻王)이라는 인물의 절초였다.

흑령무상과 파라벽강기가 맞붙는 순간!

우우우웅!

낮은 공명음과 함께 아주 찰나의 순간 묘한 적막이 찾아든 느낌이었다. 허나 그것은 곧 있을 후폭풍을 위한 전조에 불과했다.

드득, 드드득!

기괴한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두 개의 힘이 허공에서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은형방 내부를 장식하고 있던 관상용 돌과 나무들, 그리고 건물들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커다란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주변의 모든 것들이 휩쓸리며 사라져 간다.

두 힘이 충돌하는 바닥에는 엄청난 양의 폭약이 터진 것처럼 큰 구덩이들이 생겨났다.

쾅쾅쾅!

연달아 폭음이 진동하며 주변의 것들이 터져 나가는 사이. 서로를 노려보며 두 사람이 힘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천무진과 대적하고 있던 상무기는 문득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의 근육들이 떨려 왔고, 막대한 내공을 쏟아부으며 강기의 대결을 펼치는 탓에 가뜩이나 엉망이 된 속이 연신 날뛰었다.

버티고 선 다리는 쉴 새 없이 떨렸고, 입가에서는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눈앞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버틴다! 곧…… 그 녀석들이 온다!’

이 같은 힘든 대결에서도 상무기가 물러나지 않고 버티고 선 건 다름 아닌 수하들이 올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신호탄도 쏘았고, 지금 이 정도로 커다란 소란도 일었으니 이쯤이면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열 명의 수하들 또한 금방 도착할 것이다.

그때까지 목숨만 부지할 수 있다면…… 이 싸움은 자신의 승리다.

상무기는 이를 악문 채로 자신을 향해 점점 다가오는 천무진의 힘에 대항하며 억지로 버티고 서 있었다.

찰나의 시간이 마치 억겁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순간들.

덜덜덜!

무섭게 떨리는 전신을 간신히 지탱한 채로 상무기는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둘이 쏟아부은 강기의 충돌은 주변의 모든 것들이 찢어발겨질 정도로 엄청난 격돌이었다.

물론 무공 자체가 암살에 특화되어 있다 보니 일반적인 무인보다는 살수에 가까워 전면전에서는 제 능력을 십 할 발휘하기 어려웠지만, 그걸 떠나 상무기 또한 천하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실력자였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을 살수라 하기보다는 무인으로 분류할 만큼 무공에 대한 자신감도 넘쳤다.

그토록 뛰어난 인물.

하지만 오늘은 운이 없었다.

그 상대가 천무진이었으니까.

그렇게 모든 힘을 쥐어짜서 버티고 서 있던 상무기였지만 결국 한계가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더는…… 무리야.’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이 펼친 파라벽강기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테고, 그것을 넘어선 천무진의 기운이 고스란히 자신을 덮칠 것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흘려보낸다!’

자신이 쏟아 내고 있는 강기의 방향을 비틀어 천무진에게 쏘아 보낼 생각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천무진이 펼친 강기를 자신 또한 받아야겠지만, 어차피 이대로 갔다가는 일방적으로 당할 뿐이다.

살아만 있다면, 그리고 도망칠 힘만 남아 있다면 그거면 된다.

"크으으으으!"

비명 소리에 가까운 고함과 함께 상무기는 격돌하고 있던 강기의 방향을 비틀었다. 물론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무진이 쏘아 낸 강기와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옆으로 기운을 흘려보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힘이 소모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전신의 힘을 짜낸 덕분에 상무기는 자신의 계획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드드드득!

마치 긁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두 개의 힘이 교차되어 상대방을 향해 나아갔다.

서로를 막던 힘이 사라지자 두 개의 강기는 기다렸다는 듯 상대방을 뒤덮었다. 새하얀 강기가 천무진을 덮치는 사이, 새카만 흑색 강기가 상무기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쏴아아아아!

쿠콰콰콰쾅!

연달아 터져 나오는 폭음과 함께 강기가 도달한 지점에는 엄청날 정도로 큰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덩달아 그 안에 자리한 두 사람에게도.

커다란 폭발이 휩쓸고 간 자리.

그곳에서 먼저 소리를 토해 낸 건 다름 아닌 상무기였다.

"컥컥."

털썩.

피를 줄줄 흘리며 비틀거리던 그가 소리와 함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흑령무상의 초식을 최대한 비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는 피투성이였다.

더군다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비어 버린 왼팔. 이번 격돌로 인해 그의 왼팔이 팔꿈치 위쪽으로 해서 아예 잘려져 나간 것이다.

거기다 강기의 대결에서 입은 내상과, 이번 일격으로 인해 몸속까지 완전히 진탕이 되어 버렸다.

실핏줄이 잔뜩 터진 눈동자는 마치 피가 나는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상무기는 침과 피가 뒤섞인 것들을 연신 줄줄 흘려 대며 붉은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알고 있었으니까.

천무진이 지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상무기의 생각대로 폭발 속에서 천무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서 걸어 나온 천무진은 상무기와는 대조적이었다.

이 정도의 충격파에 휩쓸렸으니 행색이 엉망인 건 당연했다.

허나 크게 눈에 띄는 부상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천무진이 입을 열어 안에 있는 피를 뱉어 냈다.

"퉤."

가볍게 피를 뱉어 낸 그는 손등으로 입가를 스윽 문질렀다.

번져 버린 피가 입 주변을 더럽혔지만, 사실 지금 두 사람의 상태는 비교 불가였다.

한쪽은 팔을 잃고, 피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반면 다른 한쪽은 조금의 내상을 입은 정도였을 뿐 별다른 타격이 없어 보였다.

싸우며 입은 몇 개의 잔부상들 또한 그리 깊지 않은 지금, 완전 반송장이 되어 버린 상무기로서는 더 이상 천무진을 상대로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생각보다 더 멀쩡한 천무진의 모습에 상무기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무릎을 꿇은 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던 상무기가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체 왜 오지 않는 것인가?

분명 이 정도라면 도착하고도 남았어야 할 시간인데…….

바로 그때 먼 거리에서 마주하고 있던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게 바깥에 대기시켜 놓은 그놈들인가?"

천무진의 그 한마디에 상무기가 화들짝 놀라 더듬거렸다.

"그, 그걸 어떻게……."

"이런 맞나 보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천천히 다가오며 뭔가를 이야기하려는 천무진을 향해 떨리는 시선을 보내는 상무기. 그런 그를 향해 천무진이 비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거기엔 백아린이 있었거든."

애초부터 그 열 명은 올 수가 없었다.

외부에 있던 그들은 백아린에 의해 오히려 제일 먼저 정리가 되었을 테니까.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 상무기의 낯빛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가 절망하듯 잘려져 나간 왼쪽 팔 부분을 감싸 쥔 채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잘려진 부위에서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피가 지금 이 모든 것이 현실이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번쩍 고개를 든 상무기의 입에서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 으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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