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처벌 ― 대가를 치러야지 (2)
백아린과 한천을 제거하기 위해 준비되었던 계획.
그것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그 일을 꾸민 당사자인 이총관 황균과, 육총관 어교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실패할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을 정도로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던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기 무섭게 황균은 어교연에게 이 같은 일을 알렸고, 곧바로 두 사람은 약속을 잡았다.
원래였다면 아무렇지 않게 광동성 화도 지부에서 만났겠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두 사람은 비밀리에 외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가능하면 두 사람 간의 연결 고리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약속 장소로 정해진 곳은 화도 마을 외곽에 위치한 자그마한 장원이었다. 그 장원은 황균이 비밀리에 소유한 거점으로, 개인적인 용무로 사용하는 거처인지라 적화신루 쪽에도 보고되지 않은 곳이었다.
비밀 거처에 도착한 황균은 안에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그렇게 집무실에 들어선 그는 곧바로 자리에 앉은 채로 상념에 잠겼다.
생각지도 못한 계획의 실패, 거기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대체 이런 시기에 어디로 사라진 게야!’
황균의 부총관인 종치수가 어제저녁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 총관인 그가 시킨 일을 급히 처리하느라 종종 연락이 되지 않는 일도 있다 보니 이런 경우가 그리 특별한 건 아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짜증이 치솟았다.
다른 여타의 업무야 그 외의 수하들에게 맡길 수 있었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이 일만큼은 부총관인 그를 제외하고는 누구의 도움도 받기 어려웠다.
가뜩이나 일이 실패한 지금 이 일에 대해 아는 자가 단 한 명이라도 더 는다는 건 그만큼 부담이었으니까.
자신이 직접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하는 지금, 더더욱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은 채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어교연을 기다리던 황균의 귓가로 이곳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자연스레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고, 이내 건너편에서 기다려 온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총관님 들어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들어오시죠."
황균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곧장 문을 열며 어교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급히 이곳으로 달려온 그녀의 표정 또한 좋을 리 만무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어교연이 물었다.
"계획이 실패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질문을 던지는 그녀의 표정은 창백했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였다.
어교연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황균이 답했다.
"두 사람이 모두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이들은 모두 귀문곡의 사람들이라더군요."
"이번 일에 많은 이들이 투입되지 않았어요? 대체 어떻게 이 계획이 어긋날 수 있죠?"
따지듯 물어 오는 어교연을 향해 황균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나인들 그걸 어찌 알겠습니까? 나도 죽은 그놈들을 깨워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백 명 이상의 무인들이 투입됐고, 개중에는 귀살의 일급 살수들도 즐비했다던데 살아서 돌아간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대체 누가 도왔기에 귀문곡의 그 많은 자들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지만 두 사람을 도울 만한 세력이 움직인 정황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대화를 나누는 황균과 어교연의 머리에는 그 함정을 빠져나온 것이 백아린과 한천 두 사람만의 힘 때문이라는 가정은 들어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이 지닌 진짜 능력을 알지 못했으니까.
어교연이 초조한 듯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뭔가 일이 생겨서 양쪽이 다 죽은 거라면 좋겠는데……."
간절한 바람을 담아 말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희박한 확률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양팔을 탁자 위에 올린 황균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해야 할 상황입니다. 두 사람이 모두 살아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 두 사람은 백아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뛰어난 능력에 대해서는 애써 부정하고 있었지만, 그건 질투 때문에 하는 말에 불과했다. 두 사람 모두 적화신루 내에서 백아린이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녀라면…… 이번 일이 벌어진 것이 잘못된 정보 때문이고, 그렇게 흘러 들어간 정보가 어떤 경로로 자신들에게 들어왔는지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다른 이들을 속이기 위해 여러 가지 눈속임용 장치를 마련해 두긴 했지만…….
어교연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런 속임수가 통할 상대가 아니지. 한천만 살았다면 모를까 백아린이라면 분명 금방 정보를 움직인 게 누군지 알아차릴 거야.’
어교연은 차라리 백아린이 죽고 한천만 살아남았다면 희망이 있을 거라 여겼다. 황균이나 어교연 두 사람 모두 한천이라는 사내를 무척이나 얕봤으니까.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던 어교연은 이내 뭔가 이상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다 물었다.
"그런데 부총관은 어디에 있나요? 안 데리고 오신 건가요?"
"자리를 비웠더군요. 하필이면 이런 위급한 순간에 자리를 비우다니 쓸모없는 자식 같으니라고."
다시금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는 황균을 바라보던 어교연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때 황균 또한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육총관님의 부총관도 안 보이는군요."
"이곳에 오고 나서 밤늦게까지 술을 퍼마시러 다니더니만 오늘은 코빼기도 안 비치더라고요."
"하여튼 부총관이라는 놈들이!"
황균이 짜증스레 탁자를 주먹으로 탁 치는 그때였다.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어교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됐네요."
생각지도 못한 어교연의 말에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황균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잘되다니 무슨 소립니까? 이런 상황에 자리를 비운 탓에 제가 얼마나 더 정신이 없는……."
"그 두 사람이 없으니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드러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두 사람이 없어야 할 수 있는 대화요?"
물어 오는 황균을 향해 어교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시잖아요.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거."
"……혹시 최후의 비책을 사용하실 생각입니까?"
이미 이전에 작전을 짜며 예상치 못한 상황을 위한 대비책을 몇 가지 준비해 뒀었다. 그리고 그중 최후의 수는 바로 이 모든 일의 죄를 부총관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황균의 물음에 어교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지금 이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보여요. 백아린이 정말 살아 있다면 곧 모든 가짜 정보가 이곳 적화신루 화도 지부에서 나간 사실을 알아내겠죠. 당연히 그럼 의심의 화살은 이총관님께 향할 것이고, 그럼 저도 무사하긴 힘들 테고요."
"흐음……."
"망설이실 시간 없어요. 서둘러 결단을 내리셔야 해요."
어교연이 재촉하듯 말했지만 황균은 턱을 괸 채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어교연은 답답했다.
그녀가 짜증스레 속으로 욕설을 터트렸다.
‘뭘 고민하고 그래 머저리 같은 새끼야! 지금 부총관을 희생시키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다고. 하여튼 저 답답한 성격 같으니라고.’
이를 갈면서도 애써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어교연을 향해 황균의 눈동자가 슬며시 스치듯 지나가며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턱을 괴고 있던 손이 천천히 입가에 닿는 순간.
놀랍게도 손바닥으로 가려진 황균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황균의 눈이 애써 초조함을 감추고 있는 어교연에게로 다시금 향했다.
‘망할 계집, 여태까지 네년이 날 이용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어느 정도 장단에 맞춰 준 것은 사실이다.
처음 이와 관련된 대화를 나눌 때 어교연이 했던 말대로 백아린은 루주와 일총관만이 자리할 수 있는 비밀회의에 낄 수 있는 특별한 인물이었으니까.
그런 백아린에게 황균이 노리고 있는 일총관의 자리가 주어질 거라 의심했다.
그리고 상황상 그럴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었다.
당연히 백아린은 눈엣가시였고, 어떻게든 제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애초에 어교연과 손을 잡은 건 백아린을 제거하는 데 있어 혼자만의 힘으로 하는 건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교연은 황균을 자신이 이용해 먹고 있다 여겼다.
허나…… 아니었다.
‘내가 왜 네년과 손을 잡았는지 아느냐?’
황균이 맞은편에 자리한 어교연을 지그시 바라봤다. 분명 부총관을 이용해 이번 위기를 빠져나가는 것 또한 방법일 순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에게 향하는 의심을 완벽히 지워 낼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는 어찌 목숨을 부지하는 게 고작일 뿐, 모든 의심을 씻지 못할 것이고 결국 지금 이 자리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랬기에 황균은 처음부터 보다 확실한 방법 하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멍청한 계집. 죽어야 할 건…… 너다.’
처음부터 황균은 만약의 상황이 닥쳤을 때, 자신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죽어 줄 인물로 어교연을 점찍어 뒀다.
그랬기에 그녀의 꾐에 넘어가 주며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함께 계획을 짰던 것이다.
황균에게는 이미 어교연이라는 안전장치가 준비되어져 있었으니까.
때가 왔음을 직감한 황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선 그를 어교연이 올려다볼 때였다. 황균이 옆에 있는 곳으로 다가가 준비해 두었던 찻잎을 잔에 담기 시작했다.
몸을 돌린 채로 차분히 움직이는 황균의 손에 들린 이 찻잎.
이건 그냥 보통의 찻잎이 아니었다.
실력으로만 겨뤄도 자신이 어교연보다 강했지만, 보다 소란 없이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독을 먹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독을 먹여 내상을 입힌 상태에서 무력으로 제압을 한다면 아주 조금의 실패할 확률조차 사라질 거라 생각했으니까.
차를 준비하는 황균의 행동에 어교연이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어서 결정을 내리셔야……."
"아무래도 오래 함께한 수하이다 보니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군요. 차라도 한잔하면서 마음의 답을 정할까 싶습니다."
말을 끝낸 황균은 찻잔에 물을 내리고는 이내 둘 중 하나를 어교연에게 내밀었다.
황균이 입을 열었다.
"육총관님도 드시지요."
"……."
이런 상황에서 차나 건네는 황균의 태도가 답답했지만, 지금으로써는 우선 생각할 시간을 줄 수밖에 없다 생각한 어교연이 내미는 찻잔을 받아 들었다.
탐탁지 않은 표정의 어교연이 찻잔에 슬며시 입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황균이 애써 감정을 감춘 채로 그 모습을 살펴보고 있는 바로 그때.
"자, 담소들은 즐거우셨습니까?"
창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두 사람이 동시에 움찔했다. 놀란 표정으로 황균과 어교연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향한 창가 쪽.
그곳에는 놀랍게도 창문틀에 기대어 안을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한천이 있었다.
놀란 황균이 중얼거렸다.
"너는……."
"한천?"
뒤이어 어교연이 한천의 이름을 언급할 때였다.
그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방 안쪽에 자리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야, 오랜만에 뵙는 분들이 여기들 계셨군요.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이런 곳에서 은밀한 만남이라…… 무슨 대화들을 하시고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네가 여길 어떻게 알고……."
이곳은 적화신루에도 알리지 않은 황균의 비밀 장소였다. 그런데 그곳에 다른 이도 아닌 자신들이 죽이려 했던 둘 중 한 명인 한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그 순간 갑자기 옆을 바라보며 한천이 손을 흔들었다.
"앗, 대장! 여깁니다. 이쪽에 두 분이 계시네요. 이쪽으로 오시죠?"
대장이라는 말에 황균과 어교연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둘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백아린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건, 벌써 자신들의 비밀을 모두 알아차렸다는 말이었으니까.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는 둘을 향해 한천이 픽 웃으며 말했다.
"어라? 놀라셨나 봅니다. 대장이 왔다는 말은 농담인데."
"……지금 뭐 하자는 게냐?"
살기 어린 표정으로 말을 내뱉는 황균을 향해 여유 가득한 표정의 한천이 답했다.
"뭐 하긴요. 그냥 구경 중이었습니다."
"구경?"
되묻는 황균을 바라보던 한천이 슬그머니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검집째로 창틀에 턱 올려놨다.
한천이 웃으며 말했다.
"자기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 짐승 두 마리가 여기 있다고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