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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99화 (198/293)

199화. 잔혹 ― 뵙게 해 드리죠 (1)

거침없는 한천의 행동에 황균과 어교연 두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일순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평상시라면 당연히 참지 않고 분노를 터트리기 충분한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에 나타났다는 것은 뭔가를 의심하고 있다는 게 분명한데.’

한천을 바라보는 황균의 머리가 재빨리 돌아갔다.

백아린의 수하인 그가 나타난 건 분명 희소식이 아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최소한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것이…… 한천 하나뿐이었으니까.

황균은 속으로 비웃음을 삼켰다.

속내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사총관 생각보다 얕은수를 쓰는군그래. 이런 식으로 우리를 떠보려는 겐가?’

증거가 있었다면 이처럼 혼자서 나타나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터.

만약 그랬다면 적화신루의 인원들을 대동한 채 자신들을 제압하러 왔을 게다. 그런데 굳이 혼자 나타났다는 것은 곧 의심만 있을 뿐 아직까지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걸 의미했다.

아마도 이 같은 수를 통해 자신들을 당황하게 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만들려는 속셈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황균이 재빨리 어교연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육총관, 동요하지 마시지요. 증거가 있었다면 이렇게 혼자 나타날 이유가 없으니.』

황균의 말에 잠시 당황했던 어교연이 빠르게 정신을 추슬렀다. 그러고는 한천에게는 보이지 않게 눈빛으로 알겠다는 신호를 보내고는 이내 평소처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가 불만스러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

"짐승? 미친 자식이 지금 건방지게 혀를 놀리는 그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거야? 네 주인을 믿고 까부는 것도 정도가 있어!"

말과 함께 어교연은 자신의 내공을 주변으로 쏟아 냈다. 동시에 방 내부에 휘몰아치는 가벼운 미풍, 그걸 보며 황균이 준비된 말을 내뱉었다.

"진정하시지요, 육총관."

"사총관은 아랫사람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주제도 모르는 놈이 끼어드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하물며 저런 말투라니……."

다시 한번 불만을 터트리는 어교연을 향해 양손을 들어 진정하라는 시늉을 해 보이던 황균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여전히 창문에 기댄 채로 안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가 비록 사총관의 부총관이라 해도 상관인 우리에게 함부로 지껄인 점에 대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게다. 같은 신루의 사람에게 직접 손을 대는 건 이치에 맞지 않으니 네 처분은 상부에 보고하여……."

"하하하! 이치라."

한천이 배를 쥔 채로 웃어 댔다.

황균이 자신의 말을 웃음으로 끊어 버린 한천을 노한 눈으로 노려보는 그때였다.

어찌나 크게 웃었는지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 내며 한천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치를 아시는 분이 같은 신루의 사람들을 죽이려고 한답니까? 참 재미있는 분이시네."

죽이려 했다는 말을 대놓고 입에서 꺼내자 황균의 표정은 싸늘함을 넘어서 분노로 가득했다.

그가 말했다.

"지금 내가 신루의 사람들을 죽이려 했다 이 말이냐?"

"그것에 대해서는 저보다 여기 계신 두 분이 더 잘 아시는 걸로 아는데요."

"……도를 넘어서는군."

말과 함께 황균이 성큼 한천이 자리하고 있는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당장이라도 한천에게 달려들어 건방지게 입을 놀린 대가를 치르게 만들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바로 그때 한천이 여유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계속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시는군요. 제가 왜 두 사람 앞에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어라? 설마…… 증거가 없어 이러고 있을 거라고들 생각하시는 건 아니지요? 아, 그렇다면 이거 죄송한데."

머리를 긁적이며 내뱉은 한천의 말.

그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말한 대로 증거가 없으니 이렇게 나타나서 자신들을 떠보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한천의 말은 뭔가 묘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치솟는 그 순간 여유 가득한 얼굴로 한천이 말을 이었다.

"전 이미 획득했거든요. 증거, 그리고 증인들까지도."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

한천의 말에 놀라긴 했지만 황균은 동요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저 허울뿐인 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 그를 향해 검지를 추켜세운 한천이, 창가에 기대어 선 채로 심술궂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자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말을 끝낸 한천이 훌쩍 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 착지한 그가 두 사람의 심장을 뒤흔드는 한마디를 던졌다.

"두 분의 부총관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그 한마디에 황균과 어교연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일순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불안한 예상 하나.

그리고…….

스르릉.

이번에는 둘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향했고, 그곳에서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들고 있는 한천이 있었다.

한천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 힘들게 시치미를 떼실 필요 없습니다. 의문을 가지고 나타난 게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온 거니까요. 제가 혼자서 두 분 앞에 나타난 건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거든요. 그저…… 혼자서도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말과 함께 검을 늘어트린 한천을 바라보던 황균은 이를 갈았다.

부총관들이 나타나지 않은 걸 그저 일 때문이라 여겼거늘…….

허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상황에 모든 걸 인정하거나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어교연에게는 몰라도 황균에게는 아직 마지막 수가 남아 있었으니까.

모든 일을 어교연, 그녀의 잘못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어떻게든 힘을 합쳐 이 난관을 타개해야 했다.

황균이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아무래도 말이 통하지 않겠군. 이 일에 대한 오해는 네 녀석을 쓰러트리고 우리가 직접 루주님께 전하도록 하지."

"그게 가능하다면?"

한천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상대의 여유 가득한 모습은 황균의 심기를 건드리기 충분했다.

‘도대체 뭘 믿고 저리도 건방지단 말인가.’

혼자서도 충분하다며 자신 둘을 눈앞에 둔 채로 전혀 겁먹지 않고 있는 한천이다.

비록 정보 단체의 인물이니만큼 상대적으로 다른 문파의 장로급에 비해서 무공이 낮은 건 사실이지만 상대는 고작 일개 부총관 한 명일 뿐이다.

순간 어교연에게서 전음이 날아들었다.

『이총관님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우선은 눈앞에 있는 저놈부터 쓰러트리도록 합시다. 추후의 일은 직접 루주님을 만나 뵙고 해결하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천의 말대로 부총관들이 저들 손에 들어간 거라면…….』

자신 둘이 벌인 일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부총관들이다. 그 둘의 입이 열렸다면 그 어떠한 변명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걸 어교연은 잘 알고 있었다.

걱정 어린 기색을 내비치는 그녀를 향해 황균이 답했다.

『생각해 둔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은 저자부터 처리하도록 하지요.』

황균의 전음에 어교연의 얼굴에 희망이 맴돌았다.

그 방법이라는 것이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일 줄은 상상도 못 한 채로 말이다.

이번 일의 혐의에서 벗어날 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어교연 또한 자신의 무기를 빼 들었다. 두 사람과 마주한 한천이 웃으며 말했다.

"조심해야 할 겁니다. 오늘 두 분은 제게 상관이 아닌 동료를 버린 죄인이거든요."

"그 입 닫아!"

버럭 소리를 내지른 어교연이 먼저 움직였다.

파앙!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른 그녀의 검이 일(一)자로 날아들었다. 어교연의 몸은 순식간에 방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던 한천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상대는 고작 부총관. 자신의 이 날카로운 기습이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기 충분할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날아드는 공격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천은 검이 자신을 관통하려는 순간 가볍게 옆으로 움직였다. 그 때문에 검은 허공을 갈라 버렸고, 어교연의 몸 또한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

한천이 손등으로 드러난 그녀의 목뒤를 후려쳤다.

빡!

"어억!"

비명과 함께 어교연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가 서둘러 일어났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탓에 이곳저곳이 붉게 물들었고, 덩달아 입 안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혹여나 한천이 공격을 펼칠까 서둘러 황균이 달려들었다.

그의 검이 여러 개의 검광을 쏟아 내며 갈라졌다.

카카카캉!

밀려드는 공격들, 그런데 한천은 놀랍게도 그 공격을 모조리 검의 손잡이 아랫부분만으로 받아 냈다.

사력을 다해 휘두른 일격을 손잡이의 아랫부분만으로 밀쳐 낸 한천이 껑충 뛰어올랐다. 동시에 발이 황균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일격을 허용한 그가 뒷걸음질 쳤다.

"우웁! 이, 이 새끼가……."

뒷걸음질 치던 와중에 검을 땅에 박아 넣으며 몸을 지탱한 황균이 힘겹게 욕설을 내뱉었다. 얼결에 밀려 나간 그는 아직까지도 지금 이 모든 일련의 상황들을 쉬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공격을 마치 장난치듯 받아 낸 걸로 모자라 눈으로 좇지도 못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으로 일격을 날렸다.

사실 날아든 것이 발이라 망정이지, 만약 그것이 검이었다면 이미 숨통이 끊어지고도 남았을 상황이다.

지금 보여 준 한천의 실력.

그것만으로도 그가 자신들의 생각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무력을 지닌 무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황균은 눈을 부릅뜬 채로 눈앞에 있는 상대를 바라봤다.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의아했던 저 자신감 가득한 모습.

‘설마…… 여태까지 실력을 숨겨 왔다는 건가?’

무림에서 자신의 실력을 감추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건 경우가 조금 달랐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아 왔던 자다. 거기다가 같은 무리에 속해 있었기에 실력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 여겼다.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검을 어깨에 걸친 채 서 있던 한천이 혀를 내두르며 탄성을 내질렀다.

"허어, 이거 놀랍군요. 형편없을 줄은 알았지만…… 이거 기대 이상인데요."

"……네놈이 무엇을 믿나 했더니 숨겨 둔 실력이 있었구나."

"숨겨 둔 것이라기보다는 보여 드릴 기회가 없었다는 게 정확하겠죠?"

"감히 상관을 건드리다니. 루주님을 뵙겠다! 그래서 직접 무고를 밝힘과 동시에 네게 벌을……."

실력으론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황균은 재차 루주를 언급했다. 루주를 직접 만난다면 어떻게든 방도를 찾을 수 있다 여겨서였다.

그런 그를 향해 한천이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아, 걱정 마시죠. 그러지 않으셔도 그렇게 해 드릴 생각입니다."

"루주님을 뵙게 해 준다고?"

"그럼요. 두 분을 제 마음대로 죽일 순 없지 않습니까. 루주님을 직접 뵙게 될 거고, 그 처벌 또한 루주님께서 직접 정하실 겁니다. 다만."

처음부터 두 사람을 죽일 생각이 없었던 한천이다.

그의 역할은 이곳에 있는 저 둘을 끌어다가 적화신루라는 이름 앞에 무릎 꿇리는 일이었다.

잠시 대화를 끊었던 한천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두 분을 어떻게 끌고 갈지는 아무래도 제 마음대로일 것 같군요."

말과 함께 한천이 성큼 앞으로 다가섰다.

놀란 듯 움찔하는 두 사람 중 어교연에게 시선을 돌린 한천이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쉽게 안 끝날 겁니다. 한 분한테는 그간 좀 쌓인 게 있어서요."

미소가 묘하게 섬뜩한 건 아마도 그간 어교연이 백아린이나 한천에게 해 왔던 행동이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다가서던 한천이 퍼뜩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참, 그리고 도망갈 생각이 있으면 버리시는 게 좋을 거라고 충고해 드리죠. 사실 저만 왔다는 건 거짓말이거든요."

"뭐?"

놀란 듯 어교연이 되물을 때였다.

우우웅!

뒤쪽에서 밀려드는 묵직한 내공의 움직임을 느낀 황균과 어교연이 뒤편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콰앙!

폭음과 함께 벽면 한쪽이 날아가 버렸고, 무너져 있는 돌무더기 위로 한 명의 사내가 성큼 들어서고 있었다.

사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곱상한 외모의 소유자.

허나 정보 단체의 몸담고 있는 황균과 어교연이 상대가 누군지 모를 리 만무했다.

천무진의 최측근 단엽.

그가 무너진 벽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천이 반갑게 그를 맞았다.

"너답게 참 소란스럽게도 나타난다."

단엽은 눈앞에 있는 두 명의 상대를 바라보며 맘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이내 핀잔을 주던 한천을 향해 말했다.

"재미있게 해 준다더니 이 잔챙이들은 뭐냐?"

관심도 안 간다는 듯 시큰둥하게 말하는 단엽.

그렇지만 그런 그의 태도에도 황균이나 어교연 모두 입을 열 수 없었다.

단엽은 자신들에게 이 같은 말을 내뱉을 자격을 갖춘 인물이었으니까.

단엽까지 등장하자 안색이 파리해진 황균은 급히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은 싸워야 할 때가 아니었다.

한천 하나로도 버거웠던 상황에서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무인 단엽까지 나타났다. 이건 어떻게든 피해야 할 싸움이 되어 버린 것이다.

황균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대홍련의 부련주시군요."

"그런데?"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최근 저희 적화신루와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다는 것도요. 저는 이총관 황균이라고 합니다. 예전부터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저에 대해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천천히 차라도 한잔하시면서……."

황균이 친근한 척 말을 내뱉으며 단엽에게 다가갈 때였다.

뻐억!

단엽의 주먹이 다가오는 황균의 얼굴을 후려쳤다.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지는 그를 바라보며 단엽이 퉁명스레 말했다.

"어디서 친한 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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