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잔혹 ― 뵙게 해 드리죠 (2)
천무진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몸을 회복해 나갔다. 덕분에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원래의 몸 상태까지 회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슬슬 지금 있는 마을인 오천을 떠나 원래의 거점인 마교로 돌아가려던 그때, 갑작스레 날아든 정보는 천무진과 백아린의 목적지를 바꿔 놓았다.
한천이 일을 벌이기 전에 보낸 서찰이었다.
자리에 앉은 채로 서찰의 내용을 확인한 그녀가 표정을 구겼다.
‘……역시 그 두 사람이었던 건가?’
누군가가 자신과 한천을 가짜 정보로 함정에 몰아넣었다. 범인으로 예상되는 몇몇 이들이 있었는데, 이 서찰 안에 적힌 이름은 그녀가 의심했던 몇몇 중에 포함된 자였다.
이총관 황균과 육총관 어교연.
백아린에게 서찰을 보낼 때까지만 해도 아직 한천이 그 두 사람을 잡기 전이었기에 이것만으로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장담할 수 없었지만…….
‘부총관이라면 이미 일을 마무리 지었겠군.’
한천의 실력을 잘 아는 백아린이다.
백아린은 그가 이미 두 사람의 신병을 확보하고, 서찰에 적힌 장소로 데리고 오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 서찰은 자신뿐 아니라 일총관 진자양에게도 보냈다고 하니, 아마 그도 지금쯤 열심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서찰을 바라보며 딱딱하게 표정을 굳힌 백아린의 모습에 침상에 걸터앉아 있던 천무진이 슬쩍 물었다.
"누구한테 온 서찰인데 그렇게 심각해?"
"부총관이요."
"그래? 뭐 문제라도 생긴 건가?"
"아뇨, 문제가 생겼다기보다는 해결했다는 것이 맞겠죠."
"무슨 일인데?"
"당신도 알 거예요. 이번 거짓 정보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을 것 같아 조사하고 있었다는 걸요. 그들을 찾았다네요."
"범인이 누군데?"
천무진의 질문에 백아린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의심하긴 했지만 제발 아니기를 바랐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예전부터 알았지만 같은 적화신루의 사람들.
이왕이면 외부의 개입으로 인해 문제가 생겼던 것이기를 기도했거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총관과 육총관이요."
대답이 떨어지는 순간 천무진이 움찔했다.
둘 중 한 명이 자신도 아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 여자를 말하는 건가?’
천무진은 기억 저편에 있는 어교연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렴풋이 떠오른 그녀는 한눈에 봐도 욕심이 많아 보였다.
그랬으니 직접 천무진을 찾아와 자신의 손을 잡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겠지.
백아린보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며, 스스로의 능력을 강하게 주장하던 어교연이었다. 물론 천무진은 그런 그녀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었지만.
스스로가 백아린보다 얼마나 더 출중한 능력을 가졌는지 보여 주겠다며 호언장담을 하던 어교연이었거늘…….
‘그래 놓고 보여 준 것이 고작 이런 거라니.’
천무진은 백아린을 상대로 이런 어설픈 싸움을 건 어교연이라는 여인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를 향해 백아린이 물었다.
"갑자기 왜 웃어요?"
"아니, 별건 아니야. 그냥…… 그 둘이 상대를 잘못 골랐구나 싶어서."
상대방에게 측은지심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여인. 그들은 그걸 몰랐고, 그랬기에 이번 계획 또한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다.
천무진이 물었다.
"그래서 상황이 어떻게 됐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부총관이 움직인다 했으니 얼추 상황 정리는 끝났을 테고, 이후의 일은 루주님이 정리하셔야 하는 문제가 된 것 같네요."
벌을 받아야 할 대상들은 다름 아닌 총관의 자리에 올라 있는 이들이다. 아무런 절차도 없이 벌을 내릴 위치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백아린이 이내 말했다.
"아무래도 이 일을 매듭짓기 위해서 잠시 다른 곳에 들렀다가 마교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요. 시간 괜찮겠어요?"
"먼 곳인가?"
"아뇨, 일부러 최대한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준비한 모양이에요. 광동성 내부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이야기를 들은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동성 내에서 일을 처리하는 거라면 원래 일정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테니, 그 정도라면 전혀 문제가 없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하라는 듯한 행동을 취하는 천무진을 가만히 바라보던 백아린이 조심스레 입을 열어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번 자리엔 루……."
"사, 사총관님!"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온 고함 소리에 백아린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는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으로 이곳 장원을 관리하는 적화신루의 인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얗게 질린 그를 보며 백아린은 뭔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녀가 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죠?"
"그, 그것이……."
지금의 일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사내는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며 이곳에 온 이유를 알렸다.
"창고에 가둬 둔 그 여자가…… 죽었습니다."
수하의 그 말에 백아린이 놀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창고에 갇혀 있는 적련화는 백아린에게 혈도를 점혈당해 있었다. 그랬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도 그러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죽었다고?
눈을 크게 치켜뜬 채로 그녀가 물었다.
"죽었다고요? 설마 외부에서 누가 잠입이라도 한 건가요?"
그 또한 확률이 그리 높진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이 아니라면 적련화가 죽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됐다.
허나 그런 그녀의 질문에 수하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것이……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고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바로 가죠."
말을 마친 백아린이 막 방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였다. 침상에 앉아 있던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잠깐."
그의 목소리에 백아린이 멈칫하고는 뒤를 돌아볼 때였다. 침상에서 천천히 일어선 천무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함께 가지."
"……괜찮겠어요?"
"상태가 안 좋을 것 같으면 알아서 멈출게. 그러면 별문제 없는 것도 확인했잖아."
천무진의 말에 백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도 아닌 적련화의 일이다. 천무진으로서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건 당연했다.
두 사람은 수하의 뒤를 따라 곧바로 적련화를 가둬 두었던 창고로 향했다. 그렇게 막 창고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윽."
백아린은 짧은 소리와 함께 눈살을 찌푸렸다. 그저 근처로 갔을 뿐이거늘 열린 창고의 문을 통해 지독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건 오래된 시체 썩는 냄새와 흡사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지독한 악취를 참으며 두 사람은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안에는 먼저 이곳에 자리하고 있던 세 명의 수하들이 있었다.
백아린을 향해 그들이 인사를 건네려 하자 그녀는 서둘러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백아린이 등장하자 세 명의 수하들은 곧장 바깥으로 나갔고, 이곳으로 안내해 준 사내만이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앞장서서 들어섰던 백아린이 이내 뒤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이어 들어선 천무진이 적련화의 시신과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당시 크게 여섯 걸음 반 정도의 거리를 두자 천무진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그보다 조금 더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멀쩡해 보였다.
백아린이 서둘러 물었다.
"괜찮아요?"
"……그런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금씩 상태를 확인하면서 와요. 전 먼저 시신부터 보고 있을게요."
"그렇게 해."
대화를 끝낸 백아린은 곧장 쓰러져 있는 적련화의 시신을 향해 다가갔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악취는 심해졌고, 엎어져 있는 시신의 상태가 보다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체 이건…….’
창고에 들어설 때부터 보아 알고 있긴 했지만, 이상할 만큼 근처가 온통 피투성이다. 조심스레 주변을 확인하며 다가선 백아린은 곧장 엎어져 있는 적련화의 시신을 똑바로 돌려 눕혔다.
그리고 그 시신이 제대로 눕는 순간.
백아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순간 뒤편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던 적화신루 쪽 수하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 댔다.
"허억!"
그는 제법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었다.
시신을 본 적은 수도 없이 많거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시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끔찍하게 죽었다는 사실만 확인했었을 뿐, 시신의 상태를 제대로 본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참지 못한 사내가 구역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우, 우웩! 웩!"
참으려 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만큼 시신의 상태가 너무도 끔찍했으니까.
옆에서 토악질을 해 대는 수하의 모습에 백아린이 재빨리 말했다.
"나가 있어요.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죄, 죄송합…… 웨웩!"
참지 못하겠는지 재빠르게 바깥으로 뛰쳐나간 수하가 재차 구역질을 해 대는 소리가 들렸다. 허나 그 와중에서도 백아린은 최대한 침착하게 시체의 상태를 확인했다.
원래도 끔찍했던 외형의 적련화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는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했다.
한쪽 눈은 어떠한 고통을 마주했는지 말해 주려는 것처럼 크게 치켜뜬 상태였고, 반대편 눈알은 반쯤 사라져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에 먹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디 그뿐인가.
배는 갈라진 채로 몸 안의 장기들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조각조각 나 있었고 전신의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모조리 피가 뿜어져 나온 듯싶었다.
거기다가 전신의 살점 곳곳이 찢겨져 나가 있었다.
보통의 시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악취가 풍겼고, 또 엎어져 있던 바닥에는 찢겨진 장기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얽혀 있었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있는 손톱과 발톱들마저도 뽑혀 있는 지금 이 상황은 실로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백아린이 시체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이, 어느덧 바로 뒤에까지 다가온 천무진이 말없이 죽어 있는 적련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생에 이어 이번 생까지.
천무진을 쥐락펴락했던 여인인 적련화가 비참한 몰골로 숨을 거두고야 만 것이다.
시신을 확인한 천무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끔찍하군."
"……그러게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외부인의 침입이 있었던 건 아닐까 했지만, 이런 식으로 죽였다면 소란이 일었을 테고 그걸 천무진이나 백아린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천무진이 물었다.
"썩은 냄새가 보통이 아닌데 대체 언제 죽은 거지?"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시체의 부패 속도가 정상 범주가 아닌지라 더 자세하게 파악하는 건 어려울 것 같고요. 다만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는 걸 직접 봤으니…… 아마도 그사이에 벌어진 일이겠죠."
말을 마친 백아린은 다시금 천천히 시체의 상태를 살폈다.
찢긴 장기와 살점들.
평범하지 않은 부패 속도.
그런데…… 적련화를 죽게 만든 그 뭔가가 무엇일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보통 사람은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을 끔찍한 시체를 백아린은 천천히 어루만졌다. 찢겨 나간 살점 부위를 만지며 백아린이 중얼거렸다.
"검이나 일반 쇠붙이로 찢긴 상처는 아닌데……."
베인 흔적이 아니다.
상처는 불규칙했고, 찢긴 방향도 이상했다.
마치 이건 흡사…….
그때 뒤에서 상처 부위를 바라보던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뭔가에 물어뜯긴 상처 같군."
"당신도 그렇게 보여요?"
"응. 일반적으로 베이거나, 특이한 무기에 찢긴 흔적으로 보긴 어려워."
천무진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백아린은 상처 부위를 더욱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천무진의 말대로 이건 뭔가가 물어뜯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뭔가는 무척이나 작은 놈이 분명했다.
개나, 호랑이 같은 커다란 동물이었다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날카로운 이빨의 흔적이 있었겠지만, 지금 적련화의 시신에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엉망이 된 시신을 어루만지던 백아린이 이내 말했다.
"상처가 몸 안쪽에서부터 시작됐어요."
그녀의 말에 천무진은 꿈틀했다.
지금 백아린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너무도 잘 알았으니까.
그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몸 안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무엇인가가 적련화의 신체를 갈기갈기 뜯어먹었다고.
그리고 그 말은 곧…….
시신을 어루만지던 백아린이 뒤편에 있는 천무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의심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천무진이 자신의 몸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벌레!
시선을 맞춘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자모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