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새로운 시대 ― 억울해 마시오 (2)
사천당문의 분타가 위치한 귀주성 삼도(三都) 지역.
그곳은 분타라는 명칭으로 불리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독의 연구를 위한 거점이었다. 남만 지역의 독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곳엔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무인들이 자리했다.
그건 이곳에 아주 위험한 독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함부로 외부에 나가서는 안 되는 극독들.
그 때문에 사천당문의 무인뿐만이 아니라 인근에 있는 세 개의 문파에서도 지원을 받아 그것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한 연유로 이곳 삼도 분타는 언제나 경비가 삼엄했고, 외부인은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절대 내부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런 삼도 분타의 중앙 지역.
삼엄히 경비를 서고 있는 무인들 틈으로 젊은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내의 정체는 바로 당자윤이었다.
별동대의 일 이후로 천무진의 눈치를 보며 죽은 듯이 지내고 있던 그가 이토록 움직이고 있는 건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당자윤이 도달한 곳은 바로 불귀당(不歸堂)이라는 장소였다.
불귀당의 입구에는 많은 무인들이 지키고 서 있었지만, 그 누구도 당자윤을 막지 않았다. 그는 이곳을 드나들 자격이 있었으니까.
당자윤은 대략 한 달 정도 전부터 이곳 삼도 분타에 와서 지내고 있었다.
바로 십천야 쪽의 명령이 있어서였다.
그들에게서 구명 받은 이후 얼결에 같은 배를 타게 된 당자윤이다.
그런 그로서는 십천야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본가인 사천당문에서 이곳 삼도로 갑자기 옮겨 온 것에 대해 불만으로 가득했던 시간들이었지만…….
터벅터벅.
당자윤은 겹겹이 닫혀 있는 몇 개의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선 후에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불귀당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곳은 크기가 무척이나 컸다. 수천 개에 달하는 독들을 보관하는 장소니 당연한 일이다.
시간이 다소 늦어서인지 불귀당 내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살피는 당자윤의 눈동자는 불안한 듯 흔들렸다. 그는 곧 익숙한 듯 내부를 걸었다. 몇 번이고 와 본 곳이기에 내부의 지리는 익숙했다.
다만 그는 뭔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연신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의심스러운 걸음걸이로 나아가던 당자윤이 멈추어 선 곳.
그의 앞에는 성인 장정 주먹 하나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 작은 크기의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시선과 마주하는 높이 정도에 위치한 항아리를 확인한 당자윤은 다시금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그가 슬그머니 손을 움직였다.
항아리를 쥔 그가 조심스레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이내 입구를 봉해 놓은 뚜껑을 소리가 나지 않게 열었다.
뚜껑이 열리자 안에서는 정체 모를 진한 향이 훅 하고 풍겨져 나왔다.
그리고 그 향을 마주하는 순간 당자윤은 눈을 꽉 감은 채로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의 독 기운이었다.
힘겹게 항아리 안을 확인하는 그 순간…….
꿈틀꿈틀.
항아리 안에는 십여 마리가 조금 넘는 정도의 지네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새카만 몸통에, 붉은 다리. 한눈에 봐도 위험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지네들이었다.
그리고 이 지네들은 흑사오공(黑死蜈蚣)이라 불리는 끔찍한 독충이었다.
한번 물리기만 해도 사지가 마비되고, 곧 죽음까지 이르게 만드는 놈들로 워낙 구하기 힘든 독충인지라 실질적으로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위험한 독충.
그것을 보던 당자윤이 흑사오공들이 자리하고 있는 항아리 안으로 품에서 가지고 온 뭔가를 휙 하니 던져 넣었다.
무섭다는 듯 손도 안 댄 채로 던져 넣은 물건은 바로 감나무의 나뭇가지였다.
아무런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나뭇가지 하나.
절반 정도가 항아리 안쪽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반만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감나무의 나뭇가지에 갑자기 거뭇한 뭔가가 나타났다.
바로 항아리 안에 있던 흑사오공 중 하나가 그 나뭇가지를 타고 움직인 것이다.
그것도 기괴한 소리와 함께.
쉬시식.
주변으로 은은한 독기를 뿜어내며 단 한 마리의 흑사오공만이 나뭇가지를 올라오고 있었다.
흑사오공에게는 특이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감나무에 반응한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흑사오공은 이런 식으로 감나무에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미 영역이 표시된 곳에는 또 다른 흑사오공은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랬기에 지금처럼 감나무의 나뭇가지에 단 한 마리의 흑사오공만 올라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확인한 당자윤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조심스레 항아리 안에 들어가 있던 나뭇가지를 바깥으로 휙 끄집어냈다.
동시에 재빠르게 항아리의 열린 뚜껑을 강하게 닫았다.
“후우.”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항아리를 제자리에 돌려놓은 당자윤의 시선이 이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감나무의 나뭇가지로 향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감나무에 붙어 있는 흑사오공의 모습 또한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꿈틀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탓에 당자윤은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당자윤의 목표는 흑사오공을 가지고 이곳 불귀당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허나 그것이 그리 간단할 리가 없었다.
불귀당을 나갈 때는 몸수색을 통해 뭔가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나가는 건 아닌지 확인을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식으로는 흑사오공을 가지고 나갈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흑사오공을 감출 만한 장소는…… 바로 입 안이었다.
흑사오공의 위험한 독은 물리거나, 아니면 저 벌레를 갈아서 만들 때 나타난다.
물론 가만히 있어도 뿜어져 나오는 독기 또한 어느 정도의 독성을 지니긴 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무인이라면 그리 위험하지 않았다.
그걸 잘 알지만…….
“으으.”
낮은 소리와 함께 당자윤은 품 안에 넣어 둔 다른 뭔가를 끄집어냈다.
그건 자그마한 천이었는데, 그 안에는 흑사오공이 좋아하는 감 씨가 자리하고 있었다.
감 씨가 담겨 있는 천을 바닥에 내려놨을 때였다.
촤르르르!
흑사오공이 수많은 다리를 꿈틀거리며 곧장 나뭇가지를 떠나 감 씨가 있는 천 위쪽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는 순간 당자윤은 서둘러 그 천을 회수했다.
그러고는 이내 절대 나올 수 없을 정도로 감 씨와 함께 흑사오공이 들어 있는 천을 동그랗게 말았다.
절대로 이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말이다.
최대한 조그맣게 천을 말아 쥔 당자윤은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긴장한 속내를 달랬다.
그는 이내 눈을 꽉 감았다.
지금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이미 약점이 잡혀 있는 상황, 십천야가 시키는 걸 거부하는 순간 자신의 운명 또한 끝이 난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의 말만 잘 따른다면…… 그때 약조했던 사천당문의 가주 자리 또한 꿈은 아닐 터.
눈을 꽉 감은 채로 당자윤은 흑사오공을 감싼 천을 입 안에 쑤셔 넣었다.
독기가 치명적이지도 않고, 천으로 감싸 직접적으로 피해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역질이 치밀었다.
이토록 천으로 싸서 입에 넣은 이유는 역시나 침이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입 안에 천이 있으니 침 또한 그것에 흡수될 테고, 그렇다면 겉보기에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을 테니까.
입 안에 흑사오공을 머금은 채 당자윤이 빠르게 불귀당의 입구로 움직였다.
혹시라도 사람이 올까 봐 미리 넣어 두고 움직였거늘, 문 몇 개를 통과하는 그 시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면서 조심한 것마저 후회가 되었다.
그렇게 나선 불귀당의 입구.
그곳에 자리하고 있던 무인들이 당자윤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 중 하나가 예를 갖춰 말했다.
“당 공자님, 아시겠지만 간단한 몸수색을 하셔야 합니다.”
당자윤은 애써 찝찝한 기분을 억누르며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신호가 떨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네 명의 무인들이 빠르게 다가와 당자윤의 몸을 뒤졌다.
익숙하게 옷 사이사이를 확인한 그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셔도 됩니다.”
무인들 중 하나의 대답이 떨어졌고,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당자윤은 평소처럼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불귀당의 입구에서 보이지 않는 장소에 도착했을 무렵.
“욱! 우욱!”
헛구역질과 함께 당자윤은 입 안에 머금고 있던 천을 뱉어 냈다.
천을 뱉어 내고도 모자랐는지 그는 연신 침을 흘려 댔다.
“으으으.”
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입 안이 얼얼한 느낌이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이고 헛구역질을 해 대던 당자윤이 이내 소매로 입가를 닦아 내고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흑사오공이 들어 있는 천을 손에 쥐었다.
천을 소매 속에 감춘 당자윤은 서둘러 사천당문의 분타를 벗어나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인적이 아예 없는 숲길.
미리 약속된 장소를 향해 움직이던 당자윤의 눈에 한 대의 마차와 함께, 열린 창으로 화려한 복색을 한 여인 하나가 보였다.
일전에도 한 번 만난 적 있던 여인.
주란이었다.
마차에 앉은 채로 자리하고 있던 주란이 다가오는 당자윤을 확인하고는 이내 창밖을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당자윤은 보다 빠르게 움직여 마차 위에 올라탔다.
당자윤과 마주 앉은 상황에서 주란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군요, 당 소협.”
“……오랜만에 뵙습니다.”
인사를 하는 당자윤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허나 주란은 그런 그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부탁한 물건은요?”
그녀의 질문에 당자윤은 소매 안에 감춰 뒀던 천을 꺼내어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말과 함께 꺼내어 든 흑사오공이 담긴 천.
그런데 천은 당자윤이 흘린 침으로 인해 지저분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 모습에 주란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당자윤이 서둘러 말했다.
“그것이 숨겨서 나오려다 보니 입 안에 넣는 바람에…….”
“흐음, 그래요?”
대답을 들은 주란이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손가락 두 개로 슬쩍 천을 건네받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것을 옆자리에 놓고 닫혀 있던 천을 풀어헤쳤다.
그렇게 드러난 천 안쪽의 모습.
그 안에는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는 흑사오공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흑사오공을 확인하는 순간 주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흑사오공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준비해 온 통 안에 천째로 휙 넣어 버린 그녀가 물었다.
“흑사오공이 사라진 걸 감출 수 있겠어요?”
“다행히 물건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정확한 물량이 파악되지 않았을 테니 별문제 안 될 겁니다.”
“반드시 그래야 할 거예요. 만약에라도 이것이 들통난다면…… 곤란한 건 당 소협이 될 테니까요.”
걱정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당자윤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경고라는 것을.
아마도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그들이 먼저 자신을 버릴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자윤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과 한편이 되면서부터 이미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할 각오를 하지 않았던가.
이미 뒤가 없는 당자윤에게 이 정도 위험은 짊어지고 나아가야만 하는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의미 모를 미소를 지어 보인 주란이 짧게 말했다.
“어쨌든 고생했어요. 우리의 일을 도왔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 하나 전해 주도록 하죠.”
좋은 소식 하나 전해 준다는 말에 얼굴에 화색을 띤 당자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기대하는 표정의 그를 보며 주란은 비웃음을 삼켰다.
그녀는 당자윤을 쉽게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에겐 아직 이용 가치가 남아 있었고,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주란은 당자윤과 함께할 계획이었다. 그랬기에 이런 일을 끝냈을 때는 당근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야 더더욱 충성하며 자신이 시킨 일을 해내려 할 테니까.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당자윤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다 멈칫했다. 그러고는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
“저 그런데…… 혹시 흑사오공을 어디에 사용하시려고 하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당자윤의 질문에 이미 반대편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주란이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그렇게 그와 눈빛을 마주한 채로 주란이 말했다.
“생각보다 궁금한 게 많으신가 봐요?”
목소리에 담겨 있는 질책을 느껴서일까?
당자윤이 당황한 듯 더듬거렸다.
“그, 그것이…….”
“궁금한 게 많은 건 상관없어요. 그거야 자기 마음이니까요. 하지만 그걸 드러내지는 말아요. 난 개인적으로 별로더라, 그렇게 궁금증 많은 사람. 뭔 말인지 알겠죠?”
웃으며 가볍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중은 분명하고 단호했다.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말라고.
궁금해하는 순간 뭔가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말이다.
주란의 경고 섞인 말에 황급히 고개를 끄덕인 당자윤은 곧바로 마차에서 내려서고는 말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오늘의 실수는 잊어 주시지요.”
“그래요.”
대답을 듣기 무섭게 당자윤은 몸을 돌려, 분타가 있는 쪽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렇게 그가 움직이자마자 주란 또한 바깥에 있는 마부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리도 가지.”
명령과 함께 마부가 기다렸다는 듯 말고삐를 움켜잡았다. 곧 세 마리의 말이 이끌고 있는 마차가 빠르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 가던 도중 바깥을 바라보고 있던 주란이 중얼거렸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놈이 벌써부터 궁금증을 가지네. 생각보다 오래 못 써먹겠어.”
말해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이용해 먹다가 버릴 그런 하찮은 패에게.
지금 받아 가고 있는 이 독으로 마교 소교주를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가능하면 범인이 누군지 모르게 처리할 작정이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일이 틀어진다면…….
‘그 죄는 사천당문이 뒤집어쓰겠지.’
주란이 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