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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10화 (209/293)

210화. 공허함 ― 아직은 아니니까 (2)

마교의 모든 일을 전담하고 있는 십천야인 양사창은 오늘 기다렸던 손님을 마주하게 되었다.

다름 아닌 소교주 악준기를 죽이기 위한 흑사오공을 가지고 온 주란의 수하였다.

주란은 이미 천무진 일행에게 얼굴이 알려져 있었기에, 위험 지역인 이곳 마교에 들어오는 선택을 피했다.

그랬기에 이곳 근처까지는 동행했지만 정작 양사창을 만나러 온 건 그녀의 수하였다.

평범해 보이는 외관의 사내가 방으로 들어서는 양사창을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양 대협을 뵙습니다.”

“인사는 됐어. 그보다 물건은?”

“여기 있습니다.”

양사창의 물음에 사내는 곧장 품 안에 챙기고 있던 나무 상자를 꺼내어 들었다.

주먹보다 조그마한 크기의 자그마한 나무 상자를 건네받은 양사창은 내용물을 확인하려는 듯 슬쩍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부탁했던 흑사오공이 자리하고 있었다.

새카만 몸통을 지닌 지네인 흑사오공을 확인하자 양사창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꽤나 상태가 좋은 녀석이군.”

양사창이 굳이 번거롭게 주란을 통해 사천당문에서 이 흑사오공을 받아 온 건 그저 만약의 상황에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표적인 소교주 악준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복용한 엄청난 수준의 영약들, 거기다가 뛰어난 수준의 무공을 가지고 있는 탓에 웬만한 독으로는 그의 내성을 뚫을 수 없었다.

그 말은 곧 거의 만독불침에 가까운 신체를 가지게 됐다는 소리다.

그런 악준기의 내성을 뚫고 목숨에 치명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독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개중 하나가 바로 이 흑사오공이었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도 구할 수 있었으나 그랬다면 지금보다 몇 곱절의 시간은 걸렸을 테고, 물건의 상태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양사창은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흑사오공을 획득하기 위해 사천당문에서 직접 가지고 오게끔 시킨 것이다.

그리고 일이 들통났을 경우 뒤집어씌울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사천당문 쪽에서 이 독이 흘러나온 사실이 들통난다면 과연 어찌 될까?

어차피 마교 교주인 악자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상태다. 그 와중에 이런 증거까지 나온다면…… 원하기만 한다면 정마대전을 일으키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흑사오공은 마침내 손에 넣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이걸 이용해 어떻게 악준기를 죽이느냐인데…….

‘마교 내부에서 죽이는 건 아무래도 어렵지.’

이곳 본거지에서 소교주를 죽이는 건 무척이나 힘들뿐더러, 설령 성공시킨다 해도 뒤처리가 어렵다.

거기다가 많은 변수 또한 계산해야 했다.

흑사오공은 치명적인 극독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상대가 소교주 악준기다. 어릴 때부터 수많은 영약을 먹으며 독에 대한 많은 내성을 지니게 된 자라는 소리다.

만약에 그가 흑사오공에 당하고도 일정 시간을 버텨 낸다면?

아마도 마교에 있는 모든 의원들이 그의 치료를 위해 달려들 게다. 그의 내성과 의원들 중 해독약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면 결국 이 모든 준비들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역시 마교 외부로 나갔을 때 제거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생각에 잠겨 있던 양사창은 이내 옆에 있던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들었다. 그 종이에는 악준기의 며칠간 일정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외성으로 나가는 일은 꽤나 빈번했지만, 이것만으로도 확실치 않다 여겨졌다. 보다 확실한 기회를 찾아야만 했다.

아예 마교 바깥으로 나가는 일정이 있다면 그보다 좋은 상황은 없을 터.

그렇게 종이 안에 적힌 일정들을 더욱 꼼꼼히 확인하던 양사창의 눈동자가 꿈틀했다.

“호오.”

나지막한 탄성.

그의 시선은 종이 한 곳에 적혀 있는 악준기의 일정에 틀어박혀 있었다. 생각해 보니 악준기는 서너 달에 한 번씩 마교 바깥으로 나갔다.

어지간하면 외부로의 출입을 자제하는 그이지만 주기적인 이 외출만큼은 항상 지켜 왔다.

악준기가 외부로 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오랜 스승을 만나기 위해서다.

백락신군(魄落神君) 초은산(草恩山).

마교 교주조차도 어려워한다는 노고수로, 악준기가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많은 걸 가르쳐 준 스승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나이를 먹은 지금까지도 종종 찾아가 인사를 전하고, 또한 무(武)에 대한 대담을 나누는 상대였다.

물론 초은산이 머무는 곳이 마교에서 그리 많이 떨어진 장소는 아니었다.

그의 거처는 마교 외성을 벗어나 고작 두 시진 반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실질적으로는 마교 내부와 크게 다를 것 없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긴 했지만…….

양사창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날이 좋겠군.”

거사를 확정 지은 그를 향해 주란의 명으로 흑사오공을 가지고 온 사내가 물었다.

“더 도울 일은 없으십니까?”

“잠시만 기다려.”

말을 마친 양사창은 옆에 있는 종이 위에 뭔가를 끼적였다.

그러고는 이내 그걸 사내에게 내밀었다.

“이쪽에서도 추가적인 병력을 움직일 생각이야. 그러니 서찰에 적힌 건 그쪽에게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양 대협.”

말을 마친 사내는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게 된 양사창은 옆에 놓인 소교주의 일정이 적혀 있는 종이를 다시금 확인했다.

악준기를 죽이기 위해 흑사오공을 준비했다.

이것이 극독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에 전부를 의지하는 건 아니었다.

독에 중독당하고도 버틸 수 있을 테고, 분명 수하들도 대동할 터이니 희박한 확률이긴 하나 살아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었으니까.

허나 그렇다고 한들 악준기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상황을 대비한 비책들까지도 준비할 테니까.

‘항상 사오십 명 정도의 수하들을 대동한 채로 움직였지.’

매번 비슷한 행렬로 움직였으니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터. 그랬기에 양사창은 마교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십천야 휘하의 이들을 움직일 계획이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소교주의 숨통을 완벽하게 끊어 내기 위해서.

흑사오공이 들어 있는 나무 상자의 뚜껑을 덮은 양사창의 시선이 이내 다른 곳에 놓아 둔 항아리로 향했다.

양사창은 준비시켜 놓았던 항아리를 열었고, 그 안에는 어떤 가루가 가득했다.

이 가루의 정체는 다름 아닌 감의 씨앗을 으깬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흑사오공이 담긴 나무 상자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양사창이 재미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 녀석들이 환장을 하는 가루지.”

소교주 악준기 암살 계획.

그 계획이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다.

* * *

악준기는 아침부터 무척이나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나 오늘은 마교 외부로 나갈 일도 있는지라 그 전에 최대한 많은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이미 마교의 많은 부분에 관여하고, 또 개인적으로도 할 일이 많은 그의 하루는 언제나 바빴다.

오전 중에 일 처리를 끝낸 그가 자리에 앉은 채로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휴우.”

“고생하셨습니다, 소교주님.”

옆에 자리한 채로 악준기에게 말을 거는 인물은 수라검마 파융이었다.

그의 최측근 중 하나이자 마교에 온 천무진 일행을 거처에 안내해 줬던 인물이기도 하다.

파융을 올려다본 채로 악준기가 손사래 치며 말했다.

“고생은 무슨.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담담하게 말을 내뱉는 악준기를 파융은 존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자신보다 어린 사내, 그렇지만 파융은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어린 나이 때부터 마교의 수많은 대소사에 관여하며 모든 걸 훌륭하게 처리해 온 악준기였으니까.

파융을 향해 악준기가 물었다.

“떠날 행렬은? 다 준비됐는가, 파 대주?”

“물론입니다. 이번에도 저희 마극파천대가 소교주님을 모실 예정입니다.”

“그렇게 해. 그럼 바로 갈까?”

말을 마치고 벌떡 일어나는 악준기를 향해 파융이 서둘러 말했다.

“아직 점심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식사는 하시고 출발하심이…….”

“됐어. 스승님을 뵙고 함께하지.”

“알겠습니다. 서두르도록 하지요.”

내성에서부터 움직이면 세 시진 이상은 족히 걸리는 거리기에 끼니도 거르고 움직이는 것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서둘러 다녀오고자 하는 악준기의 마음을 알기에 파융 또한 더는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파융은 악준기를 모시며 곧바로 수하들을 대기시켜 놓은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미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마쳐져 있는 상태였다.

마교 외부로 같이 나갈 일행들과 만나자 악준기는 여태 뒤편을 쫓고 있던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오늘 고생들 했다. 다들 각자 거처에 가서 쉬고 있어.”

“명 받듭니다!”

조용히 뒤를 따르던 열 명가량의 수하들은 곧바로 악준기의 명령대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파융이 곧장 말했다.

“타시지요.”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악준기는 준비되어져 있는 마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뒤이어 파융 또한 마차에 자리했다.

자리에 앉은 악준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파융은 곧바로 바깥에 대기하고 있는 수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출발한다! 마교 인근이라고는 하지만 끝까지 긴장들 풀지 말도록!”

“옙, 대주님.”

짧게 대답한 수하들은 선두에서부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악준기를 호위한 마극파천대는 익숙하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순식간에 외성과 내성을 벗어난 악준기의 행렬은 곧장 백락신군 초은산이 기거하는 거처를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외성을 벗어나 약 한 시진 반 가까이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선두에서 빠르게 달려 나가던 무인이 다급히 말을 멈추며 소리쳤다.

“워워! 대기!”

사내의 고함 소리에 뒤따르던 무인들 모두가 달리던 말을 멈춰 세웠다.

덩달아 빠르게 나아가던 마차 또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차의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파융이 상황을 확인했다.

그러자 이내 선두에서 상황을 파악한 무인이 말에서 내리고는 두 사람이 타고 있는 마차로 다가왔다.

파융이 물었다.

“무슨 일이지?”

“대주님, 앞에 길이 엉망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출입 금지 팻말까지 있더군요.”

“그래?”

말을 마친 파융은 멀리 떨어진 길목을 확인했다. 그곳 인근에는 굵은 밧줄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 달린 나무 조각에는 붉은 글씨로 출입 금지를 뜻하는 글씨가 적혀져 있었다.

파융이 슬쩍 고개를 돌려 정면에서 무덤덤하게 앉아 있는 악준기에게 물었다.

“소교주님 어떻게 할까요?”

“어쩌긴. 옆에 길로 움직이지.”

초은산의 거처로 가는 길목은 이곳 하나가 아니었다. 아주 조금 돌아가긴 하지만 시간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다른 길도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길로도 몇 번 가 본 적이 있었기에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명령을 전달받은 파융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대답을 끝낸 그는 마차에 다가와 있는 수하를 향해 말했다.

“다른 길로 간다.”

“……예, 대주님.”

말과 함께 수하가 슬그머니 마차에 가져다 대고 있던 손을 떼었다.

그렇게 몸을 돌린 수하.

그의 눈동자에 정체 모를 이채가 감돌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수하가 손을 떼는 순간 마차 내부에 있던 자그마한 공간에 구멍이 열렸다.

그건 발아래 쪽에 위치한 공간이었는데 크기도 작고, 위치 또한 의자로 가려져 있는지라 육안으로 확인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렇게 정체 모를 일이 벌어진 와중에 마차는 방향을 틀어 다른 길을 통해 목적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얼추 일 각가량을 더 달렸을까?

스스스스.

어두운 구멍을 통해 검은 몸통의 벌레 하나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검은 몸통에 붉은 다리를 지닌 지네.

그 지네의 정체는 바로 소교주를 죽이기 위해 준비된 흑사오공이었다.

지독한 독을 품은 흑사오공이 곧장 소교주 악준기의 발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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