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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14화 (213/293)

214화. 성장 ― 나보다 강하다 (2)

자신들의 격돌로 엉망이 된 전장에서 마주한 단엽과 양사창은 둘 모두 피투성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한 투지 어린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퉤.”

입을 오물거리다 피가 섞인 침을 뱉은 단엽은 곧장 주먹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주변으로 묵직한 압력이 뻗어져 나갔다.

쿠쿠쿵!

소리와 함께 마치 커다란 쇳덩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땅이 움푹 내려앉았다. 그렇게 그의 기운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고, 양사창 또한 자신의 내력을 쏟아 보내며 그런 단엽의 힘을 막아 냈다.

우우웅!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들이 계속해서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던 도중, 갑자기 양사창이 두 개의 검을 교차시켜 잡은 채로 움직였다.

파앙!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양사창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번의 공격을 쏟아 냈다. 단 한 번의 휘두르기로 보였을 만큼 빠르면서도 날카로운 공격.

그렇지만 단엽은 그 공격을 권갑으로 받아 냈고, 그런 와중에서도 상대를 향해 몇 차례나 공격을 쏟아 냈다.

두 사람의 몸이 순식간에 얽혔다가, 또 번개처럼 뒤편으로 밀려 나갔다.

빠르게 주고받은 공격들은 서로에게 치명상은 주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가볍지도 않았다.

특히나 모든 공격을 검으로 받아 내던 양사창은 생각을 훨씬 웃도는 단엽의 힘에 손가락 마디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양사창이 공격을 펼칠 때마다 단엽은 권갑을 낀 주먹으로 검을 후려쳐 댔다. 공격보다는 방어에 신경을 쓰는 것이 아무래도 톱날 형태를 지닌 특이한 검이 주는 타격을 신경 쓰는 듯싶었다.

베이는 것만으로도 살점까지 찢겨 버리니 자신이 입는 손해가 더 크다 생각한 걸까?

그래서인지 단엽은 공격을 흘리기보다는 정면으로 부닥쳐 왔고, 덕분에 팔목에 실리는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물론 공격을 흘리지 않고 쳐 내는 방식을 택한 탓에 그만큼 단엽이 공세를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양사창이 재차 단엽에게 달려들려는 찰나였다.

단엽이 입을 열었다.

“어이,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

잠시 멈칫하는 양사창을 바라보던 단엽이 소매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물었다.

“너 십천야 중에서 몇 번째로 강하냐?”

단엽의 질문에 양사창이 움찔했다.

그런 것을 왜 묻냐는 듯한 시선을 느껴서인지 단엽이 곧장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그냥 좀 궁금해서. 거기에 너보다 강한 놈들이 몇이나 있는지.”

“궁금해할 필요 없어. 어차피 넌 나한테 죽을 테니까.”

양사창이 불쾌한 듯 받아쳤다.

사실 양사창은 백아린이 이긴 주란이나 왕도지, 천무진이 죽였던 상무기와는 다르게 무공 쪽에 두각을 드러낸 십천야 중 하나였다.

그랬기에 그는 주란, 왕도지, 상무기보다는 훨씬 뛰어난 실력의 고수였다.

물론 십천야 중에서도 손꼽히는 반조나 매유검에 비해서는 모자랐지만, 무림맹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자운과는 엇비슷한 실력자라고 봐야 옳았다.

답변이 될 만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단엽이 웃었다.

양사창이 그 웃음에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웃어?”

“아아, 너보다 강한 놈들이 몇 명은 있는 것 같아서. 네가 가장 강했다면 지금 같을 때 괜히 말을 돌리지 않았을 테니까. 무인이란 놈들은 그런 족속이잖아? 강함을 추구하고, 그걸 자랑스레 여기지. 그런데 넌 대답을 피했고, 그건 너보다 강한 이들이 있다는 걸 의미하겠지.”

“…….”

단엽의 말에 양사창은 일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입을 닫았다. 그의 말이 맞았기에 별다른 반박조차 할 수가 없었다.

주먹을 든 단엽이 말했다.

“자 그럼 잠시 쉬었으니 다시 가 보자고.”

말과 함께 단엽의 기세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동시의 그의 몸 주변에서 꿈틀거리는 불꽃들이 양사창을 집어삼켰다.

뜨거운 열기에 숨이 막혀 왔다.

카카캉!

두 사람의 검과 주먹이 연달아 충돌했다.

거의 대부분의 공격은 양사창이 한 것이었고, 그에 반응하는 단엽은 한결같이 주먹으로 날아드는 검을 쳐 냈다.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공격.

그 안에서 단엽은 간간이 공격을 섞으며 계속해서 방어에 집중했다.

자신의 공격이 연달아 막히자 조급해졌는지 양사창이 밀려 나가는 와중에 서둘러 검을 움직였다. 얼굴을 노리고 날아드는 날카로운 공격, 순간 단엽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파앙!

권갑을 낀 손으로 날아드는 검을 잡아챈 단엽은 곧장 반대편 주먹을 움직였다. 균형이 무너졌던 탓에 양사창의 방비는 빠르지 못했다.

순간 밀려드는 단엽의 손바닥이 정확하게 양사창의 얼굴을 틀어잡았다.

쿠웅!

손바닥이 얼굴을 감쌌고, 찰나 세상이 어두워졌을 때였다.

순식간에 얼굴을 쥔 채 허공으로 상대방을 들어 올렸던 단엽이 곧바로 그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앙!

폭발음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굉음과 함께 양사창의 몸이 땅 안으로 틀어박혔다. 동시에 그의 몸이 박힌 곳을 기점으로 하여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쩌저적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울컥!

그대로 땅에 틀어박히며 터져 나온 핏줄기.

하지만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얼굴을 감쌌던 손이 풀리며 하늘이 슬쩍 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 이번엔 주먹이 날아들고 있었다.

퍼퍼퍼펑!

바닥에 쓰러진 그의 전신을 향해 단엽이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쾅쾅쾅!

폭발과 함께 몇 방을 얻어맞은 양사창은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허나 그 와중에서도 양사창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안면을 향해 날아드는 정확한 공격.

휘익.

고개를 힘겹게 옆으로 꺾어 피해 낸 양사창의 손바닥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휘리리릭.

그렇게 얻어맞으면서도 꽉 쥐고 놓지 않았던 쌍검 중 하나가 손바닥 위에서 회전했다. 그것은 위를 점하고 공격을 펼쳐 대던 단엽의 무릎을 향해 움직였다.

푸웃!

검이 단엽의 무릎에 틀어박혔다.

허나 다리를 통째로 뜯어 버리려던 양사창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검이 박히기 무섭게 단엽이 한쪽 손으로 더 깊게 틀어박히는 걸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단엽의 팔꿈치가 정확하게 양사창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커억!”

일순 숨을 쉬기 어려웠고, 입에서는 피와 함께 침이 흘러넘쳤다.

찰나 날아들어 오는 또 한 번의 주먹질.

부우웅!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소리에 양사창의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피해야 해!’

안면을 향해 정확하게 내리꽂히는 공격.

이걸 맞으면 위험하다는 걸 직감한 양사창은 모든 내력을 집중했다.

검을 꽉 쥐고 있는 그의 손에서 장력이 밀려 나갔다.

파앙!

쏘아진 장력으로 인해 단엽의 몸이 허공으로 슬쩍 떠오르는 순간 양사창은 곧장 옆으로 굴렀다.

동시에 그는 단엽의 무릎에 박아 넣었던 검을 힘껏 뽑아냈다.

푸웃!

단엽의 무릎에서 살점이 찢어지며 피가 터져 나왔고, 양사창은 날아드는 주먹을 피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빠져나가는 양사창의 어깨를 단엽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붙잡았다.

허나 이미 자세를 잡은 양사창이었다.

‘어딜……!’

서둘러 검을 휘둘러 팔을 밀쳐 내려는 그 찰나였다.

단엽이 히죽 웃었다. 그리고 그 정체 모를 미소를 보는 순간 양사창은 뭔가 위험하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그걸 깨달은 순간은 이미 늦은 상태였다.

파앙!

단엽의 손바닥에서 꿈틀거리던 기운으로 인해 양사창의 어깨가 터져 나갔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어깨를 타고 쏟아져 나왔다. 열화폭뢰의 초식으로 근거리에서 타격을 주는 공격이 정확하게 먹힌 것이다.

그 덕분에 양사창의 어깨는 피투성이가 된 걸로 모자라 뼈가 보여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 버렸다.

충격으로 인해 양사창은 뒤로 휘익 밀려 나가며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운 양사창의 얼굴이 고통으로 인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크으으.”

빠르게 혈도를 점혈하는 양사창을 보며 단엽이 절뚝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 또한 무릎에 박혔던 검이 뽑혀 나가며 꽤나 깊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허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둘 중 누가 이번 격돌로 이득을 봤느냐를 따진다면 그건 당연히 단엽이었다.

단엽 역시 무릎을 크게 다치긴 했지만 양사창이 입은 부상이 훨씬 깊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트린 채로 연달아 적중시킨 공격으로 인해 속은 완전히 뒤틀리고, 갈비뼈마저 몇 개 박살이 나 버린 상태였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밀려들 정도로 양사창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단엽이 찢긴 어깨를 움켜쥔 채로 숨을 헐떡이는 양사창을 향해 말했다.

“어때? 살점을 찢어 내는 것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고.”

손바닥을 가리키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단엽의 모습에 양사창은 혼란스러웠다.

‘대홍련의 부련주 따위에게 내가 이렇게 밀릴 줄이야…….’

상황이 좋지 않아 평소보다 조급한 움직임을 보였던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한들 자신이 대홍련의 부련주를 상대로 이렇게 피투성이가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싸우기 전까지만 해도 양사창은 확신이 있었다.

절대 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허나 틀렸다.

단엽은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강했고, 그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것일까?

단엽과의 싸움으로 최대한 시간을 끌며 혹시 있을지 모를 수하들의 도움을 기다렸다. 정말 일말의 가능성이었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어찌어찌 자신의 목숨 하나 부지하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가졌었다.

하지만 그 희망이 이제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단엽을 가지고 시간을 끌기는커녕 그를 상대하다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모습을 보라.

설령 기다렸던 부하들이 온다고 한들 자신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

죽음.

최소 십천야 중 두 명은 나타나 줘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터인데, 지금 같은 때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없었다.

살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조차 버렸다.

그런 지금 양사창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가 고통을 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복면을 쓰고 있어 수하들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빛만으로 이미 그들의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 싸움의 패배를 실감하고 있는 건 비단 자신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양사창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이내 그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십천야를 따르는 모두에게 명한다!”

양사창의 외침에 수하들은 언제라도 싸움에 개입할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그의 명령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양사창이 곧장 말을 이었다.

“얼굴을…… 부숴라!”

그 말과 함께 양사창은 자신의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동시에 그는 누가 반응도 하기 전에 스스로의 얼굴을 손으로 긁어내렸다.

코가 부러졌고, 얼굴 가죽은 찢겼다.

동시에 입 부분을 가리고 있던 복면 또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드러난 양사창의 얼굴.

허나 이미 얼굴 가죽의 일부를 뜯어내고, 또 뼈마저 망가트려 버린 양사창의 외모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흉측했다.

갑작스러운 양사창의 행동에 수하들은 움찔했지만, 이내 그의 명령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는지 그들 또한 스스로의 얼굴을 망가트리기 시작했다.

으드득.

끔찍한 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스스로의 얼굴을 망가트려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 그들의 행동.

그건 모두 마교 내부에 남아 있는 또 다른 십천야 쪽의 인물들을 지켜 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솔직히 말해 얼굴을 망가트린다고 해도 몇몇 이들은 신체적 특징으로 정체가 파악당할 것이다.

허나 그건 일부에 불과할 뿐, 이곳에 자리한 모두의 정체까지 알아내지는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물론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한들 마교 내에서 실종된 이들을 파악해 이들의 정체를 유추하는 건 가능했다.

그렇지만 그들 중 누가 수장급이었고, 또 어떠한 이들을 통해 연결되었는지까지는 미궁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실종된 모두가 이번 십천야의 일과 관련되었다고 판단하는 것도 무리였다.

또한 십천야 상부에서 자신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사실을 안다면 정보에 혼선을 주기 위해 외부에 나가 있는 마교의 무인들 일부를 직접 죽일 것이다.

이처럼 가짜와 진짜 정보들이 뒤섞이게 된다면 그 본질은 흐려지기 십상이다.

의심은 하지만 확신하기는 어려운 일이 많을 테고, 그로 인해 마교 내부에 있을 십천야의 세력 중 상당 부분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게다.

그리고 그 후의 일은…… 어르신이 알아서 하실 터.

이것이 죽음이 확실해진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십천야 쪽 무인들의 모습에 악준기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지독한 놈들입니다.”

“그만큼 잘 훈련된 자들이라는 소리겠지.”

스스로의 얼굴을 잡아 뜯는 건 천무진으로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분명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천무진의 시선은 흔들림 없이 양사창에게 향해 있었다.

다른 이들의 정체는 몰라도 상관없었지만, 바로 저자. 저자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십천야의 한 명이 분명한 사내.

그의 뒤를 캔다면 꽤나 많은 일들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천무진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서 있는 양사창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네 녀석 정체만은 반드시 알아내 주지.’

그렇게 천무진이 다짐을 하는 때였다.

얼굴을 뜯어낸 양사창을 향해 단엽이 한 걸음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뭐 하는 거야. 우리 싸움마저 포기한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살지 모른다는 희망은 버렸다.

허나 그 말이 순순히 죽어 준다는 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단엽 이자와의 싸움은 매듭지어야 했다.

카라라랑!

검으로 바닥을 긁으며 걷기 시작한 양사창의 손에 들린 쌍검에서 아지랑이처럼 검기가 피어올랐다.

양사창이 중얼거렸다.

“저승길 노잣돈으로 대홍련 부련주의 목이라…… 생각보다 싸긴 하지만 그래도 빈손으로 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런 그의 말에 단엽이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어쩌냐. 그건 힘들 거 같은데. 아, 그래도 너무 걱정 말라고. 엽전 몇 푼 정도는 쥐여 줄 테니까.”

단엽이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피투성이의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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