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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15화 (214/293)

215화. 최후의 보루 ― 내 선택은…… (1)

재차 대결을 시작한 두 사람의 싸움은 여전히 격렬했다. 주변으로 광풍이 휘몰아쳤고, 서로를 향해 막대한 내력을 쏟아 냈다.

콰콰콰쾅!

폭발과 함께 양사창이 쏘아 낸 강기의 가닥들이 단엽을 스쳐 지나갔다. 그 힘이 얼마나 컸는지 강기가 향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수십여 개의 나무들이 그대로 가루가 되듯 터져 나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단엽의 주먹이 그의 안면을 후려쳤다.

쩌엉!

허나 양사창은 검을 들어 올리며 그 공격을 받아 냈다. 그리고 곧바로 특이한 외향의 검을 연달아 휘두르며 단엽을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팡팡!

단엽은 주먹으로 날아드는 양사창의 검을 계속 쳐 내는 데 열중했다.

몸의 상태는 단엽이 압도적으로 좋았고 승기 또한 그가 잡고 있었거늘 이상하게도 싸움은 계속해서 양사창이 공세를 이끌어 가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연신 밀려 나가면서도 검날을 쳐 내는 것에 급급한 단엽의 모습에 결국 싸움을 보고 있던 악준기가 천무진을 향해 조심스레 전음을 날렸다.

『계속 두고 보셔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끝난 싸움입니다. 이러다가 큰 부상을 입거나 할 바에는 그냥…….』

『됐으니까 그냥 두고 봐. 아까부터 노리는 게 있는 듯하니까.』

『노리는 거요?』

악준기의 물음에 천무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자꾸 밀려나며 방어를 위주로 하고 있으니 당장에 큰 부상을 입어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이겠지만…….

천무진의 생각은 오히려 반대였다.

베이는 것만으로도 살점을 찢어 내는 특이한 쌍검을 휘두르는 양사창이다.

일정 부분 공격을 포기한 채로 그런 그의 검을 연달아 주먹으로 쳐 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단엽의 의아한 행동.

천무진이 확신 어린 표정으로 전음을 날렸다.

『점점 궁지로 몰리고 있는 건 단엽이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악준기는 천무진의 말을 도통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분명 대결에서는 단엽이 이기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지금 장면을 보고 있자면 누가 유리한지 혼동이 올 것 같았다.

모두가 알지 못하는 지금, 오로지 천무진만이 단엽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무턱대고 싸움을 벌이던 그다.

자신의 몸 상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에만 열중했다. 물론 지금도 단엽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싸움을 즐기고, 또 상대를 이기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전형적인 투견에 가까운 무인.

하지만 그랬던 그의 조그마한 변화.

그건 예전보다 조금 더 영리하게 싸울 수 있게 됐다는 거다.

바로 지금처럼.

카앙!

날아드는 검을 재차 권갑으로 받아쳐 낸 단엽이 히죽 웃었다. 예전이라면 일방적으로 밀리는 이런 상황에 짜증부터 났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처음부터 의도된 방어였으니까.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갔다면 이 싸움은 벌써 끝이 났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랬다면 단엽 또한 지금보다 훨씬 큰 부상을 껴안았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양사창의 무기는 치명상을 가하기 무척이나 용이한 물건. 혹시라도 깊게 들어온다면 그 부상은 꽤나 위험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평소의 그였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선 큰 부상은 사양이었다.

……싸워야 할 상대가 앞으로도 많이 남았으니까.

날아드는 검을 재차 주먹으로 쳐 내며 단엽은 느낄 수 있었다.

‘슬슬 오는 것 같은데.’

손끝에 느껴지는 미미한 차이.

그리고 그 차이를 느끼며 단엽은 여태까지보다 반걸음 정도 더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동시에 날아드는 양사창의 두 검이 번갈아 가며 단엽을 노렸다.

슈슈슉!

‘어딜.’

주먹으로 쳐 내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기울인 몸을 이용해 상대와의 거리를 좁혔다. 동시에 그의 주먹에서 붉은 불꽃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나왔다.

권강에 가까운 기운이 밀려들자 양사창은 검을 벽처럼 세우고는 내력을 끌어올렸다.

쿠카카카캉!

그의 몸이 거칠게 밀려 나갔다.

동시에 단엽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카앙!

귓전을 울리는 쇳소리, 동시에 양사창의 검이 반원을 그리며 치고 들어왔다.

좌우를 연달아 치고 들어오는 공격을 가볍게 받아 낸 단엽의 발이 재빨리 상대의 복부를 걷어찼다. 주춤거리며 물러서던 양사창의 검이 다가서려는 단엽을 향해 날아들었다.

피잇!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검. 그리고 단엽은 재차 그 검을 후려쳤다.

“읏!”

무지막지한 힘에 팔목째 뒤로 비틀리는 순간 단엽의 어깨가 밀고 들어왔다. 양사창은 서둘러 몸을 웅크렸지만, 지척까지 다가온 단엽의 힘이 폭발하는 게 먼저였다.

쩌엉!

좁은 간격에서 뿜어져 나온 단엽의 일격에 양사창은 그대로 허공으로 붕 떠서 밀려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단엽의 주먹에서 권풍이 몰아쳤다.

파파파팡!

서둘러 양사창이 검을 휘저으며 막아 냈고, 가까스로 몸을 굽히며 착지한 그는 내력을 담아 검을 휘둘렀다.

팡!

밀려드는 공격을 주먹으로 받아 낸 단엽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양사창에게 달려들며 보다 강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방어에 치중했던 아까와는 급격히 달라진 움직임에 양사창의 평정심이 흔들렸다.

빠르게 파고드는 권풍을 검으로 막아 내긴 했지만 그 충격파가 고스란히 전신으로 퍼졌다.

푸웃!

입으로 피가 쏟아져 나왔고, 그대로 양사창은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의 시선은 단엽을 놓치지 않고 뒤쫓고 있었다.

양사창의 시선이 자신의 몸을 파고드는 단엽을 따라갔다.

거리가 지척이 되는 순간 두 사람이 동시에 내력을 쏟아 냈다.

퍼엉!

내공이 실린 검과 권갑이 충돌했다.

동시에 밀려 나가는 두 사람, 그런데…….

밀려 나가는 단엽의 눈동자가 번쩍였다.

‘지금이다!’

때가 되었음을 확신한 단엽은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손바닥 위로 다시금 불꽃이 밀려들었다. 커다란 내공이 몰려들며 커다란 소리와 함께, 주변에 바람이 휘몰아쳤다.

파르르르륵!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나부낄 만큼 주변에 몰려드는 거대한 수준의 내공.

아까 전에도 펼쳤었던 열화무쌍의 초식을 이번에도 펼치는 것이었다.

그때는 강기를 뿜어내며 막는 데 성공했던 양사창이다.

하지만 단엽은 확신했다.

‘이걸로…… 끝이다.’

솟구쳐 오른 두 개의 회오리가 하나가 되어 날아드는 열화무쌍의 초식을 펼치며 달려드는 단엽의 모습에 양사창은 검을 쥔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공을 쏟아 내는 큰 공격보다는 계속해서 박투 쪽에 힘을 실어 왔던 단엽이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공세로 전환한 것으로 모자라 막대한 내공을 소모하는 무공을 펼치는 쪽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공은 안 통한다.’

이미 한 번의 격돌로 어떠한 무공인지 눈으로 보았고, 직접 몸으로 느꼈다. 사실 이어지고 있던 싸움에서 계속 손해를 입어 가던 상황이었다.

차라리 이런 식의 대결은 양사창이 원하는 바였다.

열화무쌍의 초식을 상대하기 위해 양사창 또한 아까와 마찬가지로 검 두 개를 평행으로 들었다.

이(二)자 형태로 배치시킨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기가 주변의 공기마저 갈가리 찢어 버렸다.

부우우웅!

아까는 이 상황에서 서로 비겼었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열화무쌍이라는 초식을 조금이나마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내공 대결을 건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확신 어린 상태로 양사창은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검강에 휩싸인 두 자루의 검을 든 채로 밀려드는 단엽의 힘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이도전생류!

양사창의 검을 집어삼킨 검강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회오리를 향해 파고들었다.

쿠우우웅!

열화무쌍과 이도전생류가 충돌하는 순간 아까의 격돌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후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드드드듯!

비슷한 상황, 허나 조금은 달랐다.

양사창의 몸이 한 점을 통해 빠르게 회오리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집어삼켜지는 듯한 모습이 위태위태해 보였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안으로 파고들면서 치명적인 일격을 날릴 방도를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계획대로 회오리를 가르며 몸이 안쪽으로 빨려들어 가는 순간.

그의 망가진 얼굴 한쪽에 자신감 가득한 미소가 걸렸다.

‘좋아! 계획대로……!’

바로 그때였다.

칭.

정체불명의 미세한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정말 자그마한 조약돌이 툭 하고 떨어졌을 때보다도 작은 소리였다. 더군다나 지금은 쏟아지는 공격 속으로 스스로 몸을 내던진 상황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뒤집어지고 있었기에 수많은 소리들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런데 왜일까?

많은 것들 중 유독 그 작은 소리가 흡사 천둥소리처럼 크게 느껴진 이유는.

그리고 이내 양사창은 그 불안한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쩍. 쩌저적!

보다 확실하게 그 소리가 귓가를 파고드는 순간 양사창은 알 수 있었다.

검이…… 부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열화무쌍과 이도전생류가 충돌하며 생겨난 강기의 파장들이 서로를 집어삼키며 무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강기들 사이에서 쭉 내뻗어졌어야 할 양사창의 검이…….

투둑, 투두두둑.

조각조각이 나며 떨어져 내리는 검신, 그리고 뻗어져 있는 손은 공허한 허공만을 가르고 있었다.

두 개의 검 손잡이만을 잡은 채로 뻗어진 손은 단엽에게 닿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큰 충돌이었던 건 분명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뛰어난 무기라고 할지언정 부서지는 것 또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허나…… 동시에 두 자루의 검이 부서졌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순간 양사창의 머릿속에 지금까지 진행된 싸움의 구도가 떠올랐다. 이상할 정도로 방어에 열중하며 자신의 검을 연신 주먹으로 쳐 대던 단엽의 모습이.

‘설마……!’

그제야 양사창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일련의 과정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단엽이 노리고 준비해 왔던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 이제야 터져 버렸다는 걸 말이다.

단엽은 계속해서 자신의 검을 두드려 대며 결국 이런 식으로 내공을 버텨 내지 못하는 상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승부를 걸어오면 자신이 받아 줄 거라는 것도 예상했던 게 분명했다.

만약 그 예상이 맞는다면 처음부터 자신은 단엽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놀라는 것도 잠시, 양사창은 자신의 눈앞으로 계속해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커다란 불꽃을 고스란히 맨몸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부러진 검날이 있던 장소에 검강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지만, 그 위력은 결코 아까와 같지 않았다. 그리고 힘이 무너지는 순간 양사창의 몸으로 열화무쌍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커, 커커컥!”

검강이라는 건 검이 없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공의 배분이 무너졌고, 검날이 받아 줬어야 할 그 모든 충격들이 고스란히 밀려들어 왔다.

가뜩이나 내상을 입고 내공 소모도 많았던 상황에서 열화무쌍의 회오리 안으로 스스로가 몸을 밀어 넣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찰나라고 할지언정 힘의 균형이 무너지자 그 공격은 치명타가 되어 돌아왔다.

붉은 불꽃에 뒤덮인 양사창의 몸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

“으아아악!”

비명 가득한 절규 소리.

그리고 이내 고통에 가득한 그 비명 소리는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커다란 불꽃의 회오리가 휩쓸고 지나간 공간.

그곳에서는 양사창이 넝마가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승부를 보기 위해 스스로 열화무쌍의 초식 안으로 몸을 던졌던 선택이 결국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게 만들어 버린 셈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폭풍우가 몰아치던 전장.

그 전장은 거짓말처럼 조용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몸을 돌린 단엽이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고, 그걸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악준기가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수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남은 놈들을 정리하지.”

말과 함께 움직이는 악준기의 심장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어느새 자신을 넘어서 버린 존재인 단엽, 그의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었더니 온몸이 근질거렸다.

지금은 이렇게 둘 사이의 차이가 벌어져 버렸지만…….

‘그렇게 쉽게 지지 않는다, 단엽.’

마교를 대표해야 할 무인으로서, 사파의 인물인 단엽을 반드시 넘어서겠다고 다짐하며 악준기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 사이 단엽이 무릎에 생긴 상처 때문에 절뚝거리며 천무진에게 다가왔다.

천무진이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꼴이 말이 아니네.”

그런 그의 말에 단엽이 괜스레 불만스럽다는 듯 투덜거렸다.

“저런 무기 쓰는 건 반칙 아냐? 치사하게 말이야.”

뒤를 힐끔 돌아보며 말하는 단엽을 가만히 응시하던 천무진이 이내 말했다.

“그래도 제법이네. 예전이라면 이겼더라도 훨씬 더 엉망이었을 텐데 말이야.”

“마음 같아서야 그냥 확 달려들어서 박살을 내고 싶었지. 그렇지만…… 지금 내가 다치면 주인하고 두 녀석이 더 힘들어질 테니까.”

십천야와의 싸움이 점점 본격화되어 가는 지금 긴 휴식을 필요로 하는 부상만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그래야 천무진과 백아린, 그리고 한천과 함께 싸울 수 있을 테니까.

자신이 한 말임에도 뭔가 쑥스러운지 단엽이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근데 얼굴이 저렇게 됐는데 정체를 알아낼 수 있겠어?”

“……해 봐야지.”

장담할 순 없었다.

스스로 얼굴을 망가트렸고, 정체를 알아낼 만한 신체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장담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십천야인 그가 어떤 직책으로 마교에서 지내고 있었는지를 알아야 더욱 많은 적들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했다.

핵심 인물로 보이는 상대를 제거하긴 했지만 결국 뿌리를 뽑아내지 못한다면 십천야는 다시금 마교 내부에 지금처럼 스며들고야 말 것이다.

슬쩍 하늘을 올려다본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얼굴을 망가트리는 바람에 정체를 알아내는 건 다소 어렵게 되긴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 아마 십천야 놈들 속은 말이 아닐걸.”

천무진의 말에 옆에서 마찬가지로 하늘을 올려다본 단엽이 피가 묻어 있는 입가를 닦아 내며 말을 받았다.

“내가 그놈들한테 한 방 제대로 먹인 건가?”

“아마도?”

천무진의 대꾸에 단엽이 씩 웃으며 말을 받았다.

“……다음 놈은 언제 오려나.”

* * *

마교 내부에서 십천야의 임무를 해 가던 양사창의 죽음. 그것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는 건 무척이나 빨랐다.

마교 내부에 숨겨져 있는 간자를 통해 직접 연락이 왔으니, 숨을 거둔 지 채 며칠도 되지 않아 이 같은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

또다시 날아든 십천야의 죽음에 대한 급보에 휘장 안 어르신이라 불리는 인물은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천무진과 그의 일행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계획을 망치고 있었다.

그들이 방해하지 않았다면 무림맹에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부분에 자신의 세력을 확충했을 것이고, 마교를 집어삼키는 계획 또한 문제없이 진행되었을 터다.

거기다가 정보 단체인 귀문곡 또한 이미 자신들의 손을 떠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적화신루가 무서운 속도로 그들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양쪽 팔이 잘리고, 눈과 귀를 잃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의 타격을 입어 버렸다.

적련화를 통해 천무진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으려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부터 휘장 속 인물은 계속해서 고민해 왔다.

하나의 결정에 대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선택은 결코 쉽지 않았다. 꽤 긴 시간을 고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답을 내리지 못했을 정도로.

자신이 이 선택을 하게 됨으로써 여태까지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마교에 심어 둔 십천야가 흔들리고 있다. 그들이 무너진다면 자신이 꿈꾸는 모든 일들 또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어르신이라는 존재는 결국 오랫동안 심사숙고해 왔던 하나의 일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매유검.”

어르신의 부름에 한쪽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장포를 눌러 쓴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십천야와도 대립각을 세울 정도로 날카로운 그다.

더군다나 유일하게 함께 지내던 적련화가 얼마 전 죽게 되면서 매유검은 더더욱 살기를 풍겨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적은 언제나 천무진이었다.

그는 천무진을 증오했다.

마치 자신의 중요한 무엇인가를 빼앗은 존재를 보는 것처럼.

모습을 드러낸 매유검이 장포를 눌러써 보이지 않는 얼굴을 숙이며 입을 열었다.

“예, 어르신.”

“나는……”

결정을 했기에 명령을 내리려고 입을 열었다. 허나 이미 결정을 하고도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이게 과연 옳은 선택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으니까.

최악의 경우 모든 계획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을 꺼낸 직후 다시금 침묵하던 어르신.

휘장 속에 자리한 그가 손으로 이마를 감싸 안았다.

머리가 복잡했고, 마음은 불편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적련화가 실패했을 때부터 답은 정해져 있던 것이라고. 알면서도 그저 다른 길을 찾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인정해야만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선택은 이것뿐이라고.

긴 침묵 속에 자리하고 있던 그가 결국 입을 열었다.

“……마지막 계획을 실행한다.”

어르신의 그 한 마디에 장포 속에 감춰진 매유검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매유검이 짧게 답했다.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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