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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21화 (220/293)

221화. 대결 ― 너다 (1)

“뭐? 주인의 사부가 왔다고?”

아침 식사를 하던 단엽이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방금 전까지 같이 연무장에서 비무를 펼치던 두 사람이다.

놀란 듯 질문을 던지는 단엽의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던 천무진은 별다른 동요 없이 자신의 밥그릇을 든 채로 식사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천운백이 나타났다는 말에 잠시 놀랐었던 단엽이지만, 이내 천무진이 언제 그를 만났을지 파악하고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제 적화신루에서 날아든 갑작스러운 연락.

그때 천무진은 백아린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고, 자신과 한천은 인근에서 대기한 채로 상황을 지켜봤었다.

다녀와서 별말 않기에 자신 또한 신경 쓰지 않았거늘…… 아마도 그때 천운백과 만났던 모양이다.

단엽이 툴툴거리듯 말을 이었다.

“어제는 그런 말 안 했잖아?”

“그래서 지금 하잖아.”

천무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단엽은 눈을 빛냈다.

천무진의 사부라는 말은 곧 천룡성의 주인이라는 의미였고, 그게 뜻하는 건 그가 무림에서 가장 강한 사내라는 것이다.

천운백이 근처에 왔다는 사실을 안 단엽이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폈다.

누구보다 강한 자와의 싸움을 갈망하는 단엽이다.

천운백이 왔었다고 하니 승부욕이 꿈틀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단엽이 근질근질한 듯 물었다.

“……한 번 싸워 보는 건 어렵겠지?”

“뭐?”

천무진이 기가 막힌다는 듯 식사를 멈추고 단엽을 흘겨볼 때였다. 단엽의 옆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있던 한천은 결국 입 안에 있던 음식물을 뱉어 낼 듯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하여튼 진짜 투견이라니까. 천 공자한테 직접 사부와 싸워도 되냐고 물어볼 줄이야.”

“부총관, 식사하는 거 안 보여?”

백아린은 재빨리 자신의 앞에 있는 접시를 막으며 가볍게 눈을 흘겼다. 그런 그녀의 말에 한천이 입을 닫고 조용히 음식을 씹고 있을 때였다.

단엽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야. 그런데 두 사람은 반응들이 왜 이래?”

단엽은 흥분한 자신과는 달리 너무도 평온해 보이는 백아린과 한천의 모습이 의아해 물었다.

그러자 백아린이 가볍게 답했다.

“난 어제 직접 뵈었거든.”

“아, 허기야 백아린 너는 주인하고 같이 갔었으니까. 그래서 직접 보니 어땠어?”

“음…… 역시라고 해야 되나.”

백아린은 어제 보았던 천운백의 모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특별히 긴 시간을 마주한 것도, 그렇다고 손속을 겨루어 본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운백에 대한 인상은 꽤나 강렬했다.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임에도 감출 수 없는 절대자의 기운.

그건 웬만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굳이 긴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엽은 백아린이 천운백에 대해 꽤나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반응까지 보자 단엽은 천운백에 대해 더욱 궁금증이 치밀었다.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아, 궁금해 미치겠는데.”

궁금증으로 인해 입맛이 모두 사라진 단엽이 애꿎은 밥을 젓가락으로 쿡쿡 쑤시다가 이내 한천에게 물었다.

“넌 안 궁금하냐?”

“나? 나야 그런 것보다 혹시 천 공자의 스승이신 그분께서 귀한 술이나 갖고 계시지 않을까 그게 더 궁금한데.”

히죽 웃으며 말하는 한천의 모습에 단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천이 그런 부분에 있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이라는 걸 다시금 느껴서다.

사실 한천과 단엽은 성격적으로 무척이나 달랐다. 싸움을 좋아하고, 강한 자를 보면 투지를 불태우는 단엽과는 정반대로 한천은 가능하면 싸움을 피했고 항상 대부분의 상황을 웃으며 넘기곤 했다.

나이부터 시작해서 성격까지.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러니 그렇게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찰싹 달라붙어 다니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잠시 한천에게 시선을 줬던 단엽이 이번에는 천무진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 언제 다시 보는데?”

“모르겠는데. 사부가 먼저 연락을 해 오기 전까지는 그냥 기다리기로 해서 말이야.”

“하아, 그래?”

단엽이 아쉽다는 듯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때 한천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로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단엽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며칠만 기다리면 되는데 뭘 그리 아쉬워하냐. 밥이나 먹어.”

“며칠이라…….”

한천의 말을 곱씹으며 단엽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본 채로 그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

정체 모를 그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한천의 시선이 슬그머니 단엽에게로 향했다.

* * *

“어이.”

단엽은 창문 아래에서 고개를 불쑥 들이미는 한천의 모습에 식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기척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창문 아래쪽에서 순간적으로 고개만 들이미는 기괴한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

침상에 누워 있던 단엽이 상체만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왔으면 문으로 들어오지 사람 깜짝 놀라게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너 뭐 하나 보러 왔지. 혹시나 자고 있는데 내가 문으로 들어가면 깰 수도 있잖아.”

“지금 네 모습은 잠이 깨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오늘 밤에 숙면은 포기해야 할 것 같은 모양샌데.”

아직까지도 창문틀에 목만 걸친 채로 대롱대롱 움직이고 있는 한천의 모습을 보며 단엽이 투덜거렸다.

허나 그런 불만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한천이 씩 웃으며 손짓했다.

“마침 잘됐네. 안 자고 있었으면 나오라고.”

“지금? 뭐 하려고?”

“이 시간에 사내 둘이서 할 게 뭐 있겠냐.”

말과 함께 한천이 잔을 꺾는 시늉을 해 보였다.

뜬금없이 찾아와 술을 마시자는 제안, 하지만 이제는 이런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최소 사나흘에 한 번씩은 있어 왔던 일이니까.

단엽이 미간을 찌푸린 채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좀 피곤한데…….”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지만 사실 그는 무척이나 지쳐 있었다. 식사를 하는 시간과, 잠시 천무진이 용무가 있었던 때를 제외한 온종일 그와 비무를 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도 아닌 천무진과의 비무.

제아무리 단엽이라고 해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순간적으로 술자리를 거절할까도 싶었지만…….

단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잇, 잠도 안 오는데 그래. 마시자.”

말과 함께 걸음을 옮기는 그를 보며 한천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역시 내 친구답다니까.”

순간 한천이 있는 쪽으로 다가온 단엽은 문이 아닌 창문을 훌쩍 뛰어넘어 바깥에 착지했다. 그러고는 가볍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가자. 밤도 짧은데.”

“하여튼 뭘 알아.”

한천이 좋다는 듯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고는 이내 두 사람은 나란히 선 채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마교 외성에 위치한 커다란 기루였다.

한천은 기루에 들어서기 무섭게 다가온 젊은 사내를 향해 말했다.

“삼 층에 경치 좋은 방 하나 부탁하네.”

“곧바로 모시지요.”

말과 함께 사내가 먼저 기루 한쪽에 위치한 계단으로 올라섰고, 그 뒤를 단엽과 한천이 따라붙었다. 그렇게 뒤를 따라 걸어가는 와중에 단엽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웬일이냐. 방으로 다 잡고.”

한천과 자주 술을 마셨고, 종종 이렇게 단독으로 된 방을 잡은 적도 있긴 했지만 이런 경우가 많은 건 아니었다.

대부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시끌벅적한 장소에서 술을 마시던 둘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마교에서도 제법 가격이 나가는 기루 중 하나였다. 방에다가 그것도 경치 좋은 삼 층이라면 그 가격이 꽤나 나가는 건 당연했다.

궁금하다는 듯 묻는 단엽의 질문에 한천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웬일은 무슨. 종종 이런 날도 있어야지.”

“박봉이라 이런 건 무리라며. 설마 나한테 떠넘기려는 건 아니겠지?”

“어허! 나 그렇게 치사한 놈 아니거든? 사람을 뭐로 보고.”

“그래? 쩝, 이거 뭔가 이상한데.”

큰소리치는 한천의 뒷모습이 뭔가 미심쩍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될 상황은 아니었기에 단엽은 그저 그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기루 삼 층에 위치한 조용한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값비싼 기루인 만큼 방 내부는 무척이나 잘 꾸며져 있었고, 다른 이들의 방해를 받을 일도 없어 보였다.

방으로 안내받은 두 사람이 자리에 착석했을 때였다.

둘을 이곳으로 안내해 온 사내가 물었다.

“음식과 술은 무엇으로 가져다드릴까요?”

“여기서 제일 잘 나가는 것들로 한 상 거하게 부탁하네.”

한천이 짧게 주문을 끝냈고, 사내는 곧바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단둘이 남게 되자 한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엽이 입을 열었다.

“너 무슨 일 있냐?”

“나? 아무 일도 없는데?”

“그런데 오늘 왜 이래? 비싼 기루에 온 걸로 모자라 좋은 술과 음식이라니…….”

평상시랑 다른 한천의 행동에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단엽이 이내 손뼉을 치며 말했다.

“너 혹시 백아린 몰래 뒷돈이라도 좀 챙겼냐?”

“……하아.”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을 쉬는 한천의 모습에 단엽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아닌가 보네. 그럼 대체 뭐야? 나한테 뭐 부탁할 거라도 있어?”

“아, 진짜 아니라니까 그러네.”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한천이 열불을 토해 냈다. 그리고 때마침 방금 전 나갔던 기루에서 일하는 사내가 술병을 하나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내려놓은 술병을 들어 올린 단엽이 장난스레 말했다.

“정말로 뭐가 있는 건 아닌 거 같으니 걱정 없이 마신다?”

“그래, 제발 좀 그냥 먹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엽은 자신과 한천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대며 한천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사람을 못 믿어서야 원.”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그랬냐. 안 하던 짓을 하니까 이상해서 그랬지.”

목구멍으로 술을 넘기며 단엽이 실실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잡담을 나누며 몇 잔의 술을 주고받는 사이, 앞에 있는 탁자 위로 하나둘씩 음식들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탁자 한쪽에는 술병이 하나씩 쌓여 갔다.

둘 모두 보통 주량이 아니었기에 술을 비우는 속도는 순식간이었다.

취기가 얼큰하게 오를 정도의 시간이 지났거늘 둘은 여전히 멀쩡한 상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술자리는 꽤나 유쾌했다.

연신 터져 나오는 두 사람의 웃음소리와 시끄러운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술자리의 분위기가 한없이 무르익어 갈 때였다.

때마침 터진 단엽의 농담에 한천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정말 웃긴 놈이라니까.”

배꼽이 빠져라 눈물까지 흘리며 웃어 대던 한천이 이내 힘겹게 허리를 폈다. 그러고는 눈가에 맺혀 있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 내며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그런 한천과 건배를 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단엽이 잔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여전히 웃는 눈매를 한 한천의 입이 열렸다.

“언제 가는데?”

“…….”

한천의 그 한마디에 단엽이 움찔했다.

여태까지 나눈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뜬금없는 말이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단엽은 한천이 내뱉은 말뜻이 뭔지 알아차렸다.

그사이 한천이 말을 이었다.

“너 곧 떠날 생각이잖아. 다 눈치챘으니까 속일 생각일랑은 말고.”

“……어떻게 알았냐?”

잔을 슬쩍 내려놓은 단엽이 물었다.

그러자 단엽과는 반대로 술을 들이켠 한천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바보도 아니고 척 보면 척이지.”

“쳇, 알아차리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하고 멋지게 사라지려고 했는데 이거 완전히 김샜네.”

손에 깍지를 낀 채로 자신의 뒷머리를 감싼 단엽이 투덜거렸다.

허나 말을 내뱉은 단엽의 표정은 말투와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서글퍼 보였다. 슬며시 자신의 입술을 깨문 그가 서서히 머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러고는 가득 차 있는 자신의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한천의 말이 맞았다.

단엽은 이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건 바로 얼마 전 있었던 대홍련 련주와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그는 단엽에게 련주의 자리를 부탁했고, 그건 거절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단엽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결론을 내렸고 며칠 후 이곳을 떠나 대홍련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지는 며칠 정도 지났지만 아직까지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웠던 탓이다.

사실 속내는 그러했지만 단엽은 괜히 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아쉬워하고, 뭔가 미련 있는 모습을 보이는 건……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술잔을 비운 단엽이 괜히 더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허공으로 쭉 펼치며 소리쳤다.

“아! 아쉽다. 주인의 사부랑 한 번 붙어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으니 그건 다음 기회로 미뤄야 되겠네.”

“큭, 참 너답다. 이런 와중에도 머릿속에 싸움밖에 없다니. 그렇게 싸워 보고 싶냐?”

“싸워 보고 싶지. 주인의 사부라면 곧 천하제일인이라는 의미니까.”

말을 하는 사이 한천은 자신과 단엽의 빈 잔에 다시금 한 잔씩 술을 채웠다.

그렇게 한천이 술병을 기울이고 있는 때였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고 있던 단엽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진짜로 싸워 보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어.”

“누군데?”

술을 따르던 한천이 힐끔 단엽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어본 그때였다.

“……너다.”

예상치 못한 말에 술잔을 채우던 한천이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고는 놀란 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사이 진지해진 눈빛으로 한천을 바라보던 단엽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난 너와 싸워 보고 싶다, 한천.”

이건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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