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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24화 (223/293)

224화. 일진일퇴 ― 놀아 보자고 (2)

단엽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소매로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의 심장은 지금 미칠 듯 요동치고 있었다.

방금 전 한천이 펼쳤던 무공.

금빛 고리가 은은하게 퍼져 나가며 자신이 펼쳤던 절초인 열화신류구천아를 무위로 돌려 버렸다. 열화신류구천아가 어떠한 초식인가.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지금 펼쳐 낸 이번 공격 하나로 일개 중소 문파 하나 정도는 충분히 박살을 낼 수 있다 자신할 만큼 위력적인 초식이었다.

내공의 소모 또한 꽤나 심해서 중원에 이보다 파괴적인 초식이 얼마나 될까 자부할 정도의 공격.

그런데 한천은 그걸 받아 냈다.

그리고 이후 서로를 향해 밀려든 무시무시한 충격. 서로의 온전한 힘을 마주한 상황이었기에 단엽은 한천의 힘을 더더욱 체감할 수 있었다.

강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싸워 보고 싶었던 상대다.

그리고…… 한천은 그런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사내였다.

그랬기에 즐거웠다.

이런 상대와 싸울 수 있는 지금이. 그리고 이토록 매력적인 무인이 자신이 지기라는 사실도.

그리고 상대의 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건 한천 또한 마찬가지였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서로를 향해 웃고 있다는 것, 그거 자체가 서로의 실력에 한껏 빠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무인으로서 마주하고 있는 동안 천무진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단엽과 한천의 대결은 단순히 비무 수준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둘의 비무가 막 가열되기 시작했을 뿐인데 마교 내부에 있는 연무장 하나가 아예 박살이 나다시피 사라졌다.

그나마 조용히 무공에 열중할 수 있도록 특별히 소교주 쪽에서 신경 써 배정해 준 곳이라 이런 소란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는 없었지만…….

천무진이 슬슬 어떻게 해야 하나 의견을 나누기 위해 백아린에게 시선을 주는 사이, 피에 젖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던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번쩍!

순식간에 치솟은 단엽의 주먹에서 광풍이 휘몰아쳤다.

콰드득!

동시에 연무장 한쪽 바닥이 아예 으깨지듯 터져 나갔다.

그리고 뻗어져 나간 그 충격파는 연무장 외벽까지 영향을 미쳐 그곳마저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허나 이미 그 자리에 있었던 한천은 빠르게 빠져나간 상태였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이 요동쳤다.

촤르륵.

손바닥 위에서 맹렬하게 회전하는 검이 민첩하게 앞으로 뻗어져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 그의 검로를 따라 내공이 폭발했다.

콰콰콰쾅!

검의 잔상들이 뿜어졌고, 그곳은 마치 수십여 개의 폭탄이라도 떨어져 내린 것처럼 폭발했다.

터져 나온 굉음과 솟구쳐 오르는 흙먼지.

그 사이에서 단엽이 몸을 드러냈다.

파앙!

권갑을 낀 채로 밀려드는 주먹을 한천은 검으로 막아 냈다. 두 사람의 몸이 뒤엉킨 상태로 뒤로 마구 밀려 나갔다.

좁혀진 거리!

순식간에 단엽이 한천을 노리고 소나기처럼 주먹을 퍼부었다.

허나 이건 단순한 주먹질이 아니었다. 강력한 내공이 실린, 한 방 한 방이 뼈를 부술 정도로 파괴적인 공격이었다.

한천이 그것을 검으로 막아 낼 때마다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충격파는 지금 단엽의 공격이 얼마나 강한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연달아 터져 나오는 강렬한 공격.

한천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왼손으로 밀려드는 고통으로 인해 점점 손아귀에 힘이 모자란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결국 가까스로 막아 내던 한천의 몸이 뒤로 밀려 나가떨어졌다.

쿵!

바닥에 처박혔던 한천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단엽의 모습에 재빠르게 땅을 박차고 회전했다.

‘거리를 주면 안 돼.’

단엽의 박투술을 근거리에서 받아 내기에 왼손 하나는 무리였다.

재차 휘두르는 주먹을 막아 내면서 황소처럼 달려들던 단엽의 가슴을 발로 밀쳐 낸 한천이 자신에게 유리한 간격을 잡기 위해 재빠르게 뒤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한천은 슬쩍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봤다.

‘……망할.’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지금 그의 왼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다.

왼손 하나로 단엽의 공격을 그리 받아 냈으니 무리가 가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슬며시 떨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본 한천에게서 자조 섞인 미소가 흘러나왔다.

오른손이 망가진 채로 십수 년을 보내 왔다.

한천은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오른손으로 검을 쥐지 못한다는 점이 싫었던 적은 없었다. 비록 무인으로서 오른손을 사용하기엔 어려웠지만, 그로 인해 자신은 새 삶을 얻게 되었으니까.

거기다가 다친 오른손으로 식사 같은 간단한 행동 정도는 할 수 있으니 크게 문제 될 일도 없다 생각하며 지내 왔다.

헌데…… 지금 한천은 처음으로 자신의 오른손이 엉망인 것이 안타까웠다.

보다 나은 상태였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단엽이라는 사내와 더욱 좋은 대결을 펼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서 나온 아쉬움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더욱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 또한 꿈틀거렸다.

무공에 대한 순수한 열의를 지니고 있는 단엽과의 싸움으로 인해 그간 잠들어 있던 무인으로서의 본능이 깨어 나오고야 만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한천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운에도 미세한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스.

몸 주변으로 퍼져 나오는 음산한 분위기.

거기다가 표정 또한 점점 변해 가고 있었다.

한천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은 그와 마주하고 있는 단엽이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한천의 서늘해진 시선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기운 때문이었을까.

단엽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대결에 충분히 만족하는 중이었다.

허나 지금 돌변한 한천의 기세를 보는 순간 단엽은 더욱더 많은 것에 욕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욱 강해진 그와 싸워 보고 싶다.

그 상상만으로도 단엽은 너무나 즐거워 미칠 것만 같았다.

‘……어이 대체 날 어디까지 즐겁게 해 주려고 이러는 거야.’

단엽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두근두근!

미칠 듯 뛰는 심장 소리.

모든 것이 좋았다.

단 하나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과연 이 싸움을 멈출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 알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한천이라는 사내. 이 한 명에게 오롯이 모든 걸 집중하고 싶었으니까.

순간 한천의 몸 주변으로 아까처럼 금빛 기운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단엽 또한 자신의 열화신공을 극성까지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기운을 뿜어내는 것만으로 주변의 것들이 흡사 겁이라도 먹은 것처럼 떨기 시작했다.

차갑게 식어 버린 한천의 얼굴.

그리고 반대로 광기에 젖은 듯 웃고 있는 단엽의 모습까지.

둘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앙!

커다란 폭발이 일면서 둘은 함께 밀쳐져 나갔다. 동시에 단엽의 주먹이 한천을 후려쳤고, 기다렸다는 듯 한천의 검도 그를 스쳐 지나갔다.

둘의 몸이 뒤엉키며 서로에게 파괴적인 일격을 쏘아 냈다.

그렇게 반대편으로 밀려 나간 두 사람은 동시에 피를 쏟아 냈다. 하지만 이 정도 타격으로 둘의 공방을 멈출 수는 없었다.

서로를 향해 고개를 치켜든 두 사람이 이내 다시금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금빛 기운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고, 붉은 열기는 천하를 뒤덮었다.

우우우웅!

모든 걸 박살 내려는 듯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두 사람의 눈동자에는 오로지 상대방만이 가득했다.

서로 거리를 빠르게 좁혀 들어가는 바로 그때였다.

싸움을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던 천무진과 백아린이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아무런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이라도 한 듯 앞으로 튀어 나갔다.

백아린의 손에 번개처럼 대검이 뽑혀져 나왔다.

그리고 천무진 또한 빠르게 손바닥에 내력을 끌어모았다.

두 사람이 격돌하려는 단엽과 한천의 사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아린의 대검이 움직이려는 한천의 검을 막아 냈다.

카앙!

그리고 날아들려던 단엽의 주먹을 천무진이 손바닥으로 받아 냈다.

퍽!

공격을 받아 낸 천무진과 백아린은 서로 등이 맞닿을 때까지 뒤편으로 밀려 나갔다.

그렇게 멈추어 선 네 사람.

천무진이 단엽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쥔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비무는 여기까지.”

“…….”

천무진의 말에 단엽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왜 싸움을 말렸냐며 길길이 날뛸 것을 예상했던 천무진으로서는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다.

순간 의아했지만 이내 천무진은 알 수 있었다.

‘……스스로는 멈출 수 없는 싸움이었던 건가.’

서로에게 너무 흠뻑 빠져 다른 누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스스로는 멈출 수가 없었고, 결국 끝까지 가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비무였었던 게다.

백아린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서 있는 한천을 향해 걱정스레 물었다.

“부총관 괜찮아? 그러니까 내가…….”

말을 하던 백아린이 움찔했다.

그의 눈빛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져서였다. 한천에게서 이런 눈빛을 본 것이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아주 오래전뿐이었다.

두 사람의 사이에 천무진과 백아린이 자리하고 있었거늘, 신기하게도 그 둘은 오로지 서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무진이 막 입을 열었다.

“상처 치료부터…….”

“한천!”

순간 버럭 소리를 내지른 단엽이 천무진의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한천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건 한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도 백아린의 옆을 지나쳐 단엽에게로 다가갔다.

피투성이가 된 두 남자는 그렇게 서로 맞닿는 거리에 마주 섰다.

그리고…….

스윽.

단엽이 왼손을 들어 올려 슬쩍 한천이 있는 방향으로 내밀었다. 왼손을 내미는 그 모습에 한천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쓸데없이 배려해 주긴.”

말과 함께 한천 또한 검을 바닥에 꽂은 채로 자신의 왼손을 내뻗었다.

타악!

두 사람의 손이 허공에서 맞잡혔다.

마치 교차하듯 서로의 손을 부둥켜 잡은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상대를 향해 실실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단엽은 손을 풀며 자연스레 한천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엉망이 된 얼굴로 단엽이 입을 열었다.

“역시 너 제법이더라?”

“그건 내가 할 소리인데.”

“야 그냥 이 김에 적화신루 나와서 대홍련으로 오지그래. 내가 자리 하나 마련해 줄 테니까.”

“급여는?”

“무보수로는 안 되냐?”

“……아, 갑자기 적화신루를 향한 충성심이 물씬물씬 올라오는데.”

무보수라는 말에 어깨에 두른 팔을 쳐 내며 딴청을 피워 대는 한천의 모습에 이 둘을 바라보고 있던 백아린조차 헛웃음을 흘렸다.

단엽이 양팔을 하늘로 번쩍 치켜들며 말했다.

“아, 즐거웠다.”

말대로 그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고, 만족스러운 듯 싱글벙글이었다.

이내 단엽이 옆에 있는 한천에게 말을 걸었다.

“몸 회복 잘하고 있으라고. 조만간 기회 되면 또 한 번 놀아 봐야지.”

“……그래.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너무 늙기 전에는 해 보자고.”

“뭘 그렇게 먼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어. 한 두어 달 정도 후에 어때?”

“그때 우리가 어떻게 붙어. 네가 대홍련으로 돌아가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는 듯이 웃어넘기는 그때였다.

단엽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어? 내가 말 안 했나? 나 금방 돌아올 건데.”

생각지도 못한 그 한마디에 한천은 물론이고 천무진과 백아린 또한 표정을 구겼다.

마치 잘못 들은 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표정으로 한천이 되물었다.

“……뭐? 금방 돌아온다니?”

“우선 서둘러 돌아가서 약속대로 련주가 되고 대홍련의 조직을 재편할 생각이야. 내가 없어도 최대한 잘 움직일 수 있도록. 그래야 주인을 돕기에도 용이할 테고. 그렇게 하려고 잠깐 돌아가는 건데.”

너무도 태연하게 말하는 단엽의 모습에 한천이 버럭 소리쳤다.

“이 자식이! 그럼 말을 똑바로 해야지!”

“내가 왜?”

“최소 몇 년 이상은 못 볼 사람처럼 굴었잖아.”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네가 그렇게 생각한 거지.”

“아니 최소한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 그런데 네 모습은 진짜 영영 떠날 것처럼…….”

단엽과 최소한 몇 년은 못 볼 거라 생각했던 한천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들어 보니 단엽은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돌아올 계획이었다. 뭔가 그에게 속은 것 같다는 생각에 한천이 한껏 약 올라 하고 있는 그때였다.

단엽이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를 영영 떠나겠냐.”

말을 꺼낸 단엽이 한천을 비롯해서 천무진, 백아린에게까지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모두를 한 번 둘러본 단엽이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무림에서 제일 재미있는 놈들이…… 여기 다 모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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