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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30화 (229/293)

230화. 기억의 파편 ― 같이하자 (2)

팔십사 명의 아이들이 갇혀 있던 정체불명의 산속 장원.

그곳에 피바람이 불어닥쳤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신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무공에 뛰어난 성과를 보일 법한 근골을 지닌 아이들로 구성된 무리.

몇 번이고 선별하여 이곳까지 온 아이들이었지만 다시 한번 이들을 분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대략 절반 가까운 숫자가 낙오자로 분류되었다.

떨어진 절반은 이 산을 떠나야만 했고, 이곳에는 나머지 사십오 명의 아이들만이 남게 됐다.

고작 여덟 살에서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었다.

그런 어린아이들이 모여 있는 방 안으로 수십여 명의 인물들이 들어섰다. 그들의 손에는 커다란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덩치에서부터 힘까지 비교도 안 되게 강한 이들.

그런 그들이 갑자기 아이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유 같은 건 말해 주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다치거나 죽어서 낙오됐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체적인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단계가 끝나자 그들은 다른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상처가 채 낫기도 전에 아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를 먹어야만 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우, 우욱!”

속에 있는 걸 게워 내던 어린 소년 하나가 결국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러자 근처에 앉아 아이들을 감시하고 있던 사내 하나가 다가와 상태를 살폈다.

아직 숨은 붙어 있는 상태였지만 한눈에 봐도 속이 모두 망가진 것이 분명했다.

잠깐 상태를 확인하던 사내가 이내 무감각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처분해.”

명령이 떨어지자 인근에 있던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그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너무도 끔찍한 상황이었지만 방 안에 있는 아이들 중 그 누구도 이 같은 일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고통을 이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던 까닭도 있었지만, 이 같은 상황이 익숙해진 이유가 가장 컸다.

남아 있는 아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금 사라진 아이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현재 독을 먹은 상태였다.

딱 죽지 않을 정도의 극독. 그걸 버텨 내고, 못하고는 정신력의 싸움이었다. 약한 자는 죽고,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

한 달에 가까운 시간.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몇 번이고 극도의 고통을 주며 아이들을 선별해 나갔다.

무인으로서의 정신력, 그리고 신체적 한계까지.

그동안 마흔다섯 명이었던 아이들의 숫자는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십삼 호도, 칠 호도 있었다.

오늘도 목숨을 부지한 두 소년은 자리에 누운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헉헉.”

칠 호는 자신의 배를 움켜쥔 채 바닥에서 몸을 웅크렸다. 슬쩍 벌어진 입에서는 연신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를 향해 십삼 호가 걱정스레 말을 걸었다.

“형, 괜찮아?”

“…….”

십삼 호의 질문에 칠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독한 고통. 그렇지만 십삼 호의 상태는 칠 호에 비해 훨씬 나아 보였다. 그런 그를 칠 호가 슬쩍 부럽다는 눈으로 올려다봤다.

칠 호가 힘겹게 물었다.

“넌 괜찮아?”

“나는 뭐…….”

안 아플 리가 없지 않은가.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것만 같은 고통에 휩싸였던 그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워하는 칠 호 앞에서 차마 아프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칠 호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며 주변을 살펴봤다.

캄캄한 방 안은 예전과는 달리 무척이나 휑했다. 그만큼 많은 인원들이 사라졌다는 의미이리라.

그가 힘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몇 명이나 남았을까?”

“얼추 열 몇 명 정도 되는 거 같은데.”

주변을 둘러본 십삼 호가 어둠 속에 있는 아이들을 확인하며 답했다.

물론 이 또한 확실한 건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살아서 누워 있지만, 그들이 모두 내일 뜨는 해를 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

그런 끔찍한 어둠을 이토록 어린아이들이 감당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나흘의 시간이 흘렀다.

독에 당해 버텨 내지 못한 아이들이 사라진 방에는 회복된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죽음이 가득하던 이곳에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

십삼 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뭔가 이상한데.’

무려 나흘이다.

대략 이틀 간격으로 여러 가지 시험들을 해 대던 그들이다. 그런데 이번엔 무려 나흘 동안이나 아무런 일도 없었다.

일부의 아이들은 이 상황을 마냥 즐거워했지만…….

십삼 호는 갑자기 찾아온 이 평화로운 상황이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마치 폭풍이 불기 전의 고요함 같다고 해야 할까?

이 평화가 머지않아 닥칠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일의 서장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십삼 호가 평화로운 이 상황에 의구심을 가지고 다시금 나흘의 시간이 더 지났을 무렵 마침내 걱정했던 일이 벌어졌다.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와 함께 열린 문, 바깥에서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들어왔다. 이곳의 아이들을 총괄하는 인물로 그가 나타나면 언제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아이들 또한 그 사실을 알기에 사내가 등장하자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자신을 향한 두려움 가득한 시선을 느꼈는지 사내가 피식 웃었다.

한쪽에 있는 자리에 가서 앉은 그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다들 안색이 좋군그래. 한동안 푹 쉬었지?”

“…….”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하는 그때 그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휘둘렀다.

파앙!

뻗어져 나간 장력이 방 한쪽에 있던 탁자를 박살을 내 버렸다. 산산조각 나며 주변으로 터져 나가는 탁자의 모습에 아이들은 식겁을 한 듯 뒷걸음질 쳤다.

그런 아이들을 향해 사내가 입을 열었다.

“물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벙어리 새끼들도 아니고.”

“네, 네!”

몇몇 아이들이 기겁한 듯 서둘러 소리쳤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 그가 아이들을 향해 말을 이어 갔다.

“여기까지 버티느라 고생들 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는데 뭐부터 전해 줘야 좋을까.”

말과 함께 사내는 고민된다는 듯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그에게 진짜로 아이들을 향한 마음 따위가 존재할 리 없었다.

그에게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그저 하나의 장기짝과도 같았다.

잠시 고민하는 척하던 사내가 이내 말했다.

“그럼 좋은 소식부터 전하지. 이제 너희가 통과해야 할 관문이 단 하나가 남았다는 거다. 어때? 다들 좋지?”

사내의 말에 아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실 다들 너무나 무서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실험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이것이 대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마침내 그 끝을 알게 됐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어찌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나쁜 소식을 말해 줘야겠지?”

아이들의 얼굴에 맺혀 있는 희망.

그리고 그 희망을 깨트릴 때…… 사내는 희열을 느꼈으니까.

“너희들 열다섯 명. 이 중에 오직 다섯 명만이 살 수 있다. 그리고 너희는 그 다섯 명이 되기 위해 서로를 죽여야만 한다.”

충격적인 말에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옆에 있는 이들을 확인했다.

긴 시간을 함께하며 나름 친밀해진 얼굴들.

그런 이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한단다.

사내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다섯, 그중에 단 한 명만이 선택받는다. 나머지 넷이 어찌 될지는 나도 모르지만…… 아마도 지금처럼 살다가 죽지 않을까? 하하!”

말을 내뱉은 그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아이들의 표정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생존자 열다섯.

어쩌면 그중 살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 * *

바로 이튿날.

아이들에게는 각자 한 자루의 단검이 쥐어졌다. 그리고 약 이틀 정도 먹을 분량의 식량이 배식된 것이 전부였다.

손에 단검을 쥔 아이들의 얼굴은 긴장으로 바짝 굳어 있었다.

모두가 무공조차 모르는 아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이렇게 사람을 죽이기 위해 무기를 들어 봤을 리 만무했다.

이곳의 관리를 맡은 사내는 모두에게 필요한 걸 나눠 준 후 단상 위에 올라선 채로 굳어 있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어제 말한 것처럼 단 다섯 명의 생존자만 남기는 시험을 시작하지. 장소는 이 산 전체다. 숨어도 좋고, 도망만 다녀도 좋다. 그래서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최후의 오 인이 되면 그뿐이다. 지금 바로 산으로 움직이지만, 상대를 죽이는 건 내일 정오 이후부터 시작한다. 그동안 각자 필요한 걸 준비해 두라고.”

사내는 이어 간단한 규칙을 설명했다.

“누군가가 죽은 게 확인될 때마다 우리는 옆에 있는 이 종을 울릴 거다. 그걸로 너희는 몇 명이 남았는지 짐작하면 되는 거고. 그리고 이것 하나는 반드시 명심해라. 이 산 아래는 이미 우리 쪽 사람들이 모두 포위하고 있다는 걸. 혹시라도 산을 벗어나 도망치려 한다면…….”

말과 함께 사내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더니 이내 한쪽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그곳에 서 있던 나무의 밑동이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쿠웅.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고, 사내가 허리에 검을 차며 말을 이었다.

“그 즉시 죽는다는 걸 명심해라.”

이미 이 산 자체가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는 상황.

무공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빠져나간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머뭇거릴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내가 이내 비웃듯 말을 이었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유리할 텐데. 나중에 움직이면 표적이 되기 십상이거든.”

사내의 그 말에 일부의 아이들이 서둘러 뒤편에 있는 길을 통해 산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움직이자 뒤이어 다른 이들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아이들이 사라진 빈 장소를 바라보던 사내가 픽 웃었다.

“어떻게 되려나. 뭐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놈들이 있다마는.”

살아남을 수 있는 다섯 명의 아이들.

이제 막 싸움이 벌어졌지만 사내는 그 다섯 중 몇 명은 누가 될지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칠 호와 육십이 호. 그리고…… 십삼 호.”

칠 호와 육십이 호는 모든 이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존재였다. 칠 호는 많은 이들과 두루 친하게 지냈고, 개인적 능력도 뛰어났다.

선한 인상과 부드러운 화법에 많은 아이들이 그를 좋아했다.

그에 비해 육십이 호는 완전히 반대인 아이였다.

그는 덩치도 크고 아이들을 힘으로 내리눌렀다. 그렇지만 그 힘에 이끌려 많은 이들이 따르는 아이.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던 패거리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십삼 호.

이 아이는 저 둘과는 또 달랐다.

칠 호를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가까이 지내지 않았지만, 반대로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아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대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게 만드는 그 묘한 분위기는 그 아이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 세 명을 번갈아 떠올리던 사내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자신의 예상대로 이 셋 모두가 생존해서 다섯 명 안에 들 수 있을지 아니면……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지를.

그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섯 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싸움.

이 일을 벌인 건 단순히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이들끼리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만 했다.

그렇게 이 싸움의 승자가 된다 한들 그 아이가 어찌 멀쩡하겠는가.

정신적으로 망가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사람 사이의 정(情)이나 의리 같은 전혀 쓸모없는 걸 마음에서 지우게 될 것이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건 협객이 아니었다.

그 어떠한 일이라도 해내는 냉혈한.

사사로운 마음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끔찍한 살인귀를 원했다.

그리고 지금 이 일은 그 같은 살인귀를 만드는 과정의 초석을 다지는 단계였다.

이번 일의 결과가 내심 궁금한 사내가 아이들이 사라진 산길을 향해 시선을 돌린 채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되려나.”

* * *

앞장서서 나아가는 십삼 호의 뒤로 칠 호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칠 호가 풀들을 헤치며 나아가는 십삼 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같이 갈 거지?”

“당연하지. 형은 그럼 혼자 가려고 했어?”

“……그럴 리가.”

십삼 호의 말에 칠 호가 씩 웃으며 대꾸했다.

남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두드러지는 실력을 보인 칠 호와 십삼 호다. 이 둘이 뭉친다면 나머지 아이들이 그리 무섭지 않았다.

뒤에서 따르던 칠 호가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칠래? 아니면 그냥 기다리면서 숫자가 줄어들면 그때…….”

말을 하는 그때 앞장서서 나아가던 십삼 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섰다.

고개를 돌린 십삼 호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형,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응?”

돌변한 십삼 호의 표정에서 뭔가를 느낀 칠 호가 조심스레 되물었을 때였다.

십삼 호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지내던 아이들을 죽이자고? 난 그런 짓 절대 못 해.”

십삼 호의 말에 이번엔 칠 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화가 난 듯 받아쳤다.

“누군 죽이는 게 좋아서 이러겠어? 하지만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어! 너 설마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그냥 다른 애들끼리 싸우다가 자연히 다섯 명 안에 들기를 바라는 거야? 뭐,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지. 하지만 그게 뭐가 달라? 어차피 우리가 살려면 그만큼 죽어야 해. 직접적으로 죽이지는 않지만 결국 우리 때문에 누군가가 죽는 거라고!”

칠 호가 정신 차리라는 듯이 몰아쳤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십삼 호가 답했다.

“다른 방법이 하나 있잖아.”

“……다른 방법?”

되묻던 칠 호가 이내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지금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라고 할 만한 것이라면 하나뿐이었으니까.

칠 호가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

“너 설마…….”

놀란 그를 향해 십삼 호가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난 이 산에서 도망칠 거야, 형.”

죽고 죽이는 잔인한 싸움.

십삼 호는 이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칠 호의 말대로 그저 방관을 하겠다는 의미도 아니었다.

자신이 산다는 것.

칠 호의 말대로 그건 곧 다른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랬기에 십삼 호는 아예 이 규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살아서 이 산을 도망쳐 나가는 것. 그것이 자신도 살고, 또 다른 누군가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생각했으니까.

힘이 없는 어린아이인 십삼 호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그게 바로 이것이었다.

겨우 한 명의 목숨일 뿐이다.

하지만…… 그 한 명이라도 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그 계획에 다른 누군가가 동조했을 때…… 살아남게 되는 사람은 또 하나 늘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어차피 무인인 그들이 감시하는 상황에서 산을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해. 그래서 난 그들이 내가 죽었을 거라 판단할 때까지 산에 숨어 있을 생각이야. 다행히도 시작이 내일 정오니까 그 전까지 그들 몰래 준비할 시간도 있고.”

십삼 호의 말에 칠 호는 움찔했다.

섣불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곧 칠 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생각은 좋지만 불가능해. 먹을 거라고는 고작 이것뿐이잖아.”

이틀 치의 식량으로 버티는 건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아껴 먹는다고 해도 오 일.

그 이상은 무리였다.

칠 호의 말을 듣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십삼 호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어 들었다.

그걸 보는 순간 칠 호는 놀란 얼굴로 십삼 호를 바라봤다.

그것은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주먹밥들이었다.

처음 뭔가가 이상했다고 느낀 그날부터 십삼 호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식사를 평소의 절반으로 줄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몰래 숨긴 채로 상황을 지켜봤다.

만약의 일이 벌어지면 이 음식들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여겨서였다.

고아로 살며 배고픔이라는 것이 주는 두려움을 너무도 잘 알았던 십삼 호다. 그런 그이기에 할 수 있었던 생각들.

물론 며칠이 지난 주먹밥들이다 보니 상태가 좋을 리는 만무했다.

허나 그런 것 따위 상관없었다.

허기만 달랠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것도 씹어 삼킬 수 있었다.

십삼 호가 말했다.

“버틸 생각이야. 열흘이고 한 달이고 좋으니까 계속 버틸 거야.”

주어진 소량의 음식.

그리고 자신이 미리 챙겨 둔 이 주먹밥까지.

거기다가 산에 있는 나무뿌리도 잔뜩 뜯어 먹을 수 있는 건 뭐든 챙길 생각이었다. 그 상태로 깊은 땅굴을 파서 몸을 감출 것이고 그들 모두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할 때까지 버티면 된다.

먼저 포기하는 쪽이 지는 싸움.

십삼 호는 아이들이 아닌 이 끔찍한 일을 벌이는 그들과의 싸움을 택했다.

십삼 호가 아직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칠 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형, 우리가 이러면 두 명이 더 살 수 있어. 같이할 거지?”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십삼 호의 모습.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칠 호가 이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알겠어.”

“역시 형이라니까.”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칠 호의 모습에 십삼 호가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이내 몸을 돌린 십삼 호가 말을 이었다.

“내가 둘이 각자 숨을 만한 땅굴을 팔게. 그러면 형은 그사이에 근처를 돌면서 오랫동안 놔두고 먹을 만한 것들을 주워 오면…….”

길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며 더욱 깊숙한 산길로 들어서는 십삼 호.

그리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칠 호는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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