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돌아오다 ― 손대지 마 (1)
어린 소년 십삼 호의 기나긴 계획이 시작되었다.
고아였던 탓에 거처도 없이 오랜 시간을 떠돌아다녔던 그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도 능숙하게 땅굴을 팠고, 바람과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위장막까지 준비했다.
거기다가 상대는 무인이었기에 단순히 몸을 숨기는 수준이 아니라 꽤나 깊게 파서 더욱더 안쪽에 숨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루.
그동안 십삼 호는 칠 호와 자신이 머물 두 개의 땅굴을 만들었고, 남는 시간에는 주변에서 먹을 수 있는 걸 최대한 챙겼다.
대부분이 나무껍질이나, 줄기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허기를 달래는 건 가능했다.
그리고 땅굴 안쪽에는 얇은 대나무 하나를 준비해 둬서 혹시라도 비가 왔을 때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안쪽으로 물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했다.
장기전에 식수는 필수였으니까.
버틸 준비는 끝이 났지만, 아직 해야 할 중요한 한 가지가 남아 있었다.
그건 바로…….
스윽.
십삼 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손바닥을 날카로운 돌로 긁었다. 손바닥에서는 연신 피가 흘러나왔고, 십삼 호는 그걸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에 문댔다.
그냥 숨어 있는 걸로는 안 됐다.
자신들이 죽은 흔적을 남겨야 그들 또한 두 사람이 죽었다고 판단하여 다른 두 명의 아이들을 살려 줄 테니까.
십삼 호와 마찬가지로 칠 호 또한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그곳에 피를 묻혔다.
그렇게 준비를 끝낸 둘은 옷을 날카로운 돌을 이용해 찢어 마치 맹수에게 당한 것처럼 꾸몄다. 그리고 지저분한 흙까지 마구 문대서 더더욱 확인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게 가짜 피투성이 옷을 만든 두 사람은 자신들이 숨을 땅굴이 있는 곳에서 다소 떨어진 위치에 그것을 가져다 두었고, 이내 원래의 장소로 돌아왔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십삼 호는 곧바로 땅굴 안으로 숨어들었다.
정오가 되면 그때부터 아이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움직일 것이고,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무인들 또한 나서게 될 테니까.
만약 숨기 전에 그들에게 위치가 노출된다면 자신이 죽었을 거라 판단할 정도로 긴 시간 몸을 감추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랬기에 십삼 호는 보다 빠르게 땅굴에 숨었고, 그건 칠 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땅굴 안에 숨은 그 둘은 쥐 죽은 듯 시간을 보냈다.
십삼 호는 자신이 챙겨 왔던 주먹밥을 정확하게 반으로 나눠 칠 호에게도 전해 줬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하루, 이틀…… 그리고 팔 일.
준비해 둔 음식이 그 끝을 보여 가고 있는 이때, 그보다 더욱 큰 문제는 바로 물이었다.
식사는 그나마 어떻게든 준비해 둘 수 있었지만 물은 한계가 있었다. 그랬기에 어느 정도 비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땅굴 안에서 기대어 앉은 십삼 호의 얼굴은 핼쑥했다. 그는 위장막으로 막아 둔 위쪽을 바라보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며칠째 안 오는 거야.’
시기는 우기였고, 당연히 잦은 비가 내려야 할 때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생각보다 비가 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계획과는 다르게 물의 공급이 어려워졌다.
며칠째 제대로 입술조차 축이지 못했고, 이대로는 들키는 것을 걱정하기 전에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십삼 호는 멍한 정신을 최대한 붙잡았다.
팔 일 전 시작된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
그리고 생존자의 숫자는 이제 아홉이었다.
허나 그 숫자는 나흘 전부터 변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유지되는 아홉이라는 숫자,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아홉이라는 숫자에 자신들이 포함된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해 점점 힘들어지는 그때 갑자기 위쪽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들렸다. 들려오는 소리에 십삼 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들에게서 받았던 단검을 꽉 움켜쥐는 그때.
슬쩍 열린 위장막 너머에서 칠 호의 모습이 보였다. 옆에 있는 땅굴에 숨어 있어야 할 그가 이렇게 나와 있자 놀란 듯 십삼 호가 입을 열었다.
“형?”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물을 좀 구해 올게.”
한층 수척해진 얼굴로 칠 호가 말했다. 그런 그를 향해 십삼 호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발각되면…….”
“멍청아. 이러다가는 그 전에 죽어. 어떻게든 살아야 우리 계획도 성공하는 거 아냐. 내가 물과 먹을 걸 가지고 올게. 그러니까 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형이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형이 어떻게든 하겠다는 그 말에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십삼 호가 힘없는 얼굴로도 웃음을 흘렸다. 그가 중얼거렸다.
“하여튼 그놈의 형 소리는.”
“웃는 걸 보니 아직 버틸 힘은 남아 있나 보네. 조금만 기다려. 다녀올 테니까.”
“조심해.”
“응.”
고개를 끄덕인 칠 호는 이내 손으로 일부분 걷었던 위장막을 원위치로 옮겨 놨다. 그리고 칠 호가 사라진 상황에서 십삼 호는 옆에 놔둔 나무껍질을 입에 쑤셔 넣었다.
혼미해져 가는 정신을 어떻게든 붙잡고 있기 위해서였다.
나무껍질에서는 떨떠름한 맛이 났지만, 그 덕분에 십삼 호는 정신을 붙잡고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덩달아 나무껍질에서 나오는 소량의 물로 미세하나마 갈증을 달랬다.
눈을 감은 채로 그렇게 약 반 시진 가까이를 나무껍질만 씹어 대던 그때였다.
탁, 탁.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그 소리에 반응하듯 십삼 호가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위장막 너머에서 갑자기 무엇인가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은 그토록 바라던 물이었다.
촤아아악!
얼굴로 거세게 부어지는 물줄기.
하지만 이건 비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땅굴 안쪽으로 물을 쏟아붓고 있었던 것이다. 피할 곳도 없는 좁은 장소였기에 십삼 호는 쏟아지는 그 물줄기를 고스란히 맞아야만 했다.
돌로 땅굴을 만든 것이 아니었기에 쏟아진 물이 공간을 채운 건 아니었지만, 흙과 뒤섞이면서 내부는 진흙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십삼 호는 정신을 추슬렀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인위적으로 누군가가 벌인 짓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결국 더 버티다가는 상황이 악화될 것을 알았기에 십삼 호는 결단을 내렸다.
그가 서둘러 위장막을 거두며 몸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그리고 십삼 호가 땅굴 바깥으로 몸을 꺼내려는 그 직후였다.
휘익!
뭔가가 날아든다는 걸 직감한 십삼 호는 빠르게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그가 있었던 곳으로 단검 한 자루가 스치고 지나갔다.
간신히 피해 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 단검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읏!”
피가 흘러내렸고, 흠뻑 젖은 십삼 호는 그제야 주변을 확인할 여력이 생겼다.
이미 땅굴 주변에는 세 명의 아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손에 단검을 든 채로 십삼 호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중이었다.
“너흰…….”
십삼 호는 이들의 정체를 알았다.
자신과 함께 허름한 집에서 갖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아이들이다.
순간 그중 하나가 소리쳤다.
“죽어!”
고함 소리와 함께 달려드는 상대의 모습에 십삼 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몸을 일으켜 세우긴 했지만, 땅굴을 워낙 깊이 파 둔 탓에 아직 완전히 땅 위로 나오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몸이 땅굴 안에 있으니 움직임이 제한적인 건 당연했다.
그렇게 피하지도 못하고 그 단검에 당할 것만 같은 위기일발의 순간…….
십삼 호의 눈에 달려드는 상대의 발이 보였다.
특별한 경험이 없었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파앗!
몸을 굽히며 찌르는 움직임보다 다가온 상대의 발목을 손으로 잡아채는 것이 더 빠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달려들던 상대는 발목이 잡혀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고, 십삼 호는 그걸 이용해 오히려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상대는 한 명이 아니었다.
막 몸을 일으키는 순간 다른 아이 한 명이 단검으로 찌르고 들어왔다.
팍!
십삼 호는 서둘러 손으로 자신에게 날아드는 단검을 움켜잡았다.
“으으!”
입에서 절로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단검의 날을 쥔 손바닥에서도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가까워진 거리.
십삼 호는 마주한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자신을 향한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공격, 그리고 지금 저 싸늘한 눈빛까지.
“……이미 사람을 죽였구나.”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건 곧 다른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이 자식!”
옆에서 달려드는 또 한 명의 아이.
세 명의 서슬 퍼런 눈빛을 마주하고 있던 십삼 호의 얼굴에 슬픈 빛이 서렸다.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달려드는 상대를 재빠르게 발로 밀어내며 십삼 호는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뿌리쳤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주먹.
십삼 호가 손으로 입가를 스윽 닦아 내며 말했다.
“덤벼.”
그냥 앉아서 죽어 줄 생각은 없었다.
* * *
십삼 호가 비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세 명의 아이들과의 싸움. 그리고 그 때문에 그는 꽤나 큰 부상을 입어야만 했다.
옆구리와 다리, 그리고 이마도 찢어졌다.
단검을 움켜쥐었던 손바닥 또한 연신 피가 떨어져 내렸는데…….
꽤나 부상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십삼 호는 이겼다.
십삼 호는 그 세 명을 모두 혼절시킨 뒤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곳에 더 있다가는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서둘러 움직이는 십삼 호의 머릿속에는 오직 칠 호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형은 어디 간 거지? 어떻게든 찾아야 하는데…….’
자신들이 있던 장소가 발각됐다.
그랬기에 그곳이 아닌 새로운 거점을 마련해야만 했다.
물론 이제는 감시의 눈길이 심해져 원래의 계획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가 되었지만, 당장엔 칠 호를 찾는 것이 먼저였다.
칠 호를 찾기 위해 산길 위를 힘겹게 오르던 때였다. 그의 귓가로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십삼 호가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볼 때였다.
그곳에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정체불명의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순간 십삼 호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건 꽤나 큰 바위였다.
그리고 그 바위가 십삼 호를 향해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속력을 내면서.
쿠웅! 쿵!
지축을 흔들 정도로 커다란 소리. 길을 막으며 밀려드는 탓에 십삼 호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망설일 틈도 없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곳은 가파른 경사의 골짜기였다.
“으아아앗!”
십삼 호는 돌을 피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가파른 경사 위를 미친 듯이 굴러야 했다. 가파른 경사로 인해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려가던 십삼 호가 막 정신을 차리는 그때였다.
휑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곧…… 십삼 호의 앞에 절벽이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을 안 십삼 호는 어떻게든 몸을 멈추려 했지만 이미 속도가 붙어 버린 몸은 그의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부웅!
그렇게 길의 끝부분에 이르러 허공으로 막 날아오른 그때였다.
등골이 저릿저릿했고 온몸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죽음이라는 것이 목전에 다가온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 십삼 호의 시야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깎아지듯이 자리한 절벽 옆면에서 뻗어져 나온 나무뿌리였다.
십삼 호는 서둘러 손을 뻗었다.
그리고…….
타앙!
제법 질기고 긴 뿌리를 움켜쥔 십삼 호는 그대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절벽에 자리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다. 절벽은 가팔랐고, 위쪽에 있는 땅까지는 손이 닿지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막연하게 이 나무뿌리를 움켜쥐고 버티는 것뿐이었다.
거센 바람이 불었고, 절벽에 힘겹게 매달려 있던 십삼 호의 몸이 흔들렸다.
“으윽!”
아까의 싸움으로 다쳤던 어깨에서 재차 피가 흘러내리며 십삼 호는 작은 신음 소리를 흘렸다.
버티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도 이 절벽을 오를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느낀 그때 절벽의 위쪽에서 누군가가 얼굴을 드러낸 것이었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십삼 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상대가 칠 호였기 때문이다.
십삼 호가 다급히 소리쳤다.
“혀, 형! 나 여기 있어!”
상대방을 확인하고 무척 반기는 십삼 호.
그렇지만…….
“……살아 있었네?”
그 당사자의 반응이 이상할 정도로 미적지근했다.
허나 그것에 의심을 하기도 전에 칠 호가 갑자기 단검을 꺼내어 들었다.
당연히 손을 내밀어 줄 거라 생각하고 준비를 하고 있던 십삼 호는 그런 그의 행동에 이해가 되지 않는지 눈을 크게 치켜떴다.
칠 호가 단검을 든 채로 몸을 굽혔다. 그리고 그의 손이 향한 곳은…….
“형?”
십삼 호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칠 호의 단검이 자신이 쥐고 있는 뿌리의 끝부분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단검을 뿌리에 가져다 댄 칠 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십삼 호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은 무슨. 우리가 피로 이어진 사이도 아니고.”
그 말에 십삼 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언제나 웃고 있던 칠 호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을 내려다보는 칠 호의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알던 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과 마주한 듯한 느낌.
하지만…… 이것이 진짜 그였다.
그랬다.
처음 만남부터 시작하여 그 모든 건 바로 이 칠 호의 계획대로 진행되어졌던 것이다.
칠 호는 처음부터 십삼 호라는 존재가 눈에 들어왔었다.
울거나 긴장해 있는 겁쟁이들과는 너무도 달랐으니까. 두 달 가까이 몰래 살펴보며 성격이나 여러 가지 부분을 파악했다.
남에게 절대 지지 않는 독한 성격.
칠 호는 직감했다.
이 녀석은 쉽게 죽을 놈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이런 놈과 손을 잡아 둔다면 자신에게 이득이 될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또 알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간다면 이놈은 자신의 위협이 될 존재라는 것도.
그랬기에 오히려 옆에 뒀다.
가장 위험한 상대였으니 그만큼 친하게 지냈고, 또 자신을 믿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생각한 지금 그간 숨겨 온 진짜 모습을 내비친 것이었다.
칠 호는 힘겹게 매달려 있는 십삼 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십삼 호. 네가 숨어 있던 곳이 어떻게 들통났을 거라 생각해?”
“……너!”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십삼 호를 향해 칠 호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맞아. 바로 내가 알려 줬어. 그냥 거기서 죽었다면 깔끔했을 텐데…… 굳이 살아서 이런 식으로 내가 나서게 하네.”
“처음부터 날 속였던 거냐?”
“응, 그렇지 않고서야 너 같은 놈이랑 어울릴 이유가 없잖아?”
십삼 호가 매달려 있는 나무뿌리를 자르는 시늉을 해 보이며 칠 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간 있었던 일을 떠올리던 칠 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더 이용해 먹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 이렇게 됐다만…… 오히려 잘된 건지도 모르겠네. 사실 형 동생 놀이에 슬슬 신물이 나던 차였거든. 멍청한 넌 그것도 모르고 좋아했던 것 같지만 말이야. 뭐, 그런 널 보면서 비웃는 것도 나쁘진 않았어.”
“…….”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십삼 호를 향해 그 순간 퍼뜩 뭔가 생각난 듯 칠 호가 말을 이었다.
“아 참, 그리고 넌 몰랐겠지만 네가 그 냄새나는 땅굴에서 굶주리며 힘들어하는 동안 난 계속해서 바깥으로 나갔었어. 그리고 꽤 많은 녀석들을 내 손으로 직접 죽였지. 그래서 너랑 달리 밥이나 물도 엄청 잘 먹었고. 워낙 잘 먹은 탓에 네 앞에서 허기진 척 연기하는 건 꽤나 힘들었지만 말이야.”
칠 호는 처음부터 십삼 호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최후의 오 인에 들 자신이 있거늘 굳이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애초부터 칠 호는 이곳에서 떠나는 걸 목표로 했던 십삼 호와는 생각이 달랐다.
칠 호가 원하는 건 바로 이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었다.
어차피 하찮은 인생을 살아오던 자신이다.
그러던 차에 찾아온 기회.
물론 그 과정에서 몇 번이고 죽을 뻔한 위기가 찾아오긴 했지만…… 그 모든 것이 끝나고 이제 마지막 순간에 다다라 있었다.
이곳까지 와서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처음부터 속았다는 사실을 안 십삼 호는 나무뿌리에 매달린 채로 이를 꽉 깨물었다.
고아로 살아가던 자신에게 타인의 정이라는 걸 느끼게 해 준 이였다.
그랬기에 믿었는데……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한심하게 이용만 당하다 버려지게 된 것이다.
칠 호가 웃으며 말했다.
“왜 아무 말도 없어? 울면서 매달려 봐. 평소처럼 형형 거리면서 매달리면 내 마음이 약해질지도 모르잖아.”
“……지랄하고 있네.”
나무뿌리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와중에서도 십삼 호가 비웃듯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칠 호의 웃고 있는 표정이 흔들렸다.
칠 호의 얼굴이 싸늘하게 돌변했다.
그러고는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십삼 호가 매달려 있는 뿌리에 단검을 가져다 댄 채로 말했다.
“맞아. 애초에 살려 줄 생각 따윈 없었어.”
탁!
말과 함께 그의 단검이 십삼 호가 매달려 있던 나무뿌리를 끊었다. 그리고 십삼 호는 그대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몇 번이고 가파른 절벽에 부닥치며 아래로 떨어지는 십삼 호를 바라보던 칠 호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걸음을 옮기던 그가 입을 열었다.
“끝까지 맘에 안 드는 새끼.”
그리고…….
대앵!
십삼 호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 직후.
산 위쪽 정상에서 종소리가 거세게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십삼 호의 죽음을 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