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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32화 (231/293)

232화. 돌아오다 ― 손대지 마 (2)

십삼 호가 죽었다.

그리고 아이들끼리 서로를 죽여야만 했던 이 마지막 관문 또한 조금씩 끝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십삼 호가 죽은 지 이틀 후.

마침내 생존자는 다섯이 되었다.

그리고 다섯 명이 되도록 마지막 사람의 숨통을 끊은 것은…….

“쳇, 피가 튀었네.”

투덜거리는 건 그간 순한 사람 행세를 하고 지내던 칠 호였다. 처음 이 마지막 관문을 시작할 때 생존자가 열다섯 명이었으니 죽은 이들의 숫자는 열 명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십삼 호를 죽인 것까지 포함한다면 칠 호가 죽인 이들의 숫자는 무려 다섯이었다.

한마디로 사망자의 절반을 칠 호가 죽였다는 의미다.

고작 열 살의 나이.

그렇지만 사람을 죽이는 칠 호의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건 다른 아이들과 그가 엄연하게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이곳에 끌려오기 전부터 칠 호는 사람을 죽인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상대를 죽이고 대략 이 각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대앵!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왔고, 그건 곧 이제 남은 인원이 다섯이라는 걸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끝나 버린 마지막 관문.

길목에 미리 자리하고 있었던 칠 호의 시선에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싸움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는지 그들은 제각기 적당한 거리를 둔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누군가가 큰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역시 칠 호, 살아 있을 줄 알았다니까.”

주변을 소란스럽게 하며 나타난 그는 다름 아닌 이곳의 관리자가 주목하던 셋 중 한 명인 육십이 호였다.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덩치는 그를 또래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게끔 만들었다.

그가 등장하자 생존자들 중 두 명이 빠르게 그에게 다가가 붙었다. 그 둘은 이 장원에서 육십이 호를 따르던 이들이었다.

육십이 호의 말에 칠 호가 픽 웃으며 답했다.

“그러는 너도 살았네. 뭐 살아 있을 법한 녀석들이 살았다고 봐야 되는 건가.”

그 말에 육십이 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게. 다만…… 그 녀석이 없는 건 예상 밖이지만 말이야.”

육십이 호가 말하는 것이 십삼 호라는 사실을 칠 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렇지만 칠 호는 그런 그의 말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자신을 도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육십이 호는 알고 있었다.

칠 호가 십삼 호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십삼 호가 숨어 있었던 땅굴에 대한 정보를 넘겨받은 대상이 바로 육십이 호였기 때문이다.

칠 호가 최대한 냉정한 어투로 말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별로. 그냥 좀 신기해서. 그렇게 형 동생 하면서 눈꼴시게 붙어 다니더니.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거든.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거래?”

“그걸 네가 알 필요 있어?”

“뭐, 그것도 그런가.”

육십이 호는 별 상관없다 생각했는지 가볍게 말을 흘렸다.

하지만 육십이 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혼자 서 있는 칠 호를 향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어쩌냐? 이제 혼자 남았는데 내가 감당이 되겠어? 그놈이랑 같이 있어서 그래도 내 상대가 됐던 건데 말이야.”

“…….”

육십이 호는 언제나 칠 호와 십삼 호를 껄끄러워했었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 그렇지만 꽤 강한 둘이 같이 붙어 있는 바람에 많은 아이들과 패거리를 이루고 있던 그조차도 쉽사리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

허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둘 중 하나인 십삼 호가 죽었고, 혼자 남게 된 칠 호 하나 정도는 어떻게든 자신이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칠 호에게 조심하라는 듯한 경고를 남긴 그는 이내 옆에 있는 두 명의 아이들에게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고는 어깨에 잔뜩 힘을 불어넣은 채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가자.”

육십이 호의 말에 두 명의 아이들 또한 그를 따라 움직이는 그 순간이었다.

스윽.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칠 호가 움직였다.

순식간에 뒤편으로 이동한 그는 육십이 호가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팔로 그를 옭아맸다.

뒤에서 팔로 목을 감싸 안은 칠 호가 짧게 말했다.

“감당할 필요 있겠어? 곧 죽을 놈인데.”

말과 함께 칠 호의 손이 움직였다. 동시에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단검이 육십이 호의 목을 파고들었다.

순간 살이 찢겨져 나가는 소름 돋는 소리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부욱.

그것으로 끝이었다.

육십이 호의 목에서는 피가 흘러나왔고, 그대로 그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육십이 호.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이 상황에 육십이 호를 따르던 두 사람도, 혼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나머지 한 명까지도 모두 당황한 듯 뒷걸음질 쳤다.

그 와중에 육십이 호와 함께 다니던 두 명의 소년 중 하나가 거의 울먹이는 얼굴로 소리쳤다.

“야, 야! 이제 끝났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사람을 죽이는 일에 손을 담그긴 했지만, 아직 어린아이였다.

이처럼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칠 호는 담담했다.

자신을 향한 소년의 외침에 칠 호는 피가 묻은 단검을 툭툭 털어 내며 시큰둥하게 답했다.

“아, 벌써 끝났던가? 난 아직 안 끝난 줄 알았지. 그리고 애초에 다섯 명이 되면 그 이후엔 죽이지 말라는 규칙이 있던 것도 아니잖아?”

“그, 그건…….”

소년은 채 말을 잇지 못한 채로 더듬거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의 목을 그어 버리는 잔혹함. 그런 성정을 지닌 상대를 이런 소년이 감당해 낼 리 만무했다.

모든 것이 끝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육십이 호를 제거한 칠 호였지만 사실 이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얼결에 지금 죽이긴 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칠 호는 그를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선택받을 수 있는 건 생존자들 중 단 한 명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가장 위험한 적수는 육십이 호 하나뿐이었는데…… 십삼 호까지 죽여 가며 이곳에 선 칠 호다.

애초에 육십이 호를 살려 둘 리 만무했다.

죽어서 쓰러져 있는 육십이 호를 내려다보며 칠 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걸리적거리던 두 놈을 모두 치웠네.’

선택을 받는 건 단 한 명뿐이고 현재 생존자는 넷이었다. 하지만 칠 호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그곳에는 잔뜩 겁을 먹은 채로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세 명이 있을 뿐이었다.

피식.

여러 가지 시험들을 통해 그들이 원했던 건 누구보다 뛰어난 인재였다. 그렇다면 자신을 포함한 이 넷 중에 그 같은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자신.

십삼 호와 육십이 호가 죽은 지금 답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그때였다. 산 위쪽에서 일련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아이들을 관리하던 무인들이었다.

선두에서 다가오던 책임자 사내는 거리가 점점 좁혀져 오자 표정을 구겼다.

가까이 와서 선 그가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

“뭐야 이건?”

사내의 시선은 죽어 있는 육십이 호에게 틀어박혀 있었다. 이곳으로 출발하기 직전 수하들을 통해 생존자의 목록을 전달받았다.

그런데 그들 중 하나인 육십이 호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누워 있었다.

상황 설명을 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살아남은 아이들 중 하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게 방금 전 칠 호가…….”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얼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칠 호를 바라보는 사내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 자식…… 보통내기가 아닌데.’

이런 상황에서의 살인이라니.

이것은 강요로 인한 것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행한 행동이었다.

그랬기에 놀랐다.

이토록 어린아이가 그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거기다가 칠 호가 누구인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 올바른 행실로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던 이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는 사내가 몇 달간 보아 왔던 그 녀석과 동일 인물인지조차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만큼 완벽히 남들을 속여 왔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칠 호에게 감탄을 하고 있는 사이 옆에서 수하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할까요, 대장?”

그의 목소리에는 곤란함이 묻어 나왔다.

그분 앞에 선보일 아이를 다섯 명 정도로 추스르라는 명을 받았다. 그런 와중에 의외의 상황이 닥치며 한 명이 더 줄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사내가 짧게 말했다.

“이 넷만 보여드리도록 하지.”

어차피 중요한 건 뛰어난 실력자를 가려내는 것이다. 애초에 다섯 정도로 숫자를 줄이라고 한 것 자체가 실력 있는 아이들만 확인하여 쓸데없는 시간을 줄이려는 목적을 지녔다.

본래의 목적이 그러하니 한 명 정도의 아이가 줄고, 늘고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결정을 끝낸 사내가 대충 일을 매듭지으려는 그때였다.

산 위에서 누군가가 허겁지겁 뛰어 내려왔다.

“대장!”

“무슨 일이야?”

잔뜩 상기된 표정의 수하를 향해 사내가 물을 때였다. 빠르게 다가온 수하가 곧장 중요한 일을 알렸다.

“그, 그분이 곧 도착하신답니다.”

“뭐?”

그분이라는 말에 사내의 얼굴엔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여태까지 준비한 그 많은 일들.

그 모든 게 바로 지금 오고 있다는 그분이라는 존재를 위해 준비한 것들이었다.

사내의 시선이 네 명의 생존자들에게 향했다.

하나같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지저분한 겉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사내는 오랫동안 씻지 못한 아이들에게서 나는 퀴퀴한 냄새를 눈치챘다.

뒤늦게 코를 막은 그가 다급히 소리쳤다.

“어휴, 냄새들하고는!”

사내는 곧장 뒤편에 있는 수하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그들을 향해 급히 명령을 전달했다.

“뭣들 하고 있어! 그분께 보여드리기 전에 이 거지 같은 놈들 전부 깨끗하게 씻기고, 옷들도 갈아입혀!”

* * *

휘황찬란한 마차 한 대가 산길을 타고 빠르게 움직였다. 어딘가를 향해 바삐 움직이던 그 마차가 멈추어 선 곳은 바로 산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름 없는 장원이었다.

마차가 장원의 입구에 도착하자 그곳을 막아서고 있던 무인들이 재빨리 포권을 취했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한목소리가 되어 외치는 그들의 음성에는 마차 안에 있는 인물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이 가득했다.

그만큼 그 상대는 이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토록 격렬한 환대 속에 장원 안쪽으로 들어선 마차는 곧장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고 마차가 도착한 장소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무려 사십여 명에 달하는 무인들.

아이들을 감시하고, 또 관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이들이다. 그들이 책임지고 있던 이들이 무공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많은 무인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

그건 그만큼 이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 사십여 명의 무인들은 마차가 자신들의 앞에 멈추어 서자 곧바로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췄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순간 마부의 옆자리에 자리하고 있던 무인 한 명이 껑충 뛰어내렸다.

사십 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그 사내는 무척이나 날카로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사내의 이름은 염청(炎淸).

그는 현 무림을 대표하는 최고 고수들을 칭하는 우내이십일성 중 하나였다. 사자검(獅子劍)이라는 별호를 지닌 사파 쪽의 고수로 강렬한 검술을 지닌 인물.

무림에서 손꼽히는 고수인 사자검 염청이 윗사람으로 모실 만큼 마차 안의 인물이 지닌 힘은 거대했다.

마차의 옆으로 다가온 염청이 입을 열었다.

“하명하시지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탁.

굳게 닫혀 있던 마차의 창문이 열렸다.

하지만 창문에는 겹겹으로 된 휘장이 달려 있었고, 그 때문에 안의 모습을 확인하는 건 불가능했다.

휘장 안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옙!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곳을 총괄하던 사내가 바짝 긴장한 어투로 크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이내 뒤편에 있는 수하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뒤편에 있던 네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일렬로 주르륵 선 네 명의 아이들.

순간 휘장 안쪽에서 서슬 퍼런 시선이 그 아이들을 훑었다. 휘장으로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렬한 눈빛이 느껴져서일까?

아이들은 지레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쳤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 내기까지 했다.

그 순간 휘장 속 인물이 가볍게 혀를 찼다.

“쯧.”

그 소리에 총괄하는 사내가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자신을 책망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순간 마차 안에서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편없구나. 단…… 한 녀석을 제외하고.”

마차 안 인물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는 칠 호가 있었다.

살짝 힘을 실어 쏘아 보낸 강렬한 시선에 움츠러들긴 했지만 어떻게든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유일한 아이였다.

그제야 총괄 사내의 구겨졌던 표정이 슬쩍 풀어졌다. 이런 중차대한 일을 자신에게 맡겨 주셨거늘, 그 결과가 신통치 않다면 어찌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그가 신이 났는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칠 호 저 녀석은 아이들 중에서 처음부터 두드러졌던 아이입니다.”

어떻게든 칠 호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그때.

어르신은 그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마차 옆에 자리하고 있는 염청을 불렀다.

“염청.”

“예, 어르신.”

“네가 보기에는 어떠하냐?”

“음…… 쓸 만해 보입니다. 모자란 부분은 따로 교육을 시키면 그만일 테니까요.”

염청의 대답에 휘장 속 인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오랜 시간 준비를 해 온 일. 그만큼 이 어르신이라는 이에게 이번 일은 중요한 일이었기에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염청의 대답을 듣고도 잠시 칠 호라는 아이를 바라보던 그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좋아. 저 아이로 데려가지.”

휘장 속 어르신의 그 한마디에 이곳을 담당하는 사내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번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고, 그걸 자신이 성공시켰다. 그 말은 곧 자신에게도 엄청난 보상이 따를 거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건 선택받은 칠 호도 마찬가지였다.

애써 감추려고 했지만,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 온 칠 호다. 그런 그에게 인생 역전의 기회가 찾아오고야 만 것이다.

‘마침내…… 여기까지 왔어.’

그의 얼굴에 희열이 맴돌았다.

많은 이들을 희생시키며 이곳까지 왔다. 하지만 그 선택들에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사내와 칠 호가 각자의 상황에 따라 기뻐하는 그때였다.

그사이 마차 안에 자리하고 있던 어르신이 바깥에 있는 염청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염청, 뒷정리를 부탁하지.』

『뒷정리라 하시면……?』

『이곳을 정리해야지. 여긴 증거도…… 증인도 너무 많거든.』

어르신의 그 전음에 염청의 눈동자가 빛났다.

이 일은 결코 드러나서는 안 될 비밀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말대로 이곳에 있는 저들은 그 부분에 있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이번 일을 통해 어르신이 상대하고자 하는 이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이처럼 증인이 많다면 결국 이야기가 바깥으로 흘러 나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염청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깨끗하게 정리하도록 하지요.』

여기까지 시험을 통과한 아이들만 데리고 가고, 그 외의 모두를 죽인다.

염청이 천천히 손을 뒤편으로 움직이며 검에 손을 가져다 대려는 바로 그 찰나.

“어어?”

누군가의 놀란 듯한 목소리에 염청이 멈칫했다.

그리고 그사이 많은 이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집중됐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 곳에서는 피투성이의 어린아이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터벅, 터벅.

걸음걸이마다 비틀거릴 정도로 좋지 않은 몸 상태.

그렇지만 비틀거리면서도 그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쓰러지려는 몸을 정신력으로 붙잡고, 마치 반드시 이곳에 오고야 말겠다는 듯 계속해서 다가왔다.

잔뜩 엉망이 된 신체.

하지만 그런 몸임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타오르는 강렬한 눈빛.

이곳을 관리하는 사내가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녀석…… 십삼 호?”

그 한마디에 칠 호가 움찔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알아보기 쉽지 않았지만, 거리가 조금 가까워지니 상대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칠 호는 놀람을 금하기 어려웠다.

‘저놈이 어떻게…….’

분명 자신이 직접 절벽 아래로 떨어트렸던 십삼 호다. 그런데 그가 살아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을 죽이겠다는 듯 두 눈에는 살기를 가득 담은 채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그의 걸음걸이에 담긴 박력에 칠 호는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자신의 몸 하나 가누기 어려운 환자였다.

그런 십삼 호에게서 느껴지는 강인한 기운에 칠 호는 자신도 모르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등골이 오싹했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피투성이의 십삼 호가 버럭 소리쳤다.

“칠 호!”

고함과 함께 계속해서 칠 호를 향해 다가오는 십삼 호.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이들 모두를 제거하기 위해 움직이려다 멈칫했던 염청이 곧 정신을 차렸다. 우내이십일성의 하나인 그조차 순간적으로나마 저 어린아이에게 정신이 팔렸던 것이다.

그가 곧바로 임무를 위해 움직이려 할 때였다.

『잠깐!』

머리를 파고드는 어르신의 외마디 전음에 염청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 순간 휘장 안쪽에서 어르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생각이 바뀌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윽.

휘장 속에서 어르신의 손이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십삼 호가 있었다.

“저 녀석으로 하지.”

그 한마디에 십삼 호와 칠 호.

그리고 무림의 운명까지도…… 뒤바뀌었다.

* * *

진법 속의 상황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천무진은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은 채로 힘겹게 몸을 지탱하고 있었고, 그런 그를 매유검이 가까운 거리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천무진을 응시하던 매유검이 더욱더 가까이 다가왔다.

“뭐야? 기억의 속박을 깨는 가루와 주문까지 들려줬는데도 아직까지 이러고 있네. 그럼 더 쉽게 기억해 낼 수 있도록 좀 더 고통을 줘야…….”

매유검의 손이 막 천무진의 어깨에 닿는 그 순간이었다.

탁!

거칠게 쳐 내는 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천무진이 휙 하고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의 입에서 싸늘한 경고가 터져 나왔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 칠 호.”

칠 호라는 호칭을 듣는 순간 매유검이 꿈틀했다. 그 순간 천무진의 말이 이어졌다.

“……죽여 버리기 전에.”

말과 함께 매유검을 올려다보는 천무진의 눈동자는 마치 성난 맹수처럼 이글거렸다.

그 모습을 본 매유검, 한때는 칠 호라 불렸던 그가 장포 안쪽에서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 눈…… 이제야 내가 알던 그 녀석답군.”

매유검은 천무진에게서 성큼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양팔을 들어 올리며 그를 반겼다.

“돌아온 걸 환영한다. 십삼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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