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전수 ― 용이 되어라 (2)
객잔에서 나온 천무진은 천운백에게 이끌려 마교 바깥으로 나섰다. 그렇게 막연하게 그의 뒤를 쫓아 도착한 곳은 마교 외부에 있는 조그마한 장원이었다.
뒤편으로는 길이 이어져 있었고, 그 끝에는 커다란 연무장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연무장 안으로 들어선 천운백이 뒤편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천무진을 향해 말했다.
“어서 들어오지 않고 뭐 해?”
“……진심이십니까?”
“뭐가?”
“제게 천룡성의 나머지 무공들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 말입니다.”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의 정체를 알면서 계속 키워 준 걸로도 모자라, 자신의 기억이 깨어난 이런 상황에서 천룡성의 나머지 무공을 전수해 주겠다니…….
십천야 쪽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찌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인지 천무진은 쉬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 그를 향해 천운백이 어서 들어오라는 듯 손짓을 하며 말했다.
“말하지 않았더냐. 너의 인생을 살라고. 그런 상황에서 사부가 제자에게 해 줘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진심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자신이 아는 모든 걸 전수한다.
본인의 힘으로 결정을 내리고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선 힘이 필요한 법이다.
천운백은 천무진을 믿었다.
그리고 그를 선택한 자신의 눈을 믿었다.
그랬기에 천룡성의 남은 무공을 전수하는 것에 있어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참으로 우스웠다.
이런 상황에서 천운백은 아주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거늘, 바라던 바가 이루어지고 있는 천무진이 오히려 고민에 휩싸여 있었으니 말이다.
아직까지 연무장 바깥에 서 있는 천무진을 향해 천운백이 재차 재촉했다.
“어서 들어오라니까.”
이어지는 천운백의 말에 결국 천무진은 연무장 위로 올라서 그에게 다가갔다.
다가온 천무진을 힐끔 바라본 천운백이 말을 이었다.
“정확한 네 상태를 한 번 확인해 봐야겠구나. 천룡무극심법의 성취는 어느 정도에 이른 것이냐?”
“얼마 전 팔성에 들어섰습니다.”
“호오, 그래?”
팔성이라는 말에 천운백이 눈동자를 빛냈다.
워낙 빠른 성취를 보이기도 했고, 한 번의 삶을 거슬러 올라왔기에 높은 실력을 지녔을 거라고는 예측했었다.
그렇지만 벌써 팔성이라니…….
더군다나 지금의 천무진은 천룡성 무공의 진정한 묘리를 배우기도 전이었다. 만약 천무진이 그것까지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그의 무공은 다시 한번 도약할 게 분명했다.
천운백이 감탄스럽다는 듯 말했다.
“대단하구나. 난 네 나이 정도에 오성에도 채 못 미쳤던 것 같은데…….”
그러니 천무진이 가진 무인으로서의 재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허나 놀라고만 있기엔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천운백이 곧바로 말을 이어 나갔다.
“너도 알겠지만 천룡성의 무공인 천룡비공은 총 아홉 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중 네게 전수해 주었던 건 일곱 개였지.”
남은 두 개의 초식.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천무진에게 천운백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 배우면 될 게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저절로 따라올 테니 말이야.”
“저절로 따라온다니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천무진이 되물었을 때였다.
“말대로다. 여덟 번째 초식을 익히는 순간 아홉 번째 초식 또한 자연히 완성된다는 거다. 마지막 초식은 특별한 능력이자, 천룡성의 근간을 이루는 힘이니까.”
“설마 그게…….”
“맞다. 바로 천룡혼(天龍魂)이다.”
천룡혼.
천룡비공의 마지막 초식이자, 천운백의 말처럼 천룡성의 힘을 이어 주는 근간이기도 한 초식이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공격이나 방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초식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것은 초식이라기보다는 전이대법(轉移大法)의 한 갈래라고 보면 됐다.
전이대법이란 상대의 공력을 빼앗는 흡성대법과는 반대로 자신의 힘을 상대에게 주는 무공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 천룡혼이 일반적인 전이대법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다른 점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전이대법을 사용하면 상대방에게 힘을 전해 주면서 그 본인의 진원진기를 소모하게 된다.
하지만 천룡혼은 달랐다.
천룡혼이라는 전이대법은 완성된 천룡의 힘을 상대에게 전해 주는 능력이었다. 전이대법을 펼치는 당사자의 진원진기나 여타의 피해가 없다는 소리였다.
물론 그것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상대가 천룡성에서 처음 가르치는 요원이화심법을 완벽하게 익히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서는 천룡무극심법 또한 사성 이상의 경지에 올라야만 가능했다.
천무진이 과거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천룡혼이라는 전이대법 덕분이었다.
천운백이 천무진에게 천룡혼이라는 전이대법을 사용했고, 그로 인해 그는 한 번 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천룡혼이 현재 십천야를 이끄는 천지광이 원하는 진짜 힘이기도 했다.
천운백은 엄청난 무인이었지만 사실 천지광은 그가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 결국 그는 혼자였고, 자신은 수많은 수하들을 거느린 십천야의 수장이었으니까.
천운백의 위치만 파악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인원을 투입해서라도 그를 죽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그를 놔두고 있었던 건 자신이 심어 놓은 천무진을 통해 이 천룡혼의 힘을 얻어 내기 위함이었다.
그래야만 자신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으니까.
천룡혼에 대한 짧은 설명을 마친 천운백의 눈동자는 진지하게 변해 있었다.
“그렇다면 천룡비공의 실질적인 마지막 초식을 가르쳐 주도록 하지.”
천운백이 차고 있던 검을 풀어 손에 움켜쥐었다.
그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지막 초식인 천룡혼은 전이대법으로 봐야 했으니, 실질적인 천룡비공의 절초.
우우우웅!
검에서 맑은 검명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검 주변으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도 같은 형태의 기운들.
울기 시작한 검에서 피어난 묵직한 힘이 천운백을 내리눌렀다. 검은 당장이라도 깨어질 것처럼 울어 댔고, 그걸 쥐고 있는 천운백의 안색 또한 점점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전신의 뼈가 아려 왔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천운백은 그런 고통을 억눌렀다.
그가 말했다.
“잘 보거라. 이것이 아마도 내가 네게 이 초식을 보여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테니.”
천룡의 힘이 거의 모두 사라진 지금.
이 절초를 쓰는 건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천무진을 위해 모든 내력을 쥐어짜며 남겨 놓았던 한 줌밖에 안 되는 천룡의 힘.
밀려드는 힘을 검에 집중시키며 천운백이 재차 말했다.
“그 자리에서 절대 움직이지 말거라. 그리고 눈을 감아서도 안 된다.”
천운백의 경고에 천무진 또한 저절로 집중력을 끌어올리던 바로 그 찰나.
번쩍!
천운백이 움직였다.
동시에 세상이 뒤흔들렸다.
천무진은 멍하니 선 채로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폭풍이었다.
주변을 훑고 지나간 그 무수히 많은 공격들 속에서 천무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검이 연신 자신을 향해 밀려들었고, 그 공격 하나하나가 심장을 꿰뚫을 것만 같이 섬뜩했다.
그렇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는 천운백의 검에 말려드는 순간 자신의 몸이 조각조각 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설령 지금 천운백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해도 천무진은 막아 내지 못했을 게다.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천무진의 발 바로 앞에서부터 사방으로 퍼져 나간 균열들은 이 커다란 연무장을 아예 가루로 만든 걸로 모자라, 커다란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움푹 파진 땅은 성인 장정들이 들어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고, 그것은 지금 펼쳐진 초식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말해 주는 단면이었다.
인근에 있는 모든 걸 쓸어 버린 파괴적인 일격.
여태 천무진이 펼쳤던 천룡비공의 다른 초식들 또한 파괴력으로는 어디 가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라 자부했지만 지금 천운백이 펼친 초식을 보는 순간 그 자신감은 거짓말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놀란 듯 발밑을 바라보는 천무진의 귓가로 천운백의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 바로 천룡비공의 절초…… 천추나락(天墜奈落)이다.”
말을 끝낸 천운백은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허리에 찼다. 그러고는 이내 한결 개운하다는 듯 힘겹게 굽히고 있던 몸을 쭉 펴며 길게 기지개를 켰다.
그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휴우, 이거야 원 나이를 먹으니 몸도 말을 듣질 않는구나. 그래도 절초를 네게 보여 줬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다한 것 같아 마음은 한결 편하군그래.”
천룡성의 무공이 끊이지 않고 이어 나가게 하는 것 또한 문주로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었다.
그걸 잘 끝마친 것 같아 천운백은 마음의 짐 중 하나를 던 듯한 느낌이었다.
천운백이 아직도 멍하니 있는 천무진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어떠냐? 직접 본 소감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천무진의 반응에 천운백은 피식 웃었다.
자신 또한 예전에 이 초식을 처음 보고 무척이나 놀랐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그때 자신이 보인 반응도 지금의 천무진과 비슷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고, 또 한편으로는 두렵기까지 했었다.
이런 무공을 자신이 익히고 펼치게 된다는 사실에.
놀란 듯 여전히 굳은 채 서 있는 천무진에게 천운백이 말했다.
“내공의 흐름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조언을 해 줄 수 있겠지만 그뿐이다. 말했다시피 천룡의 힘이 사라지는 바람에 더는 이 천추나락의 초식을 보여 줄 수 없을 게다. 지금 본 것을 머리에 담고 스스로 완성시켜야만 할 게야. 자신…… 있느냐?”
스스로 이 초식을 완성시켜야 한다며 자신 있냐 묻는 그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천무진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천무진의 모습에 천운백은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확신한다.
자신의 제자는 반드시 해낼 거라고.
천무진은 자신을 향해 계속해서 따뜻한 미소를 보이고 있는 천운백을 보며 마음이 아파 왔다.
자신은 모든 기억을 되찾아 변해 버렸거늘 놀랍게도 천운백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모든 걸 알면서도 오히려 더 많은 걸 줄려고 하고 있다.
천무진이 말했다.
“전 배신할지도 모릅니다.”
“괜찮다.”
“이 무공이 사부님을 향할 수도 있습니다.”
“괜찮대도.”
연신 괜찮다고 말해 오는 천운백.
그걸 바라보던 천무진의 감정이 폭발했다.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쥔 천무진이 괴롭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가 안 괜찮습니다, 사부님.”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릴 적 머리에 새겨진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
이 또한 저번 생과 과연 뭐가 다르단 말인가?
오히려 정신이 더욱 똑바르기에 더욱 슬펐고, 또 더욱 한심했다.
어릴 적 머리에 새겨져 버린 금제에 가까운 섭혼술.
그의 영혼은 이미 천지광에게 잡혀 있었고, 그것은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천무진이라 해도 가볍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얼굴을 감싸 안고 있는 천무진에게 다가간 천운백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괴로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천무진의 어깨에 닿았다.
천운백이 다독이며 말했다.
“힘들겠지만 이겨 내거라. 그리고 네 스스로 선택해라. 그것이 어떠한 길이든 상관없다. 설령 그게…… 나와는 반대되는 길이라고 해도. 그것이 너의 선택이라면 나는 괜찮다.”
이것은 진심이었다.
천무진이 십천야가 원하는 인생을 선택해도 좋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산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게 어떠한 것이 되었든 간에 그저 그 선택을 스스로의 의지로 정했다면 말이다.
이제 천운백은 모든 것을 다했다.
남은 건 오로지 천무진의 몫이었다.
천룡성의 마지막 절초를 전해 주었고, 천룡의 힘마저 잃어버린 지금.
천운백이 말했다,
“오늘부로 천룡성의 주인은 바로 너다.”
천룡성의 주인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