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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39화 (238/293)

239화. 연인 ―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어서 (1)

“다들 들으셨습니까?”

큰 외침과 함께 한천이 헐레벌떡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그의 호들갑에 방 안에 함께 있던 천무진과 백아린이 시선을 돌렸다.

이내 백아린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단엽이 대홍련 련주 자리에 올랐답니다.”

애초에 단엽이 이곳을 떠날 때부터 대홍련의 련주가 될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끼리의 이야기였고 지금 가져온 소식은 정식으로 대홍련 쪽에서 알려온 것으로, 정말로 실질적인 련주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거처를 떠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들려온 소식.

백아린이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엄청 급했나 보네.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걸 보니.”

하루라도 빨리 대홍련의 일을 정리하고 돌아오겠다던 단엽이다. 그런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벌써 대홍련 내부를 장악하기 시작한 모양새였다.

어지간히도 빨리 돌아오고 싶구나 생각하고 있던 찰나, 천무진이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귀문곡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귀문곡의 곡주가 죽고, 그곳의 주요 거점들은 완전히 파괴된 상황이다. 백아린은 그 상태의 그들을 적화신루의 휘하에 흡수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바삐 움직인 덕분에 이제는 귀문곡의 상당 부분이 적화신루의 손아귀에 들어온 상황.

집어삼킨 귀문곡을 완벽하게 받아들여 운영하기 시작한다면 적화신루는 중원에서 독보적인 정보 단체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현재 가장 뛰어난 정보력을 지닌 개방조차도 그들 아래가 될 테니까.

백아린이 답했다.

“칠 할 정도는 흡수했어요. 나머지 삼 할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 같고요. 다만 이들을 적재적소에 다시 재배치하는 것에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짧게는 세 달, 길게는 반년 정도면 완벽하게 마무리될 것 같아요.”

“……잘됐네.”

천무진이 어렵게 대답했다.

귀문곡을 흡수하는 건 백아린이 원하던 일이었다.

그것이 잘 진행되어 가는 건 분명 천무진에겐 기쁜 일이었지만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십천야다.

그들은 귀문곡이 백아린의 손에 들어가는 걸 원치 않는다. 애초에 귀문곡은 십천야의 것이었고, 점점 숨통을 조여 오는 적화신루의 존재를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랬기에 얼마 전 매유검을 만났던 당시 그가 은근슬쩍 경고도 하지 않았겠는가. 적당히 날뛰라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두고 보기는 어렵다며 말이다.

백아린이 계속 계획대로 나아간다면 결국 십천야는 움직일 것이다.

그녀를 제거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건 천무진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서로가 각자의 길에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오직 자신만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사실에 못내 마음이 복잡했다.

생각이 복잡해져 가던 찰나 백아린이 물었다.

“그런데 요즘 어디를 그렇게 다녀요?”

“아…….”

천운백을 통해 천룡비공의 절초를 전수받았다.

그리고 그걸 익히기 위해 천무진은 매일 같이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외부에서 보냈다. 하지만 이건 아직까지 비밀리에 진행되어져 가는 일이다.

그랬기에 천무진은 간단하게 말을 돌렸다.

“사부님을 좀 뵙느라고.”

“사이가 엄청 좋은가 봐요?”

“……날 키워 주신 분이니까.”

그 말과 함께 잠시 침묵하는 천무진을 향해 백아린이 장난스럽게 얘기했다.

“하, 갑자기 궁금한데요. 어릴 때의 당신이라니.”

“뭐 별다를 건 없었어. 지금이랑 거의 비슷할걸?”

천무진의 그 말에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백아린이 갑자기 피식 웃었다. 뭔가 묘한 그 웃음이 맘에 안 든다는 듯 천무진이 따져 물었다.

“뭐야 그 웃음은?”

“아뇨, 그냥 지금 당신 그대로 작아졌다고 생각하니까 그것도 뭔가 귀여울 것 같아서요.”

백아린의 그 말에 천무진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사실 그보다 더욱 크게 반응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한천이었다.

그가 구석에서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목을 벅벅 긁어 댔다.

한천이 투덜거렸다.

“거, 공공장소에서 애정 행각은 자제 좀 합시다. 짝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언제는 내 배필을 찾아 줘야 하겠다고 난리더니 이제는 또 연애한다고 난리네.”

“그거야 우리 대장이 이렇게 닭살 돋는 사람인 걸 몰랐으니까 그렇죠.”

“뭐?”

백아린이 눈을 부라리고 한천이 서둘러 딴청을 부리는 평소와도 같은 일련의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창문을 통해 바깥을 슬쩍슬쩍 확인하던 천무진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아린.”

“네?”

“잠시 적화신루에 같이 가 줬으면 좋겠는데. 급히 의뢰할 게 있어서.”

“의뢰할 거라뇨? 급한 거 아니면 제게 전달만 해 두시면 이따가…….”

그때였다.

천무진이 슬쩍 눈짓으로 한천을 가리키며 뭔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고는 이내 그가 말을 이었다.

“아니, 직접 다녀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럼 그러죠, 뭐.”

백아린이 눈치 빠르게 천무진의 신호에 반응했다.

얼마 전 두 사람은 어딘가를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한천은 어디 나갈 거면 자기도 데리고 가라며 들러붙었고, 그걸 알기에 슬쩍 그만 떼 놓고 움직이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닌 적화신루에 간다고 하면 일을 싫어하는 그로서는 절대 따라오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 있어서였다.

백아린이 한천을 향해 말했다.

“부총관, 우리 적화신루에 다녀올게.”

“그러시죠.”

순순히 대답하는 한천의 모습에 백아린은 애써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감춘 채로 빠르게 천무진 옆으로 다가갔다.

“가죠.”

말과 함께 두 사람이 후다닥 방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진 방 안에 혼자 남은 한천은 벽에 기댄 채로 손에 들린 서책을 뒤적였다.

그러던 그가 이내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여튼 티들을 너무 낸다니까.”

* * *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걸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지만 그래도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서로의 온기에 두 사람은 추위를 느끼기 어려웠다.

손을 잡고 걷는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천무진의 사부인 천운백의 이야기를 하다 나와서인지 두 사람은 유독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들을 끄집어냈다.

대부분이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들이었고, 두 사람은 연신 웃으며 계속해서 목적지로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어딘가로 향하던 도중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조금 빨리 가야겠는데.”

“왜요? 시간이 상관있는 곳이에요?”

“뭐…… 그렇지.”

“대체 어디기에 그래요.”

“그건 곧 가서 보면 알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아 달라고.”

“에잇, 궁금한 거 잘 못 참는데.”

불만이라는 듯 투덜거리던 백아린이 이내 환하게 웃으며 천무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녀가 말했다.

“특별히 당신이니까 봐줄게요.”

백아린의 그 장난기 어린 모습에 천무진은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이내 쥐고 있던 손을 더욱 꽉 움켜잡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달리자고.”

말을 끝낸 천무진은 백아린의 손을 잡은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마교 외성 한쪽에 있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백아린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조그마한 나루터였는데, 이곳은 마교 외성 내부에 위치한 호수 위를 떠다니는 놀잇배를 타는 곳이었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는지 백아린이 물었다.

“배 타려고요?”

“응, 시간 없으니까 서둘러.”

말과 함께 천무진은 곧바로 옆에 있는 사공에게 돈을 지불하고는 그대로 그 나룻배에 올라탔다.

배 위에 선 그가 아직까지 그 자리에 서 있는 백아린을 향해 몸을 돌린 채로 말했다.

“뭐해? 어서 타라고.”

말과 함께 천무진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백아린은 천무진이 내뻗은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실 그녀 정도 되는 무인에게 이런 흔들리는 나룻배 위에 오르는 것이 일도 아님을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뻗어 준 이 손.

그 안에 담긴 그녀를 위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백아린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스윽.

천무진의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바닥을 겹쳐 놓은 백아린은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나룻배 위에 올라섰다. 그녀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배를 탈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왜 급하다고 한 거예요? 배 시간은 아직 한참 남았잖아요.”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어서. 잠시만.”

말을 마친 천무진은 준비를 마치고 배 위에 올라타려는 뱃사공을 향해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짧게 말했다.

“이 배는 내가 몰겠소.”

“아, 예. 알겠습니다.”

마교 외성에 위치한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무인들이 찾는 경우가 많았고 또한 이렇게 직접 배를 움직이는 일도 더러 있었다.

말을 끝낸 천무진은 자리에 앉아 노를 젓기 시작했다. 노를 젓는 것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무인인 천무진이 조금의 내력을 불어넣자 배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뻗어져 나갔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백아린이 주변의 배들을 빠른 속도로 추월해 나가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뭐예요? 우리 경주라도 하는 거예요?”

“시간이 없어서 그래.”

말과 함께 계속 빠르게 노를 저어 가던 천무진이 이내 호수 가운데쯤 위치했을 때였다. 움직이던 손을 멈춘 천무진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백아린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물을 가르던 노질이 멈추자 순식간에 주변은 자그마한 물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백아린은 자신의 옆으로 다가와 앉은 천무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긴 왜요?”

“말했잖아.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다고.”

“여기서요?”

백아린이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호수의 한가운데 위치한 곳. 주변에 보이는 거라고는 온통 물뿐인데…….

그때 천무진이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천무진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리던 그때였다. 그의 손가락이 향한 곳을 바라본 백아린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태양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태양과 가까워지는 호수의 수면과 그 일대에 주황빛 노을이 일렁였다. 마치 호수 안으로 태양이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장관이었다.

세상이 온통 주황빛과, 노란빛으로 물들었고 그 위에 잔잔한 물결이 흔들렸다.

백아린은 멍하니 그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천무진은 그런 그녀의 옆모습을 응시했다.

이렇게 함께 있는 지금이 무척이나 좋고 즐거웠지만 천무진의 마음은 마냥 편하기만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기억을 떠올리기 전에 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백아린에게 일이 생기는 바람에 이곳에 오려던 일정이 밀렸고, 결국 이렇게 자신의 정체를 기억해 낸 후에야 오게 된 것이다.

잠시 떠오르는 복잡한 상념을 천무진이 고개를 저어 떨쳐 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천무진이 말했다.

“마교에서 손꼽히는 명소라고 해서 언젠가 함께 와 보고 싶었어. 대단한 건 아닌데 너무 기대를 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하군.”

“……아니에요. 너무 좋은걸요. 고마워요. 평생 기억에 남을 선물을 해 줘서.”

말을 마친 백아린이 슬그머니 천무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태양은 점점 물속으로 잠기는 것처럼 사라지고 있었고, 두 사람은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무진과 백아린은 서로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봤다.

노을이 지고 있는 호수 위.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두 사람이 움직였다.

천무진이 부드럽게 백아린의 등을 감쌌고, 동시에 반대편 손으로는 그녀의 턱을 살짝 올려 위로 향하게끔 했다.

동시에 천무진의 입술이 백아린의 입술에 닿았다.

두 사람의 첫 입맞춤과 함께 노을 또한 서서히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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