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왕-244화 (243/293)

244화. 용기 ― 한마디만 해요 (2)

마교 교주 악자헌의 거처.

교주의 거처인 교주전이니 만큼 그곳의 경비는 무척이나 삼엄했다. 겹겹이 무인들이 지키고 서 있었고, 허락받은 인원을 제하고는 내부에 들어오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런 교주의 거처에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다름 아닌 마교 최고의 의원인 마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교주인 악자헌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 왔기에, 오늘의 이 방문 또한 그리 특별한 건 아니었다. 마의는 옆에서 자신을 도울 단 한 명의 수하만을 대동한 채 교주전으로 들어섰다.

마의와 그의 수하는 곧바로 교주 악자헌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마의가 예를 갖추며 소리쳤고, 그 목소리에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악자헌이 정신을 차리고는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내 악자헌이 말했다.

“벌써 자네가 날 찾아오는 날인가?”

“예, 교주님.”

대답을 하며 마의가 슬쩍 악자헌의 상태를 눈으로 살폈다.

악자헌은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상태 또한 예전보다 좋지 않아 보였고,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교주인 그의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주변에서는 말들이 많았지만…….

‘몰랐다면 나도 깜빡 속을 뻔했군.’

악자헌이 사실은 흑주염으로 만들어진 약에 중독당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의다.

지금의 저 좋지 않아 보이는 상태는 오히려 예전만큼 흑주염으로 만든 몽혼약을 접하지 못했기에 벌어지는 부작용이었다.

물론 이 또한 그냥 둔다면 치명적인 상황에 처하겠지만, 적어도 계속해서 복용하던 때에 비해서는 나은 상태라고 볼 수도 있었다.

마의가 말했다.

“맥을 짚어 봐도 될는지요.”

“그리하거라.”

대답하기도 힘들다는 듯 악자헌이 짧게 말을 끝마치고는 눈을 감았다. 허락이 떨어지자 마의는 대동한 수하와 함께 악자헌에게 다가갔다.

조심스레 그의 손목을 걷은 마의가 맥을 짚으며 눈을 감았다.

요동치고 있는 맥.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다.

마의가 슬쩍 말을 걸었다.

“요즘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신지요?”

“다 안 좋구나. 잠도 잘 못 자고, 머리가 자꾸 아파. 거기다가 구역질까지 치미니 식사조차 제대로 하기 어렵다.”

“아무래도 맥도 고르지 않으시고, 혈색을 보고 추측건대 특히나 오장육부(五臟六腑) 중에 간장이 좋지 않으신 듯합니다. 우선은 간단한 침을 놓고 심신의 안정을 위해 따뜻한 차를 한 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말과 함께 마의는 옆에 대동한 수하에게 슬쩍 눈짓을 보내고는 곧바로 침통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마의가 짧게 침을 놓는 사이 수하는 가져온 차를 끓여서 곧장 악자헌의 앞에 있는 탁자 위에 올렸다.

수하가 고개를 조아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허한 기를 채우시는 데 도움이 되는 차입니다.”

“…….”

악자헌은 귀찮다는 듯 찻잔을 바라보았고, 침을 다 놓은 마의가 그에게 말했다.

“저희 약방에서 준비한 특별한 약차이옵니다. 원기를 회복하시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대가 그리 말한다면야.”

악자헌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찻잔을 들어 올려 안에 담긴 내용물을 조금씩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의의 눈동자가 조용히 빛났다.

그렇게 악자헌이 차를 모두 마신 후였다.

“그럼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가도록 하지요.”

말과 함께 마의는 준비해 온 여러 가지 물건들을 꺼내어 들었다.

그의 손이 무척이나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었다.

비어 버린 찻잔을 바라보며 마의는 침을 들어 올렸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진짜 이유는 바로…….

며칠 전 완성시킨 흑주염으로 만들어지는 몽혼약의 해독약. 그것을 교주인 악자헌에게 먹이기 위해서였다.

천무진이 마교에 박혀 있는 십천야의 수장을 제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한들 아예 뿌리가 뽑혀 나간 건 아니었다.

그랬기에 이토록 은밀하게 해독제를 악자헌에게 먹이기 위해 오늘 같은 날을 이용한 것이다.

매번 있어 온 정기적인 검사였기에, 그에게 해독약을 먹이는 게 용이했던 탓이다.

그렇게 약 한 시진이 조금 넘는 시간을 그곳에서 자리하고 있던 마의는 이내 모든 치료를 끝내고 자리에 누워 있는 악자헌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이만 쉬시지요, 교주님.”

마의의 말에 악자헌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만큼 그의 체력은 좋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대동한 수하와 함께 교주전을 빠져나온 마의는 곧바로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올라탔다.

교주전을 나온 마차가 약 일각가량을 달려 나갔을 무렵이었다.

마의가 앞에 자리하고 있는 수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이상할 정도로 공손한 말투.

그 순간 정면에 자리하고 있던 수하의 얼굴이 조금씩 변해 가더니 이내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천운백, 그가 그곳에 있었다.

물어 오는 마의의 질문에 천운백이 고심 가득한 표정으로 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군. 그저 좋은 성과가 있길 바랄 수밖에.”

해독약은 완성시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해독약으로 모두를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나 교주인 악자헌은 흑주염으로 만든 몽혼약을 오랜 시간, 많은 양을 접한 인물이다.

이미 시기를 한참은 놓친 상태.

제아무리 해독약을 먹는다 해도 예전처럼 완벽하게 나아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정신만 차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오늘 악자헌의 몸 상태를 확인하며 꽤나 많은 양의 약을 그곳에 지어 놓고 왔다. 그리고 그 약 안에도 온갖 약재와 함께 해독약이 섞여 있었다.

과연 언제, 또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예상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으로선 이것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으니, 이제는 하늘에 맡겨 둘 뿐.

의자에 몸을 기댄 천운백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거처로 걸어가는 의선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바빴다.

그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거야 원. 쉴 틈이 없군그래.’

흑주염으로 만들어지는 몽혼약의 해독약을 제조하는 것에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선의 하루에 여유가 생긴 건 아니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천무진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일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의선과 마의는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큰일은 바로 자모충과 관련된 것이었다.

천무진은 자신의 몸 안에 자모충이 있을지도 모른다 여겼었다.

물론 자모충은 적련화가 죽으면서 어느 정도 위험도가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의선과 마의는 연구를 이어 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자모충을 넣어 놓은 통들이 가득한 방 안으로 들어선 의선이 익숙하게 하나의 뚜껑을 열었을 때였다.

움찔.

통 내부를 확인한 의선은 당황한 듯 멈칫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당황했던 의선은 곧바로 정신을 추스르고는 옆으로 움직였다. 그의 손이 자모충들이 담겨 있는 다른 통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내 다른 통을 확인한 의선이 놀란 듯 중얼거렸다.

“……뭐야 이건.”

방 안에 있는 이십여 개에 달하는 통들. 그리고 그 안에는 각자 다섯 마리 이상씩의 자모충이 있었다.

꽤나 어렵게 구한 그 자모충들이 놀랍게도 모조리 죽어 있던 것이다.

최대한 그것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유지시켜 놓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자모충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모두가 죽어 나가 있었다.

그것도 수분이 모두 날아간 것처럼 자글자글해져 있는 상태로 말이다.

갑자기 벌어진 의문의 사건.

이 일의 원인을 찾기 위해 방 안을 살펴보던 의선이 갑자기 멈칫했다.

그의 시선에 들어온 뭔가가 있었으니까.

의선은 이내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커다란 나무 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가 조심스레 뚜껑을 열자 안쪽에서 검은 물방울무늬가 가득한 붉은 보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보석의 정체는 천무진이 백아린과 함께 검산파에 직접 잠입하여 훔쳐 온 물건이었다.

그리고 당시 천무진은 이 보석을 품에 가지고 있다가 극심한 고통으로 바닥에 쓰러져 위험한 상황에 처했었다고 들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조사를 해 달라는 부탁에 꽤나 긴 시간을 썼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하던 물건이었다.

그러던 도중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자모충들.

그리고 이 보석이 담긴 상자를 이 방으로 옮긴 건…… 바로 어제였다.

그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의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뭔가가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 * *

자운은 요즘 들어 십천야가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랜 시간 사라졌던 매유검이 돌아와 신경을 건드려 대는 것도 거슬렸는데, 그거로도 모자라 천무진 또한 십천야의 일원이란다.

가뜩이나 십천야 내의 서열 문제에 민감한 자운이다.

매유검은 그렇다 쳐도 천무진은 자신들이 따르는 어르신이 무척이나 특별 취급을 해 주고 있었고, 그것이 자운으로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깟 굴러들어 온 돌멩이 하나 때문에…….’

십천야 내에서 자신의 서열을 최소 삼 위 정도라 여겼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잘 모르겠다.

가뜩이나 십천야 중 넷이나 되는 이들이 죽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서열이 낮아진 기분이었는데 거기다가 천무진까지 나타났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의 아래로는 주란만 남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불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자운에게 갑자기 천지광의 연락이 날아들었다.

그는 곧바로 천지광의 거처로 갔다.

휘장을 사이에 둔 채로 천지광과 마주한 자운이 포권을 취했다.

“부르셨습니까?”

자운의 등장에 휘장 안쪽에 있는 천지광이 입을 열었다.

“자운.”

“예, 어르신.”

“천운백을 죽이는 일의 전권을 네게 맡기려고 하는데 할 수 있겠느냐?”

천지광의 말에 자운의 눈동자가 빛났다.

이건 기회였다.

십천야 내에서 점점 서열이 밀려 가는 지금,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가 급히 말했다.

“물론입니다.”

“알겠지만 천운백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전면전보다는 함정을 파고 유인하는 것이 우리 쪽의 피해가 덜할 게다. 지원은 아끼지 않을 테니 좋은 계획을 하나 준비해 보거라. 살아 나가면 여러모로 번거로워지니 다소 시간을 들이더라도 완벽하게 숨통을 끊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천지광이 심사숙고하여 준비를 끝마치라는 조언을 건넬 때였다. 이야기를 듣기 무섭게 번개처럼 떠오른 하나의 생각으로 인해 자운의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자운이 말했다.

“문득…… 좋은 계획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오로지 저만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이지요.”

“그게 무엇이지?”

천지광이 궁금한 듯 물었을 때다.

자운이 씩 웃으며 답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화산파에는 천운백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이가 한 명 있다는 걸.”

자운의 그 말에 휘장 안쪽에서 천지광이 움찔했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휘장 안쪽에 자리한 천지광이 중얼거렸다.

“화산옥녀 조수아.”

천운백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천지광은 몰랐지만 전생에서 천운백을 죽게 만들었던 여인이기도 했다.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읊조리던 천지광은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좋은 그림이 나오겠어. 제법이로구나, 자운.”

“감사합니다.”

자신을 향한 천지광의 칭찬에 자운의 얼굴에 만족감이 서릴 때였다.

휘장 안쪽에서 천지광의 명령이 떨어졌다.

“실행하거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