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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48화 (247/293)

248화. 사선의 경계 ― 만나러 가야겠다 (2)

스스로 자신의 몸에 실험을 하면서 큰 고통을 경험한 천무진은 빠르게 몸을 치료하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몸 상태를 원래대로 돌리지 않으면, 십천야가 자신의 행동거지를 의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최근 천룡성의 절초를 익히며 매일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왔던 덕분에 지금 당장은 상태를 어느 정도 속일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난다면 점점 상황이 복잡해질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천무진 자체가 워낙 뛰어난 무인이라 회복력이 좋았고, 옆에는 중원 최고의 의원으로 손꼽히는 의선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의 노고 덕분에 천무진은 당시 입었던 타격에 비해 빠른 속도로 회복해 나갔다.

덕분에 이제는 걷는 것이나 일상생활을 보내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회복된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수상해 보이지 않도록 이미 며칠 전에 원래 지내던 귀림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겉보기에만 멀쩡했을 뿐, 아직 천무진의 내상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한동안 열중하던 천룡비공의 절초인 천추나락을 익히는 것 또한 잠시 멈춰야만 했다.

가뜩이나 심한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계속해서 혈도를 넓혀 가며 내부에 충격을 주는 훈련을 진행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무진은 언제나처럼 무공을 익히는 흉내를 내기 위해 천운백과 만나던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에 도착한 천무진은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이상하다는 듯 주변을 살폈다.

언제나 천무진보다 먼저 이곳에 와 있던 천운백.

그가 모습을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 다 있군.’

갑자기 사라진 것이 다소 의아하긴 했지만 원래 말도 없이 여러 곳에 개입되어 있던 천운백이다. 말하지 않은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천무진은 가부좌를 틀었다.

천추나락을 위한 심법이 아닌 내상을 회복하기 위한 운기조식으로 천무진은 한 시진 가까이 자신의 몸을 치료했다.

덕분에 눈을 뜬 천무진의 몸은 운기조식을 하기 직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눈을 뜬 천무진은 언제나와 똑같은 장소에 앉은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천운백의 시선을 느꼈다.

이미 운기조식을 하던 도중 그가 왔음을 눈치챘었기에 천무진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늦잠이라도 주무신 겁니까? 평소보다 많이 늦으셨군요.”

“늦잠은 무슨. 나이를 먹으니 오히려 새벽잠이 줄더구나.”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천운백이 천천히 천무진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고는 이내 그의 몸을 위아래로 살피며 물었다.

“몸은 좀 괜찮아졌느냐?”

“뭐 매일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거의 완치되었으니 너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천무진이 큰 고통에 직면한 걸 안 천운백은 그의 건강에 대해 많은 걱정을 했었다. 그랬기에 천무진은 자신의 나아진 몸 상태에 대해 더욱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아졌다고 목소리에 힘주어 말하는 천무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천운백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행이고.”

자리를 비워야 하는 마당이니 천무진의 몸 상태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천운백은 애써 걱정을 지웠다.

천무진의 옆에는 의선이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곧 천운백이 말을 이었다.

“오늘 이곳에 늦게 온 건 정리를 할 것이 있어서였다. 한동안 자리를 비우게 돼서 말이다. 이미 무공도 다 전수해 주었으니 천추나락을 익히는 데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게다. 뭐, 어차피 네게 보여 준 걸 마지막으로 초식을 사용하기도 어려울 테니 남아 있는다 한들 큰 도움도 안 되겠지만 말이다.”

한동안 자리를 비우게 됐다는 천운백의 발언에 천무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

“지금 같은 때에 어딜 가시겠다는 겁니까?”

말대로 초식을 직접 보여 줄 순 없었지만 천운백은 천무진이 보지 못한 길을 나아갔던 무인이다.

그런 그가 옆에서 조언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천무진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이제는 해야 할 모든 일을 다 하고 천무진에게 천룡성까지 맡긴 천운백이다.

마치 이제부터는 옆에 남아 천무진을 도울 것처럼 말해 왔던 천운백이 갑자기 자리를 비우겠다고 하니 의문이 든 것이다.

천무진의 물음에 천운백이 답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있어서.”

명확하게는 알 수 없는 한마디.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천무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뭔가 걸리는 것이 있어서였다.

천무진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길 바랐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 일만은 아니기를…….

“설마 화산옥녀 조수아라는 분을 만나러 가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툭 내뱉은 천무진의 한마디.

그 말에 천운백이 놀란 듯 물었다.

“허허, 네가 그걸 어찌 알았느냐.”

그저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 천무진이 너무도 정확하게 그 상대를 지목하자 천운백은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천운백이 말을 이었다.

“몰랐는데 네 녀석 생각보다 눈치가…….”

“가지 마십시오.”

순간 천운백의 말을 자르며 내뱉은 천무진의 한마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온 탓에 천운백은 잠시 움찔하고는 그를 바라봤다.

이내 천운백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가지 말라니?”

물어 오는 천운백을 바라보는 천무진의 표정이 흔들렸다.

과거와 똑같았다.

조수아를 이용해 불러내는 방식도, 그리고 일을 진행하는 방법까지도.

그랬기에 알았다.

이번 사부의 여정의 끝이 어떠한지를.

과거의 삶에서 사부는 이렇게 조수아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십천야가 파 놓은 함정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사부는…… 그곳에서 죽었다.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천무진의 모습을 마주한 천운백은 금방 상황을 알아차렸다.

천무진은 미래를 살아 본 자다.

그런 그가 이렇게 머뭇거릴 정도라면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천운백이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그곳에서 죽는 모양이로구나.”

“…….”

천무진은 대답 대신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죽는다는 말을 들었거늘 천운백은 오히려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허허, 그렇구나. 내가 이렇게 죽게 되는군. 거참,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군그래. 자기가 어떻게 죽을지를 안다니…… 재미있네.”

“농담이 아닙니다, 사부님. 사부님만이 아닙니다. 사부님이 구하고자 했던 그분도 어차피 죽었습니다. 그러니 가지 마십시오.”

천무진은 재차 천운백에게 가지 말라고 말했다.

그곳에서 천운백과 조수아 둘 모두가 죽는다.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리, 그러니 지금으로써는 힘들더라도 피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 갈 생각이다.”

“사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곳에 가면 사부는…….”

“그러니 가야지. 내가 가지 않으면 이번에도 그녀는 혼자일 테니까.”

천무진의 말에 천운백이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입을 닫은 채로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천무진을 향해 천운백이 말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나만 기다렸단다. 그녀에게 내가 필요한 그 모든 순간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해 왔다. 평생을 옆에 있어 주지 못했어. 그렇다면 죽는 그 순간이라도…… 내가 옆에 있어 줘야 하지 않겠느냐.”

아무리 천운백이 천하를 호령하던 무인이라 한들 죽음이 두렵지 않겠는가.

사람인 이상 죽음이 두려운 건 매한가지다.

그랬기에 죽을 걸 안다면 누구라도 피하려고 들 것이다.

하지만 천운백의 선택은 달랐다.

평생 자신만을 기다려 온 여인이다.

육십이 훨씬 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오로지 자신만을 보아 온 그런 사람.

옆에 있어 주지 못했다.

그랬기에 가야만 했다.

설령 그 끝이 죽음이라 한들…… 그리고 그것이 정해진 미래라고 해도 천운백의 선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천운백의 말에 천무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의 생각을 알았고,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지도 들었다.

천운백의 생각은 확고했고, 그의 뜻은 진정한 무인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어떠한 말로 천운백의 뜻을 바꿀 수 있으랴.

천무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슬픈 눈으로 천운백을 바라봤다.

그의 선택이 틀렸다 말할 순 없었다.

오히려 천운백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죽음이 정해진 길로 나아가려는 사부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 올 수밖에 없었다.

어린 자신을 거두어 키워 준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

그것도 자신이 십천야라는 걸 알면서도 이토록 믿고, 모든 걸 맡겨 준 사람이다.

이런 훌륭하고 멋진 사람을 사부로 모실 수 있었다는 것.

그건 천무진에게 평생의 행운이었다.

그 순간 그저 묵묵히 슬픈 눈빛만 보내고 있는 천무진을 향해 천운백이 손을 내밀었다. 천무진의 어깨 위에 손을 얹은 그가 언제나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 녀석아, 누가 그리 쉽게 죽어 준다고 하더냐. 나 또한 십천야에게 죽어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러니 돌아오마. 어떻게든 돌아올 테니 그 울상은 그만 좀 푸는 게 어떻겠느냐?”

이런 와중에서까지 장난스럽게 말을 내뱉는 천운백의 모습에 천무진은 더욱 감정이 복받쳤다.

저번 생에서도 사부를 잃었다.

그런 일이…… 이번에는 반복되지 않기를 원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천무진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반드시…… 살아 돌아오셔야 합니다.”

자신을 바라보며 내뱉는 천무진의 간절한 목소리.

천운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약속하마.”

* * *

천무진의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내게 사부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조를 한 것이 얼마나 지났다고…….’

물론 처음부터 천지광이 약속을 지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움직일 것이고,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천운백이나 천무진의 다른 동료들에게 마수를 뻗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자신의 주변인들을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건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최소한 자신이 이런 부탁을 한다면…… 그를 어르기 위해서라도 잠시나마 움직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천무진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천지광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는 모를 것이다.

천무진이 천운백을 유인하는 이번 일이 십천야의 계획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걸.

그와 만났던 당시 과거의 일을 캐묻던 천지광은 천운백의 죽음과 관해서는 질문을 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천무진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말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차에 벌어진 이번 사건.

일들이 벌어지는 시기는 십 년 가까이 빨랐거늘, 놀랍게도 흘러가는 양상은 그때와 똑같았다.

천운백을 함정에 빠트릴 이 작전을 준비하는 데에 걸린 시간도 있을 테니, 아마 자신과 약조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이런 일을 준비했을 공산이 컸다.

처음부터 자신의 부탁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는 의미였다.

그 사실이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다른 이들과 너무도 비교되어 천무진은 더욱 화가 치솟았다.

거기다 그런 자에게 휘둘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자신이라는 존재가 너무도 싫었다.

빠른 걸음으로 거처에 도착한 천무진은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천무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백아린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천무진을 반겼다.

“왔어요? 몸은 좀…….”

말을 내뱉던 백아린의 목소리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심상치 않은 천무진의 표정에서 뭔가 일이 벌어졌음을 눈치챈 것이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사부가 죽으러 갔어.”

“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백아린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그러자 천무진이 답했다.

“십천야가 파 놓은 함정인 걸 알면서도 사부가 소중한 사람을 지키겠다며 그곳으로 가겠다더군.”

“……대단한 분이시네요.”

그 같은 결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백아린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런 그녀에게 천무진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래서 나도 사부와 똑같은 선택을 한번 해 볼 생각이야.”

“무슨 뜻이에요?”

“나도…… 한번 죽으러 가 보려고. 이대로는 한심해서 더는 안 되겠거든.”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최악의 경우 자신이 죽는다 해도…… 다른 이들은 지켜 낼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의 사부처럼 말이다.

놀란 듯 자신을 바라보는 백아린을 향해 천무진이 말했다.

“십천야들이 있는 그곳으로 들어갈 생각이야.”

직접 천지광이 있는 십천야의 본거지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십천야를 무너트리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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