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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49화 (248/293)

249화. 주제 ― 넌 말이 너무 많아 (1)

천운백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인물의 연락을 받고는 곧장 그곳으로 떠났다. 그것이 십천야 쪽에서 흘린 가짜 정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과거의 삶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똑같은 길을 선택했고, 망설임 없이 나아갔다.

천운백 그가 평생을 홀로 두었던 조수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천무진은 떠나는 천운백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저 말없이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의 선택이었고, 마음은 아팠지만 천무진으로서는 천운백의 무사 귀환을 비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천운백을 떠나보낸 직후.

천무진은 며칠간 준비해 온 모든 일들을 마무리했다.

십천야의 본거지로 직접 들어가기로 결정을 내렸고, 그에 따라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천무진은 천지광의 명령대로 주기적으로 상황을 보고해 왔다.

원래였다면 그 보고를 하는 날은 며칠 전이어야 했지만, 이번엔 천무진 쪽에서 따로 연락을 넣어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다른 날짜를 정해 급히 만나고자 청했다.

천무진의 갑작스러운 요청.

이미 마교를 떠났던 천지광이었지만 천무진의 연락에 기다렸다는 듯 그렇게 하자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러 약속된 날이 다가왔다.

일전에 둘의 만남은 마교 내부에서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천무진이 급히 만나기를 청했고, 천지광 또한 마교 외부의 다른 쪽으로 움직인 상황이었기에 마교 바깥에 위치한 중간 장소에서 만나기로 정해졌다.

최대한 천무진이 무공을 익히는 데 열중할 수 있도록 마교에서 이틀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용주(龍珠)라는 마을 인근에 있는 비밀 장소로 약속이 잡혔고, 오늘은 천무진을 그곳으로 안내할 누군가가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약속된 정오가 되자 천무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옆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백아린이 짐을 챙기는 천무진의 모습에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가려고요?”

“응, 슬슬 나가 봐야 할 것 같아.”

이미 그의 결정에 대해서는 전해 들은 터다.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백아린이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천무진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잘 다녀와요.”

“……기다려. 금방 돌아올 테니까.”

계획대로라면 십천야의 본거지로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곧바로 마교로 돌아올 생각이다. 그래서 백아린과 함께 십천야로 움직일 생각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천무진의 의사였다.

십천야의 수장인 천지광이 과연 백아린과 적화신루의 손을 잡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 천무진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어떻게든 계속 연락을 취할 생각이긴 했지만, 잘못하면 꽤 긴 시간 동안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천무진이나 백아린 모두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둘 중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았다.

마치 평소와 마찬가지로 내일이면 다시 볼 사람처럼.

꼭 쥐고 있던 손을 풀며 천무진이 인사를 건넸다.

“다녀올게.”

그 말을 끝으로 천무진은 간단한 옷가지들을 챙긴 짐 하나만을 든 채로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백아린은 일부러 떠나가는 그를 그곳에 서서 배웅했다.

자신을 향한 백아린의 시선을 느끼며 천무진은 그렇게 거처를 벗어났다.

“후우.”

입구에 선 천무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고,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제부터는 계획보다는 흘러가는 상황에 맞춰 최대한 임기응변으로 헤쳐 나가야 할 경우가 훨씬 더 많을 터.

그만큼 힘들어지겠지만……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천무진은 곧장 마교 바깥으로 가기 위해 움직였다. 일차적으로 접선을 하기로 약속된 장소는 마교 외성의 바깥이었다.

천무진의 몸이 빠르게 약속된 장소를 향해 움직였다.

사람이 많은 외성을 지나 바깥으로 나선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대의 마차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천무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마부 옆에 앉아 있던 이가 훌쩍 뛰어내렸다. 죽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상대가 천무진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모시러 왔습니다.”

“…….”

목소리를 듣는 순간 천무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목소리,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왜 네가 여기에 있지?”

“역시 알아보셨습니까?”

대답과 함께 상대가 죽립을 벗었고, 그곳에는 사천당문의 당자윤이 자리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당자윤의 등장이었지만 천무진은 놀라지 않았다. 그가 십천야와 관련이 되었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별로 유쾌하지 않은 상대이기에 그를 마주하는 것이 싫을 뿐이었다.

천무진이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역시 너였군.”

전혀 대수롭지 않은 듯한 천무진의 반응에 오히려 놀란 건 당자윤 쪽이었다. 자신이 십천야의 인물로 나타난다면 상대인 천무진이 어느 정도 반응을 보일 거라 여겼거늘 그런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가 버린 것이다.

당자윤이 말했다.

“전혀 안 놀라시는군요.”

“놀랄 리가 없지. 네가 십천야에게 붙은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천무진의 말에 잠시 놀랐던 당자윤이 이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아셨다고요? 그런데 왜 저를 그냥…….”

“왜긴. 이용해 먹으려고 놔뒀던 거지. 그리고 네 움직임을 예의 주시한 덕분에 마교 소교주를 노렸던 십천야 중 하나를 막아 내기까지 했으니 이용해 먹으려던 당시 계획은 완벽하게 성공한 셈이고.”

이어지는 천무진의 말에 당자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신이 아무런 것도 모르고 이용만 당했다는 걸 알게 된 상황에 기분이 유쾌할 리가 없었다.

허나 천무진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당자윤에게 다가온 그가 옆에 멈추어 선 채로 말을 이어 갔다.

“운이 좋네. 만약 상황이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넌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르거든.”

“…….”

순간 화가 확 하고 치밀어 올랐지만 당자윤은 꾹 참았다.

십천야라를 존재를 알고 지금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도 범상치 않은 이들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들과 관계가 점점 깊어지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이들은 무림의 주인이 될 이들이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을 뿐이지, 무림 곳곳에는 이들이 있었고 원하는 건 뭐든 해낼 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그토록 큰 힘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무림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거다.

그 말은 곧 자신이 보아 온 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능력을 지녔다는 걸 의미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꽁꽁 모습을 감춘다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그런 그들을 대표하는 자들이 바로 십천야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천무진은 더욱 특별했다.

십천야이기도 하지만 천룡성의 인물이라는 배경까지 지녔으니, 절대 눈 밖에 나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당자윤이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차에 오르시죠. 천 공자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시고 오라는 명을 받고 온 거라서요.”

말을 끝낸 그가 서둘러 마차의 문을 열어 주었다.

열어 준 문을 통해 성큼 마차에 올라탄 천무진이 막 자리에 앉았을 때다.

뒤이어 당자윤이 마차에 오르려는 찰나 천무진이 손을 들어 올렸다.

반쯤 몸만 걸친 당자윤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 보일 때였다.

천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 하는 거지?”

“예?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뭐긴. 지금 여기에 같이 타려는 거냐고 묻는 거잖아.”

당자윤은 그제야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당자윤이 머뭇거리는 사이 천무진이 내리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결국 당자윤은 반쯤 걸쳤던 다리를 내린 채로 마차의 문을 닫았다.

굴욕적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감정을 내비쳐서는 안 되는 존재였고, 그랬기에 화를 숨긴 채로 당자윤이 말했다.

“전 마부석에 앉아서 이동할 테니, 혹여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 주시면 됩니다.”

“그러지.”

문밖에 있는 당자윤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로 천무진이 짧게 답했다.

마부석으로 가려던 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천무진의 환심을 사기 위한 말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정말 놀랐습니다. 설마 천룡성의 후계자께서 십천야의 일원이실 줄이야. 정말 이 단체에 몸담을 수 있어 크나큰 영광입니다.”

아첨에 가까운 발언.

하지만 그 아첨보다 더 불쾌한 건 저런 한심한 자에게 이런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박조차 할 수 없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었다.

분하지만 당자윤의 말대로 자신은 십천야의 일원이고, 지금으로선 그곳의 수장인 천지광의 명령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꼭두각시였으니까.

천무진의 표정이 묘하게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며 그가 자신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착각한 당자윤이 말을 이었다.

“아, 물론 천 공자님과 함께하게 된 것도…….”

이어지는 아첨에 천무진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러우니까 이제 그만 좀 가지.”

불편한 듯한 천무진의 말투에 당자윤이 움찔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옙, 그럼 곧바로 모시겠습니다.”

말과 함께 당자윤은 잠시 벗었던 죽립을 얼굴에 썼다. 마부석을 향해 몸을 돌린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망할, 답답해 죽겠는데.’

마차 내부에 있었다면 죽립을 쓰고 있을 필요가 없었지만, 마부석에 앉아서 가게 된 이상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당자윤은 정파의 후기지수 중 하나다.

그런 그가 이곳에 자신이 나타난 사실을 이곳저곳에 소문내고 다닐 필요는 없었으니까.

마부석에 앉은 당자윤이 옆에 있는 마부를 향해 퉁명스레 말했다.

“출발해.”

당자윤의 명과 함께 멈추어 있던 마차가 북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한나절을 달리던 마차가 멈추어 선 건 해가 지고도 꽤나 긴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 전까지는 조금의 휴식도 없이 움직였지만, 늦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잠시지만 마차를 세워야 했다.

식사와 휴식을 위해 멈추어 섰다고 알렸지만 천무진은 마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사이 식사 준비를 모두 끝낸 당자윤이 마차로 가서 천무진을 불렀다.

“천 공자님, 식사하시지요.”

그의 부름에 천무진이 마지못해 마차에서 내렸다.

사실 당자윤과는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목적지까지 안내를 받는 이틀간의 시간 동안은 참아야만 하는 일이었다.

마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준비된 자리로 간 천무진이 자리에 앉았다.

식사 준비를 위해 피웠을 모닥불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고, 그곳에는 몇 가지 음식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야외에서 만든 식사이다 보니 어느 정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와중에 차린 것치고는 제법 구색이 갖춰진 식사였다.

따끈한 국물이 담긴 그릇을 건네며 당자윤이 말했다.

“식기 전에 드시죠.”

그의 배려심 있는 말투에 천무진은 절로 비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그의 성격을 모르지 않아서다.

약자를 무시하고, 언제나 자신이 최고인 줄 아는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사내가 바로 당자윤이다. 그런 그가 지금 자신에게 이같이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천무진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배려가 고맙기보다는 오히려 불쾌했다.

자신에게 이토록 살갑게 대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약자에게는 함부로 굴고 무시하며 행동할 것이 눈에 보일 듯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불쾌감을 억지로 지운 채 천무진은 식사를 시작했다.

천무진의 몸은 아직 좋지 않았다.

자모충에 대한 실험을 직접 몸으로 한 이후 입었던 내상은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였다. 그렇지만 그 후에 천무진은 다시 한번 내상을 입게 되었다.

허나 이건 스스로 원해서 입은 내상이었다.

그 같은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인 이유는 바로 이번 만남을 위해서였다.

잠시 생각에 잠긴 채로 젓가락을 움직이던 천무진을 향해 당자윤이 눈치를 살피다 말을 걸어왔다.

“음식은 어떠십니까?”

“그럭저럭.”

구색이 갖춰진 음식들은 꽤나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그렇지만 천무진은 정말로 이 음식들이 그리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음식의 종류나 맛보다는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했으니까.

실제로 지금 먹는 이 음식들보다 백아린과 한천, 그리고 단엽 이렇게 세 사람과 함께 음식을 구하지 못해 며칠 동안 씹어 대던 육포가 더욱 맛있었다.

당시엔 알지 못했다.

그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상황이 변하고, 모든 걸 잃게 될지도 모르는 지금에 와서야 그때 그 자그마한 모든 것들이 행복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그 행복을 함께했던 이들을 위해 지금 천무진은 움직이고 있었다.

동료들을 생각하는 사이 옆에서 귀찮을 정도로 당자윤이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천 공자께서 십천야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간 십천야와 계속 싸워 오신 건 줄 알았으니 말입니다.”

“…….”

천무진은 별다른 대꾸 없이 계속 식사에만 열중했다.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당자윤으로서는 십천야의 가장 큰 적이라 생각했던 천무진이 그 일원 중 하나라는 사실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짧은 대답도 하지 않는 천무진을 향해 당자윤이 말을 이어 나갔다.

“처음엔 이해가 안 갔는데 생각해 보니 얼추 알겠더군요. 그런 식으로 다른 쪽 세력들을 모아서 그들을 집어삼키시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제야 그 모든 게 눈속임이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말이 맞지 않냐는 듯 확신 어린 말투로 헛소리를 내뱉는 그의 모습에 천무진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당자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모든 일들을 확실하게 설명해 줄 생각도 없었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떠들라는 듯 관심조차 주지 않으며 식사를 이어 나가던 그때였다.

당자윤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했다.

“적화신루도 마찬가지셨군요. 어쩐지 그런 별 영양가도 없는 인물과 함께 다니시는 것이 이해가 안 갔었습니다. 얼굴은 반반하지만 그것 말고 뭐 있습니까. 고작 총관 따위, 천룡성의 인물인 천 공자님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라지요.”

백아린에 대한 말에 여태까지 당자윤의 이야기를 모두 귓가로 흘리던 천무진이 처음으로 꿈틀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천무진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당자윤은 거기서 멈췄어야만 했다.

하지만 식사를 하기 위해 반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탓에 천무진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더 점수를 따기 위한 그의 발언이 이어졌다.

“어떤 독이든 필요하시면 말씀만 주시지요. 제가 적화신루를 집어삼킬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적화신루의 루주든 그 백아린이라는 계집이든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죽일 수 있는 독을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백아린을 직접 죽여…….”

순간.

퍼억!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천무진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발로 당자윤의 배를 걷어찼다.

그것도 그냥 단순한 발길질이 아니었다.

내공이 실린 발길질.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뜨거운 국물을 무릎에 쏟음과 동시에 뒤편으로 나동그라졌다.

하지만 지금 바닥에 쓰러진 당자윤은 무릎에 쏟아진 국물의 뜨거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배에 틀어박힌 일격이 너무도 강렬했던 탓이다.

머리는 새하얗게 변했고, 입가에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창자가 끊어진 것만 같은 고통에 그는 배를 움켜쥔 채로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커, 커커컥.”

숨을 쉬기 힘든지 연달아 힘겨운 소리를 토해 내는 그때였다.

당자윤을 내려다보며 천무진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여? 누가 누굴 죽여? 네가 백아린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당자윤의 숨통을 끊어 버리고 싶었지만 천무진은 최대한의 인내심으로 분노를 내리눌렀다.

아직은 참아야만 할 때였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당자윤을 향해 몸을 굽힌 천무진이 손으로 그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당자윤의 얼굴에 짙은 두려움이 묻어 나올 때였다.

그런 그를 향해 천무진이 말했다.

“넌 말이야, 예전부터 말이 너무 많아.”

퍽!

말과 함께 천무진이 당자윤의 머리를 바닥에 내려쳤다.

당자윤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혼절했고, 천무진은 손을 뗀 채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은 뒤 국물이 담긴 그릇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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