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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50화 (249/293)

250화. 주제 ― 넌 말이 너무 많아 (2)

천무진이 탄 마차는 어느덧 목적지인 용주 인근에 들어서고 있었다. 원래라면 지금보다 더욱 일찍 도착했어야 하지만, 중간에 당자윤이 천무진에게 맞고 혼절을 하는 일이 생기며 다소 시간이 지체된 상황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한나절 정도 더 걸린 것뿐이었지만.

천무진은 다친 당자윤에게 딱히 치료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대충 붕대로 다친 머리를 둘러싼 정도로 부상을 수습해야만 했다.

그렇게 부상당한 몸으로 이곳까지 오는 동안 당자윤은 몰라볼 정도로 조용해져 있었다.

천무진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기 위해 갖은 말들을 쏟아 내던 그가 혼절할 정도로 맞은 직후부터는 마치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침묵했다.

덕분에 천무진은 그 시간 이후 꽤나 조용하게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마차는 용주 인근에 위치한 한적한 산길의 초입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크기의 장원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곳이 바로 천무진의 목적지였다.

장원의 입구에 이르러 마차가 멈추어 섰고, 이내 마부석에서 빠르게 내린 당자윤이 다가와 문을 열었다.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천무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마차에서 내려섰다. 그러고는 곧장 장원의 문 앞으로 가 자신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통해 드러난 내부의 모습을 슬쩍 확인했다.

겉보기에서도 그 크기가 엄청나다는 걸 느꼈지만,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생각보다 더 엄청난 규모였다.

이것은 보통 장원이라고 보기엔 너무 컸다.

마치 근방에서 어느 정도 알아주는 문파나, 상단의 건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크기였다.

그렇게 잠시 안쪽에 시선을 주는 사이.

옆으로 다가온 당자윤이 말했다.

“모시겠습니다.”

정말 할 말만 딱딱 하고 곧바로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선 이틀 전 당했던 일의 두려움이 남아 있는 듯했다.

앞장서서 나아간 당자윤이 장원의 안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와 함께 간 곳은 장원 내부에 따로 마련되어져 있는 장소였다. 큰 장원을 가로지르는 사이 꽤 많은 인원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둘이 지나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각자의 일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

장원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모두가 돌아다닐 수 있는 곳과, 특별한 호패가 있는 이만이 출입이 가능한 곳으로.

그리고 지금 천무진의 앞에 있는 이 문과 담장을 경계로 그 두 구역이 구분되고 있었다.

입구에 선 당자윤이 품 안에서 가져온 물건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호패를 받아 든 천무진이 물었다.

“이건 뭐지?”

“내부에서 움직이시려면 이 호패가 필요하십니다. 만약 호패가 없는 상태로 들어가신다면 그게 누구라고 해도 공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

말과 함께 천무진은 그 나무로 된 호패를 허리춤에 걸었다. 그런 그의 눈치를 살피던 당자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도 이 안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만 물러나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예, 그럼.”

짧은 인사를 끝으로 당자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천무진과 헤어지기를 바랐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천무진이 사라지는 당자윤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입구로 다가갔다.

그곳에 서서 여태까지 천무진과 당자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수문 위사였기에 그는 곧바로 문을 열어 천무진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끔 했다.

그렇게 들어선 장원 내부의 장소.

그곳은 바깥과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컸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바깥에 비해 훨씬 더 꾸며진 느낌이 들었다. 곳곳에는 경치 좋은 장소들이 만들어져 있었고, 지나다니는 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입구에 들어선 천무진이 가볍게 주변을 스윽 훑었다.

눈에 보이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서른일곱.’

무려 서른일곱에 달하는 무인들이 근방에 몸을 감춘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침입자를 막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 무인들이었다.

허나 호패를 차고 나타난 천무진이었기에 그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천무진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내부의 공간 또한 무척이나 컸고, 건물만 해도 이십여 채가 훌쩍 넘어갈 정도였다.

하지만 천무진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나아갔다.

풍겨 오는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터벅터벅.

천무진의 발길이 향하는 곳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고, 그 위로는 수십여 명이 둘러앉아도 될 정도의 규모를 지닌 정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정자의 주변으로는 두꺼운 붉은 천이 둘려 있어, 내부에 있는 이의 얼굴을 정확히 알아보기 힘들게 만들어져 있었다.

감추지 않는 누군가의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곳.

그건 바로 저 정자 위였다.

그리고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도 붉은 천이 둘려 있는 것만으로도 평소 얼굴을 완벽하게 숨기고 사는 천지광이 있을 거라는 건 간단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거침없이 나아가던 천무진이 정자로 향하는 다리의 앞에 자리했을 때다.

파바밧!

얼어 버린 연못 아래와 정자의 지붕 위쪽에서 동시에 다섯 명의 무인이 나타나며 길을 막아섰다.

오늘 이곳에서 약속이 있고, 그 대상이 천무진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선 길을 막아선 것이다.

길을 막아선 그 다섯 명의 무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뒤편에 있는 정자에 자리한 천지광의 명령을.

그리고 이내 붉은 천 너머에서 천지광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길을 내줘라.”

명령이 떨어지자 그제야 다섯 명의 무인들이 나타났던 방향으로 다시금 몸을 감췄다.

길을 막던 무인들이 사라지고, 천무진은 정자와 이어진 길을 따라 다가갔다. 그러고는 이내 붉은 천의 벌어진 틈을 살짝 열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그저 천 하나만 둘려 있을 뿐이거늘 내부는 바깥에 비해 훨씬 더 따뜻했다.

그리고 그 정자의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술상을 앞에 둔 채로 한 명의 인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만나기를 원했던 인물, 천지광이 그곳에서 천무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했던 인물을 마주한 천무진이었지만,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는 움찔하고 말았다.

그때 천지광이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왔느냐?”

물어 오는 질문에 천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신경이 쏠려 있는 건 다름 아닌 천지광의 얼굴이었다.

천지광의 얼굴은 불과 얼마 전에 보았을 때와 많이 달랐다.

얼굴색이 변했고, 다소 균형이 무너진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마치 실처럼 가느다란 균열이 있는 피부까지.

천무진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틀어박혀 있다는 걸 눈치챈 천지광이 말했다.

“얼굴이 이상해져서 놀랐느냐?”

“……조금 그렇습니다.”

“별일 아니다. 언제나 이러니까.”

천지광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사람의 정기를 흡수하지 않으면 사 일을 가지 못하고 얼굴이 무너져 내리는 그다. 그리고 천무진은 지금의 얼굴로 놀라고 있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아직은 양호한 상태였다.

어제 누군가의 목숨을 취했고,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이니까.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게 변할 테니 말이다.

다가온 천무진이 맞은편에 앉자 천지광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예정보다 늦었구나.”

“중간에 사정이 좀 있었습니다.”

사실 천지광은 저번처럼 최대한 멀쩡한 상태로 천무진을 만나려 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다소 망가진 얼굴로 마주하게 된 건 천무진이 한나절가량 늦게 왔기 때문이었다.

해가 진 늦은 시각.

술잔을 내려놓으며 천지광이 말했다.

“사정이라…… 당자윤의 일이더냐?”

놀랍게도 천지광은 천무진과 당자윤 사이에 벌어진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막 도착하자마자 곧장 이곳으로 온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차피 천지광을 속일 수도 없고, 감춰야 할 일도 아니었기에 천무진은 거침없이 답했다.

“예, 주제도 모르고 건방지게 굴어서요.”

“아주 얼굴이 박살이 났다던데.”

“살려 준 것만 해도 어르신께 감사해야 할 겁니다. 어르신이 보낸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천무진의 말에 천지광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천지광은 당자윤이 어찌 되든 큰 상관이 없었다. 이용할 가치가 있으니 같은 편으로 놔두는 것뿐, 천무진이 그를 어떻게 대하든 일말의 관심조차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천지광은 당자윤의 일을 넘어간 채로 질문을 던졌다.

“특별한 보고가 있다며 날 만나고 싶다 하던데 그게 무엇이냐?”

매번 건네는 보고의 대부분은 보고 당시 무공의 성취와 관련된 것이었다.

애초에 천지광의 목적이 천룡혼을 이어받아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었으니 그 외의 것에는 크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랬기에 나머지는 거의 구색 맞추기에 가까웠던 보고였지만…….

그걸 아는 천무진이 굳이 만나서 허락을 받고 싶은 일이 있다 청했다. 그랬기에 그런 부탁에 천지광이 응한 것이었고.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 물어 오는 천지광을 향해 천무진이 답했다.

“마교를 떠나 십천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십천야로?”

갑작스러운 천무진의 제안에 천지광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천무진의 부탁이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그 모든 일에 앞서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천지광이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거냐?”

천지광의 질문에 천무진은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어차피 자신에겐 그에게 거짓말을 할 능력이 없었다. 그랬기에 솔직하게 대답해야만 한다.

중요한 건 그 와중에 천지광이 의문을 품게 되어 던지는 질문들에 자신이 감춰야 할 무엇인가와 연관되지 않게 대답을 하는 것이다.

“아시지 않으십니까. 이미 필요한 건 모두 배웠고, 더는 사부님을 속이기 위해 그곳에 있을 이유도 없어졌으니까요.”

천무진의 말에 천지광이 뭔가 이상한 걸 느낀 듯 물었다.

“사부를 속이기 위해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감추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어르신이 사부님을 죽이기 위해 손을 쓰신 것을요.”

생각지도 못한 천무진의 말에 천지광이 움찔했다.

언젠가 그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알아차리게 될 줄은 몰랐다.

‘끄응, 귀찮게 됐군.’

천지광은 일부러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고 잠시 시간을 끌었다. 가능하면 자신이 천무진에게 약속한 걸 어기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천무진이다. 그랬기에 천지광 또한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기보다는 정확한 상대방의 속내를 알고자 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천운백이었다.

천지광이 막 천운백에 대해 질문을 던지려 할 때였다. 기다리고 있던 천무진이 재빠르게 먼저 말을 뱉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부님은 그곳으로 가셨으니까요.”

“……그래?”

그 질문에 천지광은 애써 흔들리려던 표정을 다잡았다.

천무진이 선택한 방법은 이것이었다.

천지광이 할 질문을 사전에 자신의 방식으로 답한다. 어차피 그를 속일 수 없다면 있는 사실을 그대로 들려준다.

그렇지만 그 일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많은 이야기를 감출 수도, 또 다르게 느껴지게도 만들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천운백이 스스로 간 건 사실이었다. 다만 이 같은 방식으로 말을 함으로써 그가 이번 일을 천지광이 벌였고, 위험하다는 것까지 안 채로 갔다는 사실은 감출 수 있었던 것이다.

천운백이 움직였다는 사실에 안도한 그가 이내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운하느냐?”

“예, 화가 납니다. 제게 한 약조를 지키지 않으신 어르신의 행동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천무진은 자신의 감정을 곧바로 드러냈다.

감정을 감추기보다는 오히려 터트려야 했다.

그래야 조금 더 인간적으로 느껴질 테고, 의심스러운 마음을 거둘 테니까.

그렇지만 여기서 끝이 나면 안 된다.

천무진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결국 전 어르신의 명령을 따라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적당한 분노에, 적당한 수긍.

그 두 가지를 섞어야만 천지광에게서 이어질 질문들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통했는지 천지광은 곧바로 미안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했다.

“네게 한 약조를 지키지 못한 것은 정말로 미안하구나. 네 사부가 너무나 걸리적거리는 존재라 어쩔 수가 없었다. 대신 다른 동료들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은 어떻게든 지키도록 노력해 보마.”

“그래 주시면 좋겠군요.”

어차피 천지광이 자신과의 약속 따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믿지 않을 약속이었기에 천무진은 확실한 어투가 아닌, 살짝 말을 돌리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천운백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나고, 십천야로 돌아오고 싶다는 제안에 대한 답변을 기다릴 때였다.

슬쩍 천무진을 곁눈질하던 천지광이 말했다.

“최근에 내상을 입었다던 것 같은데.”

천무진의 별다른 보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날아든 질문.

그 질문은 치명적이었다.

몸 안에 있는 자모충의 존재를 확인했고, 그걸 제거하기 위한 실험을 하다가 내상을 입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이 자모충을 심은 당사자인 천지광의 귀에 들어간다면…….

천지광의 말을 어길 수 없는 천무진이다.

당연히 이 질문에도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치명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천무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천룡비공의 절초를 익히는 데 욕심을 좀 부렸습니다. 사부님도 심법 훈련에 두 시진 이상을 소모하지는 말라고 하셨는데 세 시진 가까이 열중하다가 내상을 입었습니다.”

천무진이 내뱉은 말은 사실과는 달랐다.

하지만 이 또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몸이 회복되어 갈 때쯤 일부러 절초인 천추나락을 익히기 위한 심법에 더욱 시간을 소모해 스스로 내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해 뒀던 이유.

그건 바로 이 질문을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꽤나 긴 시간 동안 좋지 못한 몸 상태로 마교 내부를 다녀야 했던 천무진이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십천야 쪽 인원들이 이 모습을 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분명 어떻게든 천지광의 귀에 들어갈 테고, 그렇게 된다면 천무진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천무진은 오히려 이걸 역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감추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최대한 자신의 상태가 좋지 못함을 드러냈다. 그래서 이쪽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질문의 폭 또한 줄인 것이다.

오히려 다른 식으로 접근해 오는 것보다 내상을 입은 것에 한해 의구심을 품는 게 속이기 훨씬 좋았으니까.

말을 내뱉은 천무진은 최대한 무뚝뚝한 표정으로 천지광을 바라봤다.

과연 자신의 작전이 통했을까?

거짓을 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를 속인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랬기에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부상을 입히면서까지 준비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런, 몸이 많이 상했겠구나.”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는 천지광의 모습에 천무진은 자신의 작전이 통했다는 걸 확인했다.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걸 이용해 오히려 더욱 철저히 상대를 속인다. 물론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크다면 얼마든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천무진이 담담하게 답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제는 별문제 없을 정도로 회복된 수준입니다.”

“그거참 좋은 소식이군. 회복에 집중하도록 해. 너는 우리 십천야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이니까.”

웃음과 함께 술을 마시는 천지광을 향해 천무진이 물었다.

“십천야로 돌아가도 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안 주실 겁니까?”

재차 내뱉은 질문에 천지광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다소 고민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글쎄. 사실 나도 너를 내 품으로 다시 데려오고 싶다만…… 내부에도 일이 좀 있어서 말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내일에나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루만 기다려 줄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먼 길 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오늘은 우선 쉬고 내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매듭짓도록 하자꾸나.”

“예, 어르신.”

말을 마친 천무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곧장 짧은 인사를 마치고는 붉은 천 바깥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천무진이 사라지고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천지광이 중얼거렸다.

“갑자기 돌아오고 싶다라.”

뭔가 의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내 천지광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든 뭐가 대수란 말인가.

어차피 천무진은 자신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

그러니 천무진이 무슨 짓을 하든 천지광은 그를 멈출 힘이 있었다.

그리고 굳이 천무진이 이렇게 나오지 않았어도 천지광은 조만간 그를 가까이로 불러들일 생각이었다.

천룡혼이 언제 완성될지를 정확히 가늠할 순 없다.

다만 지금의 상태라면 머잖아 그 경지에 도달할 것으로 보였다.

한시가 급한 천지광이었다.

당연히 그를 옆에 두는 쪽이 좋았다.

사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굴었지만 이미 답은 내린 상태였다. 천무진의 제안처럼 그를 내부로 받아들일 것이고, 옆에 둔 채로 천룡혼의 완성을 기다릴 계획이다.

천지광이 슬그머니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쭈글쭈글해진 자신의 손.

그것이 보기 싫었는지 팍 인상을 찌푸린 그는 천천히 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손뿐만이 아니다.

마공으로 인해 망가진 흉물스러운 신체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볼품없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천지광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 저주받은 몸뚱이로 사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군.”

말을 내뱉었던 그가 웃음을 참기 힘든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천지광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큭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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